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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May 09. 2018

<라이크 크레이지>, 사랑도 성장해야 한다

브런치 무비패스 #06


<라이크 크레이지>, 사랑도 성장해야 한다


영국인 애나(펠리시티 존스)와 미국인 제이콥(안톤 옐친)은 첫눈에 반해 운명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서로에게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애나는 학생 비자가 만료되지만 제이콥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후 영국으로 떠나게 된 어느 날, 미국으로 오지 못할 신세가 된다. 의도치 않게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각자의 일과 상황으로 인해 두 사람은 소원해진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서로에게 다른 연인이 생기기도 하지만 둘은 우여곡적 끝에 결혼을 하고, 다시 어렵게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첫눈에 반했을 때 그대로일까? 갈등을 극복하고 위기를 넘겼지만 운명 같았던 예전의 사랑이 여전히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는 말 그대로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랑에 미쳐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애나와 제이콥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 두 달 떨어지는 게 싫었던 애나는 비자가 만료됐음에도 영국으로 떠나지 않아 한동안 미국 입국이 불허되는 신세가 된다. 제이콥은 그런 애나를 위해 영국과 미국을 다니며 장거리 연애를 하지만 둘의 사랑은 예전 같지 않다. 해야 할 일도 많고 경제적인 부분이나 각자의 현실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미친 영향력이 너무 대단한 나머지 애나와 제이콥은 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한다. 갈등을 빚고, 어긋나고, 다투고, 헤어져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건 사랑에 대한 기억, 그것도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그때의 기억과 그 시절 서로에게 가졌던 이미지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을 떠올릴 때는 항상 가장 뜨거웠던 순간, 가장 사랑스러웠던 일을 떠올린다.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런 기억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런 기억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판타지만 좇기도 한다. 현실이어도 사랑이고 판타지여도 사랑이다. 아마 우리 모두는 그 시절 어느 시점에 단단히 '미쳐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 반쯤은 미쳐야 계속할 수 있는 게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이 지속되면 견디지 못한다는 농담도 나온 걸 테니.



하지만 사랑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20대의 그 불꽃같은 사랑의 기억만으로, 그 사람이 나에게 준 영감만으로, 내 영혼을 뒤흔든 사랑만으로 평생을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하는 시기도 있지만 일도 해야 하고 먹고살기도 해야 하고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야 하고 애도 키우기도 해야 하고 등등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가장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이 사랑의 모든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과정을 모두 인정하고 그 과정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뜨겁게 사랑도 해야 하지만 이성적으로 바라볼 줄도 있어야 한다. 눈에 콩깍지를 씌우고 평생을 살 수는 없다. 물론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 만든 환상이라는 전제는 유효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 위에서 사랑을 키우고 그 안에서 자신과 상대방을 지켜내야 한다.



법이 어떻든, 규칙이 어떻든, 내 책임이 무엇이든 그저 좋은 대로만 하고 싶다. 모두가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하고 잠시도 떨어지기 싫고, 같이 있으면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모두가 사실일 거다. 사랑은 분명 자신을 변화시키고 상대에게 영향을 준다. 대체로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물론 헤어지기 전까지 얘기다. 그래서 좋은 사랑이든 힘든 사랑이든 지나고 나면 스스로 조금은 성장했음을 느낀다. 사랑하기 이전과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다음 사랑이 또 너무 뜨거워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두 단어에 송두리째 빼앗겨 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똑같이 반복한다 해도 성장한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서 빠져나오거나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치유할 줄 알게 된다. 사랑 안에서 존재하는 나와 사랑 밖에서 존재하는 나에 대해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사랑' 하나만으로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물론 그래야 한다. 사랑이란 식어 없어지지 않을 거다. 흐려질 수는 있어도 없어지진 않는다. 다른 감정들이 들어와 옆으로 밀릴 수는 있어도 완전히 없어져 사라지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수는 없다. 그래서 비중 조절이나 적절한 상황 전개가 중요하다. "오늘 출근하지 말고 나랑 같이 있자"라는 말은 달콤하지만 어쩌다가는 몰라도 계속 그렇게 살기는 힘들 테니까. 사랑 때문에 돈과 명예, 사회적인 지위를 내려놓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은 너무 적거나 없을 수도 있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또 너무 현실적이어서 평생 함께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할 테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서로 떨어져 힘들어도 각자의 생각이 달라 부딪혀도 결국 사랑을 한다. 하지만 잘 따져보자. 그 사랑, 함께 성장해 온 사랑이 맞나? 아니면 처음의 감정만 남아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는 판타지인가? 혹시라도 과거의 가장 뜨거웠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의 성장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기억을 잊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뜨거웠던 순간의 기억은 지금의 사랑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것만이 완벽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나와 제이콥은 다시 만나 함께 하기로 한다. 비자 문제로 강제 이별을 당해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각자의 일과 생활이 달라져 예전 같지 않다는 실망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현재의 자신의 삶에서 더 안정적일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버리고 함께 하기로 한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둘은 함께 샤워를 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던, 서로의 감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과거의 그 시절을 무표정하게 떠올린다. 그때의 뜨거운 사랑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가? 나에게 영감을 주던 그 사람이 맞나? 더 솔직하게는 그 감정에 속아 지금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그동안 둘의 사랑이 성장하지 못했음을 느낀다.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은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이 그다지 공감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의 삶에 영감을 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설정은 나오지만 영화에서 소개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런 설정만 두고 있다. 영화 도입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 첫 데이트에서의 애틋함 정도가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너무 짧다. 앞으로 두 사람이 겪을 과정에 비하면 전제가 약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따라가지 못한다. 서로에게 어떤 영감을 줬는지, 둘이 다른 사랑을 밀어낼 정도로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서로는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설정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알아야 풀어가는 과정에 관객을 참여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사랑해"라는 말에 "사랑해"라고 답변하지 않는다. 한 명이 "사랑해"라고 하면 다른 한 명은 "미안해"라고 하거나 침묵하거나 다른 말을 꺼낸다. 한 번도 "사랑해"에 "사랑해"로 답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사랑할 때 상대방은 힘들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것까지 보지 못한다. 그저 자기 사랑에 취해있거나 이 기쁘고 행복한 사랑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영화 속 제니퍼 로렌스! 너무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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