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vs 예술과 정치 사이 어딘가(ep.1)
만화, 좋아하시나요?
제 주변에는 만화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생존 기술들을 배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습니다. 어렸을 때 봤던 내용들을 현재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좋아하는 방식으로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는 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다시 체감하게 됩니다. ㅎㅎ 만화라는 장르에 그들만큼 열정적으로 다가갔던 사람은 아니지만, 저도 은근히 이것저것 챙겨보긴 했더라고요.
Newseum 전시 이미지© 네버레스 홀리다
만화는 회화나 순수 문학, 클래식 등으로 대변되는 하이 컬처(high culture)와 달리 하위문화(subculture)로 인식되던 장르였는데, 현재도 하위문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궁금하네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캐릭터들은 대부분 만화(적인 기법)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만화 그 자체로 혹은 다른 장르와 결합된 형태로 이미 대중과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호응을 얻고 있는 예술 장르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만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만화와 조금 다를 수는 있어요. ㅎ 제가 선별한 만화 작가 4명을 한 번에 소개하려고 보니 은근 내용이 많아서 2~3번에 나눠 올릴 계획입니다. 혹시 이 작가들이 낯설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과 더 친숙해지길 바랄게요.
2019년에 접한 김성환(1932-2019) 화백(이하 작가)의 별세 소식은 잊고 있던 한 캐릭터를 생각나게 했어요. 1932년 황해도 개성 태생으로 해방과 함께 서울로 내려온 그는, 투고한 <멍텅구리>가 연합신문에 실리면서 전속작가 겸 만화가로 데뷔합니다. 6.25(한국전쟁) 때 다락방에 숨어 살면서 100여 명이 넘는 만화 주인공들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고바우 영감‘이죠.
"성姓은 고高가요,
이름은 우리나라 민족성을 살린
구수한 체취와 강직한 보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바위巖란 뜻으로 바우라고 붙였다.
고高란 성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느끼고 있는
민족적인 열등의식을 철저하게 반대하자는
고고한 정신을 살리고자 하는 뜻이 내포된다."
"고바우는 순 한국산으로 주소는 서울,
나이는 쉰 살,
머리털이 죄다 빠지고
단 한 개가 남은 환갑에 가까운 영감,
학력은 구 전문학교 졸업 정도,
현 직책은 어느 개인회사의 사원,
가정 사항에 들어가,
그는 동산動産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단 한 달에 한 번씩의 고정 수입이 있으나
이는 몇 시간을 지탱하기가 어려움 -
부동산으로 조그마한 집 한 채가 있다.
가족 사항을 보면
노부인에 딸 하나가 있을 뿐이다."
- 김성환, 「애드벌룬의 미소」 1962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조각가 윤효중 등이 발행한 『만화신보』에 참여했고, 『신태양』, 『희망』, 『학원』 등에도 작품을 게재합니다. 김병기 화백 추천으로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에 근무하면서 계몽 포스터와 전단, 주간 만화잡지 『만화승리』, 『육군화보』 등에 참여하는데요, 당시 미술대 내에는 화단의 중진들로 구성된 종군화가단이 결성되어 있어 그들과 다양한 인맥을 쌓아가죠.
'고바우 영감' 캐릭터는 1950년 12월 30일 육군 본부가 발행한 『사병만화』에 첫 선을 보인 후『만화신문』, 『월간희망』 등 기관지와 잡지 등에 수록되는데요, 폭넓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당시 9만 부를 발행했던 동아일보에 연재되면서부터입니다. 문화면을 담당했던 시인 이상노의 청탁으로 1955년 2월 1일부터 ‘고바우 영감’이 연재됐고 만화를 신문에 게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언론계에서는 나날이 높아가는 '고바우 영감'의 인기를 실감한 후 잇달아 연재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하죠. 후에 조선일보, 문화일보를 거쳐 2000년 9월까지 45년간 14,139회를 연재하게 되는데, 이 기록은 최장수 신문 연재 시사만화로 인정되어 한국 기네스(2001)에 등재됩니다.
'고바우 영감 원화'는 2013년 2월에 한국 (현존하는) 최초 단행본 만화인 김용환 (1912-1998) 화백(이하 작가)의 『토끼와 원숭이』(1946년), 한국 최초 순정 만화 성공작으로 꼽히는 김종래(1927-2001) 화백(이하 작가)의 『엄마 찾아 삼만리』 원화와 함께 만화 최초 등록문화재로 지정됩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의 원작을 만화로 옮긴 『토끼와 원숭이』(등록문화재 제537호)는 1946년 5월 1일에 조선 아동문화 협회를 통해 34장의 지면으로 간행됩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2012년 5월 경매를 통해 구입한 이 작품은 당시 인기 연재만화 캐릭터인 '코주부(KOCHUBU)'의 작가 김용환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죠. 당대 만화가들의 스승이라 불리던 인물로, 그가 그린 만화들은 해방 후 만화가들의 교과서로 통했다고 합니다. 토끼와 원숭이 등을 의인화하여 일제가 벌인 부당한 침략행위와 식민통치를 고발하고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염원을 그린 이 만화는 원작 역시 아동을 위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섬뜩할 정도의 상황 묘사와 국제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예언이 담긴 우화로 쓰여, 총독부에 의해 동화의 연재가 중단될 정도였다고 해요. 결국 마해송은 이 작품을 해방 이후에야 완성을 하죠.
