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네 번째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할 옷장이 없어 정리할 수가 없다. (옷장은 배송 준비 중이다.) 그래서 애꿎은 이불 빨래만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이사를 했다. 갑작스럽게 했다. 공식이사를 한 건 아니지만, 지난 주말부로 모든 옷을 옮겼다. 나머지 짐은 차차 옮길 예정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 옷을 모두 옮겨왔으니 예전 집에서 출퇴근 할 일은 더 이상 없다. 그러니 이는 이사가 맞지 않나? 놀라운 건 짐의 양이다. 내 옷은 5호 박스 딱 2개가 나왔다. 가로세로 약 600x400mm 사이즈의 5호박스 2개 만큼의 옷가지. 그것이 내가 가진 모든 옷의 부피였다. 패딩, 코트, 양말까지 모든 것이 포함된 옷의 양이었다. 짐 싸는 걸 도와주러 온 엄마는 “우리 딸 참 알뜰하게 살았네”하고 말했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 살았던가. 사실 나는 알뜰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펑펑 썼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였지만.
사실 스스로도 조금 놀라긴 했다. 옷 짐이 적을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서른 두 살 여성의 짐이 이렇게 단촐해도 될까 싶을만큼 뭔가 어색했다. (물론 다른 짐이 많다. 책은 300여 권에 달하고, 부엌에서 나올 용품도 많다.) 짐이 적으니 좋으면서도 내심 마음이 홀쭉해 지는 건 왜일까. 어쩌면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다른 사람들 선물은 그렇게 자주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위한 선물은 생각하지 못했다. 가족들 선물은 가격 보단 가장 좋은 걸 선물하자고 하면서도 정작 나에게 만큼은 가성비를 따졌다.
항상 나에게 많은 책임과 가성비를 따져왔는데, 나에게 가성비 보다 최고의 것, 책임보단 내 컨디션을 우선순위로 놓아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예비남편인 남자친구다. 이사짐 나르겠다고 커다란 법인차를 빌려왔고 월요일 재택근무 후에 잠시 예전 집에 들러 짐을 챙겨 오겠다는 나를 남자친구는 한사코 말린다. 처음에는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받아들였지만, 그의 말에 못이겨 짐 나르기를 결국 포기한다. 사실은, 정말 속마음으로는, 오늘 퇴근하고 짐 가지러 예전 집 까지 갈 생각만으로도 몸이 피곤했다. 밖은 추적추적 비가 오고 지난 주말 워크샵으로 쌓인 피로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내 몸의 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해야 할 일’, 그러니까 이삿짐을 날라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계속해서 비도 오는데 고생하지 말아라, 재택근무 하는 날이니 더 푹 쉬어라, 주말에 같이 나르자, 하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그 설득 논리에 나는 홀랑 넘어갔다.
작은 것이었지만 책임을 내려놓고 나니, 생경한 기분이 된다. 이건 뭐지. 나에게 주는 작은 해방감 같은 것. 나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이런 기분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