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리즈 : <1%의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관한 삶
‘도미미 미솔솔 레파파 라시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에 맞춰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료실로 가고 있었다.
“고돌진 씨, 잠깐......”
뒤를 돌아보니 사장이 나를 부르고 있다.
내려오던 계단을 서둘러 밟고 다시 올라가며,
“아, 안......안녕하십니까!”
“다음 주부터 ‘칼럼’ 편성된 거 알지?”
“네, 사장님께서 직접 출연하신다고......”
“내 분장 좀 해줘”
“분장이요? 아니, 그건...... 분장사한테......”
“아니야, 고돌진 씨가 해, 예전에 했었잖아”
“......네...... 뭐, 못할 건 없지만......자료실 일이......”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사장은 ‘J방송에 내가 보낸 편지’를 받은 당사자로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고,
그가 올라간 계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열심히 분첩으로 강하게 꾹꾹 누른다’
나는 그걸 그렇게 보면서 그 앞에 서있었다.
“여기요”
그 배우는 친절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나에게 내 분첩’을 친절하게 돌려주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을 처음 온 날!
M방송 아침드라마의 오늘 ‘첫 씬’ 촬영 중이다.
분장사 보조로 배우의 연기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감독과 촬영감독, 조명감독 그리고 많은 스태프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M방송 분장사 임선배를 대신해서
'배우의 분장 상태'를 잘 유지시키기 위해, 카메라 뒤에서 분첩을 들고 대기 중이다.
촬영 현장인 좁디좁은 식당 안은, 날씨만큼이나 북적대는 사람들로 인해,
숨이 막힐 듯 답답한 더위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의 파운데이션은
조명 빛에, 땀과 함께 조금, 조금 아주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두드려 줘야 하는 데......’
오늘 처음 보는,
오늘 처음 해보는,
거기에다 많은 스태프들에게 둘러 싸여 있어서, 배우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모두 나를 초짜로 생각하고, 무시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도 내 분첩으로 그의 얼굴을 두드려야 한다는 게 더욱 겁이 났다.
“잠시만 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살살, 아주 살살 분첩을 그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마음이 떨리니 손도 떨렸다.
그 떨림이 시작되는 순간, 그는 ‘나의 떨림’을 놓치지 않았고,
내 손에서 분첩을 낚아채더니 분첩으로 강하게 자신의 얼굴을 꾹꾹 누른 후,
친절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분첩을 돌려주었다.
연습으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렇게 남의 얼굴을 만지고 두드려 줬건만,
‘첫 촬영 현장, 첫 씬에서 이렇게......’
나는 점점 작아지고 아주 작아지고 너무 초라해졌다.
“다음 현장으로 이동할게요”
FD가 외치는 소리에 모든 스태프들이 각자의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나 역시 분첩을 메이크업박스에 넣고, 숨 막힘이 가득한, 좁디좁은 식당을 나왔다.
“쉽지 않지?”
“......네”
“여기서 쉬고 있어, 다음 현장은 바로 옆이니까, 혼자 갔다 올게”
저 멀리서 FD가 빨리 오라고 손짓하지만,
분첩만을 챙긴 임선배는 휘파람을 불며, 여유 있는 걸음으로 천천히 가고 있다.
그 자리에 남겨진 나는,
메이크업박스 위에 앉으며,
손에 들고 있는 분첩을 내려다봤다.
‘메이크업박스를 어디에 놨더라’
J방송 자료실로 들어오며, 내부를 둘러본다.
모빌랙과 서가, 그리고 음악CD장이 있다.
‘저기다 놓은 것 같다’
음악CD장들의 좁은 사이를 조심, 조심,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
그 끝에 처박힌 채로 있던 메이크업박스를 조심, 조심, 조심스럽게 들고 나왔다.
방치되었던 메이크업박스를 열자,
각종 분장용품들이 층층이 놓여있고,
제일 아래쪽에는 붓 세트와 여러 개의 팔레트가 보인다.
팔레트 하나를 꺼낸다.
그 팔레트를 열면 여러 색의 파운데이션이 칸칸이 들어있다.
