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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PD Mar 29. 2023

PD! 설렘과 끌림으로 선택하다

첫 번째 시리즈 : <1%의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관한 삶

‘나’를 설레게 했다.

그 이름 VJ!


6mm카메라가 나오고 디지털 편집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변화가 조금씩 진행 중이다.


그 변화의 중심인 VJ, 비디오 저널리스트! 

기획부터 섭외, 구성, 촬영, 편집, 연출까지 

모든 제작과정을 혼자서 일하는 1인 제작 PD!


‘왠지 그럴싸하지 않나? 나도 하고 싶은 데......’


그렇지만, 현실은 이렇다.


반입된 방송된 테이프들!

마스터테이프와 소재테이프 등으로 분류하고

테이프를 모니터링하고 

모니터링하며 키워드를 뽑고

데이터를 입력하기 위해 자판을 두들기고

위치정보를 알려주는 번호를 부여하고

번호가 인쇄된 라벨을 붙이고

모빌랙에 갖다 꽂고

찾는 자료 검색하고

자료요청 할 때 대출하고

반납받고

반납된 자료 다시 꽂고


분류하고 모니터링하고 키워드 뽑고 

자판두들기고 라벨 붙이고 갖다 꽂고 

검색하고 대출하고 반납받고 다시 꽂고


하고 하고 뽑고 두들기고 붙이고 갖다 꽂고 하고 하고 받고 다시 꽂고......


고 고 고 고 고 고 고 고 고 고......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에게로,

J방송생활 8년 만에 다시 찾아와 준 '두근거림'은

‘VJ교육과정을 수강할 사람은 신청하라’는 사내게시판의 안내 글이었다.


‘한 번 신청해 볼까?’, ‘아니야, 바쁜데......’

PC에서 눈을 떼며 앉은 채로 의자를 빙글 돌리며 둘러보면


창문 없는 하얀색 벽이 사방으로 꼼꼼히 감싸고 있으며,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도록 느껴지는,

한마디로 답답하고 숨 막히는 공간감이다.


그리고 '웅~, 윙~, 치리릭~'

편집기와 더불어 각종 VCR들이

랙 안에 갇혀 꺼내달라고 외치는 소리들이 넘쳐흐르는 곳!


패대기 쳐지며 쿵쾅거리는 작업대 그리고

닭장의 닭들처럼 테이프가 칸칸이 보관된 모빌랙이 길게 늘어선 이곳!


여기는 자료실!

나만의 공간, 나의 요새다.


'언제까지 여기를 지킬 수 있을까?'

'디지털로 변화하는 세상이 다가오는 데......'

제자리로 의자를 돌리며 고개를 책상옆으로 돌리니


거기엔 주조정실에서 수거한 방송마스터테이프들이 쌓여 있었고

재생 버튼이 눌려진 편집기 위 모니터에는 영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에고고......”

모빌랙에서 꺼낸 방송테이프를

아르바이트생 현이 엉거주춤하게 낑낑대며 들고 오는 중이다.


“너무 많다, 조금씩만 들고 오지” 

“선생님, 이 정도는 들고 올 수 있는데......” 


달려가서 조금 덜어 내며 방송테이프를 들자

미안한 듯 어정쩡한 미소를 띤다.


현이의 작업책상 위에 올려주며, 

“현아, 혹시 2주 동안 혼자 자료실 지킬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저기 예약녹화를 하는 것만 가르쳐 주시면 요”

현이 가리킨 곳은 뉴스를 예약녹화 하는 편집기였다.


뉴스는 생방송이라 방송마스터테이프가 없기 때문에

뉴스 시간에 맞추어 녹화를 예약하여 공테이프에 모아놓고 있었다.


“현아, 이건 내가 세팅해 놓을 게, 공테이프만 바꿔서 넣어주면 돼”

“네......, 휴가 가시려고요?”

“아니, 교육을 받아볼까 생각 중이야”

“......저만 믿으세요”

믿으라는 현이의 말이 어찌나 힘이 되든지


이젠 팀장과 국장을 설득할 논리만 생각해 내면 되는 데,

모빌랙 저 끝까지 갔다 이 끝까지 왔다 저 끝까지 갔다 이 끝까지 왔다

시계추 마냥 왔다 갔다 하다 떠오른 생각은


‘영상자료 수집차원에서 직접 촬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한마디!