등록문화재 제539호인 김종래(1927-2001) 작가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당시 한국 최초 만화 베스트셀러로 불립니다. 일본에서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직후 귀국해 육군에 재직하며 1954년 <붉은 땅>으로 데뷔한 김종래 작가는 연기자 박원숙의 아버지인 만화가 박광현(1928-1978)의 삽화체 그림을 따랐다고 하죠. 남성적 만화를 추구하던 그는 1958년 8월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시대극 『엄마 찾아 삼만리』 상권(192쪽)을 세계문화사에서 발표합니다. 술과 노름에 빠진 어린 금준의 아버지는 돈 삼백 냥에 아내를 파는데요, 부산의 중국인 부호에게 팔려간 엄마를 찾아 금준이 보따리를 짊어지고 전국을 떠도는 이야기로,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을 통해 성장한 금준이 결국에는 어머니를 찾아 효를 다하고 그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응징한다는 권선징악적 주제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피폐했던 당시 사회와 부패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빗대어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만화 역사상 처음으로 10쇄까지(1964년까지) 출간되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합니다.
당시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이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경우는 <고바우 영감>이 처음이었는데, 작가가 소장하고 있던 6,496점과 동아일보사가 소장하고 있는 4.247점 총 10.743점의 원화가 등록문화재 제538호로 지정되죠. 작가 소장본 6,496점은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등록문화재 제538-1호)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네 컷 만화 속 <고바우 영감>은 마치 뉴스의 한 줄 헤드라인 기사처럼 우리 일상과 직결된 현대사의 이슈들을 간결히 기록했고, 국민을 대변했고, 대중들에게 전달했죠. 간략한 필선으로 묘사된 너무 보통의 인물들은 4칸의 제약을 넘어서며 더 강렬하고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서, 어떨 땐 실소가 나기도, 애처롭기도, 화를 내기도 하면서 그 캐릭터의 시대를 같이 걷게 되더라고요. 여러 에피소드가 많지만 1958년 경무대(현 청와대)의 절대 권력을 비판했다가 만화임에도 허위 보도 유죄 선고를 받은 ‘경무대 똥통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풍자만화로 정권 비판을 했다가 사법처리로 이어진 만화가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죠.
1963년 AP 통신이 ‘말을 함부로 못하게 된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고바우를 소개하고 군사정부의 언론탄압 소식을 전하면서 고바우 영감은 국내외로부터 주목받는 만화 주인공이 됐다고 해요. 이후 군사정부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지만 ‘고바우가 신문에 실리지 않는 날은 한국에서 특종이 터지는 날(무언가 정부가 감출 일이 생긴 날)’이라는 말이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떠돌며 그의 부재를 토픽으로 보도하기도 했고, 또 직접 기자들이 작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14,139건의 당시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우리에게 남겨지게 된 거죠.
언론 검열을 통해 몇 차례 필화 사건을 겪기도 하지만 <고바우 영감>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미국, 일본 등에서 고바우와 김성환을 조명하는 자료와 논문집이 나오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그의 인기를 증명하듯 서적은 물론 전시, 다양한 상품과 상호 속에 등장합니다. 아직도 지방 어딘가에는 고바우의 이름을 딴 상점이나 상품이 있을 것 같긴 해요. 심지어 북한에서 만든 전단에도 활용될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짐작 가능하시죠?
김성환 화백의 작가 정신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고바우 만화상'이 2001년에 제정되는데, 이홍우 작가를 시작으로 이현세, 박수동, 황미나, 허영만, 오세영 작가 등 그야말로 우리 만화계를 다양하게 수놓은 으리으리한 작가들이 그 수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2002년 보관문화훈장에 이어 2019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으며 대중과 문화계 안팎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가 걸어온 예술가의 삶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있는 건 조금 아쉽더라고요. 홈페이지가 있어 통합된 자료를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제가 못 찾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2014년 10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고바우 영감’ 원화 및 관련 자료 등 200여 점 전시한 <고바우가 바라본 우리 현대사> 전이 열렸는데요, 한 권으로 작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얻고 싶다면 이 전시 도록을 권해드립니다. 도록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진 않은데, 이 도록은 굵직한 역사의 장면들을 볼 수 있는 만화들과 작가의 유화 작품 그리고 다양한 소품들까지 함께 수록하고 있어 보고 나면 좀 더 쉽게 작가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테마 컬렉션에는 작가의 원화와 작품 배경에 대한 해설이 함께 제공되고 있어 각 에피소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무래도 동시대 사건이 아니다 보니 해설과 함께 보면 더 와 닿긴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아래 첨부한 자료 중 오디오 클립이 있습니다. 인터뷰로 이루어진 24분 길이의 오디오 클립인데요, 확실히 글을 잘 쓰는 분들은 언변도 좋더라고요, ㅋ 재미있습니다. 굉장히 나름 즐기며 세상을 사신 분 같거든요. 꼭 들어보세요~
참고:
시사만화로 보는 시대상 -고바우 영감
http://collection.nl.go.kr/DC0102.do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테마 컬렉션
collection.nl.go.kr
네이버 인생 스토리 - 만화를 통해 역사를 기록한 시사만화가(24분)
https://audioclip.naver.com/search?query=%EA%B9%80%EC%84%B1%ED%99%98%20%EB%A7%8C%ED%99%94%EA%B0%80
디지털 만화 규장각 dml.komac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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