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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PD Apr 06. 2023

무작정 GO! 신념이 시작되다

첫 번째 시리즈 : <1%의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관한 삶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까?’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가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뭔지 모를 오묘한 긴장감이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강의실 안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하고, 혼자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고,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 척 애쓰는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유행이 지난 스타일의 정장을 입고 있는 나는

여유 있고 당당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바짝 마른 몸 때문에 옷태가 살지 않는, 너무나도 볼품없는 모습이다.


회색계열의 바지와 그 보다 짙은 윗도리를 입은 남자가 다리를 떨며 앉아 있고,

그 남자의 옆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잠시만 요”


짙은 회색 치마 정장 차림의 단발머리 여자가 또각또각 내 옆을 지나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어디에 앉을까? 저리로 가야겠다'

포니스타일 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있는 빈 의자를 보며 걸어 들어갔다. 

걸어가며 보이는 몇몇은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저 사람도 있네’

지난번에 나랑 함께 면접을 봤던, 

짙은 청색 정장을 입은 남자랑 눈이 마주쳤고

난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그를 지나쳤다.


2차 면접인 오늘은 1차 때보다 대기자들이 많이 줄어 있었다.


‘서류도 통과하고 1차 면접도 통과했는데, 이번에도 통과되겠지, 될 거야 ’

한 잔의 여유를 들고 있었지만 마시지는 못하고 있다.



“어여, 한 잔 해”

“아니,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는 내 손을 붙잡으며, 복덕방 할아버지가 소주 한 잔을 건넸다.


“딱 한 잔만 해, 더 줄려도 내 먹을 거밖에 없어”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쓰읍...카”

“사는 게 다 그런 것이여, 다 잘 될 테니 힘내고, 어여 이거 가져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신문더미를 종이쇼핑백 안에 넣으며 나왔다.


신문을 사 볼 돈 없는 백수에게는 

매일매일 동네에 있는 복덕방들을 돌며, 

수금하듯이 각종 신문들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펼친 신문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는데,

J방송을 포함하여 4개 도시에 2차 지역민영방송이 생긴다는 기사였다.

그렇지만, 정확히 개국일자 등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신문을 하나씩 펼치며,

신문 하단광고를 쓰윽 쓰윽하고 훑어보고 옆으로 밀어 놓는다.


여기도, 저기도, 또 여기도, 또 저기도

직원을 모집하는 하단광고에 눈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보고, 또 그렇게 보고, 또 그렇게 보던 중

K예술대학의 직원모집 광고가 ‘파악’하고 빛을 내며 내 눈에 꽂혔다.


‘총무직 0명!’


‘사서직이 없어, 아쉽네’

‘들어가서 사서직으로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총무직이면 어떤가?’

대학은 안정된 직장이라 부모님들도 좋아하실 만하다.




“지금 호명한 총무직 지원자 일곱 분은 저를 따라오세요”

“따라오라는 데요”


눈인사를 나눴던 남자가 창문 밖을 보던 나에게 알려주며, 

서둘러 대학 직원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쫓아간다.

나도 일어나 그를 따라간다.


직원을 따라가는 모양이 꼭 어미 닭을 쫓아가는 병아리들 같다. 쪼르르......

사람들은 끝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저 끝을 향해 나도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대기실에 계시다가 호명하면 한 분씩 들어갑니다”


로봇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한 직원은 감정 없이 말을 한다.

나를 포함한 7명도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이나 대답 없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갈 뿐이다.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보니 

맑은 하늘로 인해 유독 산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지리산에 가고 싶다’

대학생활 내내 마음이 복잡할 때면, 종종 지리산 종주 산행을 했었다.


‘이 복도가 왜 이리도 길게 느껴질까?’

어디선가 Lulu의 To Sir With Love 음악이 들리고,

‘참, 오랜만에 듣네’ 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안되면 어때, 그래도......’

머릿속엔 취업에 대한 신경쓰임이 한가득이다.




입사서류를 내러 가는 날은 마음이 복잡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교문까지 왜 이렇게 무겁게 걷고 있는 건지......

교문을 지나 접수처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헤매고 또 헤매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연령 제한!


내 나이보다 2살이나 어리게 '응시자격 연령 제한 상한선'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S방송에서 근무한 시간과 퇴사 후 메이크업아티스트 활동한 시간도 있으니......’

나만 흘러가는 줄 모르고 있었고, 세상은 벌써 많이도 흘러갔음이 느껴졌다.


‘입사서류를 받아 주기는 할까?’

‘어떻게 할까? 낼까? 말까?’

‘그래도 한 번 내보자, 받아주면 좋고 안 받아줘도 뭐, 또 하나의 경험이지 뭐’

아무래도 연령 제한이 자꾸 신경이 쓰였지만, 일단 부딪혀보자는 생각을 했다.


