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예비남편의 예쁜 입

24. 7. 5

by 글쓰는 엠지MZ대리


입이 조그만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입은 너무나 작아 머금고 삼켜야 할 말을 붙잡아 두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뜨린다. 우리는 그걸 ‘입이 가볍다’라고 표현한다. 입이 달달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내뱉는 말은 너무 달콤해서 사람들을 쉽게 현혹시킨다. 우리는 그걸 ‘입 발린 말한다’라고 표현한다. 내 남자친구는 이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성격은 얼굴에 드러나고, 습관은 체형에 드러나고, 본심은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얼굴에서 오는 온화함 그대로 남자친구는 성격에 조급함이 없다. 연애 초반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현혹하는 스킬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에게 입 발린 칭찬 같은 걸 기대하지 않게(못하게) 되었다. 반대로 나는 성격이 조급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거나 띄워주는 말에 능통하다. 남자친구의 표현까지 빌리자면 나는… 달변가다. 나는 스스로를 거짓말 못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럴싸한 말은 꽤나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내가 내뱉는 말은, 어쩌면 신뢰도가 조금 낮다. 반면 입이 무겁고 달지 않은 남자친구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신뢰가 높다.



관계에 있어서 때로는 윤활제 혹은 쿠션 같은 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둘 모두에게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건 입 발린 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쁜 말들이 자주 오고 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장점들을 잘 섞어보려고 한다.



멋지다
최고야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이런 말들을,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나는 시도때도 없이 한다. 내가 세 번 하면, 상대방도 한 번 할 수 있게 되고 이런 작은 말들이 모여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주로 좋은 상황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좋지 않은 상황이나 잔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선 조금 달라진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깜짝 놀라는 부분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대문자 N인 나는 결혼 생활을 상상하다가 살림과 출근과 육아를 병행할 생각에 스스로 압도되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옆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바닥 청소는 오빠가 해요!” 나야 내면에서 스스로의 서사를 알고 있지만 사실 타인의 입장에서는 대뜸 튀어나온 말이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 할게.” 한번은 또 출산휴가 후 복직에 대해 상상하다가(ㅋㅋㅋ) 다시 한번 스스로 압도되어 남자친구에게 달려들듯이 말했다. “출퇴근 생각하면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 남자친구는 이번에도 역시 미동 한번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 시기에는 내가 일찍 퇴근하면 되겠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같은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입이 가볍지 않은 남자친구는 분명 상대의 입에서 나온 말도 그럴 것이라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같이 살지 않을 때 나는 “보고싶다”라는 말을 아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보고싶다”라고 말하면 대개 연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보고싶다”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는 항상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보고싶다는 말에 “오늘 퇴근하고 만나러 갈까?”라며 동탄에서 을지로로 달려오고, 여의치 않으면 영상통화를 건다. 그래서 나는 혹시 내 말 한마디에 남자친구가 먼 길 할까봐 말을 아낀 적이 잠깐 있었다. 또 한번은 출근하는 남자친구에게 “오늘은 늦게 와요?”라고 물었다. 정말 궁금했고 다른 뜻은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찍 올 수 있지.” 그리고 그날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함께 저녁 외식을 하고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건 입 발린 말도 아니고, 아첨도 아니다. 이건 이 사람의 본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참 담백하다고 느꼈다. 이 담백함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나에게 속상한 일이 있을 때다.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면, 나는 남자친구 옆에서 쉴 세 없이 떠든다. 사실 말하는 순간에는 말하는 행위에 너무 심취해서 상대방이 듣고 있는지 지루해 하지 않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남자친구는 그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다. 그리고 내 말이 거의 끝나갈 때 쯤, 내 손을 천천히 그의 쪽으로 끌어 당겨 손을 잡은 채 손등을 찬찬히 쓸어준다. 그럼 나는 불현듯 정신을 되찾는다. 손에는 남자친구의 온기가 전해진다. 갑자기 세상이 평화로워진다.



사실 나는 남자친구가 말하는 ‘달변가’가 아니라 그저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신나는 일이 있을 때도 오디오를 비우지 않고 말하는데, 남자친구는 가끔 내 말을 듣다가 손등에 뽀뽀해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만! 조용히 해!”라는 묵언의 사인일까?) 원래도 나를 향해 함박 웃음을 지어주는 사람이지만 내가 조잘조잘 떠들고 있으면 오빠는 더 활짝 웃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볼의 높이로 웃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 얼굴을 보다가 나는 갑자기 고백한다. “이런 얼굴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닮은 아기를 낳지 않을 수가 있겠어…” 정말이지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그리고 종종 생각한다. 사실 남자친구는 담백한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치밀한 고도의 전략가일 수도 있다고. 그렇지 않고 서야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도 제대로 상상해본 적 없던 내가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이제는 출산과 양육까지 결심할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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