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하는 한해의 결산과 내년의 다짐. 작년부터는 연말에 남편과 각자 올해의 결산과 내년의 다짐 글을 적고 교환하며 읽고 있다.
2024년
2024년은 <변화>의 해였다. 결혼을 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고 회사에서의 업무 범위, 결혼으로 인한 역할의 확장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다시 한번 선언하고 가려 한다.
첫 번째, 가정.
결혼은 미혼에서 기혼이라는 신분(?)의 변화 뿐만 아니라, 가치의 재건과 역할의 확장 그리고 나를 주연에서 약간 밀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포함한다. 동시에 둘이라는 안정감,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계획하는 미래에서 비롯되는 희망이 추가되었다.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대문자 J인 나에게 여러모로 불편하다. 비혼주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싱글인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다. 그런 것을 믿고 내 인생을 준비하기엔 리스크였다. (적어도 J인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배우자와 함께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보다 확실한 것에 의지하기로 했는데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스스로를 책임질 작은 평수의 아파트 분양권과 자산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에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와서야 솔직하게 밝힐 수 있는 소회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아무리 천성 J인 나이지만 계획이 이렇게 재밌는 일이었나 싶을 만큼 우리의 미래를 계획했다. 재정적인 부분 외에도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울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계획들은 살아가며 차근차근 채워보려 한다.
계획 자체엔 잘못된 점이 없었다. 문제는 욕심을 부리며 시작된다.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나는 내 마음 속의 욕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느꼈다. 재정적인 욕심, 인정 욕심, 우월 욕심, 사랑 욕심… ‘지금 나의 계획에서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이런 생각들로 삶을 조금씩 그리다 보니 한치의 오차나 낙오를 허락하지 않는 인생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불안하고 불행해졌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혹은 계획보다 시기가 늦어질까 초조했다. 잘못되었다는 직감을 했지만 손에 꽉 움켜쥔 것을 놓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 내가 이 계획들을 다시 느슨하게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깨달음으로 인한 성숙한 행동도 아니요 의지결연한 결정도 아니다. 내가 이 계획을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벌써부터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진짜 삶’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는 뻔한 진리였다. 기혼자 신분인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선하여 덕을 베푸는 가정이 되는 것이지 얼만큼의부 를 늘리고 몇 권의 책을 읽는 지 같은 숫자적인 성과가 아니어야 한다.
두 번째, 직업.
올 한 해는 가정 외에 조직에서도 진정한 매니저가 되는 한 해이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매니저란 리더가 아닌, 업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매니저를 말한다. 일시적이었으나 여러 팀원의 공석을 수 개월 동안 메우는 일과 디맨딩한 매니저에게 트레이닝 받는 기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중간에 한번 이직 위기도 찾아왔으나 연이 아니었는지 잘 지나갔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첫째, 뻔한 말 같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것이다. 팀원들이 전부 사라졌을 때 주변 사람들은 우려를 서슴없이 표현했다. 쉽지 않은 상사, 이미 과중한 업무, 회사 내에서 매우 중요한 부서(기획팀)에서의 역할… 나는 실제로 공포에 떨었는데 그때 상사가 말했다. “위기는 기회야. 당신의 역량을 어필할 기회이지.” 솔직히 그때는 멍멍이 소리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팀원인 나를 잃지 않으려는 헛소리라고 여기기도 했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원망도 컸다. 하지만 원망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딱 3개월이다.’ 새로운 팀원이 충원될 때까지 걸리게 될 나만의 기한을 정하고 업무를 커버하기로 작심했다. 공백을 서포트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업무 범위가 확장되었다. 기획하는 업무의 특성상 숫자로 업무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내가 담당하던 숫자 범위에서 더 앞선 사전 기획 단계의 숫자, 연간 숫자, 그 숫자의 매달 변화 추이, 매달 마감 실적의 연간기획 반영, 그로 인한 남은 월에 대한 기획 조정 등 싸이클을 보는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다. 담당자가 아니다보니 펑크없는 업무 커버 만으로도 상당한 퍼포먼스로 인정받았다. 그렇게 3~4개월 가량을 커버했는데 그 사이에 결혼과 신혼여행 그리고 새로운 경력직 채용도 완료되었다. 나는 내년 승진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둘째, 회사생활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디맨딩한 매니저에게 야속한 마음이 컸다. 사소한 실수도 크게 지적하는 것에 이해하지 못한 적도 많다. 성격이 급해 제촉이 잦고 실수는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것저것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많았고 요구대로 만들어가도 결과가 예상과 다르면 쓰지 않아 실무자 입장에서 낭비되는 것 같은 시간이 많아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이 힘든 시기를 거쳐 적응(!)을 하고 나니 문득 이런 깨달음이 왔다. 현재 모시는 상사의 스타일에 맞게 나를 적응시키는 것도 일을 잘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지금 나는 ‘OOO팀장님 번역기’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의 말과 요구사항을 해석하는 데에 많이 능통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모시는 동안 가능하다면 그가 한 단계 승진을 하는 것에 기여하는 팀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존경심이나 계속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로 말이다. (ㅎㅎㅎ)
이렇듯 올 한해 가장 큰 변화는 결혼과 회사였다. 이런 격변화 환경에서 나를 지지해준 건 <루틴>이었다. 하루 24시간 중 출근하는 시간부터 잠에 드는 시간은 내가 통제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계획한 것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여러 사람과 부딪히며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지켜진 시간>이 필요했다. 바로 새벽이다. 나는 5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시간까지 나만의 시간을 올해도 역시 지켜냄으로써, 아니 오로지 그 시간만을 가까스로 지켜냄으로써 변화의 질풍노도를 잘 지나왔다. 내년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임신과 출산, 이사도 할 수 있다. 변화 자체가 삶이라는 어떤 말처럼 변화를 거부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혼돈 속에서도 나는 올바른 방향과 루틴으로 지켜질 것이다.
