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예술가의 한마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하죠. 우리도 그렇고요.

인간이 겪게 되는 생로병사는 아주 보편적인 순환과정이지만 올해만큼 죽고 사는 문제가 크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던 듯합니다. 팬데믹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허망하고 안타깝게 죽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고 거기에 현재 많은 분들이 겪고 있는 수해와 여러 변수들에 관련해서도 인간의 힘으로 막지 못하는 '죽음'과 '상실'은 늘 우리 곁에, 그것도 지근거리에 있다는 걸 절절히 느끼고 있거든요. 이러한 비극적인 '상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번 깊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 오늘의 한마디를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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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28 <워싱턴 포스트> 1면, 2020.5.24 <뉴욕타임스>1면 코로나 부고 중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라틴어 경구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카르페 디엠 carpe diem'과 니체의 '아모르파티 amor fati'와 함께 자주 인용되는 말이죠, 의미는 다르지만요. 옛 로마에는 개선장군 퍼레이드 때 큰 소리로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이 최고의 날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되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각성을 스스로 했다고 하는데요, 중세기 수도사들 역시 죽음을 기억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라는 의미로 아침에 일어나면 '메멘토 모리'라는 말로 서로에게 인사로 건넸다고 하죠.


2020년 5월, 팬데믹으로 인한 미국인 사망자 수가 100,000을 넘겼을 때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는 신문 1면을 부고란으로 꾸며 안타까운 상실을 알립니다. 길가에 길게 늘어선 트럭마다 보디 백(bodybag)에 담긴 시신들이 쌓여있고 수용 공간이 없어 여럿이 포개진 상태로 그대로 매장되던 이탈리아와 다른 국가들의 충격적인 장면에 대한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접한 NT와 WP의 부고 소식은, 그야말로 강한 것에 머리를 받힌 듯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지구 전체가 소리 없는 전쟁을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인사도, 조문도, 상실에 대한 슬픔을 서로 나눌 시간도 뺏긴 채 다신 가족들을 못 보는 곳으로 옮겨진 누군가의 인생이, 타인에 의해 짧은 몇 줄로,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매듭지어진 사실이 한없이 서글프더라고요. 그들 중엔 "언젠가는 부족을 이끌 꿈을 꿨던" 이란 말로 수식된 28세의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 여성도 있었는데, 나바호족은 “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라는 말을 인생 전반에 걸친 가르침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우리의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그 상실감과 공백을 메꿀 수 있는 게...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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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알베르 카뮈(1913-1960)『페스트』(1947) 초판 표지 (오)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 『데카메론 』(1492)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코로나 초기,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사망자 소식에 14c 유럽을 덮친 흑사병을 떠올렸죠. 당시 유럽 인구의 1/3~1/4가 사망했고, 그 수가 2500만- 6000만에 달할 만큼 강력했던 흑사병은 19c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고 없는 이별을 당해야만 했어요. 코로나 초기,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은 분들이 많던데 우리 역시 코로나를 통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봤으니 그때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애석하게도 이 상황은 현재도 -ING라 이젠 'WITH 코로나'를 마음에 새겨두고 스스로 잘 지켜야죠, 사회적 약속과 개인 방역을.


전 세계 확진자 약 2200만 사망자 약 77만 명을 향해가는 코로나는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보다 전파 속도가 빠릅니다. 사스 감염자가 8개월간 8000여 명, 메르스가 수년간 2000여 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역대급이죠. 코로나는 20c를 휩쓴 스페인 독감(1918-1919: 5000만 명 이상 사망)과 홍콩 독감(1968-1969:100만 명 이상 사망)에 비견될 대재앙으로 기록될 전망인데, 하루빨리 안정적인 백신이 개발되길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킬 건 꼭 지키자고요, 서로를 위해서.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보다 세 배나 높았던 스페인 독감은 한국에서 ‘무오년 독감(戊午年 毒感)’이라 불리며 14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1862-1918, 오스트리아), 에곤 실레 Egon Schiele(1890-1918, 오스트리아),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1863-1944, 노르웨이) 등 많은 예술가들도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감하거나 가슴 아픈 상실을 목도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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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왼) <Portrait of Edith Schiele, the artist's wife>(1915) Gemeentemuseum den Haag, Hague, Netherlands (오) <The Family>(1918) Belvedere, Vienna, Austria


