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흥이 넘치는 스키폴 공항

아이슬란드 감기 #17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17화 : 흥이 넘치는 스키폴 공항


12시 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슬란드에 갈 때는 새벽에 도착해 깜깜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스키폴 공항이 밝다. 아이슬란드에서 출발할 때 암스테르담까지만 표를 받아서 살짝 긴장했는데, 게이트를 지나는 길에 무인 발권기가 보인다. 역시 무인자동화 시스템! 어렵지 않게 인천공항까지의 표를 받았다. 코드셰어로 대한항공을 타게 됐다. 이제 문제는 8시간 30분. 또 어떻게 때우나.


게이트로 향하는 길에 무인 발권기가 있다


저번과는 다른 구역이어서 공항의 여기저기를 구경한다. 워낙 큰 공항이다 보니 게이트 방향에 따라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다. 점심 때가 다 됐으니 일단 뭘 먹자. 익숙한 맥도날드에 갈까 하다가 샐러드, 빵, 음료 등을 선택해서 먹는 식당에 줄을 섰다. 줄을 서서 음식을 받는데 가게에서 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가 나오자 일하는 여자분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공항 사람들이 쳐다보며 웃다가 노래가 끝나자 박수를 친다. 여자 직원이 장난스럽게 답례한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는 직원들이 스카이 싱싱을 타고 다녔는데, 스키폴의 공항 경찰들은 세그웨이를 타고 다닌다. 공항 규모의 문제인가? 더 폼은 난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테이블에서 휴대폰을 꽂아 놓고 비행기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책을 펼쳤다. 비 온 뒤의 따스한 햇살이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책은 술술 넘어가고 휴대폰도 빵빵하게 충전되고 있다. 완벽한 오후다.


스키폴 공항 둘러보다 점심 식사도 해결


책을 다 보고 편하게 앉을 곳을 찾다가 반쯤 누워서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많은 휴게실로 왔다. 휴게실 중간에는 피아노가 있는데 아무나 칠 수 있도록 해둔 곳이다. 동남아 꼬마 아이 3명이 아무 건반이나 쿵쾅쿵쾅 누르며 놀다가 공항 관계자에게 제지를 당한다.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조심히 다뤄달라는 것. 그래도 여전히 쿵쾅거리자 이번엔 노신사가 나선다. 자신이 피아노를 칠 테니 들어보지 않겠냐고 한다. 이어 노신사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몇 곡이 끝나자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 노신사


다른 곳을 둘러보고 돌아 오니 여전히 노신사의 피아노 연주는 계속 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청중이 더 늘었다. 2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체력도 좋으시다. 잠시 후 노신사가 피아노 연주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청중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고 퇴장하는 노신사의 뒷모습이 멋지다. 멋지지 않은 노신사도 있다. 공항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개와 함께 뒹굴거리고 있는 의자 아래는 개 오줌으로 보이는 노란 물이 흥건하다. 결국 시끄럽게 통화만 하다 안 치우고 가더라.


한국으로 가기 게이트를 찾아서


시간이 다가와 탑승 게이트로 자리를 옮기니 인천공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다. 공항에서는 가끔 보였는데 게이트 앞에는 바글바글하다. 분위기도 다르다. 패키저로 보이는 어르신들은 이어폰도 없이 휴대폰 영상을 플레이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와서 이거 보라며 소리친다. 꽤 멀리 떨어져 있던 나도 다 들릴 정도로 소리가 아주 크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게이트가 분명하구나 싶었다.


앉아서 책을 읽는데 앞에 아빠, 엄마, 누나, 남동생의 가족이 앉아 있다. 그러다 남동생이 “엄마! 아빠랑 나랑 누나는 다 성이 같은데 엄마는 왜 달라?”라고 묻는다. 옆에 있던 누나가 시크하게 “우리는 다 아빠 성을 따라서 그런 거야.”라고 한다. 그러면서 “근데 그거 성차별이야.”라고 덧붙인다. 아니 이게 무슨 꼬마들의 대화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누나 나이는 한 10살 정도? 대단한 녀석이다.


인천대교를 지나 활주로에 내려앉는 비행기


그렇게 저녁 8시쯤 비행기에 올랐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잠을 자다가 다음날 오후 3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자 다들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난다. 승무원들이 여기저기서 “안전벨트 불이 꺼질 때까지 앉아주세요”라고 소리치고 다닌다. 외국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짐 찾을 때도 마찬가지. 대체 카트를 왜 수화물 벨트 바로 앞까지 밀어 넣는지 모르겠다. 사람도 많아 복잡한 데다 어차피 짐을 꺼내와서 카트에 실을 건데 카트를 그렇게 바로 앞까지 대놓고 있어야 하나? 엄연히 ‘카트 정지선’이 있지만 누구 하나 지키는 사람이 없다. 인천공항에 왔다는 게 실감이 되는 순간이다.


추운 아이슬란드에서 왔는데 서울의 기온이 더 낮다. 공항 리무진을 타러 공항 밖으로 나가니 여기가 레이캬비크인지 서울인지 갸웃할 정도다. 원래 추위란 단순히 기온만의 문제는 아니다. 찬 공기와 바람이 추위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레이캬비크가 추운 거다. 근데 서울도 만만찮다. 괜히 돌아왔어. 추워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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