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그리고 쓰는 사람

25.06.07

by 글쓰는 엠지MZ대리

나는 언제까지 이건 쓰는 사람이고 싶다.



쓰는 것이 이렇게 어색했었나? 사실 며칠 전부터 나는 ‘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준비란 것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무엇에 대해서 쓸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제작년에 한참 열심히 썼던 ‘성공자 조찬 클럽’ 시리즈도,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인생을 돌아보며 조금씩 작성하던 ‘나의 실패 이력서’도 들춰보며 ‘도대체 내가 무엇에 대해 써 왔는지’ 기억하려 애쓰고 있다.



왜 쓰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틈새 시간 속에서 사색하며 찾은 대답은 ‘남편의 존재’이다. 매일 밀착해서 나의 크고 작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동거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면의 많은 단상들을 활자 대신 발화로 표현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갈해 주었다. 두 번째 이유는 임신이다. 왜 인지 나는 입덧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던 강도의 입덧을 임신 5개월차 까지 견뎌내며 삶도, 생각도, 활자에 대한 흡수와 방출에 대한 모든 욕구도 일시정지되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입덧을 하는 동안 나는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힘들어 죽겠는 사람에게 “힘을 내” ‘그래도 살 생각을 해야지”와 같은 말은 폭력이다. 의지를 내보던 그저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던 그건 오로지 환우 스스로의 몫이어야 한다. 동시에 이렇게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그 나약함이 마침내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시간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환우는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약했다. 나는 간신히 출퇴근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유추된 연유들로 나는 쓰기를 멈춘 상태였다.



입덧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활자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활기가 돌고 다시 남편에게 뽀뽀를 허락한 순간부터(중요하다. 입덧 기간 동안에는 금지였다.) 나는 조금씩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도무지 시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써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쓰는 인간인 것을 넘어 써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점일 것이다. 오늘 아침 이 쓰기를 시작으로 나는 다시 쓰는 인간이 된다. 사실 쓸 이야기는 많다. 임신에 대한 이야기, 생애주기에 대한 이야기, 부부로 살아가는 이야기, (이번 주에 특히 많이 생각한) 준거집단에 대한 이야기… 아, 그리고 다시 나의 매일을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작년에 꽤나 열심히 썼던 ‘성공자 조찬 클럽’은 매일 아침, 정확히는 기상하는 5시부터 출근하는 8시까지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전적으로 내 시간이었던 아침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는 시리즈였다. 요즘은 이 시절의 기록을 보며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위로처럼 학습시키고 있다. 그리고 복기한다. 쓰는 것의 유용함을, 위대함을, 필수불가결함을.



스티븐 코비는 천부적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에서 그 첫 번째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꾸준히 일기를 씀으로써 자아의식을 키운다’


그렇게 자아의식을 키움으로써 배우고 듣고 반응하며 양심을 일깨운다. 양심이 깨어나면 스스로 약속을 하고 지키며 독립의지를 키운다. 이것들을 시각화하여 상상력을 개발한다.



이제는 나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함 뿐아니라 자녀의 천부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글쓰기가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쓰기를 중단한 것이 임신때문이었지만 결국 다시 쓰기 시작하는 것도 임신 때문인 것이다.





스티븐 코비 천부적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

꾸준히 일기를 씀으로써 자아의식을 키운다

배우고 듣고 반응함으로써 양심을 일깨운다

약속을 하고 지킴으로써 독립의지를 키운다

시각화를 통해 상상력을 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