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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Jun 04. 2018

<디트로이트>, 차별은 지금도 여전하다

브런치 무비패스 #09


<디트로이트>, 차별은 지금도 여전하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 그중에서도 특히 디트로이트. 일거리를 찾아 공업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심지어 학대까지 당한다. 공권력은 극명하게 흑인 차별로 노선을 잡았고, 일부 인종차별주의자 경찰들은 아무 이유 없이 흑인들을 폭행하거나 죽이기도 한다. 하루하루 총구 앞에서 사는 것 같다는 흑인들의 삶은 과장이 아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당해야 했던 일들은 차별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로 그들을 내몰았다.



하지만 사건은 의외의 장소에 얼어 난다. 폭동 현장이나 범행 현장이 아니라 폭동의 반대편, 심지어 백인 여자들이 함께 있는 알제 모텔에서 일어난다. 시작은 장난스러운 경고였다. 백인들의 총구가 항상 머리를 향해 있는 힘겨운 삶에 대한 반항이었고 그들도 흑인의 마음을 비슷하게나마 겪어보라는 경고였다. 장난감 총이 창문 밖으로 발사됐고 이것은 스나이퍼 색출을 명분으로 한 흑인 학대의 시작이 됐다. 그리고 10대 흑인 소년들은 학대를 당하고 3명이 사망하고 만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폭동의 시발점을 보여주는 도입부를 지나면 영화는 알제 모텔의 지옥으로 연결된다. 장난감 총소리에 무조건 범인을 잡아내겠다는 인종차별주의자 경찰은 10대 흑인 아이들에게 차례로 겁을 주고 때로는 살해한다. 총이 없다고, 저격수는 없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봐도 그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학대할 수 있는 여러 흑인들이 있고 그들을 괴롭힐 좋은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끼어 있는 백인 여자 2명. 이들 역시 성적 차별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권력을 가진 그들은 인종차별을 넘어 모든 차별을 자행하며 그들의 권력으로 세상을 나누고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은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 전 세계는 인종차별 문제를 겪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자행되며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있다. 차별의 중심에는 차별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그들은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차이점을 만드는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해 차이를 벌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잘못된 행동에 관해서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것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잔혹한 행위였다 하더라도 그들은 차별에서 우위에 있기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오랫동안 단일민족이었던 탓에 인종차별 문제가 크지는 않지만(물론 최근 들어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지만) 돈과 권력, 학벌, 지역, 직업, 사는 곳, 생김새 등 온갖 것들로 차별을 한다. 1960년대 디트로이트 경찰이 들었던 총이 지금은 돈이나 권력이 되어 우리를 겨누고 있다. 이 차별을 견디며 순응하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반대하며 목숨을 잃을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의 문제다.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 차별에 대항할 것인가? 자신의 철학을 목숨만큼 지킬 것인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차별에 대한 순응지수인 셈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총을 겨누고 학대하는 디트로이트 경찰들의 모습은 돈이 없다고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을 학대하는 일부 갑질 행위들과 연결된다. 1960년대 흑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처럼, 2018년의 우리들은 일자리를 잃고 자존감이나 철학, 신념마저 잃는다. 죽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차별당하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근성은 살아있는 자신으로부터 가치를 빼앗는 일이 아닐까 싶다.



차별에 대항하라. 이런 거창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차별이 약자와 소수자를 생사로 몰아왔던 시대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차별의 대상과 학대의 도구가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차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존감이나 가치를 잃어버리더라도 여러 차별 속에서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말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특유의 긴장감은 영화 전체를 이끈다. 영화 마지막 인종차별주의 경찰들이 법의 보호를 받는 장면은 영화적인 통쾌함은 주지 못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더 현실적이다. 이 영화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현실적인 결론을 내렸기에 우리가 겪는 영화 밖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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