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마디
잘 모르고 전공분야도 아니지만 유독 시선을 멈추게 하거나 책을 들척이게 하는 관심거리가 있으신가요?
얼마 전 KBS 글로벌 다큐멘터리 '아인슈타인 & 호킹 우주의 비밀을 밝힌 천재들' 2부작이 방영되었죠. 학설에 대한 설명과 실험이 주된 구성이었는데, 이 한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날에 스티븐 호킹이 죽었다. '
꽤 임팩트 있죠!
'우주 과학'. 호기심은 늘 있지만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는. 깊지 못한 지식 덕에 제겐 여전히 신선함이 살아있는 관심 소재입니다. 어렸을 땐 집에 천체 망원경을 두고 계절별 별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할 만큼 의지가 있었지만 커가면서 그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다 보니 동경의 대상으로, 늘 그 정도의 지식만 유지하며 살고 있네요. 그래서 볼 때마다 새로운가 봐요 다큐가 ㅎㅎㅎ
그렇게 우연히 본 다큐에 자극받아 오늘은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한마디를 소개드립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 3월 14일 - 1955년 4월 18일)과 스티븐 호킹 (Stephen William Hawking,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은 서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호킹이 13살 때 아인슈타인이 돌아가셨죠. 아인슈타인이 더 오래 살았거나 스티븐 호킹이 더 일찍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네요, 두 천재의 만남이라니~
"I am enough of an artist to draw freely upon my imagination.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Knowledge is limited. Imagination encircles the world." (Albert Einstein)
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해석 출처 : 네이버 사전
독일 태생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 - 1955) 은 스위스·미국에서 활동한 과학자(이론물리학자)입니다. '(특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고 '1921년 광전효과(光電效果 (독) photoelektrischer Effekt, (영) photoelectric effect)'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몇 줄로 그의 과학적 성과를 요약한다는 게 불가능한 인물이죠.
'E(Energy)=mc2 (*mass *celerity of light)'은 아인슈타인이 세상에 남긴 선물 중 하나이자 그의 업적을 대변하는 방정식입니다. 과학도가 아니더라도 세계인이 이 공식을 보며 동일 인물을 떠올릴 수 있다는 자체가 말해주고 있죠, 그가 엄청나게 성공한 과학자라는 것을요.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한 후 베른 특허국에서 엔지니어와 전문 심사관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던 그는 틈틈이 준비한 논문 5편을 한 해에 연이어 발표하는데, 과학계에서는 논문들이 발표된 1905년을 '기적의 해'로 부릅니다. 독일의 유명한 월간 학술지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에 실린 그의 논문 「정지 액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들의 (열의 분자 운동론에 의한) 운동에 대하여 Über die von der molekularkinetischen Theorie der Wärme geforderte Bewegung von in ruhenden Flüssigkeiten suspendierten Teilchen」에서는 브라운 운동을, 「빛의 발생과 변화에 관련된 발견에 도움이 되는 견해에 대하여 Über einen die Erzeugung und Verwandlung des Lichtes betreffenden heuristischen Gesichtspunkt」에서는 광양자 가설을(1921년 노벨상을 안겨준 광전효과의 기초),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에서는 특수상대성이론(E=mc2)을,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 Ist die Trägheit eines Körpers von seinem Energieinhalt abhängig」에서는 훗날 원자탄 개발의 근거가 되는 이론을 제시한 그야말로 혁신적인 연구들이었죠. 또 취리히 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논문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과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 Die Grundlagen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 논문 역시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를 통해 발표합니다.
이 발견들 외에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 연구들은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연구와 행동이 의도와 다르게 쓰인 경우도 있지만 그는 영원한 평화주의자·영향력 있는 인도주의자로, 국제구조활동은 물론 최초의 핵무기 반대 운동을 주도하며 반전운동에도 앞장섰고 정치, 윤리,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도 멈추지 않았죠.