그 한마디 말로 자료실을 비우는 건 해결되겠다.


PD나 촬영감독한테 

ID영상과 자료 영상을 위한 촬영을 부탁을 해도

현장에서 정신없이 바빠 촬영을 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팀장과 국장이 설득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배워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왜 배워야 할까?’

‘서울까지 가야 되는 데, 왜? 굳이......’

‘뭐가 아쉬워서......, 이대로 살면 되지'

포기하려 해도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움찔움찔거리는 것은

떠밀듯 재촉하듯 더욱더 빠르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왜 이렇게 두근거릴까?’

‘무엇이 이토록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차근차근 처음부터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또다시

모빌랙 저 끝에서 이 끝까지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러다 머리를 때리는 한 가지 생각.......'와우'


'VJ란 1인 제작 PD다'


그 말은 '혼자서 다한다'는 것!


그럼, 모든 과정을 혼자서 만든 방송프로그램은

‘방송프로그램’이라기보다 ‘작품’이라 말해도 되지 않나?


그렇게,

온전히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그를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나는 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이니까’

‘내가 대본을 쓰고, 내가 촬영하고, 내가 편집하면 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J방송에 입사한 후 글 쓰는 것에 목말라 한동안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며,

‘단막극 극본’을 써서 M방송 베스트극장에 극본을 응모했지만,

결과는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내게시판의 교육과정 신청 공고를 보면서 마음이 혹했던 거였고,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버린 거였다.


‘찾았다! 이게 가슴 떨리게 만든 이유였어’

내 가슴을 떨리게 하는 '설렘'이었고, 나를 잡아 끄는 매력적인 '끌림'이다.


"하하하"

"좋은 일 있으세요?"


방송테이프에 라벨링을 하던 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고, 내 입가엔 미소가 머물렀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지며,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걱정이 나를 조여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후......"

"어디 아프세요?"


한숨을 쉬며 머리를 감싸는 모습에 데이터를 입력하던 현이 놀라며 묻는다.


"아니, 생각이 정리가 안돼서......"


남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그 걱정거리를 두 눈 질끈 감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체크하며 시뮬레이션해 본다.


서울에 있는 방송회관으로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PD가 되려고 배우러 가나 봐?’ 쑥덕거림과 함께 PD들로부터 의심을 받을 게 뻔했다.


의심의 시작은 작년에 새로 사장이 오면서부터

방송국 직종 간의 벽을 없애려고 계속적으로 시도하는 중인데,


편성제작국은

편성PD와 주조정실의 MD, 아나운서, CG실, 자료실로 이루어진 편성팀과

PD들로 이루어진 제작팀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장은 편성제작1팀과 편성제작2팀으로 팀명을 바꾸고,

1팀도 2팀처럼 '자체제작방송프로그램을 제작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로


'자신들의 영역이 허물어진다'라고 생각하는 2팀의 눈빛은

너무나 뾰족하고 날카로워 조금이라도 스치면 바로 찔리고 베이는 상처를 입을 것 같았다.


나는 없는 듯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만의 요새인 자료실 안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오히려 사람들이 내게 잘 보이려  계속해서 '쭈우욱' 노력할 텐데......


"선배님, 그 뭐냐...... 벚꽃 그림 있어요?"

"김PD, 이번에 안 찍었어."

"찍었는데요......벚꽃에 벌이 앉아있는 모습을 못 찍어서......"

"음......있을 거야, 매년 찍었었으니까......기다려 찾아서 연락할게"

"감사합니다 연락 주세요"


김PD가 나가며 문을 열자 최감독이 바쁘게 들어오며,


"고돌진, 나 디지베타테이프 3개만 줘"

"촬영 가세요"

"어, 중요한 거 찍으니까, 새 테이프로 부탁해"

"안되는데, 선배님이니까 드릴게요"

"고마워, 조만간 밥 한 끼 먹자"


새 디지베타테이프를 건네받고 최감독은 바쁘게 나간다.


지금 이대로라면,

나름 권력 아닌 권력을 계속 누리게 되는 거다. 내 요새 안에서.....


