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쾌청한 날씨에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는 요즘입니다. 평소에도 하늘 보는 걸 좋아하지만 이맘때엔 그냥 눈길이 향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저는 평소엔 KBS 클래식 FM을 고정으로 틀어두는데, 산책하거나 이동할 땐 대중음악을 듣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볼륨 업해서. 그러다 보니 이동이 줄어들면 그만큼 현재 유행하는 곡들과도 하염없이 멀어지죠.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의 귀띔으로, 방송이나 다른 이의 언급을 통해, 새로운 노래를 '발견'해요.
오늘 소개할 뮤직비디오 역시 그렇게 '발견'한 작품들입니다. 최신곡이 아닌 데다 워낙 히트작들이어서 익숙한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분명 아직 '발견'하지 못한 분들도 계실 테니, 제게 '발각된' MV를 함께 (다시) 보며 주말을 보내보자고요. 한번 봤는데 머릿속에 확 박혀 버릴 만큼 인상적인 MV들이니 제 글을 읽은 후엔 꼭 감상해보세요. 예술은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니까, 다시 봐도, 처음이어도 분명 좋을 겁니다.
첫 번째 뮤직비디오는 송민호(MINO)의 <도망가>입니다. 2020년 10월 30일에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앨범 《 Take 》의 타이틀곡으로, 작사·작곡· 편곡 모든 과정에 참여했죠. 앨범 소개에 " 《 Take 》는 <뮤지션 송민호>라는 영화 가운데 12개의 인상 깊은 #Take와 같이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라는 아티스트, 프로듀서 송민호의 마음을 담았다."라 적어뒀는데, 의미 있는 신 scene들이 모여 영화를 구성하듯, 힙합, R&B, 발라드 등 장르의 다양함과 피처링으로 새로운 12곡의 음악들로 완성된 음반이 바로 《 Take 》입니다. 음반 전체 사운드도 풍부하고 웅장해서, 귀로 듣는 영화 같기도 하고, 놀이동산 느낌도 나고, 꿈꾸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전곡을 드는 동안. <도망가>라는 노래가 대중적으로 제일 알려졌지만 그 외에도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전, <sunrise>도 좋더라고요.
<도망가>는 가사에도 나와있지만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제목입니다. '(너에게서 내가) 도망가겠다'와 '(나로부터 멀리) 도망가'라는. 킬링 포인트가 되는 후렴 가사 "도망가 가가가가 가가가가"는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신박했어요. 저 가사의 딕션과 퍼포먼스 덕에 제대로 귀와 눈에 장면들이 박혀버렸거든요. 그냥 읽기에도 고민이 많았을 부분인데, 감정과 메시지까지 담아 멜로디를 타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죠. 전 군무도 좋아하지만 약간 흐느적거리는 자유분방한 느낌의 퍼포먼스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MINO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취하는 즉흥 퍼포먼스는 가사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 좋더라고요.
노래만큼 뮤직비디오도 감각적입니다. 2분 50여 초의 재생 시간이 찰나인 듯 흠뻑 빠져들어요. 전반적인 톤도 좋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특수효과가 어마어마합니다. 보통은 한두 개 정도 섞을 법한데 여기에는 꽤 여러 장치들을 사용했더라고요, 제작비가 궁금해질 만큼요. 뮤직비디오 관전 포인트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감정에 취해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걸 시각적、판타지적으로 표현했으니 그 포인트들을 재밌게 봐 달라'라고 했는데, 그 말처럼 가사 속 추상적인 요소들이 장면마다 시각적으로 잘 구현됐어요. 그래서 눈이 즐겁습니다. 확실히 들인 품이 티가 많이 나거든요.
그는 뮤직비디오 속 '신발이 먼저 달려가는 장면'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서정적이면서도 직관적인, '감정'과 '대사'가 짧은 움직임으로 잘 시각화된 장면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셀 공드리 Michel Gondry(1963~) 감독 영화 속 한 장면을 오마주 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미셀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2004)과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2006) 등의 작품은 저도 좋아하는데요, '사랑'이란 주제를 색다른 상상력과 연출로 풀어낸 굉장히 감각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이터널 선샤인>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사랑을 받아 몇 번 재개봉되기도 했으니, 혹시 아직 안 보셨다면 추석 연휴에 보길 추천드립니다. 조금 더 가벼운 내용을 원하면 <수면의 과학>을 추천하고요.