그의 헝클어진 머리, 콧수염, 스타일, 표정, 의외의 행동들은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천재'의 전형으로 굳어집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 나오는 에멋 브라운 박사 역시 인류 최초로 타임머신을 발명해 낸 천재 과학자로 콕 짚어 '그'라고 명시하지 않았을 뿐 누가 봐도 '그'를 떠올릴 수 있는 요소들을 가져와 만든 캐릭터입니다. 영화에서는 최초로 드로리안에 탑승해 시간 여행을 한 에멋 브라운 박사의 반려견 이름으로 '아인슈타인'을 사용하긴 했지만요.
1929년 10월 26일, THE SATURDAY EVENING POST(VOL.202)에 "What life means to Einstein: An interview by George Sylvester Viereck"란 타이틀의 인터뷰가 실립니다. 장장 5페이지 분량의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 '우주' '상상력' '철학'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풀어놓죠.
Q - Then you trust more to your imagination than to your knowledge?
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A - "I am enough of an artist to draw freely upon my imagination.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Knowledge is limited. Imagination encircles the world."
라고 답하는데요
이 말은 아인슈타인의 『 Cosmic Religion 』 1931(p.97)과 Einstein, Albert; With An Appreciation By George Bernard Shaw, 「Transformation:Arts, Communication, Environmemt」(1950) 1권 1호에도 인용됩니다.
그가 남긴 말 중에는 '상상력'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습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적용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증명해야 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겠죠. 아인슈타인의 명언은 곱씹어 볼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과학'이라는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글들이요. 특히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이 여럿인데, 그 스스로가 자신을 천재가 아닌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열정적인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더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를 하려고 노력했기에 그 생각이 글로, 말로 전해진 거 같아요.
그는 18세기 영국 전위 소설가인 로렌스 스턴 Laurence Sterne (1713-1768)부터 독일의 소설가·평론가인 토마스 만 Thomas Mann(1875-1955),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 Herodotos(BC484?-BC425)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B.C.384~B.C.322), 아일랜드 극작가·소설가·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1856 - 1950)와 영국의 철학자ㆍ수학자ㆍ사회 평론가인 베르트랑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1872-1970)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읽기'를 즐겨했고 그중 가장 좋아했던 책은 언제나 성경과 돈키호테였다고 합니다. 또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의 곡을 좋아한, 취미라고 하기엔 상당한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했고요.
위 사진은 1927년 솔베이 회의 참석자 기념사진입니다. 1911년 물리학과 화학의 미해결 과제 해소를 위해 마련된 세계 최초의 물리학 학회인 '솔베이 회의'의 성공으로 1912년에 International Institute for Physics가 1913년에 International Institute for Chemistry가 설립되죠. 1927년에 열린 International Solvay Institutes 5번째 회의에는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였고 마리 퀴리는 이 중 유일하게 두 부문의 수상자였다고 합니다. 전자와 광자를 주제로 했던 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1885-1962)의 양자역학으로 논쟁을 벌였고 아인슈타인이 던진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는 말에 "아인슈타인, 신에게 명령하지 말게나(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는 말로 화답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탄생하죠.
“ If I have seen further than others, it is by standing upon the shoulders of giants”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 Sir Isaac Newton(1643-1726) 이 1676년 로버트 훅 Robert Hooke (1635-1703)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
스티븐 호킹 Stephen William Hawking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은 물리학, 우주(론), 인류의 미래에 깊이 매료되었던 과학자입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인 갈릴레이 갈릴레오 Galileo Galilei (1564년 2월 15일 - 1642년 1월 8일)가 죽은 지 300년 후 태어난 우연 역시, 과학자로서의 삶을 계시받은 듯 의미 부여했던 사람이죠. 대학 때 '아인슈타인'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릴 만큼 천재성을 드러냈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주위엔 늘 사람들이 있었죠.
