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만큼 안정적인 나날이다. 불안, 고민, 걱정이 멈췄고 동시에 어떤 뜨거운 열정 같은 것도 멈췄다. 나쁜 것은 아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은 동시에 단단해서, 절박함에 동기부여된 용기가 아니라 안정적인 주춧돌에 두 발을 올린 도약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안정적인 상황은 무리수를 두지 않게 된다. 단기적이고 폭발적인 성장보다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성장을 추구하게 된다. 스스로는 이러한 상황에 편안함을 느끼지만 오히려 불편해진 것은 주변 사람과의 관계다. 환경이 변하니 만났을 때 결이 맞고 편안한 사람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20대에는 성장을 외치는 사람들이 좋았고, 그들과의 대화만이 즐거웠으며, 그들을 만나면 언제나 에너지를 얻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장을 외치고, 도전을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헛헛해진다. 그건 도전하지 않는 지금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 건드려졌기 때문이거나, 과거에 애처로울 정도로 성장에 목 말랐던 나의 모습이 중첩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편애하고 있다. 첫째로 나의 일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사람들을 편애하고, 둘째로 결혼과 육아의 선배들을 편애한다. 특히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당연하겠지만) 주로 여자인데 내가 결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거나 더 과감하게 2세에 대한 계획까지 공유한다면 자세를 고쳐 앉고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인 채로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 조언을 해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왠말인가. 내가 이 과정에서 느낀 바는 이거다. ‘여자의 편은 여자!’
약간은 자조적으로 말하건데, 사실 나는 도전과 성장을 멈춘 것이 아니다. 싱글일 때 모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오로지 나 1인분의 성장을 위해 쓰였다면, 배우자와 가정을 위해 에너지를 리큐레이션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이 도전엔 기술적 성장이 미비할 수 있으나 확실한 자아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내 인생’이 ‘우리 인생’이 되고, 주연이 한 명에서 여러 명이 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양보와 화합의 과정이며, 축소인 동시에 확장의 과정이다. 이것이 누군가의 눈에 하찮은 정신승리의 과정으로 보일지언정 나의 내면에는 진정 이토록 어마어마한 재건설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를 뺏기는 만남과 에너지를 얻는 만남이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후자의 사람들을 선택해 온 건 아닐까. 삶의 국면에 따라 에너지를 얻고, 뺏기는 관계는 변하겠지만 에너지를 얻는 만남 쪽으로 약간의 취사선택을 해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끝은 충만한 에너지가 아니라 매너리즘이었다. 평화로운 일상이 좋지만 무료하고, 자기계발적 도전을 하자니 에너지는 모두 새로운 삶의 환경으로 리큐레이션 되었고…
결국 나는 이 글을 끝맺지 못하는 것처럼 이 고민의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 기억할 것은 오로지 하나다. 삶은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지금 내가 어떤 과정 중에 있는 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알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