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머지사이드 라이벌, 에버턴

축구보러 영국갔다 #09

by 김제르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리버풀을요. 스티브 맥마나만 선수 때문에 리버풀을 알고 좋아하게 됐으니 족히 20년은 넘었네요. 박지성이 맨유에 갔어도, 손흥민이 토트넘에 갔어도, 리버풀과 붙는 맨유나 토트넘은 그저 적일 뿐이죠.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지만 축구는 최고의 흥분과 감동을 주니까요.


온통 파란색인 구디슨파크의 외벽


#09 머지사이드 라이벌, 에버턴


빌 샹클리 감독의 유명한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리버풀에는 유명한 2개의 축구 클럽이 있다. 바로 리버풀과 리버풀 2군이다.” 사실 이 말은 에버턴을 조롱하려고 한 말은 아닐 거다. 리버풀이라는 도시에서 리버풀 축구 클럽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 거다. 하지만 에버턴 팬들 입장에서 절로 장난 하나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EPL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치열한 더비이긴 하지만 실력차는 좀 난다. 상대 전적에서 리버풀이 75승 62무 52패로 앞선다.(2018년 4월 10일 기준)


에버턴 홈구장 구디슨파크의 전경


에버턴의 홈구장 구디슨파크의 일요일은 조용했다. 전날 아스널에게 5-1이라는 큰 점수차로 졌기 때문인지 더 조용하게 느껴진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린 뒤 조금만 걸으면 구디슨파크가 보인다. 근데 이 동네에서 버스를 탈 때는 손짓을 해야 한다. 정류장에 서 있다고 버스가 무조건 서지는 않더라. 구디슨파크를 직접 보기 전에 여러 소문이 있었다. 경기장 근처가 온통 에버턴의 상징색인 파란색이라는 둥, 리버풀 팬은 경기장 근처에서 조심을 해야 한다는 둥 하는 얘기들이었다. 호기심 반 우려 반으로 구디슨파크에 도착했는데, 이런 소문보다 더 놀란 것은 사람이 너무 없었다는 것. 너무 조용해서 문 닫은 줄 알았다.


주택가 사이로 보이는 에버턴 홈구장 구디슨파크


구디슨파크는 시민구장이라는 특성을 잘 보여주듯 주택가 사이에 있다. 언뜻 주택가 인근의 커다란 공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택가를 지나서 경기장이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주택가들이 경기장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있다. 물론 스탠리파크 쪽은 대로도 있고 또 공원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넓은 공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택가 인근이라 낯선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면 집들에 가려 잘 안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주택가 사이로 보이는 경기장도 멋있었고, 대로에 바로 인접한 입구도 편리해 보였다.


온통 파란색은 아니지만 파란색 포인트가 많이 들어간 건물들


대체로 파란 대문이나 지붕이 많긴 했지만 소문처럼 온통 파란색은 아니었다. 의외로 붉은색도 언뜻언뜻 보였다. 구디슨파크 바로 앞에 사는 리버풀 팬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까. 또 리버풀 팬이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거짓 같았다. 내가 정체를 잘 숨기고 다닌 측면도 있지만, 분위기 자체가 ‘험악’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어떤 가족은 아빠가 리버풀 머플러를, 아들이 에버턴 머플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머지사이드 더비 라이벌이라고 경기도 없는 날 경기장 밖에서 쌈박질하고 그러면 안 되니까.


스탠리파크에서 바라본 왼쪽의 구디슨파크와 오른쪽의 안필드


리버풀 지역에 머지사이드 강이 흐르고 그래서 리버풀과 에버턴의 경기를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의외로 머지 강은 꽤 멀리 있었다. 주변 환경만 보자면 머지사이드 더비보다는 스탠리파크 더비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지도를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안필드와 구디슨파크는 정말 스탠리파크를 사이에 두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가로지르면 10~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다. 스탠리파크를 산책하다 왼쪽을 보면 구디슨파크가, 오른쪽을 보면 안필드가 보이니 기분이 묘했다. 경기가 있는 날은 볼만 하겠구나 싶었다.


압도적인 푸른 벽, 그리고 정문 앞 윌리엄 딕시 딘의 동상


구디슨파크는 너무 멋있게 파랗다. 그냥 커다란 파란 벽에 에버턴 엠블럼만 떠억 하니 붙어 있다. 시크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경기장 주변에는 역대 선수들과 감독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적힌 이름이 루카쿠라는 점이 좀 안타깝지만, 그래도 뭐 에버턴 시절엔 보물 같은 존재였으니까. 경기장 앞은 철문으로 닫혀 있다. 철문 앞엔 레전드인 윌리엄 ‘딕시’ 딘의 동상이 있고, 경기장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길을 건너면 클럽 샵이 있다. 구경을 할까도 싶었지만 길을 건너기도 귀찮았고 그다지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주택가 속 공장 같은 이미지


구디슨파크의 정문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경기장 외벽을 따라 길을 걸었다. 왼쪽으로 걸으면 주택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걸으면 대로변이다. 모든 시설이 예스러운데, 단순히 오래됐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여러 시민들의 손길을 거쳤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구디슨파크는 에버턴의 팬들은 물론 지역 시민들과 함께 하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는 곳이었다. 뭔가 ‘이 지역의 우리 팀’ 같은 느낌? 리버풀과 달리 중소 클럽의 특징이 강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탠리파크를 지나 안필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구디슨파크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바로 스탠리파크다. 리버풀에는 중간중간 큰 공원들이 이어져 있는데 스탠리파크도 그중 하나다. 넓은 공간과 잘 닦아놓은 길, 스탠리 파크 레이크와 청명한 하늘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한다. 서울은 갈수록 도심 공원이 없어지거나 있어도 주변의 빌딩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서울에 비해 약간 시골틱한 이런 도시들에선 공원이 제 역할을 한다. 특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더 쾌적했다. 그렇게 스탠리파크를 걷다 보니 안필드가 보인다. 이번 리버풀 여행의 최종 목적지 안필드가 드디어 나타났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부모와 산책 나온 아이가 뭐가 불만인지 생떼를 쓰며 울고 있다. 아빠는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울음이 잦아드니 조용히 골목으로 데리고 가 대화를 시도한다. 생떼를 쓰던 아이는 곧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참교육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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