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축구와 쇼핑의 도시, 맨체스터

축구보러 영국갔다 #05

by 김제르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리버풀을요. 스티브 맥마나만 선수 때문에 리버풀을 알고 좋아하게 됐으니 족히 20년은 넘었네요. 박지성이 맨유에 갔어도, 손흥민이 토트넘에 갔어도, 리버풀과 붙는 맨유나 토트넘은 그저 적일 뿐이죠.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지만 축구는 최고의 흥분과 감동을 주니까요.


맨체스터의 거리


#05 축구와 쇼핑의 도시, 맨체스터


이른 시간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9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원래는 숙소 앞의 그린헤드 공원에 잠깐 들러 바람 좀 쐬다 갈 생각이었지만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어서 기차를 타야겠다 싶은 생각만 들었다. 날씨를 확인하니 맨체스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빨리 가서 숙소로 피신하자 싶었다. 그래서 바로 기차를 탔고 11시 40분쯤 맨체스터 피카딜리역에 도착했다.


안녕 허더즈필드


예상과는 달리 맨체스터에는 이미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박 같은 게 내리다가 다시 비가 내리다가 눈발이 좀 날리더니 다시 비가 오는 전형적인 개떡 같은 날씨였다. 우산은 있었지만 트렁크를 끌고 우산을 쓰고 가기에는 비가 꽤 많이 왔다. 그렇게 역에서 30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상황을 보니 이게 기다린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싶어 길을 나섰다. 골목이 많아 길을 좀 헤맸다. 여기 저기 걷다 보니 이미 신발은 다 젖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신발 젖는 거다.


전형적인 영국 날씨 속 맨체스터 도착


애매한 도로와 비슷한 건물들을 지나 숙소인 이지호텔 맨체스터에 도착했다. 나를 영국으로 이끈 바로 그 ‘취소 불가’ 호텔 이지호텔 맨체스터에 도착한 것이다. 근데 이 호텔 좀 재미있다. 내부는 깔끔한데 방은 엄청 작다. 데스크는 친절한데 뭘 하든 다 옵션 금액이 책정돼 있다. 이른 체크인과 늦은 체크아웃, 짐 보관, 청소, 와이파이, 심지어 TV 리모컨까지 다 가격이 붙어 있다. 왜 리모컨이 옵션인가 했더니 그럴 만했다. TV는 2m 높이의 벽 위에 달려 있었고 버튼은 TV 뒤에 손을 넣어 겨우 만져질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현기차도 아니고 호텔이 옵션 장사라니!


천장에 닿을 듯한 엽기적인 높이의 TV


이른 체크인 비용을 추가하고 숙소에 들어왔다. 비를 쫄딱 맞고 도착했는데 숙소에서 짐을 풀다 보니 비가 서서히 그친다. 이게 바로 영국 날씨구나. 신발을 창가에 널어놓고 다른 신발을 꺼내(역시 영국 여행엔 신발 2개가 기본) 신었다. 젖은 옷들을 대충 말리고 배도 채울 겸 시내 구경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혹시 몰라 우산을 들고 나왔지만 결국 우산을 펼칠 일은 없었다. 근데 날씨가 하도 오락가락 하니 영국 사람들도 대부분 우산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모자를 썼거나 모자가 달린 옷을 많이 입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더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오묘한 매력


맨체스터는 인상적인 도시였다. 고전적인 건물이 그대로 있는 와중에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차도에 전차 레일이 있어 전차와 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같이 다녔고, 영국에서 제일 큰 쇼핑몰이라는 안데일 쇼핑몰을 비롯 백화점과 상점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옆엔 차이나타운도 있었다. 뭔가 기준 없이 다 섞여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과거에 잘 나가다가 쇠락한 도시의 흥망성쇠가 모두 담겨 있는 듯 했다.


축구박물관의 외경과 전시물들, 그리고 펠레


거리를 걷가 처음 들어간 곳은 축구박물관이었다. 영국 축구 자체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도시의 특성답게 맨체스터에 치중한 모습도 보였다. 티켓은 따로 없다. 기부를 하고 입장한다. 기부를 받는 친구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한테 “어느 팀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유나이티드냐 시티냐를 묻는 의도였는데 나는 그만 “리버풀이요”라고 진심을 말해버렸다. 2초 정도의 정적 후에 둘은 마주 보며 “웁스”하고 웃어버렸다. 맨체스터 한 복판에서 리버풀 팬 인증이라니. 그 친구가 “비밀로 해드릴게요”라며 장난스럽게 속삭인다. 센스 있는 친구다.


맨체스터 성당과 시청, 존 라이랜즈 도서관의 고풍미


레스토랑에서 나름 제대로 된 끼니(그래 봐야 샌드위치, 소시지, 수프 등 전형적인 영국식 백반)를 먹고 주변을 더 둘러봤다. 이전을 앞두고 있는 시청은 압도적인 고전미가 있었고, 존 라이랜즈 도서관 역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해리포터가 수업을 들을 것 같은 멋지고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는데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 중인 공간이라 더 놀라웠다. 도서관을 나온 뒤에 아트 갤러리를 들렀고, 피카딜리 가든, 맨체스터 성당, 세인트 앤 교회, 맨체스터 센트럴 역 등을 둘러본 뒤 다시 숙소로 향했다.


영국 최대의 쇼핑몰, 안데일


저녁은 영국 최대의 쇼핑몰 안데일에서 해결했다. 마침 숙소랑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최대의 쇼핑몰이라고 해서 생전 처음 보는 그런 진기한 장소는 아니고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월드몰이나 타임스퀘어 같은 느낌의 곳이다. 큰 건물에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해 있고, 식당과 카페, 마트도 있다. 이곳은 뭐든 다 크다. 간판도 크고 매장도 크고 물건도 많고 브랜드도 다양하다. 먹을 곳도 많은데 마침 저녁 시간이랑 겹쳐 자리 잡고 앉아서 먹기는 힘들었다. 대신 피자 2인분을 테이크아웃했는데, 맛있었다. HASTY TASTY PIZZA 만세!


과거 잘 나가던 공업도시였지만 지금도 맨체스터는 죽지 않았다. 무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를 보유한 도시로, 지금은 축구를 통한 관광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유니폼을 입을 동양인들이 꽤 많이 보인다. 의외로 한국인도 많아서 놀랐다. 남자들은 축구, 여자들은 안데일! 환상 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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