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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PD Mar 18. 2023

백수, 편지 1통으로 방송국에 취직하다

첫 번째 시리즈 : <1%의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관한 삶

“오늘은 보자고 하십니다”

“...... 네......”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국장님이 ‘꼭’ 보자고 하시니까, 오늘 오후 2시까지는 내려오실 수 있으시죠?”

수화기 저 편,

‘이PD’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꼭’이란 말에 힘을 실어 말하고 있었다.


“......아...ㄹ.....알겠습...니다”

나는 약간 흥분한 상태로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번엔 꼭 내려갈 수 있겠지’

뭔지 모를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고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날은 1997년 8월 중순 어느 날,

내 인생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날이었다.


J행 버스를 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지하철 안,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지난번보다 밝아 보인다.

‘지난번이라......’


‘지난번에는 왜 안 오셨어요?’

전화가 왔었다.

2주 전에 왔었다.


이PD가 ‘방송국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가뭄에 오랫동안 바짝 마르고 쩍쩍 갈라지던 논!

그 위로 쏟아진 비처럼,

‘백수’인 나에게 주어진 단비 같은 기회,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서둘러 서울역으로 달려갔었지만, 서울역에는 넘쳐나는 사람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많은 인파를 뚫고 간 매표소에서는 ‘J행 표 없어요’라는 말만 되풀이될 뿐이고,

사람들로 인해 갑갑하고 답답함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하필, 휴가철!

그것도 7월 말 휴가 피크였던 날이어서, 내려가는 기차는 ‘매진’, ‘매진’, 매진의 연속이었다.


나는 J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아니, 내려가고 있었다.

서른! 내 삼십 대는 아래를 향하는 중......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었다.


‘백수 생활을 벗어나는 것이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지하’로 ‘지하’로 아주 깊게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내 인생은 진짜 내리막인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나?’라고

자책하며 취업을 포기하려 할 때,

다시 받은 전화였으니 얼마나 설레고 흥분되었겠는가?

‘혹시 백수 생활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했다.

‘이제 J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구나’

밝은 빛이 들어오는 출구를 올려다봤다.


지하철역 계단을 힘차게 밟고 오른다.

한발! 두발!


발판을 밟고 ‘J행 버스’에 오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오렌지 캔을 땄다.

새콤달콤함이 상쾌함을, 기분 좋은 자신감을 나에게 심어준다.


9개월 전에 편지를 썼었다.

아직 개국도 안 한 방송국 기획단 사장 앞으로 보낼 편지를......


신생 방송국이니까 ‘자료실 직원인 사서’가 필요할 거란 생각에서

무턱대고 편지를 썼다.


‘...... 저는 고돌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까닭은......

제가 이러이러한 인재이니 귀사에서 살펴보시고 필요하다면

저를 채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실업자의 한 가닥 희망인 편지를 정성 들여 썼다.


'이 편지를 볼 가능성은 몇 %나 될까?'

'이 편지를 보더라도 나에게 연락할 가능성은 몇 %나 될까?'

'연락이 오더라도 내가 마음에 든다고 취업 보장의 가능성은 1%는 될 거야.'

정성껏 쓴 편지를 다시 살펴보며 ‘잘 되겠지!’


‘그래, 잘 될 거야!’

버스의 엔진은 힘찬 외침과 함께 J를 향해 당당하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달리던 택시가 멈췄다. “여기입니다”

바쁘게 내리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개국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방송국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해 보인다.’

그냥 거리에서 흔하게 보이는, 4층의 작은 빌딩이다.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개국 준비로 바쁜 방송국 내부의 모습은 분주하고, 정리되지 못한, 어수선 그 자체였지만,

나에게는 활기차고, 매력적인, 매우 일하고 싶은 그런 곳으로 보인다.


“어서 오세요, 이PD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조금 과하게 반겨주는 이PD가 ‘기다리라’하고 편성제작국 국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국장실에서 나온 이PD는 국장실로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한다.


‘괜찮아, 떨어지면 어때! 기대도 안 했었는데......’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내쉬며,

‘난 나야’ 어깨를 피고 미소 띠며, 당당하게 국장실로 들어간다.


처음으로 마주한 편성제작국 전국장은 ‘포스’와 ‘아우라’가 대단한 사람임이 느껴졌다.

들어오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면,

그 포스와 아우라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했을 정도의 압박감이다.


“앉아요, 잠깐 살펴볼게요”

전국장은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뭘 읽고 있나’하는 호기심에 펼쳐져있는 문서들을 보니 꽤 낯이 익은 서류였다.

‘아니, 저건......’


그랬다.

내가 보냈던 서류들이다.

한동안 노심초사하며 연락을 기다리게 했던 것들이었다.


“보내실 거예요”

“소포 보내실 거냐고요”

우체국 직원이 재촉을 한다.


내 손에는 ‘J방송 기획단 사장’ 앞으로 보내는 소포가 들려져 있고,

‘보낼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사장 앞으로 쓴 ‘편지와 이력서, 자기소개서 그리고 자료실 운영계획서’가

들어있는 소포를 들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방송국의 자료실은 꼭 필요한 곳이니까 책임자가 필요할 거야'


내가 바로 자료실 직원으로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적임자임을 알리면

'뽑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1%의 가능성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 보내자’, ‘......분명 연락이 올 거야’

96년 12월 소포는 내 손에서 떠났다. 기약도 없이......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대답이 없어, 포기를 하고

잊히고, 잊혀가고 있던 서류들이었다.


전국장이 훑어보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이것저것 물어보고 당당하게 대답하고......

그렇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전국장은

서류를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보고, 어느 순간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국장의 나를 살피던 눈빛을......


인터뷰가 끝나고 전국장은 말했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네?”

“집이 서울이라 내일부터 출근하기 힘들겠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


난 이렇게 '한순간'에 J방송에 취직했다.

편지를 쓰고 소포를 보낸 지 9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왜! 나를 뽑았을까?’


IMF를 지나던 시대, 어느 날

회사를 떠나는 전국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국장님, 저를 왜, 뽑으셨어요?”


전국장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일단 네 눈이 맑았고, 열정이 보였어”

“네 서류의 마법에 걸렸지, 진짜 잘 썼더라”


전국장이 네 서류를 입수하게 된 경위는 직원들을 다 뽑아 놨는데,

자료실 직원이 없는 걸 알고 회의시간에 얘기를 했더니,

밤에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사장님이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더란다.


숙소에 들어와서 간단하게 훑어보고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류를 꺼내 들었는데, 그 서류가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잤어, 이 자식아”

“왜, 그렇게 무모했니?”


‘무모한 짓이었을까?’

무모한 짓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첫 번째 시리즈 : <1%의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관한 삶

방송국의 자료실은 꼭 필요한 곳이니까 책임자가 필요할 것이고,

'나를 충분히 알렸으니까'

자료실 직원으로서 내가 뽑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전을 했을 뿐이다.


간절함 속에 보였던 1%의 가능성!

그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도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도전을 하는 순간, ‘뽑힌다와 뽑히지 않는다’는

1%의 가능성이 50%의 가능성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적극적인 실행을 할 수 있었다.


도전을 선택하고자 마음먹는 순간, 미미한 1%에서 50%로,

50배나 성공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나의 선택과 도전은 무모하지 않았다.


무모하다고 생각해서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소포를 보내야겠다는 선택을 안 했다면,


'그래도 한 번 써보기라도 할 걸','그래도 한 번 보내나 볼 걸'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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