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이야기
전시관 · 공연장 · 영화관 주변에는 또 다른 볼거리, 놀거리, 맛집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색 있는 테마 공간들이 들어선 곳도 있고, 자연환경이 좋아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는 길이 소풍 가는 기분이 드는 곳들도 있고요. 복잡한 곳보다는 한적한 곳을 좋아하다 보니 공원이나 조경을 갖춘 곳으로 자주 가게 되는데, 가령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 한글박물관은 자체 정원뿐만 아니라 용산가족공원·한강·이태원과 가까워서, 대학로는 낙산공원 등이 있어서, 광화문· 시청· 압구정동· 서초· 잠실 등도 공원이나 다른 인접 놀이시설들이 좋아서 전시나 공연을 보러 나서도 꼭 1,2개 이상 다른 공간들까지 두루두루 찾아보고 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저랑 같이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는 친구들은 늘 운동화에 편한 옷을 입고 나와요. 저를 만나면 일정 거리는 걸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ㅎㅎㅎ 현재 코로나 19로 인해서 볼거리·먹거리·즐길 거리 3박자를 갖춘 곳들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곳들이 많지만, 이 모든 상황은 곧 나아질 테니 여름휴가 준비하듯 가볼 만한 곳들 하나하나 차곡차곡 'To do' 리스트에 적어뒀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우리 열심히 즐겨보자고요 일상의 자유를!
남산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전통예술의 현대적 계승 및 발전을 위해 1950년 4월에 창설된 국립 문화기관입니다. 미국 링컨센터(1959), 영국 국립극장(1961), 일본 국립극장(1966), 미국 케네디센터(1971), 대만 국립극장(1987), 일본 신 국립극장(1997), 말레이시아 국립극장(1999), 헝가리 국립극장(2002), 중국 국가대극원(2007)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장들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설립되었죠.
우리나라 최초 현대식 국립극장은 대한제국 시기(1902)에 지어진 협률사協律社입니다.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한성부 야주현夜珠峴(현 광화문 새문안교회 터)에 있었던 봉상사奉常司(제사와 시호諡號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일부를 터서 설립한 상설극장이었죠. 국악예술인들 중심의 전통연희 장소로 손탁孫鐸호텔(1902-1903), 석조전石造殿(1909) 등을 설계한 건축가 심의석沈宜錫(1854-1924)이 지은 2층 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입니다. 일본 자본이 유입되면서 흥행 위주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극장으로 사용되다가 사회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1906년 폐지되었고, 극장 건물은 한동안 관인구락부(官人俱樂部)로 사용되다 1908년 7월 개화기 사설극장인 원각사圓覺社로 재탄생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으로 당시로서는 비교적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통연희와 신연극, 창극 등을 공연하다가 이 역시 1909년 11월 말 폐지되면서 전속 명창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건물은 후에 국민회 본부사무소國民會本部事務所로 쓰이다 1910년부터는 연설회장과 연희장으로 가끔 대관되었고, 1914년 봄 화재로 소실되었죠.
정부 수립 2년 후인 1950년, 민족 자긍심 제고와 시민 갈망에 대한 부응으로 국립극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당시 상황으로는 재정도 건물도 마땅치 않아 오랜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총독부가 지은 부민관(현 서울시의회당)을 기반 삼아 국립극장 시대가 열립니다. 창립공연〈원술랑〉(유치진 작)은 5만여 명의 관객이, 제2회 공연〈뇌우〉(차오위 작)는 7만 5천여 명의 관객이 관람했는데, 당시 서울 인구가 40만 명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성공을 이룬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났고 부민관 시대(1950. 4-1950. 6·25 전쟁) 이후 피난지 대구의 문화극장(현 영화관 및 쇼핑몰)을 사용한 대구 국립극장시대(1953. 2-1957. 5)-명동 시공관市公館(현 명동예술극장) 시대(1957-1961)-명동 국립극장 시대 (1962-1973)를 거쳐 현재의 남산 국립극장시대(1973. 10-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국립극장 설계는 건축가 이희태(1925-1981)가 맡았는데요, 그는 혜화동성당(1958)·메트로호텔(1960)·복자기념성당(1967)·절두산순교성지성당&박물관(1967)·국립공주박물관(1973)·국립극장(1973)·국립경주박물관(1974)·통일교 전 본부교회(1977)·부산시립박물관(1978)·성라자로마을(1981) 등 굵직한 종교 건축과 문화시설을 지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지은 건축가 엄덕문(1919-2012)과 손잡고 1977년 '엄&이 건축연구소'를 개소하여 힐 사이드 아파트, 연암회관 등을 설계하기도 했죠. 순수 국내파 건축가가 초기에 설계한 혜화동 성당은 기존의 전형적인 성당 건설 방식에서 벗어나 1960년대 이후 교회 건축의 모델이 되기도 했고, 절두산 순교성지 역시 공간 사옥(1971)의 등장 전까지 국내 건축가들에게는 최고의 현대 건축물이었다고 합니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 김중업(1922-1988) 등과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했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국립극장은 경회루를 모티브로 설계안을 만들었는데요, 당시 본보기가 적어 1966년 개관한 일본 도쿄 국립극장을 다수 참고했다고 합니다. 1층이 일반적인 건물 2층에 해당하도록 높게 설계됐고 건물 주변은 회랑(건물의 주요 부분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 형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건축 스타일이라고 하죠. 1967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예산 부족 문제로 진행이 순탄하지 못해 부분적인 건축 요소가 대체되고, 당시 국내 물자 부족으로 일본으로부터 모든 자재를 수입해서 사용했는데 이 역시 예산 부족으로 난항을 겪었죠. 공사가 몇 해 중단되기도 하면서 착공 후 6년 만인 1973년, 1500여 석의 해오름극장(당시 대극장)과 500여 석의 달오름극장(당시 중극장)을 개관하는데, 당시로는 혁신적이었던 회전무대와 슬라이드 무대 시설도 갖춘 최고 사양의 극장이었습니다. 별오름극장(2001년) 등 후속 건물도 뒤따라 들어섰고, 주기적인 개선 공사를 진행하며 시설물을 보완해왔고, 현재도 관람객 편의와 현대극에 어울리는 객석 배치를 위해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 중입니다.