1918년, 에곤 실레는 임신 6개월의 아내 에디트를 스페인 독감으로 잃은 3일 후, 같은 원인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때 나이가 스물여덟. 아내 에디트는 1915년 에곤 실레와 결혼 이후 그의 뮤즈로 종종 화폭에 등장하는데, 에곤 실레가 기존에 그려온 처절한 인체 묘사 화풍과는 다르게 애정이 느껴지는 그림이 많아, 그가 그녀와 함께 꿈꾸었던 삶의 모습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결혼한 해인 1915년에 그린 <에디트 실레의 초상, 예술가의 아내> 속 에디트는 맑고 깨끗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져 그의 눈에 비친 아내의 모습이 어땠는지 충분히 가늠하게 합니다. 행복이 이제 막 시작되려던 1918년, 세 사람의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그린 <The family>를 보면, 팬데믹이 앗아간 불운한 예술가의 가족사가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림 속 인물들 얼굴에 은근히 번진 미소 때문에 더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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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위 외쪽부터)<Anxiety>(1894), <Self-Portrait after Spanish Influenza>(1919), <Death in the sickroom>(1893), <The Scream>(1893), <The sick child>(1885-1886), <Vampire>(1895) 출처: 위키 아트, Munch Museum


에드바르 뭉크 역시 인생 전반에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인물입니다. 다섯 살 되던 해인 1868년 어머니가, 1877년 그가 잘 따랐던 누나 소피가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이후 5남매 중 유일하게 결혼한 남동생도 폐결핵으로 사망하죠. 20대엔 아버지를 먼저 보내며 유산처럼 남은 가난과 자신과 여동생이 겪고 있던 정신병을 극복하며 살아야 했던, 정말 맨 정신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의 생애 전반에 영향을 끼친 광기, 공포, 슬픔, 죽음을 그림으로 구원받으려 몰두하면 할수록 그는 더 죽음의 미학에 몰입해갔죠. 순탄치 않았던 연애사도 그를 한층 더 고립시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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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1997년 출간된 미국의 칼럼니스트 미치 앨봄의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메멘토 모리’를 세계적 신드롬으로 이끌었습니다. 앨봄에 따르면, 그의 은사 모리 슈워츠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매일 아침 어깨에 작은 새가 있다고 상상하고 그 새에게 ‘오늘 생이 끝나느냐?’라고 물어보라"라고 권했다고 하죠. 슈워츠 교수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라는 말로 삶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삶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세상에서 보낼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루하루를 최우선으로 삼게 된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어령 님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진 책인데요, 사실 아직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어요. 어쩐지 그냥 담담하게 읽을 자신이 없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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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피터 클라스 <바니타스 정물화>(1630), 뼈의 예배당(Capela dos Ossos) 세부, 뼈의 예배당(Capela dos Ossos), 한스 홀바인 <대사들>(1533) 출처: 런던 내셔널 갤러리, mundoportugus, 마우리 초이스 미술관


포르투갈의 작은 중세도시 에보라에 있는 성 프란시스코 성당에는 길이 18.7m, 너비 11m의 직사각형 사방 벽에 바늘구멍 하나 꽂을 틈 없이 온통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뼈의 예배당 Capela dos Ossos’이 있습니다.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는 유골은 무려 5000구에 달하는데, ‘뼈의 예배당’ 안에 비치된 설명문에는 '16세기 프란시스코회 수도사들이 인생의 덧없음을 되새기고자 마을 묘지의 뼈로 지었다'라고 소개하고 있죠. 그 유골의 이력들은 불분명하지만 이 공간에서 나올 때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즐겁게 노는 가족 모습 드로잉'을 통해 방문자들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되는데,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상이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너무 간단하게 나뉠 수 있다는 의미가 크겠죠.