어렸을 때 그는 학습도 더뎠고 가르치기 쉬운 학생도 아니었다고 해요. 14살 때 세인트 앨번스 학교에서 만난 디크란 타흐타 선생님은 그에게 수학에 대한 창의적인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그가 가진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준 스승입니다. '특별한 사람 뒤에는 언제나 특별한 선생님이 있다.'라고 얘기할 만큼 호킹의 결정적 인연 중 한 분이셨죠. 우주론의 특이점 이론을 함께 연구한 옥스퍼드 대학 로저 펜로즈 교수와 케임브리지 대학원의 데니스 시아마 교수 역시 그의 인생에서 만난 결정적 인물이고요.
21살 때 그는 몇 년 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일종의 운동 뉴런 질환인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루게릭)이 발병되거든요. 자신의 신체를 컨트롤하기 어려웠던 그를 포기하지 않았던 연인 제인의 헌신으로 그는 제인과 아이들도 낳고 연구도 지속할 수 있었죠.
인생의 고비는 또 찾아와 1985년 스위스에 있는 유럽입자물리학 연구소(CERN: (前)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를 방문하던 중 폐렴에 걸렸고 죽음 밖엔 차선이 없었던 그를 제인이 응급 의료 헬기에 실어 케임브리지 애든 브룩 병원으로 이송한 후 기관절개 수술을 진행하여 살려냅니다. 반대급부로 목소리를 잃은 그는 이때부터 컴퓨터를 통해 말을 하게 되는데, 월트 월토스라는 컴퓨터 전문가가 직접 만든 '이퀄라이저'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그에게 보내주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휠체어에서 손으로 스위치를 눌러 컴퓨터에 있는 일련의 메뉴에서 단어를 통째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죠. 그가 마지막 저서를 쓸 당시 사용하던 프로그램은 인텔에서 개발한 에이캣(ACAT)으로 안경에 있는 작은 센서가 빰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제어하는 방식으로 휴대전화와 연계되어 인터넷 접속도 가능했어요.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첫 음성 합성기를 계속 썼는데 이보다 표현력이 더 좋은 장비를 만나지 못하기도 했고 미국식 억양이기는 해도 일반인들에게 이 합성기의 목소리로 많이 알려져서 라고 해요.
"My expectations were reduced to zero when I was 21. Everything since then has been a bonus."
(21살 때 나의 기대는 0으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보너스가 되었다.)
이 말은 2004년 12월 12일 New York Times에 실린 말입니다. 어린 나이에 찾아든 엄청난 시련도 그의 열정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는 걸 우린 알고 있죠. 불행과 시련도 수 차례 찾아왔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행운도, 행복도 가졌던 그라 자신의 삶에 그래도 만족도가 높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막 열리던 때 목소리를 잃었던 것과 25년 동안 자신을 지원해 준 인텔, 그리고 훗날 이혼을 하긴 하나 헌신적인 사랑을 준 제인과 주변인들 등 그들을 통해 그의 천재성이 발현될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이 행성에서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았고, 물리학 법칙과 머릿속 생각을 이용하여 우주를 여행하며 살았다. 나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먼 끝까지 가보았으며, 블랙홀 안에도 들어가 보았고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거슬러 가보기도 했다. 지구 위에서 나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 겪어보았고, 혼란과 평화, 성공과 괴로움을 모두 경험했다. 부자였던 적도 있었고 가난한 적도 있었다. 자유로운 몸과 장애가 있는 몸도 모두 가졌었다. 찬사도 받고 비판도 받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모르고 지나쳤던 적은 없었다. 나는 연구를 통해서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 기여하는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우주는 그저 텅 빈 공간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주의 경이는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
-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2019, 까치)에서 발췌-
그의 첫 저작인 『시간의 역사 A brief History of Time 』(1988.04)는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호킹의 존재를 알린 책이기도 하고요.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아이들 학비와 엄청난 액수의 본인 치료비 보조 + 우주에 대한 대중적인 책을 써서 현재 우리가 우주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싶어서였다고 하죠.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적인 과학서를 표방했던 이 책은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킵니다. 책을 산 독자가 실제로 책을 읽었는가 따져보는 수치를 의미하는 '호킹 지수'는 수학자 조던 엘런 버그가 2014년 한 칼럼에서 '완독률'을 이야기하며 붙인 단어입니다. 1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지만 표본조사 1000명 중 66명만이 완독을 했다는 사실을 빗대어서요.