송민호의 부캐는 다양합니다. 사진, 그림, 패션, 예능 등 참 재능이 많거든요. 화가로 활동할 땐 'Ohnim'이란 예명을 사용하는데, 이미Ohnim의 작품은 매체를 통해 많이 선보였죠. 2019년 화단에 데뷔했고, 작년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며 화제가 되었는데, 올 10월에도 Korean Pop Art Wave Hits London Art Fair라는 제목으로 송민호(Ohnim), 강승윤(You yeon), 헨리(Hemry Lau)의 전시가 사치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워낙 다재다능한 사기캐들이라 곧 선보일 작품들이 기대되네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서로 부족한 영감들을 공유해 주는 것 같다. 시각적으로 표현했을 때 거기서 담아내지 못한 것들을 음악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또 반대로 표현을 풀 수 있다. 내게 참 좋은 것 같다. 환풍기 같다”라고 음악과 미술의 연결성에 대한 생각을 밝혔는데, 이 기사를 보고 '전인적인 능력을 지닌' 인간형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또 이 말도 좋더라고요. 예술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 “내 안의 불씨가 오랫동안 꺼지지 않도록 땔감을 계속 제공한다. 그것들이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라며 “예술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나로부터 나온다. 계속 내면을 탐구하고 송민호의 ‘착할 선’을 추구할 것이다”라고 했던.
정말 잘~ 성장했으면 좋겠네요.
두 번째는 헤이즈의 <헤픈 우연>입니다. 그의 7번째 미니 앨범《 HAPPEN 》의 타이틀곡으로 올해 5월에 발표했죠. 타이틀곡 ‘헤픈 우연’이 어떤 곡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헤이즈는 “저 조차도 정의 내릴 수 없는 제가 갖고 있는 사상과 인연에 대한 가치관, 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노래로 잘 함축된 곡이지 않나 싶다"라고 설명하며, “개인적으로는 ‘헤픈 우연’이라는 곡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제 사상을 온전히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곡인데, 이런 주제로 노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든다”면서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소중한 인연들이 ‘헤픈 우연’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소중한 마음과 애틋한 마음들이 한 번 더 되새겨진다면 너무나 좋을 것 같다”라고 덧붙이기도 했죠. < 헤픈 우연>은 드라마틱 한 멜로디의 전개가 꽤 인상적인 곡입니다.
헤이즈의 이번 앨범은 여러 모로 화제가 되었는데, 싸이 PSY가 수장으로 있는 P NATION으로 소속사를 바꾼 후 처음 선보이는 앨범인 데다, 《빈센조》를 막 끝낸 송중기의 뮤직비디오 출연이 그 이유였죠. 오피셜 뮤직비디오의 뷰 수가 1200만 뷰를 향해 가고 있어요. 저 역시 당시 《빈센조》를 재밌게 본 터라 송중기의 뮤직비디오 출연이라는 이슈에 끌려 처음 보게 되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류의 멜로디 흐름이라 귀에 감겼고,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화면에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이유는,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장면이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1882-1967)의 작품을 연상케 했거든요.
(왼) <From Williamsburg Bridge>(1928), MET 소장 이미지 출처: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7834 (오)<Nighthawks>(1942), Art Institute of Chicago 소장 사진: 네버레스 홀리다
뉴요커인 에드워드 호퍼는, 지극히 미국적인 정서를 잘 드러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평면적인 화면 구성에 정적이고 고독한 도심 속 이미지와 그 안에서 소외되고 고독한 익명의 사람들이 작품 전반에 등장하죠. 대표작으로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로부터 From Williamsburg Bridge 』(1928,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와 『밤의 사람들 Nighthawks 』 (1942,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등이 있는데, 『밤의 사람들 Nighthawks 』 은 제목만 몰랐을 뿐이지 이미지를 보면 분명 '아~' 하실 거예요. (호퍼의 미술은 이후에 정식으로 다룰게요.)
<헤픈 우연> 뮤직비디오 속 구도나 색감은 누가 봐도 호퍼 스타일입니다. 결정적인 장면들이 많거든요.
헤이즈 <헤픈 우연> 출처: https://youtu.be/AJPLgrfBiBo©헤이즈, 에드워드 호퍼 <Office in a Small City>(1953) 출처: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730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장인물, 구도의 유사성은 그냥 이미지만 보셔도 얼마나 닮았는지 아시겠죠?
(왼) 에드워드 호퍼 <Nighthawks>(1942) 출처: https://www.artic.edu/artworks/111628/nighthawks (오) 헤이즈 <헤픈 우연> 출처: https://youtu.be/AJPLgrfBiBo©헤이즈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바로 카페 신인데요, 여기에선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없이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를 오마주 합니다. 감독 역시 그 점을 부인하지 않고, 카페 간판으로, 유리창의 문자 커팅으로 'Nighthawks'라는 제목을 드러냈고요. 외관뿐만 아니라 카페 안에서의 장면들도 유사한 콘셉트가 많아요.