메멘토 모리와 같은 맥락을 지닌 라틴어 '바니타스 vánĭtas'는 '인생무상, 허무, 공허함, 덧없음' 등을 뜻하는 말로 16, 17c 네덜란드 회화(정물화)의 중요한 소재였죠.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두개골, 썩은 과일 (부패), 거품 (인생의 짧음과 죽음의 갑작성), 연기, 시계, 모래시계 (인생의 짧음), 악기 (인생의 간결함과 덧없음) 등을 그림으로써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게 합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과 피터 클라스 <바니타스 정물화>가 대표적 예로, <대사들>에서는 권세와 지식, 교양, 예술, 종교를 대변하는 상징물을 대사들과 함께 그려 넣고 그 초상 하단에 '심하게 뒤틀린 해골'을 삽입해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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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데미안 허스트 ( 2007)(오) 알렉산더 맥퀸 이미지 출처: pinterest


현대에도 '죽음'의 요소는 장르의 한계 없이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어요. 1차적으로는 공포나 죽음, 위험을 뜻하지만 그 의미의 확장을 통해 친근하게 사용되는 경우들도 자주 볼 수 있죠. 1970년대 영국의 젊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등장한 펑크족은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의미로 해골을 사용했는데, 금기와 죽음의 공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자신들의 공격적인 성향에 부합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그렇게 부분적으로 유행되던 기호와 패션 아이템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스타일 아이콘으로 주목받게 되는데,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Lee Alexander Mcqueen(1969- 2010)의 스컬 스카프가 해골 패션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죠.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과 인문학적 요소가 결합된 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알렉산더 맥퀸은 마니아들이 즐기던 해골과 뼈, 죽음의 이미지를 디자인 모티브로 재탄생시키며 주류에 정착시켰고 이후 명품 브랜드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게 되면서 보편화가 이뤄집니다.


데미안 허스트 역시 의학 도구, 약품, 해골, 기계, 십자가 등을 작품 소재로 사용해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회적 이슈를 크게 불러일으켰는데,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2007)’도 그중 하나죠. (탄소 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 1720-1810년 사이 생활했던 유럽/지중해계 조상을 둔 35세의 남성 유골에 백금을 씌운 뒤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빽빽이 박은 이 작품은, 사용된 다이아몬드만 1106.18캐럿, 1200만 파운드(한화 약 200억(오늘 환율))의 제작비가 들었어요.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축하하는 작업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이 작품을 제작했다”라며 제작 의도를 밝혔는데, 1억 달러(약 1200억 원(오늘 환율))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며 대중들에게 폭넓게 알려졌죠. 메멘토 모리로 대표되는 해골 이미지와 부富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욕망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 역시 담고 있는 이 작품, 실물을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2013년에는 데미안 허스트와 알렉산더 맥퀸의 컬래버레이션 스카프가 출시되어 산 자와 죽은 자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며칠 전에 이스라엘 보석업체 이벨(Yvel)이 주문을 받아 18캐럿 백금에 3600개 백색과 흑색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N99 필터 마스크 제작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마스크 무게는 270g로 일반 수술용 마스크의 약 100배 무게라죠. 18억 원에 달하는 이 마스크, 살기 위해서일까요? 과시일까요? 인간의 욕망은 죽음도 불사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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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2017) 포스터 이미지 출처: 맥스무비


멕시코에는 '죽은 자들의 날 Día de los Muertos' 이 있습니다. '죽은 자들의 날'은 에스파냐 정복 이전의 멕시코 원주민들이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여신에게 제의를 올리던 오랜 전통에서 시작되었고, 이 전통이 이후 에스파냐인들과 함께 전해진 가톨릭의 ‘All Saint’s Day', ‘All Soul’s Day'와 합쳐져 현재의 ‘죽은 자들의 날’로 자리 잡았다고 하죠. '멕시코 토착 공동체의 일상에 부여하는 사회적 기능과 영적·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이 날은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를 기리며 그들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이 문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애니메이션 <COCO>입니다. 제가 어지간해선 같은 영화를 2번 보지 않는데, 이 영화는 봤어요. 재밌기도 하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예요.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으시다면 한번 다 같이 보면서,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마가... 정말 끝난 거겠죠? 저희도 그렇지만, 비 피해 입으신 모든 분들 하루빨리 일상을 찾길 바랄게요. 힘내세요!





http://damienhirst.com/for-the-love-of-god

https://ich.unesco.org/en/RL/indigenous-festivity-dedicated-to-the-dead-00054

https://www.leopoldmuseum.org/en/collection/egon-schiele

https://www.egon-schiele.net/

https://www.munchmuseet.no/en/what-s-on/

https://www.edvardmunch.org/

https://www.alexandermcqueen.com/en-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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