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 이야기
바람도 제법 쌀쌀하고 단풍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가을입니다.
코로나 이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맑은 날을 자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마음은 뭔가 좀 가벼워진 듯해요. 대부분의 박물관·미술관·갤러리들은 사전예약을 통해 인원 제한을 두고 있고 전시장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필수지만 오히려 집중해서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점도 있죠. 여전히 붐비는 전시장들도 있지만 방역에 대한 의식이 전반적으로 좋아졌으니 겸사겸사 가을 산책 다녀오시라고 한동안 뜸했던 예술 공간 소개를 이어갑니다.
고희동, 김환기, 박수근, 박노수, 백남준, 이중섭, 김종영, 이성자, 이응노, 장욱진. 이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미술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분들이죠. 물론 제가 언급하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그들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이 있다는 거죠. 재단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 군, 도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서울과 지방의 시설 격차가 컸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울보다 더 잘 꾸며진 공간들도 많이 있습니다. 단지 출생지나 근거지를 위주로 미술관(기념관)을 짓다 보니 소재지가 지방인 경우가 많은데 서울에도 찾아갈 만한 인접성 좋은 장소들도 여럿 있어요.
작고 작가들의 경우에는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한정적이어서 특별전이나 기획전이 없으면 잘 가게 되진 않죠. 그럼에도 평창동에 있는 김종영미술관과 부암동 소재의 환기미술관은 최소 1년에 1번 이상은 가게 되더라고요. 설립된 지가 좀 되다 보니 운영이 안정적이기도 하고 기획 전시도 종종 진행하거든요. 무엇보다 주변 입지가 나쁘지 않아 햇살 좋은 날이면 나들이 가듯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 드릴 환기미술관은 한양도성 창의문-숙정문 코스, 1박 2일 시즌 1로 유명세를 치른 백사실, 드라마 '커피프린스'를 비롯한 정말 많은 드라마 속 촬영지로 소개된 부암동에 위치해있는데요, 1년 중 나들이 다니기 가장 좋은 이 계절에 주변 걷기 코스와 연계해서 가보면 좋을 것 같아 소개드립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으니 가급적 평일에 방문해보세요.
(조금 더 한적한 산책을 원하시면 평창동 김종영미술관도 좋습니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 화백은 예술성, 대중성, 상품성을 두루 인정받은 작가입니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 기좌도(안좌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화가 · 미술 교육가로 활동했고 당시 작가로서는 드물게 동경·파리·뉴욕 3곳에서 학습 및 창작활동을 했죠. 서양의 모던아트를 국내에 소개했고 한국적 추상화를 이끌었으며 미술교육과 미술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극복했고, 해외 거주 기간 동안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닌 작품 세계를 구현하며 현재의 '김환기'로 자리매김했죠.
그의 화풍은 시기에 따라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는데 고향의 색과 닮은 블루톤, 매화, 산, 강, 백자 등이 주요 화제였죠. 시기별 대표 작품을 환기미술관 홈페이지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는데 작품을 볼 때 작품 속 소재와 구성 방식 그리고 제목에 유념해서 보면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집니다. (작가 상세 설명은 별도로 검색해보세요~)
일제강점기와 6.25를 연이어 겪은 우리 화단엔 근대 회화의 경향을 이해할 만한 작품이 생각만큼 다양하게 남아 있진 않습니다. 그중 김환기 화백의 <론도>(1938)는 등록문화재로 지정(2013년) 될 만큼 당시 서울 화단에서 보기 힘들었던 비대칭의 선구적 추상회화로, 문화재청에서는 등록문화재 선정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론도(Rondo, 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 번 되풀이되는 형식의 음악)는 순수 추상작품을 제작하던 시기인 1930년대 후반의 작품으로 명제에서 암시하듯 음악적 경쾌한 리듬을 연상시키는 화면이 구성되어 있으며, 그랜드 피아노 혹은 첼로와 같은 악기의 형태를 원용하여 중첩적으로 추상화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 근대화단에서 보기 드문 추상작품으로 예술성 및 근대기의 새로운 조형 실험을 보인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참고로 신안 김환기 고택도 국가 민속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당시 발행된 신문에는 다행히 1935-1940년도에 발표한 김환기 화백의 다른 작품 이미지 기록이 있어 함께 올려드립니다. 초기 화풍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니 선명하진 않아도 꼼꼼히 봐 두세요~
'한국적 서정미'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늘 따라붙는 단어입니다.
그는 “나는 동양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해도 내 이상의 것은 할 수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예술철학을 밝혔고, 1968년 남긴 글에서는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라고 적는 것으로 화폭에 담고 싶은 그림의 궁극적인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죠.
