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숙 기증 특별전》·《글자감각》·《월리를 찾아라》

전시 이야기

한 걸음 앞에서, 한 걸음 뒤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Dancing, Dreaming,Enlightening》 서울공예박물관· 《글자감각》문화역서울 284 RTO· 《월리를 찾아라》 서울숲 더서울라이티움


일교차 큰 날씨에 감기가 유행입니다. 입춘도, 경칩도 지났지만 오늘 같은 꽃샘추위가 또 올까 싶어 따뜻한 옷 정리는 미뤄두고 있죠. 오늘은 완벽한 봄이 오기 전 남녀노소 누구와 봐도 호불호가 없을 전시 소개해 드립니다. 관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근처 갈 일 있을 때 잊지 말고 챙겨보세요.


먼저 소개할 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의《Dancing, Dreaming,Enlightening》(2025. 12. 23.~2026. 3. 22.)입니다. 한국 패션아트 1세대 금기숙 작가의 기증 특별전으로, 작가는 초기 패션아트 실험작, 와이어 드레스와 와이어 한복 조형, 아카이브 등 자신의 작품 55건 56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36건의 작품과 65건의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이고 있죠.

"의상을 ‘입는 예술(Art to Wear)’에서 패션아트 (Fashion Art)로 확장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조형 예술로 전개하며 패션 아트의 지평을 넓혔다"라고 평가받는 아티스트로,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명예교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의상감독을 역임했고, 현재 유금와당박물관 관장직을 공동으로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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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숙 특별전 1층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는 총 5부로, 메인 전시 1부 〈Dreaming〉· 2부 〈Dancing〉· 3부 〈Enlightening〉· 4부 〈아카이브〉는 3층 기획전시실에서, 5부 〈공간을 향한〉은 1층 로비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작품의 주소재는 철사(와이어)와 비즈로, 작품 그 자체의 멋도 대단하지만, 자연광과 조명이 투과되어 맺힌 작품 그림자도 작품에 색다른 멋을 더해줍니다. 예민한 시각을 지닌 분들이 캐치해 낼 수 있는 디테일이 많은 전시로, 철사·비즈·스팽글·직물 등 소재마다 미묘하게 표출하는 다른 감각적 뉘앙스가 작품 매력 같아요. 전시 출품작은 입는 의상이 아닌 조각적인 성격을 지닌 설치 작품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보셔야 더 좋기에 관람객이 많은 평일 점심시간대는 피해서 관람하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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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숙 특별전 3층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한 작품은 3층 전시장 중간에 단독 설치된 <백매>(2024)입니다. 매년 봄마다 작가의 정원에서 하얀 꽃을 피운 매화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죠. 우아함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철사와 투명 비즈로 완성되어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와 반짝임이 달라집니다. 입장 통로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보니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이 작품을 기준으로 양쪽 전시실을 다 보셔야 하니 사람이 많으면 일단 다른 곳을 먼저 본 후에 봐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더 와닿은 작품은 <진사 연화 청자 드레스>(1995)와 <아기 색동두루마기>(2013)였어요. <진사 연화 청자 드레스>는 '노방(oganza)'이란 전통 옷감으로 만든 작품으로 와이어와 비즈로 제작되지 않은 유일한 출품작이고, 누가 봐도 청자의 곡선과 색이 연상되는 작품이라 눈길을 끌었죠. '청자의 비색, 진사의 깊은 홍, 연화 문양의 상징성'을 담은 드레스로,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국제미술의상전《경계를 넘어》에서 처음 선보였어요. <아기 색동두루마기>는 '사랑'이란 키워드가 뭉클하게 느껴진 작품으로, '2008년 손자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 떨림, 아이를 감싸던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이 작품의 시작점이 되었다'라고 해요.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이 작품은 아기 색동두루마기를 정확히 중앙에 두고 사진을 찍으면 의미가 더 잘 와닿습니다. 저는 다른 관람객들에 밀려 포기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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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숙 특별전 3층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는 작년 12월 말에 시작해 원래 이번 달 15일에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전시 개막 4주 만에 관람객 20만 명을 넘어 기간이 3월 22일까지 연장되었어요. 얼마 전엔 관람객 70만 명을 넘겼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계수기도 안 보였고 입장권 발매도 없는 무료 관람에, 전시실 진입로가 여럿인 전시장의 관람객 통계를 어떻게 낸 건지 궁금하긴 합니다.