번외. 2024 결산
독서 : 권 수를 세지 않았지만 대략 70~80권 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올 해는 새로운 책 보단 읽었던 책을 다시 찾아 읽는 <재독>의 해 였다.
결혼 : 결혼을 하며 인간관계를 많이 돌아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받은 은혜는 평생 기억하며 갚고 내리사랑으로 물려주며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이사 :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쏠메는 우리 신혼집을 보고 여전히 나답다고 했다. 싱글 시절의 아파트를 그대로 확장한 버전 같다고.
업무 : “현상유지가 목표야!”라고 외친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이 부딪히고 성장한 한 해였다. 업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웠고 배우고 있다.
재정 : 남편과 자산을 합쳐 애매하지만 개인 자산은 작년 대비 25% 가량 상승했고, 남편과 합치며 3배 이상 늘었다. 많이 썼지만 많이 번 한 해였다. 2030년까지 부채 없는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건강 : 고점(?)대비 9키로그램 감량. 다이어트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살이 빠졌다. 건강검진 결과 이상은 없었다. 주 3회 꾸준히 새벽운동을 했다. 수면 시간이 양적으로 늘었으며, 이를 유지하고자 한다. 참, 술도 끊었다.
2025년
2025년은 <도전>의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2024년이 변화의 한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보다 솔직하고 정확히는 변화와 그것을 거부하며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겁쟁이의 해였고, 끝끝내 변화 수용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받아들인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변화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진작 얻었다면. 결국 그 변화들을 수용하여 이러한 성장이 있는 것을 알았다면 태도를 바꿨으면 좋았을 것이다. 변화라는 존재가 다가올 때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시간을 아끼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민하게 적응하는 태도로 말이다.
2025년에는 더 큰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임신과 출산, 육아일 것이다.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끊임없는 변화의 굴레에 나를 내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이 도전들 속에서 나를 지켜낼 것은 여전히 루틴일 것이다. 동시에 건강, 영혼 그리고 부의 삼위일체를 추구할 것이다.
건강은 신체적 건강을 말한다. 지금과 같이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수면 습관을 유지한다. 결코 과식하지 않고 야식을 먹지 않고 술 마시지 않는 지금의 좋은 습관을 유지하며 건강한 자산을 만들 것이다. 부의 측면은 재정적인 측면과 능력적인 측면으로 이루어지는데, 재정적인 측면은 배우자와 함께 세운 우리의 목표와 과시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능력적인 측면은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 것을 말한다. 비록 나는 가까운 미래에 워킹맘이되고 약간의 휴직기간도 갖겠지만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측면은 나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신앙생활이다. 2024년 하반기가 되며 나의 독서는 재독 중에서도 투자와 신앙 쪽으로 편중되었다. 설교와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 삶과 신앙이 구분되지 않는 지혜를 녹여가며, 하나님의 향기를 내는 자녀이자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오차 없는 계획을 따라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정을 이룬 만큼 우리에겐 ‘공동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전 언젠가 나는 미래 가정의 가훈을 정한 적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실제로 가정을 이룬 지금 이보다 더 우리 가치관과 미덕에 알맞는 것은 없다 생각한다. ‘적선지가 필유여경’. 덕을 쌓은 집안에 복이 깃든다는 뜻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우리의 전도자 지영언니가 첫 부부예배 참석 후 선물해준 구절이기도 하다.
나의 지난 30여년의 시간 속에서 명명백백히 증명하셨듯, 한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3절-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