그중 빨간색 계통과 파란색 계통의 색을 붓에 묻히고 무친 후
내 팔뚝에 조금씩 색을 더하고 더해 ‘멍 자국’을 그려나간다.
메이크업박스에 앉아 팔뚝의 멍 자국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쪽같은 걸’
누가 봐도 부딪혀 생긴 ‘푸르스름한 멍’ 자국이다.
연습한 김에 이에 물린 자국도 만들어 보기로 한다.
아직 돌아오지 않는 M방송 분장사 임선배를 기다리면서......
살짝, 살짝 붉은색으로 이빨의 형태를 잡아가고,
음영을 더하고 빼며, ‘이에 물린 자국’도 만들었다.
‘음...... 이것도 잘 된 것 같다’
“괜찮아요?”
“병원에 가야 되겠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며, 내게 다가왔다.
“네?...... 아니에요, 분장이에요, 분장”
손으로 팔뚝에 있는 멍 자국과 이에 물린 자국을 지우면서
‘사람들이 속았다’는 생각에 ‘으쓱’해진다
“아이고, 진짜 같다”
“어쩜, 이렇게 감쪽같을까!”
실력을 알아봐 준 사람들로 인해 다운되어 있던 기분은 다시 업!
좋아졌다.
그렇지만,
훗날 이 일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에겐 파운데이션이 얼룩덜룩 묻은 손만 남아 있었다.
손에 묻은 파운데이션을 휴지로 닦았지만,
여전히 손에는 얼룩덜룩 남아 있다.
메이크업박스에서 클렌징크림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분장실로 가야겠는데......’
클렌징크림을 찾으러 자료실 옆에 있는 분장실로 간다.
J방송 분장실로 들어서며 화장대 거울에 붙은 전등을 켜니,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커다란 클렌징크림 통이 보인다.
클렌징크림 통을 열어 손에 묻혀 티슈로 닦아내고,
세면대에서 씻어낸 후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았다.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단역 배우에게
“다 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해요”
분장을 받은 배우가 S방송 분장차에서 내려가자, 화장대 거울의 전등을 끈다.
“다 끝났지, 점심 먹자”
“상추 좀 씻어올게요”
“많으니까, 돌진 씨랑 같이 가서 해”
“괜찮은데”
헤어 담당 미용사 여사가 자신이 싸 온 반찬들을 꺼내며,
상추를 들고 있는 보조미용사 지윤에게 시킨다.
“그렇게 해, 돌진아 같이 가서 해라”
“아, 네 알겠습니다.”
S방송 분장사 김선배가 같이 가라는, 눈짓을 보내며 말한다.
보조분장사 나랑, 보조미용사 지윤은
상추를 씻으러 분장차에서 내려 수돗가로 향했다.
씻으러 가면서......
“안 힘들어요?, 난 지금도 힘든데”
“괜찮아요”
“왜 해요? 분장을”
“네?......”
“우린 위층에 있는 사무직 사람들이 부러운데”
“......”
“사표 내고 와서, 왜 여기서 일 해요?, 나야 직원이지만......”
“......”
“왜?”
출근시간!
대방역 앞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데,
여의도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같은 방향으로 택시를 모여서 타려는 사람들,
그리고
각 직장에서 운영하는 크고 작은, 셔틀버스들을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여의도에도 지하철역이 생겼으면 좋겠다......'
“혜린이는 태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
“난 우석이가 좋던데......”
“태수와 우석이보다 그 보디가드......재희가 멋있지 않아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드라마 ‘모래시계’ 얘기가, 내게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추위에 움츠렸던 어깨가 뿌듯함으로 인해 활짝 펴진다.
‘단지, 내가 근무하는 S방송 드라마라는 이유 때문에......’
‘나도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말고, 대학 가서, 취직해서, 취미로만......’
계속해서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왔고, 나 역시 그에 수긍하며 자라왔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나에게, 내 자신에게 있었다.
그것은 ‘돈을 못 벌어서 배를 곯는다는 선입견’이
선뜻 못 나서게 한 현실적인 비겁함 때문이었다.
‘이제는 시작해 봐도 되지 않을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까지 미뤄야 하나?’