그 이후로 호킹의 책은 호킹 지수 100을 꿈꾸는 다양한 설명본이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지식의 차이가 있다 보니 아무리 쉽게 써도 사실 전문 용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읽다가 막히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호킹의 유작으로 출간된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Brief Answer to the Big Question 』(까치, 2019) 역시 호킹 지수가 낮은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초 지식은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은 들었고요.
그런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호킹은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적극 참여합니다. 호킹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BBC나 Discovery 채널 다큐는 풍부한 그래픽을 보조로 사용하여 주제 현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스티븐 호킹과 함께 하는 우주여행 Into the Universe with Stephen Hawking( 2012)'은 그가 3년에 걸쳐 대본과 편집에 참여했고, ‘지평선을 넘어 Beyond the Horizon(2009)'에서는 주연을 맡아 11차원으로 이뤄진 우주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죠. 또 디스커버리 다큐는 책의 한 챕터씩을 에피소드로 구성하고 있어 책의 보조 수단으로 선택해도 무방합니다. 그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내레이션이 더해져 저자 직강을 듣는 듯한 재미도 있고요.
그의 인생사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다수 소개되었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BBC 드라마 '호킹 Hawking(2004)'에서는 젊은 시절을, 에디 레디메인이 연기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The theory of everything(2014)'을 통해서는 그의 전반적인 생애를 훑어볼 수 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어지간한 '천재' 역할은 다 소화했는데 연기력이 받쳐주다 보니 빈센트 반 고흐, 에디슨, 앨런 튜링, 셜록 홈스, 닥터 스트레인지(웃자고 적어봤어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더라고요. '신비한 동물 사전'이나 '레미제라블'의 에디 레디메인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는 그를 영화 '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5)'에서 인상 깊게 봤어요. 인물의 일대기 연기는 단연 최고입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그에게 제8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선사했고, 그와 호킹의 인연은 이어져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의 서문을 쓴 것은 물론 호킹의 장례식에서 헌사를 낭독하기도 했죠.
이 외에도 CBS 인기 시트콤 ‘빅뱅 이론’에서 본인 역으로, 애니메이션 ‘퓨처라마’와 ‘심슨 가족’에서 목소리로 등장하는 호킹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호킹의 이론은 '신'의 영역이라 인지했던 부분과 대척점을 이루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논쟁도 뜨겁고 자극적인 타이틀로 사용된 것들도 많죠.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던 것들이 선인들의 연구를 발판 삼아 하나둘씩 이론화되고 증명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것들이 훨씬 많죠.
얼마 전 달을 대상으로 한 자원전쟁 관련 기사를 봤어요. 달에서 가져와야 하는 자원인 '물, 희토류, 헬륨 3'을 예로 들며 곧 G2의 격전지가 될 거라는. 기사도 기산데 두 정상의 얼굴이 지면의 반 이상을 채운 게 더 인상적이긴 했네요.
또 아이언맨의 실제 롤 모델인 엘론 머스크 소유의 'SPACE X'에서 민간 최초로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에 성공했다는 기사도 있었죠. 2023년에 달을 여행할 첫 여행객에 일본의 억만장자 마에자와 유사쿠를 선정해 놓았고 2024년에는 승객 100명을 태워 화성 우주 관광을 시작하고 50년 안에 100만 명을 화성으로 이주시키는 게 목표라는 내용과 함께.
같은 대상이지만 바라보고 활용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죠.
공익을 위해 윤리적으로 연구, 활용, 개발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적'을 꿈꿀 수 있는 여지도 좀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은 것도 있긴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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