두 번째 전시는 제5회 한글 실험 프로젝트 《글(자) 감(각): 쓰기와 도구》(2025.11.19~2026.3.22)입니다. 이 전시는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전으로, 박물관 화재 피해 시설 복구 및 기존 증축 공사로 2028년 하반기까지 휴관이라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진행됩니다. 문화역서울284는 알아도 RTO는 생소할 텐데, 이곳은 승객이 출발역에서 부친 짐을 도착역에서 찾아가는 수하물 도장과 지하층의 화물창고를 연결하는 목재 원형 계단이 있던 자리였다고 해요. 해방 이후 미군 수송부대가 이곳을 사용하면서 RTO(Railroad Transportation Office, 철도수송 사무소)로 불렸는데, 현재도 전시·공연·강연 등을 선보이는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 중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의 홀 내부가 매력적인데 입출구가 서울역방향이 아니다 보니, 옛 건물인가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지금은 RTO 입구 방향으로 지하철 출입구가 있어 오가며 보는 분들이 그래도 있지만, 문화역서울284전시만 보고 여긴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사실 문화역서울284 출구와 마주하고 있어 보려면 보이는데도 말이죠. 그런 이유로 아쉽게도 좋은 전시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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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감각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글자감각》은 연필에서 인공지능(AI)까지 글 쓰는 도구와 도구에 따른 글자의 질감을 탐구하는 전시입니다. 인공지능(AI)이 뉴노멀인 시대에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사용하는 쓰는 행위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23팀의 작가·디자이너와 협업해 시각, 공예, 제품, 공간, 미디어아트, 설치 등으로 선보였죠. 저는 들이는 힘과 속도에 따라 바뀌는 글자의 질감과 형태의 변화가 잘 보이는 연필로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제 성향과 잘 맞는 전시였어요. 요즘 연필 쓰는 분도 적지만 일단 손으로 글을 쓰는 경험도 줄고 있잖아요. 《글자감각》에선 글자의 형태, 크기, 배열, 여백 등에 담긴 시각적 요소와 읽기를 통해 전해지는 총체적 감각을 다양한 매체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차이가 눈에 잘 보여서 더 재밌고요.


전시는 '글(쓰기 도구의) 감(각): 다섯 가지 해석', '글(자를 잇는 행위의) 감(각): 관계의 구축', '글(자의 감각을 깨우는) 물성: 재료와 형태', '글(자의 조형적) 감(각): 텍스트의 질감', '글(쓰는 인간과) 감(각):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의 5부 구성입니다. 철학적 사색과 문학적 요소도 다분해 차분히 보기 좋은 전시로, 관람료도 무료이니 부담 없이 다녀오세요.



세 번째는 서울숲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진행 중인《월리를 찾아라》( 2025.12. 22~2026. 04. 05) 특별전입니다. 이미 시작한 지 오래라 종료일이 더 가깝지만 그래서 관람료 할인 폭도 큽니다. 전 얼리버드로 구매하고 좀 늦게 다녀왔는데, 전시가 어떻게 구성되었을지 예측이 가능해 갈까 말까 좀 고민하긴 했죠. 근데 확실히 아는 맛이 더 무섭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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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를 찾아라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월리를 찾아라》는 1987년 첫 발간 이후 32개국 언어로 약 65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리즈 『월리를 찾아라』 속 장면을 원화와 설치물로 만나는 전시입니다. 책 속에서 예리하게 월리와 친구들을 찾아냈던 것처럼, 열두 개의 다른 테마로 설치된 원화와 배경 인쇄물에서 그들을 찾아내는 체험형 ·몰입형 전시죠. 월리의 작가는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마틴 랜드포드(Martin Handford)로, 그는 정교한 군중 장면을 그려내는 작업으로 주목받았고, 대표작『월리를 찾아라』시리즈는 '군중 속에서 찾게 될 인물을 더해보자'는 출판사 제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전시물이 책보다는 확대 사이즈라 빨간 줄무늬 티셔츠와 모자를 쓴 월리를 찾는 게 뭐 어렵겠어? 싶은데, 어렵습니다. ㅎ 어렵더라고요. 작가가 한 장면(두 쪽 그림)을 완성하는데 8주 이상의 시간을 썼다고 하니 그 디테일과 세밀함이 어디 가겠냐마는, 그럼에도 잘 찾는 사람도 있어 '내가 특별히 더 못 찾나?' 하는 상황이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처음엔 월리와 친구들을 다 찾아봐야지 했다가 나중에는 월리만 찾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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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를 찾아라 출품작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책으로 월리가 익숙한 분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전시로, 월리를 몰라도 충분히 잘 즐길 수 있는 전시입니다. 각 주제별 난이도도 달라서 찾다 보면 은근 경쟁도 붙어요, 누가 누가 더 잘 찾나. 단순한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라 역사나 문화도 배울 수 있는 내용에 하나같이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군중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다 보면 원화 한 작품을 보는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전시장에는 원화 작품 옆에 찾아봐야 할 포인트도 적어뒀는데, 이 갖춤을 하고 있는 인물과 사물을 다 찾아보겠다고 욕심을 내면, 아마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보는 시간보다 더 길게 전시장에 머물게 될 거예요. 집중력, 지구력, 관찰력 향상 등 교육적 효과도 있는 전시지만 너무 몰입하지 마시고 가볍게 보고 오세요.


그럼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도 알차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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