'지금 안 하면, 계속 미뤄야 하고, 계속 후회할 텐데'
‘그림도...... 연극도...... 분장을 하면 그래도 낫지 않을까?’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데,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돌진씨~ 고돌진씨~”
나를 부르는 소리에 얼른 셔틀버스로 뛰어가 올라탔다.
“고맙습니다”
총무부 직원이 부르지 않았으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버스는 여의도를 향해 출발하여, L그룹 쌍둥이빌딩을 지나고,
여의도 광장을 건너 S방송에 도착했다.
방송국 주차장과 로비에는,
촬영 나갈 준비를 하는 제작팀들의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
신분증을 목에 두르며 경비실을 통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리면, 내가 근무하는 데이터정보부 사무실이 있다.
‘오늘은 꼭, 분장학원을 알아봐야겠다’
사무실을 씩씩하게 들어가며,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FD가 상추를 씻는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맛있는 거 먹으려나 봐”
“여사님이 제육볶음 해 먹자고 해서요”
“같이 드실래요”
“먹고 왔어요, 근데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는 씻어놓은 상추하나를 들어 씹어 먹는다.
“뭔데요”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인원을 줄인다는 소문이......”
“진짜요”
“네, 우리 연출부에서도 그렇고, 돌진씨도 위험하겠네”
“아......그러겠네요”
나도 씻어놓은 상추 하나를 입안에 넣는다.
“조심해요, 트집 잡히지 않도록...... 가볼게요”
FD는 소문과 경고를 우리에게 흘린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 입에는 씁쓸함이 맴돌고 있었다.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겠네’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퇴사하겠다고”
“네”
“...... 말려도 소용없겠구나, 알았다......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봐”
박부장은 내 사직서를 들고, 나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마지막 근무하는 날이 되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 봐”
“네?”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
“......”
박부장이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퇴근을 지시했다.
“나가서 분장 잘하고”
“네, 고맙습니다”
S방송 데이터정보부의 박부장과 동료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되면, 모른 척하지 말고, 배우들 싸인도 받아주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뭉치'라 불리는 동기 녀석이 회사 로비까지 따라 나왔다.
“잘 가......친구, 연락하고......”
동기와 포옹을 하고,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거리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함박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나의 미래를 응원하듯이 펑펑 함박눈이 쏟아진다.
“창 밖에 눈을 좀 뿌려주세요”
소품팀이 창 밖으로 인조 눈을 뿌리고,
부조정실에 있는 PD의 큐 사인을 FD가 인이어로 듣고, 배우에게 손짓을 한다.
S방송 스튜디오 안에서는
배우 외 모든 사람들이 숨 쉬는 것도 멈추고, 배우의 연기를 지켜본다.
“잠시만 요”
FD가 나에게
“위에서 ‘이에 물린 자국’ 만들어 달래요”
바쁘게 움직이던 스튜디오 상황 때문에
PD의 요청사항을 선배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이에 물린 자국’을
아무 생각 없이 직접 분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차차......, 김선배한테 하기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데......’
분장을 하면서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지만,
이미 멈출 수가 없었다.
분장이 끝난 후,
FD의 인상이 찌그러지기 시작했고,
PD가 안 좋은 소리를 한다고 내게 전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일로 인해 ‘분장 일을 그만두게 되는 계기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FD가 외친다.
“10분간 쉬었다, 갈게요”
스튜디오 밖으로
나의 정신은 멍 한 채로,
내 몸은 굳은 채로 걸어 나왔다.
J방송 분장실에서 나오는데, 송부장이랑 마주쳤다.
“돌진아, 사장님 '분장' 네가 할 거라며”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사장님께 들었지, 내가 담당PD야”
“부장님이 담당이시구나”
“하는 김에 FD 좀 같이 해라”
“......무슨......”
“별거 없어, 프롬프터가 없으니까 네가 원고 좀 넘겨줘”
“자료실 일도 바쁜데......”
“어차피 분장도 할 거잖아, 부탁해”
“부장님......”
송부장은 자기 말만 하고 바람처럼 지나갔고, 졸지에 FD 역할도 맡게 되었다.
FD랑 김선배가 저 멀리서 이야기를 나눈다.