해외에 거주하며 당시 유행 화풍에 경도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큰 특색입니다. 고국을 연상시키는 자연·문화 요소를 두터운 마티에르를 사용하여 담아낸 반구상 회화가 파리 시기까지 그의 주된 화풍이었다면 뉴욕 시기부터는 회화의 기본으로 돌아가 점, 선, 면, 색의 구성으로 추상성은 강화되었지만 동양화 먹의 번짐 효과가 살아있고, 운율이 녹아들어 있고, 그가 꿈꾸고 소망하던 고향, 친구, 익숙한 것들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하나의 점, 하나의 선마다 녹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서정적인 ‘전면 점화(全面點畵)’를 완성하게 됩니다. 점화 작품은 서양의 물감과 재료로 그려낸 그림이지만 그 안에 담은 색채와 화제는 이전과 변함없는 '그' 자체였고 떠올리며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더욱더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죠.
(좌)<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캔버스에 유채, 236 cm×172cm, 1970 (우) 김광섭 시 <저녁에> 이미지 출처: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 no=22840, 도록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환기미술관
1970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 1회 대상 수상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성북동 비둘기」로 잘 알려진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4~1906? - 1977)의 시 「저녁에」(1969)와 관련이 깊은 작품입니다. 그(김광섭)로부터 받은 연하장과 보내준 잡지에 수록된 이 시를 읽고 붓을 들어 그리운 고향,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한 점 한 점찍어 나가며 완성한 작품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거든요. 제목 역시 「저녁에」 마지막 구절을 그대로 차용했죠.
“내가 그리는 선이 하늘까지 갔을까, 내가 찍은 점이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무지개보다 환해지는 우리 강산”(1971. 1. 27)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는 김환기 화백의 또 다른 전면 점화 작품이 출품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죠. 구매 수수료 불포함 약 131억 8천750만 원(8천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면서 세계 시장에서 거래된 첫 100억 원대 한국미술작품이 되었거든요. 당시 출품된 작품 < '우주'(Universe 5-IV-71 #200)>는 그의 추상화 작품 중 유일한 두 폭 구성으로 예전 김환기 특별전에 전시되었을 때 관람객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뽑히기도 했고 우리나라 근현대미술 경매가 top 10 중에서도 top of top을 차지합니다.
20th Century & Contemporary Art Evening Sale/ Hong Kong/23 November 2019 출처: https://www.christies.com/lotfinder/paintings/kim-whan-ki-05-iv-71-200-6242546-details.aspx? from=searchresults&intObjectID=6242546
팔렸을 당시엔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미술 작품의 '격'이 올라갔단 생각에 기쁘고 액수에 놀라기도 했지만 당시 낙찰자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한편으론 보험료나 운송료 등 고려했을 때 '앞으로 국내 전시는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본 건 작년 이맘때로 당시 환기미술관 전시 중이었고 그때 곧 크리스티 출품 예정이란 얘길 듣고 다른 작품보다 더 오래 들여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쩐지 해외 고객에게 팔릴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 국내 컬렉터가 낙찰받아 앞으로도 이런저런 기획전에서 볼 가능성은 높아졌어요. 올해 5월 갤러리 현대 50주년 기념전에도 출품되었으니 혹시 못 본 분들이 계시다면 기억해두셨다가 다음 전시에서라도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은 대부분 환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한 다른 기관에도 기증이나 구매를 통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고요. 1974년 김환기 화백 작고 후 미망인 김향안(金鄕岸, 1916-2004) 여사는 남편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1978년 환기재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1992년에 자신과 남편이 신혼을 보냈던 성북동 수향 산방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부암동에 19억 원을 들여 사립미술관(작고 작가의 기념 미술관)의 원조격인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죠. 미술관 설계는 당시 보스턴에서 활동하던 세계적 건축가 우규승(1941-)이 맡았는데 그는 88 서울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기숙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 한국관,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등을 설계한 건축사입니다. 김향안 여사는 굉장히 꼼꼼한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미술관 설립 당시 김 화백의 작품을 형상화한 비트라유(색유리)를 프랑스 유리공방에 제작 의뢰해서 미술관 장식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관 설계와 내부 장식 등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설전을 벌이면서까지 원하는 바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루 한쪽 한쪽까지 환기 그림의 느낌과 결을 맞췄다고도 알려져 있고요.
1992년 환기미술관을 개관하며 ‘작가의 투명하고 격조 높은 조형 언어는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와 성좌(星座)의 영롱함으로 빛날 것이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여기 남다.’라는 말을 남겼다는데 이 말로 미뤄보아 그가 이 미술관에 들인 마음과 정성이 어땠을지 조금은 가늠이 됩니다.