물러서지 않고, 돌아서서 도망가지 않고, 부딪히는 이유는

‘부딪히면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신념이 나에게 찾아와 자리매김하게 된 건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친구들은 한창 취업준비 중이고,  어떤 친구는 조기 취직을 했다.


나도 슬슬 취업 걱정을 시작하게 됐고, 

생각을 정리하고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지리산으로 떠났다.


서울역에서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구례구역 앞에서 택시비를 흥정한 후 노고단까지 간다.


택시 안에서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의 OST

‘To Sir With Love’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산행 내내 입가에 맴돌았다.


음악들이 스치고 스쳐가는 동안, 

노고단을 향해 꼬불꼬불 오르는 택시가 아침을 힘차게 열고 있었다.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매번 같은 코스로 산행을 하지만,

산은 쉽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그런 만만한 곳은 아니다.


어쩌다 마주친 집채만 한, 아주 커다랗고 커다란 바위덩어리들이 길을 막고 있으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어떤 게 길인 지 몰라 헤맬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뒤돌아 가지 말고, 앞에 커다랗게 버티고 있는 그 바위덩어리들과 부딪혀본다.

그 바위들을 부딪히고 부딪혀 밟고 올라서면 길이 보인다.

어떻게 가야 할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알려준다.


큰 길이든, 작은 길이든, 돌고 돌아가는 꼬부랑길이든,

갈 길을 선택해서 용기 있게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접수처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입사서류 접......”

“거기 놓고 가세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깐깐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한다.


“여......여기다......요?”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나를 한번 쳐다보며 손을 내민다.


“주세요”


입사서류가 들어있는 대봉투를 건네고, 돌아 나오려는 데......


“잠시만요”


아저씨가 나를 돌려세운다.


“나이가 많네요......나이가......”

“......그럼, 다시 주시죠”


대봉투를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는


“음......아니에요, 접수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접수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돌려줄까 봐' 후다닥 문을 열고 나왔다.


‘거봐, 부딪히면 되잖아’

‘잘 될 것 같다’

나의 신념이 한 번 더 확인되는 셈이었다.


접수처에서 교문으로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올 때보다 좀 더 가볍고 가까웠다.




가까웠다.

대기실에서 면접실까지 5걸음 정도였다.


한 명 한 명씩 차례대로 불려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각기 다르다.


마지막 순서인 나는 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과 긴장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흥얼거림은 복도에서 들은 그 노래 ‘To Sir With Love’였다.




지리산에서 돌아와서도 ‘To Sir With Love’가 입가에 맴돌았고,

불현듯 그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임시 교사로 가기 전, 

주인공은 취직하고 싶은 곳에 이력서와 함께 편지를 보내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취직이 되었다는 전보를 받는 장면이었다.


‘맞아, 그거야’

'사서직 1~2명 뽑기 위해서 신문에 비싼 광고료를 낼 수는 없을 거야'

‘요즘은 자기PR시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서직에 일할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그들에게 '나를 먼저 알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영화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나를 알리는 것’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조금씩 모아 온 용돈으로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총장과 학장에게 편지를 썼다.


'저는 내년 2월에 졸업예정인 예비 사서 고돌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귀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싶습니다.

제 이력서와 소개서를 보시고 적격자라고 판단이 되시면, 면접을 볼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전국에 있는 대학교와 전문대학 100곳에

이력서, 자기소개서와 함께 편지를 동봉해서 보냈다.


며칠 후......


4곳에서 답장이 왔다. 


“그대의 도전하는 용기에 탄복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본 대학 도서관에는 추가로 모집할 ‘티오’가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96장의 편지는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것이고,

답장을 보내준 4곳엔  매우 매우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의자에서 일어서며 면접관들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면접실을 나오면서 느낌은 쎄하였으며 ‘떨어졌구나’였다.


“하하하”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연령 제한이 있어 입사서류 접수도 못할 뻔했는데,

이렇게 서류전형 통과 그리고 1차도 아닌 2차 면접까지 봤으면 성공한 거 아닌가?


또 흥얼거린다. 그 노래를......


날씨는 점점 겨울로 가며 기온을 떨어뜨리고 있지만, 오늘은 추운 줄 모르겠다.


‘그래,  내년에 생긴다는 J방송 사장한테 편지를 한 번 써봐야겠다.’

‘가능성......있지......1%는 되겠지?’

부지런히 지하철역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1%의 가능성에 선택을 하고 도전을 한다는 것!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


부딪히면 길이 보인다는 것!


이렇게

앞이 꽉 막혔다고 생각이 들 때, 


'부딪히면 길이 보인다',


‘부딪히면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가득 차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무작정 GO다!


무작정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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