(왼) 헤이즈 <헤픈 우연> 출처: https://youtu.be/AJPLgrfBiBo©헤이즈(오)에드워드 호퍼 <A Woman in the Sun>(1961) 출처: https://whitney.org/collection/works/1337
(왼) 헤이즈 <헤픈 우연> 출처: https://youtu.be/AJPLgrfBiBo©헤이즈(오) 에드워드 호퍼 <Summertime>(1943), 출처: https://emuseum.delart.org/objects/249/summertime?ctx=a254d96c2f942b5f55a436880c8037a13090b07e&idx=0
공간을 살짝 변형하거나 소품의 변화를 주긴 했지만 공간적 구성에서, 사용한 색감에서 호퍼 스타일이 많이 드러나죠.
헤이즈 <헤픈 우연> 출처: https://youtu.be/AJPLgrfBiBo©헤이즈, 에드워드 호퍼 <Early Sunday Morning>(1930) 출처: https://whitney.org/collection/works/46345
위에 보여드린 작품들 외에도 유사한 작품들이 많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호퍼의 이미지를 검색해본 후에 MV를 보시면 찾기 쉬울 거예요. <헤픈 우연> 은 우연 같지만 인연인, 간발의 차로 스치는 두 사람을 표현하는데, 군중 속의 고독을 잘 묘사한 호퍼의 그림과 잘 어울립니다.
마지막 뮤직비디오는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 시즌 1 중 <SEOUL> 편입니다. 한국의 명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는 Feel the Rhythm of Korea의 <서울> 편은 2020년 7월에 업로드 한 이래 현재 4800만 뷰를 향해 가고 있어요. 우리나라 인구가 한 번씩은 본 셈인 거죠. 서울의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1분 36초의 가벼운 클립으로, 이날치 밴드가 부른 <범 내려온다>와 엠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댄스 콜라보가 이 화려한 성공에 주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중독성이 정말 갑이거든요.
MV에서 소개된 장소는 청와대 분수광장, 청와대, 동대문 DDP, 덕수궁, 리움, 자하문터널(영화 <기생충> 촬영지)로 큰 연계성을 보이거나 새롭게 발견된 장소들은 아니지만, 이 MV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곁들여진 장소가 되긴 했죠. 독특한 의상과 춤사위에서 확실히 자유분방함은 느껴졌고, 이날치의 밴드 리듬은 흥을 더해주긴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는 전 국민에게 크게 각인되어, 우리의 전통문화 코드를 현대화하는 데 성공한 케이스가 되기도 했고요.
콜드플레이 < high power> 속 엠비규어스와 롯데 뮤지엄 <dreamer, 3:45 am> 티저 이미지 출처: 콜드플레이 오피셜 유튜브, 롯데 뮤지엄 홈페이지
이날치 밴드의 인지도나 인기도 상당하지만, 국내외로는 엠비규어스의 활약이 더 두드러집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김보람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2011년 창단된 예술 단체입니다. 밴드 이날치와 협업한 네이버 '온 스테이지' 영상 및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으로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았죠. 보도를 통해보셨겠지만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 Cold play의 신곡 <higher power>에서 댄스 콜라보를 했고, 지난달에는 국립 현대무용단과 함께 예술의전당 CJ 토월 극장에서 <'힙합(HIP 合)> 공연을 마치기도 했어요. 또, 곧 있을 롯데 뮤지엄 <dreamer, 3:45 am>에선 전시 기획자로 자신의 섹션을 꾸밀 예정입니다.
현재는 Feel the Rhythm of Korea 시즌 2가 업로드되어 있어요. 이번에도 대단합니다. 복고 코드가 느껴지긴 하는데 어떤 클립은 영화 같고, 어떤 클립은 이미지 위주의 장면들이 많아, 기존의 방식의 '관광 홍보' MV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일단 눈을 꽉 채우는 색깔이 좋고요, 음색 좋은 아티스트들의 BG가, MZ 세대는 물론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여러 지역 클립 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서산 편의 <머드맥스>입니다.
한국관광공사 한국 홍보 MV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피셜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imagineyourkorea/videos
영화 <매드맥스>를 오마주한 이 작품은, 수십 대의 경운기가 갯벌을 지나가는 장면이 압권이에요. 거기에 지역색도 담았고요. 기획력도 좋고 시나리오, 촬영, 연기 그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9월 3일에 업로드되었는데 이미 600만 뷰에 다가서고 있어요. 이 밖에도 눈여겨보면 좋을 영상들이 가득합니다.
최대한 다른 면을 부각하며 설명해보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소화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오늘 소개드린 MV 중 어떤 콘텐츠에 더 관심이 갈진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여러분의 남은 주말 오후를 풍요롭게 해 드렸으면 좋습니다.
그럼 남은 주말 오후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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