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끝내주는 안필드 직관

축구보러 영국갔다 #10

by 김제르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리버풀을요. 스티브 맥마나만 선수 때문에 리버풀을 알고 좋아하게 됐으니 족히 20년은 넘었네요. 박지성이 맨유에 갔어도, 손흥민이 토트넘에 갔어도, 리버풀과 붙는 맨유나 토트넘은 그저 적일 뿐이죠.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지만 축구는 최고의 흥분과 감동을 주니까요.


드디어 안필드!


#10 끝내주는 안필드 직관


스탠리파크를 관통해 안필드에 도착했다. 전에 안필드에 왔을 때는 정문 도로 쪽으로 와서 그냥 도로 옆에 경기장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스탠리파크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니 넓은 공간이 다 보였다. 공원이랑 이어져 시야도 탁 트였다. 산책로였지만 친절하게도 ‘안필드’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워낙 커서 어디서도 보일 것 같은데 이정표라니 뭔가 귀엽다. 안필드를 마주한 채로 뒤를 돌아 반대쪽을 바라보니 나무 사이로 구디슨파크가 보인다. 정말 가깝구나 이러니 맨날 싸우지.


스탠리파크를 나와 주택가 통과하면 안필드, 경찰들 일찍부터 바쁘네


안필드의 왼쪽을 따라 걸으며 스탠리파크를 빠져나왔다. 짧은 블록의 주택가를 지나 정문 쪽 도로로 향했다. 경기 시작까지 아직 4시간이나 남았지만 슬슬 사람들이 몰려든다. 경찰들도 도로를 통제하고 구역별로 나눠 인원을 배치하고 있다. 작은 테이블을 펼쳐놓은 노점상에선 목도리나 배지 등을 팔고 있다. 두리번거리며 경기장 근처를 지나다니니 어김없이 암표상들이 내 옆으로 와 “티켓”이라고 한다. “아이 갓 어 티켓”이라고 괜한 대꾸를 해줬지만 사실은 아직 티켓을 받기 전이었다.


케니 달글리쉬 스탠드와 정문의 The Kop 엠블럼


오늘의 최대 미션은 바로 티켓 수령이다. 원래 우편으로 받고 우편으로 돌려줄 예정이었지만 스터허브에서 온 긴급 메일을 보니 직접 수령하는 걸로 바뀌었다. 마침 장소도 안필드 바로 앞이다. 어차피 경기장 근처라면 상관없었다. 놀며 구경하며 하루 종일 안필드에 있을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게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메일을 다시 읽어봤다. “2시에 WOK ON에서 Joe를 만나시오.” 그리고 적혀 있는 Joe의 연락처. 영국에서 현지인과 통화라니 두근두근, 북부 사투리가 심해서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두근두근, 내가 말을 잘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


WOK ON 주변 도로


약속 시간이 됐고 WOK ON 앞에서 Joe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구글 번역기로 미리 돌려봤다.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가겠지 하며 시뮬레이션도 마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근데 국제전화 어떻게 걸더라? 갑자기 멘붕이 왔다. 국제전화 회사 번호, 국가번호, 전화번호, 아 근데 국가번호에 0을 넣던가 빼던가? 여기도 지역 번호 개념이 있던가? 검색을 하고 어쩌고 생쇼를 하다가 겨우겨우 Joe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가 구글 번역기로 돌려놓은 시뮬레이션 대화를 다 까먹었다. 앗! 어쩌지? 하는 순간, Joe는 너무나 간단하게 “안으로 들어와”라고 했다. “안에 있다고?” “그래, 들어와”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구글 번역기 왜 돌린 거니.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인산인해


알고 보니 WOK ON은 밖에서 보면 누들 가게지만 실제로는 티켓 배부 창구였다. Joe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전문적인 티켓 대행 업자였다. 직거래 정도로 생각한 내가 참 순진했다. 들어가니 나 말고도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줄을 서서 신원을 확인하고 티켓이나 시즌권을 받고 있었다. 내 앞의 일본인이 티켓을 받을 차례. 얼굴만 보고 한국어로 된 티켓 배부 설명서를 내민다. 일본인이 “나는 일본인이야!”라며 애타게 일본어 설명서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다. 한국인이 참 많이도 오는 모양이다. 한글 설명서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바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라니.


두근두근 기념 티켓


내 차례가 됐고 어떤 자리를 원하냐고 묻는다. 나야 무조건 그라운드랑 가까운 자리지! 뒤적거리며 지들끼리 무슨 얘길 하더니 시즌권이 아닌 티켓을 내준다. 시즌권은 다시 되돌려 줘야 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티켓은 그냥 내가 가지면 된다. 내가 시즌권이 아닌 티켓을 받은 이유는 영어를 못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면서 보니 영어를 잘 하는 사람에겐 시즌권과 함께 리턴 과정에 대한 설명을, 영어가 서툰 사람에겐 그냥 티켓을 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어 못한다고 하고 티켓을 갖게 됐다. 스텁허브에서 별문제 없이 티켓까지 구매했으니 이제 큰 일은 다 치렀다.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안필드의 앞자리가 아닌가!


클럽 샵에 살 게 참 많구나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동양인들,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이 많았다. 안필드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클럽 샵도 들어갔다. 그동안 적의 재정에 도움을 주지 않기 위해 아껴두었던 돈을 물쓰듯(?) 썼다. 티셔츠도 사고 볼펜도 사고 마그넷도 사고 각종 기념품도 사고 레전드 명언집도 사고 별걸 다 샀다. 살라의 저지도 샀다. 어떤 아저씨가 자꾸 딸에게 리버풀 관련 제품을 가져오자 딸이 계속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저씨의 천진함이 귀엽다. 근데 지난번에 왔을 때랑 클럽 샵이 바뀌었다. 위치도 바뀌고 내부도 달라졌다. 경기장 확장 공사가 끝난 뒤 많은 것들이 달라진 모양이다.


안필드 홈경기가 있는 날은 지역 축제 날


리버풀의 홈경기가 있는 날은 지역의 축제이기도 하다. 지역 밴드가 공연도 하고(물론 첫 곡은 당연히 You Will Never Walk Alone!) 푸드 트럭들이 여기저기서 장사를 한다. 무려 2군데 푸드 트럭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었다. 지역 방송국도 취재하느라 바쁘다. 경기장 옆 공터에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 공간이 마련됐다. 가족 단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들 경기뿐 아니라 부대 행사를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티켓이 없는 사람들도 안필드 주변으로 몰려든다.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따로 없다. 모두가 흥겹기만 하다.


맨체스터도 그랬지만 리버풀도 사람들이 줄을 참 잘 선다. 버스나 화장실이나 매점이나 항상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재촉하는 사람도, 새치기하는 사람도 없다. 생각해보니 차들도 그랬다. 아무리 차가 많아도 우회전 전용 차선은 비워둔다. 우리 같으면 우회전 전용으로 들어와서 어떻게든 끼어들라고 난리 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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