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이슬란드를 떠나며(feat. 비바람)

아이슬란드 감기 #16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스키폴 공항에 도착한 아이슬란드항공의 비행기


16화 : 아이슬란드를 떠나며(feat. 비바람)


‘겨울에 아이슬란드에 왔는데 오로라를 못 보다니!’ 생각할수록 원통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달에 다시 오지 뭐” 할 정도의 거리도 아니고 아이슬란드까지 왔는데! 물론 투어 회사에서는 친절하게 날짜를 연기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일 아이슬란드를 떠난다.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다가 출국을 미뤄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인천으로 가는 편도 비행기는 비쌌다. 왕복과 거의 같은 금액.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언제 또 와 보겠어?'하는 마음까지 먹었지만, 결국 결제하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레이캬비크의 주간 날씨는 계속 구름과 눈, 비였다. 출국만 미룬다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지막 밤, 그리고 할그림스키르캬


출국 연기는 포기하고 짐을 챙긴 후, 눈을 잠깐 붙이고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출발하는 날 비바람이 몰아친다. 미니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몰아친다. 그래도 새벽 시간에 출발하는 사람들을 위해 몇 대의 공항 리무진을 편성해 놨다. 고마운 일이다. 겨우 리무진 환승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이용자가 너무 많아 탈 수 없단다. 급하게 다른 버스를 마련하는 동안 이 버스로 갔다가 저 버스로 갔다가 오락가락하며 몸이 다 젖었다. 신발 젖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데!


공항에 도착해서 바지를 갈아입었다. 신발과 양말은 비행기 안에서 벗을 테니 조금 참기로 했다.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은 모든 게 자동이다. 티켓부터 수화물까지 모든 과정을 컴퓨터 화면과 진행해야 한다. 편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들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인 자동화 시스템임에도 노인들을 도와주기 위한 직원들이 꽤 많이 상주해 있었다. 티켓은 일단 암스테르담까지만 나온다. 스키폴 공항에서 인천행을 다시 발권해야 한다. 한 번에 다 주면 편한데 괜히 신경 쓰이게 한다. 공항 자체는 작고 아담하다. 탑승 층으로 올라가니 바로 면세점이 나온다. 하지만 나름 게이트가 많아 직원들은 스카이 싱싱을 타고 다닌다.


무인자동시스템이 구축된 케플라비크 공항


케플라비크 공항 내에는 아이슬란드 사가와 관련한 구조물들이 보인다. 전설 속 캐릭터나 바이킹 설화 등을 주제로 한 것 같다. 공항을 잠시 둘러보다 이내 게이트로 향한다. 의외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 백인 소년이 신나게 뛰어오더니 자기 줄에는 사람이 없다며 좋아한다. 곧 형으로 보이는 다른 아이가 “막스! 거긴 퍼스트 클래스야!”라고 하자, 막스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귀여운 녀석.


아이슬란드 사가


비행기에 올랐더니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온다. 여행하는 중에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긴 하니까. 자리에 앉으면서 책을 꺼냈다. 새벽에 잠깐 눈 붙이고 나오느라 매우 피곤한 상태이니 아마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할 게 자명했지만, 그래도 필요할 때 없으면 또 심심하니까. 내 자리 주변엔 미국 사람으로 보이는 듯한 일행들이 있다. 유려한 하이톤의 영어 발음이 귀에 쏙쏙 꽂힌다. 영어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대낮의 스키폴공항, 그리고 여전한 눈과 비


예상대로 책은 한 줄도 읽지 않고 바로 골아떨어졌다. 그리고는 도착할 즈음 눈을 떴다. 비행기가 밝은 스키폴 공항에 내리고 있다. 새벽에 봤을 때랑 또 다르다 싶으면서도 어차피 9시간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급 피곤 해진다.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서 멈추고 안전벨트 착용 불이 꺼지자 조용히 앉아있던 사람들이 단거리 선수 마냥 칼 같이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짐을 챙긴다. 모두 준비자세로 앉아서 그 불만 보고 있나 보다. 웃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이 꺼지기 전에 한 명도 안 일어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스키폴 공항에 오니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난다. 이제 케플라비크 공항도 아니니 아이슬란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춥고 심한 바람을 피해 실내의 아늑한 공간에 앉아 있지만 이상하게 그 험난했던 자연의 한 복판이 그립다. ‘그래 겨울에 다시 오자. 다시 와서 오로라를 보자’고 생각했지만 그 다짐이 지켜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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