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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May 16. 2018

<트립 투 스페인>, 수다로 풀어내는 스페인

브런치 무비패스 #07


<트립 투 스페인>, 수다로 풀어내는 스페인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은 <더 트립>의 3번째 이야기다. <더 트립>은 두 남자가 새로운 도시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대화를 한다는 설정의 TV 시리즈로, 이미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편을 통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번에 나온 것이 그 세 번째 이야기, <트립 투 스페인>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스페인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스페인은 그래도 내가 좀 아는 나라”라고 했지만 어차피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면 그만큼 많은 조사를 하게 될 테니 전 세계 주요 도시는 다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는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제목에서는 스페인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테마로 나올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의 주요 테마는 ‘수다’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자신의 실명으로 출연하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영화 이야기, 문학 이야기, 여행 이야기, 역사 이야기, 지리 이야기, 가족과 연애 이야기 등 쉴 새 없다. 사실 그 장소가 스페인이어서 <트립 투 스페인>이라는 제목이 납득이 되지, 그냥 동네의 한 레스토랑에서 영화를 찍었어도 80% 이상은 촬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 같았다. 두 인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카테고리 상관없이 대방출한다. 영화 대사를 할 때는 인물의 성대모사까지 곁들이고, 갑자기 관련된 퀴즈를 내는가 하면 누군가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말할 때는 삐쳐서 자리를 떠버린다. 가르치려 들기보다 각자의 지식과 관련된 정보를 소개하는 수준이어서 크게 거부감은 없지만 그래도 투 머치 토커들을 계속 보고 있는 건 은근히 피곤한 일이다. 심지어 잘 모르는 분야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비록 수다가 많지만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신선하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편을 보지 않고 스페인 편부터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루트로 풀어가는 방식은 재미있었다. 여행하는 지역에 관한 인물, 사건, 역사, 음식, 추억 등 인문학적인 잡담으로 공간을 풀어간다. 우리가 흔히 여행이나 여행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장소를 설명하고 시그니쳐 건물을 배경으로 깔고 공간을 훑어주는 건 아예 기대도 하지 말자. 여행지의 느낌을 전하기 보다는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짧아 '살아보기'까지는 무리였지만 그래도 동네 주민 느낌까지는 가능할 듯 하다.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반가운 지역들도 눈에 띈다.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처럼 대도시의 유명 관광지는 배제했지만 산탄데르, 그라나다, 말라가 등 눈여겨볼 지역들이 소개된다. 이곳은 엄청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여행객들에겐 인상적인 지역이다. 그중 그나마 관광지답게 소개되는 곳은 무어인 에피소드와 함께 등장하는 알람브라 궁전과 돈키호테와 산초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코수에그라 정도가 아닐까 싶다(영화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비주얼은 콘수에그라가 맞는듯). 하지만 단순히 관광지를 소개하는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지 자체보다는 각자의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그리고 미슐랭 레스토랑을 다니며 얘기를 나눈다는 컨셉에 맞게 주요 레스토랑이나 음식, 요리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살짝 다르게 보면 <트립 투 스페인>은 다큐멘터리 느낌도 있다. 인물들이 실제 자신을 연기하는 탓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방송 출연이나 영화 촬영, 공연 등은 물론 쇼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 얽혀 있는 인물들까지 끊임 없는 수다 속에 계속 등장한다. 이런 다양하고 자칫 정신없을 이야기를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자유와 통제를 넘나들며 유려하게 풀어낸다. 두 사람이 아무런 제약 없이 웃고 떠드는 것 같지만 이야기에 따라 긴장감이 조성되거나 캐릭터가 설명되거나 사건의 다른 국면을 맞기도 한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배치했다. 제작 중인 작품, 매니지먼트 계약, 아들 여자 친구의 임신 소식, 연인과의 이별과 재회 등이 그렇다.



물론 여행을 큰 테마로 하는 영화답게 아름다운 장면들은 많이 등장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본 드론샷이나 고풍스러운 골목들, 각 지역의 특징을 잡아낸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준다. 특히 드론샷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줘 두 남자의 수다에 지친 심신을 재충전시켜준다. 각종 문화가 다 등장함에도 여행을 테마로 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결정적인 장면들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는 믹 재거, 로리 리, 데이비드 보위,  숀 코네리, 마이클 케인, 이안 맥캘런 등 다양한 인물과 돈키호테, 필로미나의 기적, 쇼비뇽 블랑, 스페인 종교 재판, 맨 오브 라만차, 무어인, 초리소 등 다양한 인문학적 소재들이 쏟아진다. 듣고 있으면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두 남자의 수다는 확실히 투 머치이긴 하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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