#15 성기 박물관과 오로라 투어

아이슬란드 감기 #15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밤에 바라본 할그림스키르캬 산책


15화: 성기 박물관과 오로라 투어


대낮의 레이캬비크를 동네 주민 모드로 돌아다니니 다른 관광객이 2번이나 길을 묻는다. 어슬렁어슬렁 다녔더니 진짜 동네화 된 모양이다. 심지어 길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여기도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간혹 보인다. 폐지 대신 깡통이다. 추운 나라에선 어떤 차를 타나 봤더니 폭스바겐과 도요타가 많다. 고급 차로는 랜드로버와 벤츠가 보이고, 현대기아차도 간혹 있다.


어슬렁 어슬렁 레이캬비크 시내 산책


동네를 걷다가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선물을 거의 사지 않는다. 혼자 마그넷을 모으는 정도? 이제 다들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오니 갈 때마다 선물을 사 오고 하는 분위기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지역 특색이 있는 물건에는 욕심이 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지역의 소금과 빙하나 화산재로 만든 비누, 핫도그 가게의 소스를 샀다. 누굴 줄려고 산 건 아니고 일상에서 기분 내는 정도?


유명한 12 Tonar, 제품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물건을 사러 들어간 한 가게에서는 점원이 택스 리펀에 대해 설명을 한다. 금액이 너무 적어서 괜찮다고 생각해서 “필요 없다”고 했더니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고 계속 설명을 한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듣게 생겼나?’ 살짝 불쾌한 마음도 들었지만 “알지만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자기들끼리 뭐라 쑥덕대는 것 같기도 했지만 2만 원도 안 되는 물건 사면서 택스 리펀 챙기는 건 귀찮잖은가.


한편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장난스럽게 단어만 갖고 영어를 하는데 이게 나름 습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단어는 생각이 나는데 이걸 간단한 문장으로 만들 때는 약간의 버퍼링이 있다. 요즘 영어 학원들이 간단한 문장을 외우게 만드는 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단어로만 말하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 실컷 다 알아듣고도 단어로만 띡 답하면 무성의해 보이니까.


성기 발물관 내부의 이런저런 모습


오후 시간엔 구글을 검색하다 주변에 성기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성 박물관도 아니고 성기 박물관은 뭐지? 결론부터 말하면, 수컷 포유류의 성기를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대부분이 고래 등 해양동물이고 그 외 약간의 육지 포유류와 인간의 성기가 전시돼 있다. 그리 놀라울 박물관은 아니고 그저 “고래의 성기가 엄청 크구나” 할 정도? 개인이 차린 박물관인 만큼 대단한 자료나 양질의 볼거리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크램차우더가 나오자 사진을 찍는 주변 사람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니 저녁이 됐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온 이후, 처음으로 외식다운 외식을 했다. 메뉴는 크램차우더. 맛도 좋지만 가성비가 좋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결정했다. 저녁 시간 살짝 전이라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았는데 수프 종류나 음료 종류를 고르라고 해서 난감했다. 어떤 수프나 어떤 음료가 있는지 알려주면 좋을 텐데 다짜고짜 고르라고 하니 난감. 뭐가 있냐고 물으니 살짝 귀찮다는 듯 속사포 설명을 해준다. 눈치 보여 먹겠나 싶었지만 맛은 좋았다. 주변에서도 사진 찍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오로라 투어가 취소되고 할그림스키르캬 산책


저녁까지 마치고 밤 일정을 위해 미니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오늘은 드디어 오로라 투어가 있는 날!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불길한 마음에 메일을 검색했더니, 이런! 오늘 오로라 투어는 날씨 문제로 취소됐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내일이 출국인데 오늘 취소라니. 오로라 지수를 확인해보니 4로 비교적 높았지만 구름이 많은 날씨가 문제였다. 허탈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했더니 어떤 여자가 이미 샤워장을 쓰고 있다. 그리고 약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나왔다. 그동안 공용 화장실/샤워실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날 불편을 겪었다. 마지막이라 다행인가? 관광객이 많은 성수기에 오면 곤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자 관광객이 많으면 상황을 잘 살펴야 할 거다.


도로를 따라 걸어 음침한 산책로를 지나면 등장하는 페를린


밤에는 혹시라도 오로라를 볼 수 있나 싶어 길을 나섰다. 나름 오로라가 자주 관측된다는 페를란 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페를란은 뮤지엄, 레스토랑, 전망대 등이 있는 건물로 시간이 늦어 문은 닫았지만 주변이 벌판이라 하늘을 보기엔 좋다. 꽤 먼 거리에 시간도 늦었지만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산책하듯 걸었다. 물론 결과는 실패. 오로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다. 페를란 앞 공터엔 나처럼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싶어 온 다른 관광객 무리도 있었다. 서로 아쉬운 눈빛만 교환할 밖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할그림스키르캬 앞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내일이면 아이슬란드를 떠나는구나’ 싶은 생각에 아쉬웠다. 그리고 한 편으로 ‘내가 여길 왔다 가는구나’ 싶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오로라를 못 보다니, 다시 겨울에 와야 하나?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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