S방송 분장차로 오다가 뒤돌아보며,
“지난번에 거기로 가면 되는 거지?”
“네, 거기로 오시면 돼요”
분장차에 올라타는 김선배는 나랑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로 운전석 옆에 앉는다.
분장차에서 대장 역할인, 김선배는 분장차 안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으로
오늘따라 지방으로 내려가는 내내, 입을 꾸욱 닫은 채로 앞 만 보고 있다.
“다른 드라마도 제작인원 줄인다고 하던데, 우리 드라마도 인원 줄여요”
미용사 여사가 김선배한테 묻는다.
“네, 우리 드라마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줄이는가 봐요”
“그럼, 우리 중에는......돌진 씨가 빠질 수도 있겠네요”
“......네, 돌진이는 이번 촬영까지만 할 거예요”
분장차 안은 묘한 정적이 흘렀고, 슬쩍, 슬쩍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회사에서 그러니까, 이해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회사보다도 그동안 내게 쌓인 불만......
특히,
'이에 물린 자국' 분장 사고에 대한 '언짢음' 때문이란 건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드라마 촬영지 강원도 영월까지 내려가는 분장차 안은
다른 때와 다르게 모두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든 척하고 있었다.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영월에 도착하였고,
분장차에서 내렸다.
촬영장을 휘감고 있는 추위!
'왜 이렇게 떨리지'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엑스트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서......
메이크업박스를 들고 J방송 사장실 앞에 멈추었고,
비서가 들어가도 좋다는 눈짓을 보냈다.
“어서 와, 여기 앉아”
사장은 마주 보고 분장할 수 있도록, 접견 탁자에 앉게 했다.
“고돌진 씨, 치아 치료 때문에 왼쪽 얼굴이 부었어, 어떡하지?”
“음......제가 잘 커버해 드리겠습니다.”
사장의 얼굴에 메이크업베이스를 깔고, 파운데이션을 펴주고,
음영을 조금 더 어둡게 해 주어 부은 왼쪽 얼굴을 감추었다.
사장은 거울 앞으로 걸어가 분장한 얼굴을 살펴보며,
“음......, 부었는지 잘 모르겠네, 역시...... 수고했어”
“스튜디오에서 뵙겠습니다.”
메이크업박스를 챙겨서 사장실을 나왔다.
“선배, 우산 있어요?”
“없는데, 비 와”
“토요일에 비라니, 친구한테 데리러 오라고 해야겠어요”
“주말 잘 보내고”
4층에서 3층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데,
계단 창문에는 빗물이 맺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분장을 하고, 그만 둘 때도 비가 왔었는데......’
그때,
‘이에 물린 자국’ 분장이 ‘독’이었을까?
아니면,
‘이에 물린 자국’ 분장이 ‘약’이었을까?
창문에는 빗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촉촉이 적셔주고 있었다.
빗소리가 토닥토닥,
토닥거리며 나를 감싸 안아준다.
비가 천천히 내리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점점 더 굵고 굵은 비가 내린다.
영월에서 서울 절두산 성당으로 왔다.
성당 안에서 분장준비를 하자, 김선배가
“돌진아, 이제 그만 들어가 봐”
“네......알겠습니다.”
쫓겨나듯이,
분장 도구들을 메이크업박스에 넣으며, 성당을 나왔다.
성당 앞마당에는 스태프들이
자신들의 장비에 비닐을 덮거나 안으로 이동시키는 중이다.
그들을 지나쳐 성당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아무도 내가 나가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걸까?'
지하철역을 찾아 헤매고 헤매다, 겨우 찾아내서 걸어간다.
처벅처벅 걷고 있다.
메이크업박스를 품에 '꼬옥' 안고 걷는다.
‘겨울비’다.
춥다.
너무 춥다.
‘그래...... 지금 안 했으면, 언제 해보겠어, 내가 선택하고 내가 도전한 거에 후회는 없다.’
‘해보지 않았다면, 계속 후회를 하고 '남 탓'만 하며 살 거 아니야’
‘그래도......이젠, 뭘 해야 할까?......’
‘음......다른 문을 찾으면 돼’
'그래, 다른 문을 찾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때,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 놓는다’
- 무작정고PD 무작정고피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