국립극장은 2012년, 공연 라인업을 미리 공개하는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을 도입했고,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1962.3 창단)·국립무용단(1962.3)·국립국악관현악단(1995.1)의 자체 제작 공연 및 국립극장 기획 공연으로 공연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어요. 보통 '국립'이 앞에 붙으면 '프로그램이 너무 전통과 연관된 것들만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텐데,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대극들· 마당놀이· 대형 뮤지컬· 무용극· 어린이 대상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으니 기호와 연령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습니다.
공연 프로그램과 함께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NT live입니다.
영국 국립극장이 2009년 선보인 NT live는 'National Theatre Live'의 줄임말로 영국 극단의 최고 화제작을 영화관(cinema screen)에서 만날 수 있는 상영 프로그램입니다. 전체 공연 실황을 그대로 녹화 및 실황중계로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영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주, 유럽 등지에서 상영되고 있고 클로즈업, 풀샷, 부감 등 좌석, 조명, 음향, 언어 등 무대 연극이 가진 한계를 넘어 오롯이 공연에 빠져들 수 있는 최적의 영상을 제공합니다. 초절정 화제작 및 유명 배우가 출연해 현지에서도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작품이 상영되기에 매진이 빨리 되고 피케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극장이 우선 상영권을 보유하고 있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18편을 상영하는 동안 관람객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어 냈죠. 1인 2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거든요. 봄 프로그램은 지났고 돌아오는 가을에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을 테니 우리 좀 기다려 보자고요.
NT Live의 성공으로 현장에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도 있지만 저는 반반인 거 같아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했던 ‘대니 보일’의 독보적인 연출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의 <프랑켄슈타인>, 영화 기생충과 함께 2019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1917>의 감독 샘 멘데스 연출의 <리어 왕>, <리먼 트릴로지> 등은 실제 무대 공연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올해 7월 국내 첫 내한공연을 하는 '워 호스'도 NT Live 상영작이었어요. 실황 공연을 스크린으로 옮긴 사례는 뉴욕 메트 오페라의 ‘The Met: Live in HD’, 런던 로열 오페라의 ‘BP 빅 스크린’, 서울 예술의 전당의 ‘싹 라이브(SAC Live/ SAC on screen)’ ,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다이렉트 프롬 브로드웨이(Direct from Broadway)’ 런던 대영박물관 ‘Pompeii Live’ , 카카오 TV, V LIVE 등으로 이젠 보편화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2010년 5월에 개관한 공연예술박물관은 별오름극장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공연 1시간 전에 가시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어요. 관련 자료, 의상, 대본 등 공연 역사와 관련된 미디어나 오브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시간적 여유를 두고 가셔서 꼭 둘러보길 추천드립니다.
국립극장을 가는 날엔 늘 태극당 본점에 들려 마음에 드는 빵을 구매해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숨 고르기를 합니다. 1973년 장충동(1946년 명동 개점)으로 옮겨 온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 빵집은 매장 바닥에 깔린 대리석, 천장에 걸린 대형 샹들리에, 세월이 묻어나는 소품들을 가득 담아 밝고 화려하게 꾸며져 뭔가 판타지를 느끼게 해 준달까? 아무튼 음식과 문화를 함께 섭취하게 되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언덕길을 올라가면 적당하게 운동이 되어 몸이 좀 더 편안해지더라고요.
공연이 끝난 후에는 남산 공원 방향으로 올라가서 순환 버스를 타고 전망대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30분의 환승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여 산책을 즐긴 후 다시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선선한 공기와 정경, 꽉 찬 적막함이 멋진 공연을 만난 것만큼 좋더라고요, 저는.
일상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모두가 평안해지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개인위생에 신경 쓰면서 밝고 힘찬 기분 유지하며 잘 살아보자고요!

https://www.ntok.go.kr/kr/Main/Index
국립극장 60년 사 pdf 자료 링크 : https://www.ntok.go.kr/kr/Introduction/History/indexA
http://ntlive.nationaltheatre.org.uk/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4230
https://aumlee.co.kr/aumlee/main.ph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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