(좌) 김환기와 김향안 ⓒ (재)환기 재단. 환기미술관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 CNTN_CD=A0002600977 (우) 환기미술관 안내도
환기미술관 본관에 들어서면 부부의 사진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습니다. 키가 190㎝에 가까웠던 그와 155㎝의 아내가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인데요, 그들이 남긴 수필이나 작품을 보면 아시겠지만 두 분은 사이가 참 좋았더라고요. 김향안 여사(본명 변동림)는 이상(李箱, 1910-1937)의 절친인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3)의 계모인 변동숙의 이복동생으로 이화여대 영문과를 중퇴한 신세대 여성입니다. 인기도 많았다고 해요. 만 스물인 1936년 이상과 결혼했지만 3개월 만에 이상이 폐병 치료를 위해 건너간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인연은 짧게 매듭지어졌고 이상이 요절한 7년 후인 1944년 딸 셋을 둔 수화 김환기와 재혼과 동시에 수화의 어린 시절 이름인 김향안으로 개명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죠. 그 자신도 문필가이자 화가였고 김환기 화백의 뮤즈였으며 오늘의 김환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아내이자 동반자입니다. 2004년(89세)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는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내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은 환기의 영혼 하고 같이 미술관을 지킬 것이다.”라고 그가 이전에 남긴 말처럼 육신은 뉴욕 근교 발할라 마을 켄시코 공동묘지에 있는 김환기 화백 묘소 옆에 잠들었고 영혼은 아마도 환기 미술관에 깃들어 있겠죠.
환기미술관 내부가 사진 촬영 금지라 더 자세한 이미지를 올려드리긴 어렵지만 위에 소개드린 대로 하루나 반나절 관광으로 돌아보시기엔 충분하니 시간 되면 한번 방문해보세요. 본관, 별관(아트숍, 매표소), 달관으로 나눠지는 전시장에서는 현재 기획전 '수화시학', 동시대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인 '프리 환기 Prix Whanki' 선정자 '한광우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성심'전이 열리고 있으니 전시 기간도 체크해 보시고요.
이번 환기미술관 기획전을 보고 온 지는 좀 되었는데 아직까지 기분이 찜찜한 걸 보니 아무래도 글로 풀어야 할 것 같아요. 보통 기획전엔 팸플릿을 제작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죠. 전시 기간이 짧으면 A4 인쇄지에 칼라 카피해서 전시 소개문을 배포하기도 하고요. 환기미술관은 후자입니다.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는 대신 A4 사이즈의 인쇄물을 배포하죠.
저는 4시로 예약해서 전시를 봤고 보다 보니 기획전에 대한 전반적인 텍스트 설명이 필요해져 본관 인포데스크를 찾았습니다. 물론 전시장 벽면에 문자 커팅이 되어 있었지만 그날따라 텍스트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전시실 내 사진 촬영 금지라 기본 원칙을 지키며 관람했죠. 어쨌거나 인포데스크 pop 판에는 A4에 인쇄된 기획전 섹션 설명 텍스트가 끼워져 있었고 인쇄물을 달라고 할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서 직원분께 문의드렸어요. '(그 텍스트 pop를 가리키며) 혹시 사진 찍어도 될까요?' 제 물음에 직원분은 살짝 머뭇대다가 옆의 가격표가 적혀있는 팸플릿을 가리키며 '저희가 팸플릿을 팔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더군요. 원래 3000원이었는데 1000원으로 하향 조정된 가격 표시가 표지에 붙어 있었고 안을 살짝 넘겨봤는데 5-6페이지의 내용이 제가 필요로 하는 자료는 아니었어요. 전시 이미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단순히 기획전 구성에 대한 텍스트만 필요했고 그 안에 담긴 이미지는 이전부터 반복됐던 작품들이라 제겐 전혀 쓸모가 없었거든요. 그걸 보다가 내려놓는 제게 직원분은 '쓰레기가 많아져서요'라고 얘길 하셨고 그냥 '네....' 하며 나왔습니다.
환기미술관 입장료가 12,000원입니다. 할인 혜택도 없어요. 저는 그나마 미술 주간에 전시를 봐서 30% 할인을 받았죠. 그래도 9000원 돈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고 작가의 작품은 한정적이어서 1년에 1번씩만 꾸준히 몇 년을 다니면 어지간한 작품을 다 봅니다. 환기미술관, 못해도 10번 이상은 갔어요, 이 말은 웬만한 작품은 거의 다 봤다는 겁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외 다른 기관 소장의 김환기 작품도 얼추 봤고요. 요즘 대부분의 전시는 유무료 상관없이 사진 촬영이 가능하죠, 저작권 문제로 작품 이미지는 못 찍어도 벽면의 기획자의 의도를 담은 텍스트를 찍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벽면 텍스트는 전시를 잘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의 개념이니까요. 하물며 쓰레기가 될 줄 알면서도 리플릿을 만드는 건 관람객을 위한 배려죠. 제작비나 쓰레기를 줄이고 싶은 기관들은 QR코드나 홈페이지에 상세 정보를 올려놓고요.
그런데 어떠한 조치도 없이 관람객 입장에서 필요 없는 팸플릿을 팔기 위해 마땅히 제공해야 될 텍스트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 미술관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수화의 작품을 보면 넉넉한 마음이 드는데 그날 저는 미술관을 나오면서 제가 낸 입장료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어요.
대체 제가 낸 입장료엔 뭐가 포함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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