'타닥 타다닥 타닥 타다닥'

데이터를 입력하는 현이의 자판 치는 소리가 자료실을 울리고 있고,

재생버튼을 누른 편집기의 모니터에는 영상이 흐르고 흐르고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


나는......

나는 그것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가지 말까? 이대로 포기할까?'

'자기들처럼 방송국 안에서 PD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내 영화를 만들려는 것뿐인데......'


VJ교육과정을 선택한다면 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조롱 섞인 말투와 암묵적인 비난의 화살이 가득 찬 그들의 쑥덕거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포기한다면,

아주 많고 많은 후회를 깊고 깊게 내쉴 것이다.


'포기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나는 나에게 외쳤다.


'내 방송, 내 영화를 내가 만드는 건데, 누가 뭐라 그래'

'설마, PD일을 시키겠어!'

'그리고 PD하라고 하면, 그거 할 수도 있지, 뭐 까짓것'

‘그래, 해보는 거야!’

마음을 다잡았고 저질러 버렸다.


교육을 갔다 오고 몇 달 후......


인사 발령받아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된 후배가 

짐을 박스에 넣고 있어서 다가가 함께 넣는다.


“잘하실 거예요”

“그래 보여, 단순해서 어렵진 않겠지만......”


그가 제작했던 <좋은일궂긴일> 방송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내가 떠맡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아니, 알았다.

느낌이 '팍'하고 왔었다.


인사 발령 공고가 나는 순간

‘내가 맡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아차'싶었다.

지난해 사장실에서 새로 부임한 사장과 대화할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준 보고서 잘 봤어요, 글 잘 쓰네”

“감사합니다”

“글 구성이 좋아, 구성을 잘하면 방송프로그램도 제작할 수 있겠는데”

“......네?”

“영상자료도 많이 봐서 영상도 잘 알 테고, 고돌진 씨, PD 해 볼 생각은 없어요?”

“아니요, 아직은......아직은 없는데요”

“아직은...이라......그렇다면, 언젠간...... 허허허”

“......”


사장의 제안에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사장은 ‘기자’ 출신답게 놓치지 않고 있었다. ‘아직은’이란 말 한마디를......


무심코 뱉은 ‘아직은’이란 말이 삶의 방향을 바꿀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짐이 들어있는 박스 하나를 챙겨 들고,

후배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업무도 많은 데, 왜 나야......”

“선배님이 카메라와 편집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니까”


그랬다. 

VJ교육을 갔다 온 게 ‘결정타’가 되어버렸고,

교육을 받으러 가며 '설마' 했던 PD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아직은’이 ‘언젠간’을 지나 ‘이제는’으로 바뀌고 있었다.


또 하나의 도전을 ‘이제는’ 시작하게 됐다.


<좋은일궂긴일>은

시청자가 출연해서 1분 정도의 홍보 발언과 함께

행사를 알리는 자막 알림판으로 구성된 방송프로그램으로

다른 PD들을 비롯한 직원들은 방송 같지 않은 방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공채 PD도 아닌 내가 만들게 되니, 얼마나 우습게 보았겠는가?


그들의 조롱과 비난의 눈초리가 잠깐씩 잠깐씩 스윽 스윽 스치며,

내게 조금씩 조금씩 상처를 입히는 중이다.


그 방송인 듯 방송 아닌 방송을 만드는 나 역시 PD인 듯 PD 아닌 PD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방송제작PD라는 또 다른 도전의 삶이 시작됐다.


'VJ교육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자료실이란 요새 안에서 나름의 권력을 누리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디지털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언젠간 거기서 끌려 나왔을 것이다.


안정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변화를 선택한 나에게 힘든 길이 되겠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고,

그 갈림길 앞에서 자기 스스로 가야 할 길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 선택했으면서도 잘못 선택했다고 푸념을 하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후회가 

자신이 선택한 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똑바로 걸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 쪽을 계속해서 쳐다보며 걷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선택한 길조차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갈지자로 흔들리며 우왕좌왕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똑바로 쳐다보고, 당당하게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가슴 떨리는 '설렘'과 매력적인 '끌림'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아주 괜찮은 길'이기 때문이다.


- 무작정고PD 무작정고피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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