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허더즈필드에 다 가보네

축구보러 영국왔다 #03

by 김제르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리버풀을요. 스티브 맥마나만 선수 때문에 리버풀을 알고 좋아하게 됐으니 족히 20년은 넘었네요. 박지성이 맨유에 갔어도, 손흥민이 토트넘에 갔어도, 리버풀과 붙는 맨유나 토트넘은 그저 적일 뿐이죠.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지만 축구는 최고의 흥분과 감동을 주니까요.


호텔 주변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거리


#3 허더즈필드에 다 가보네


개인적으로 영국 여행은 2번째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런던을 다녀왔다. 첫 여행이 보통 그렇듯 '영국=런던'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는 런던을 철저히 배제했다. 잘해야 하루 정도 갈까 말까?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 역에서 버진 트레인을 타고 유스턴까지 2시간 정도니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리버풀, 맨체스터, 허더즈필드를 중심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바로 리버풀의 원정 경기가 열리는 허더즈필드 타운이다.


맨체스터 공항을 통해 허더즈필드로


그래서 히드로 공항이 아닌 맨체스터 공항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히드로 공항으로 들어와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겠지만 맨체스터 공항을 놔두고 굳이 그런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할 필요는 없잖은가. 런던까지 직항을 타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중동 비행기로 한 번 정도 경유하는 방식이라면 맨체스터로 들어가는 게 훨씬 낫다. 맨체스터에선 허더즈필드나 리버풀이 1시간 내외다.


나를 혼란에 빠뜨린 2장의 기차표


드디어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과 비교하자니 작긴 작다. 맨체스터가 영국에서 큰 도시 중 하나라지만 런던과 비교할 급은 아닌 것 같다. 입국장에서 왜 왔냐는 질문에 “축구를 보러 왔다. 나는 콥이다”라고 했더니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냥 그렇다고요. 서둘러 허더즈필드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한다. 근데 기차표를 2장을 준다. 왜 2장이지? 환승을 하나? 실수로 줬나?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오만 생각을 다 하다 검표원에게 물어보니 그냥 타고 가면 된단다. 근데 왜 2장을 주는 거야 헷갈리게.


어둑어둑한 허더즈필드 거리와 내가 묵은 고전적인 숙소


허더즈필드에 도착했더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살다 살다 허더즈필드에 다 와 보네. 외국에 가면 런던 같은 대도시나 갈 줄 알았더니 이런 작은 도시에도 올 일이 생기는구나 신기하다. 허더즈필드의 첫인상은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웠다. 전형적인 작은 시골 도시였지만 예스러운 건물들을 보니 과거의 유산을 잘 이어오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형적인 주택가를 통과하니 옛 건물들을 잘 보존한 식당이나 호텔이 꽤 보인다. 내가 묵은 숙소도 고전적인 스타일이다. 벨을 눌러야 현관을 열어주는 방식도 재미있다. 들어가면서 우편으로 미리 와있던 리버풀 원정 티켓을 손에 넣었다. 아싸!


밤의 허더즈필드를 지나 낮의 허더즈필드로


잠깐 밤 산책을 다녀왔지만 늦지 않게 잠을 청하고 아침을 맞았다. 조식을 먹을 때는 특별히 못 먹는 것이 있는지 체크를 한다. 친절하다. 이것저것 제대로 담아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길을 나선다. 허더즈필드의 도심을 구경하고 캐슬 힐로 향한다. 걸어서 1시간 15분 거리에 여기서 가장 높은 곳이지만 등산하는 기분으로 언덕에 올랐다. 아무것도 없이 옛 성의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인데 사람도 별로 없어 상쾌한 느낌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허더즈필드의 전경도 멋졌다. 바람을 좀 쐬다 다시 내려갔다. 이번에는 버스를 탔다. 1시간 15분 언덕 등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더니 진이 다 빠졌다. 혹시라도 누가 온다면 반드시 버스를 타길.


캐슬 힐과 허더즈필드 전경

시내로 돌아와 젊은 사람들에 휩쓸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허더즈필드 대학에 도착했다(좋아 자연스러웠어). 온 김에 헤리티지 키(heritage quay)도 보고 도심 속 캠퍼스도 둘러봤다. 인도나 아랍권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간간히 중국인 학생도 있고. 그렇게 시내를 기웃거리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다지 할 일이 없기도 했고, 오전부터 등산 아닌 등산을 했더니 온 몸이 뻐근했다. 좀 쉬다 축구장에 가야겠다 싶어 누워있는데 메일이 왔다. 경기 티켓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허더즈필드 유니버시티와 근처 parish 교회


내가 받은 경기 티켓이 시니어용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고? 경기 시간 4시간 전인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판매자가 티켓을 들고 호텔로 온단다. 나는 못 미더워 직접 만나겠다고 했지만 약속 잡으면서 오히려 엇갈릴 수도 있다고 호텔에 맡기겠다고 했다. 일찍 축구장에 가서 놀 생각이었던 나로서는 축구장 구경을 하다가 중간에 티켓을 받으러 다시 숙소로 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제발 티켓이 제대로 와주길! 설마 이게 스텁허브의 폐해가 아니길! 마음속으로 빌며 축구장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데스크에 들렀더니, 뙇! 새로운 티켓이 와 있었다. 이제 진짜 경기장으로 고고!


옛날 돈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안 받아준다. 5파운드 지폐와 1파운드 동전은 화폐가 바뀌면서 아예 받지 않았다. 아니 금지도 아니고 왜 안 받지? 유통된 화폐에 대해서는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무슨 소용이랴 안 받는다는데. 어쩔 수 없이 50파운드를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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