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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봤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2021년 6월~10월

전시 이야기

《못 봤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 - 2021년 6월부터 10월까지 



지난 포스팅을 보고 주변에서 '그림책'이나 '사진집'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요즘 포스팅할 때마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란 생각이 자주 드는데, 텍스트를 쓰는 것만큼 이미지를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걸 몸이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정말 이미지 많이 쓰는 분들, 존경합니다. 그래도, 전시 리뷰에 이미지가 너무 적으면 아쉽잖아요~

이번에도 개인 취향이고 예외는 있지만, 6월부터 10월까지 서울 개막전시 중에서 선별했습니다.



첫 번째 전시는 롯데 뮤지엄 <김정기, 디 아더 사이드 The Other Side>(2021.04.16-2021.07.11)입니다. 저번 포스팅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빼놓고 올렸네요.

롯데 뮤지엄  <김정기, 디 아더 사이드 The Other Side>(2021.04.16-2021.07.11)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그림체로 실재와 허상, 직관적인 발상과 무한 상상력이 펼쳐진 작가 김정기(1975-)의 예술세계를 만난 전시였죠.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숙련된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라이브 드로잉 live drawing이 전시의 백미였습니다. 벽화 사이즈의 흰 종이에 쓱쓱 그려나가는데, 손끝에서 여러 캐릭터와 그가 속한 세상이 바로 튀어나오더라고요. 1000여 점 이상의 드로잉과 회화, 영상, 사진 등 총 2000여 점의 출품작을 통해 작가 김정기의 어제와 오늘을 잘 볼 수 있었고 드로잉의 세계에 제대로 입문할 수 있던 전시였어요.



두 번째 전시는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安寧 모란> (2021.07.07-10.31)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安寧 모란> (2021.07.07-10.31)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시 스타일이 제대로 바뀌었단 걸 증명한 전시입니다. 변화는 이전부터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지만요. 일반적으로 모란을 '부귀'만 상징하는 꽃으로 알고 있는데, 조선 왕실에선 왕실 인물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무늬로, 흉례 땐 고인의 시신과 혼이 자리하는 곳에, 풍요와 영화로움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궁궐이나 생활용품을 꾸밀 때 모란(무늬, 그림)을 즐겨 사용했어요. 회화(화첩), 장신구, 의복, 제기, 병풍 등 모란 이미지가 들어간 유물과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인공정원으로 꾸며 그 안에 화훼 그림을 두었던 공간 디자인, 전시실을 가득 채운 향기, 다채로운 미디어 월이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거리가 충분했던 전시였습니다. 전시 보조 기법의 사용이 만족감을 높이긴 했지만, 벽면을 가득 채운 모란 병풍이 주는 만족감을 넘어서진 못했죠. 왕실에서 사용한 병풍들이니 그림 솜씨 또한 뛰어났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생김도 표현도 면면이 새로워 자주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단지, 주변 장치가 화려하다 보니 유물의 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던 건 좀 아쉬웠어요.



세 번째 전시는 63 아트 미술관 <에릭 요한슨 Beyond Imagination>(2021.09.16-2022.03.06)입니다.

63아트미술관 <에릭 요한슨 Beyond Imagination>(2021.09.16-2022.03.06)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의 신작전으로, 그는 일반적인 매체로 독보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작가죠. 그의 상상을 풀어낸 작품 세계에 대중들이 쉽게 공감 및 몰입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정말 저런 곳이, 저런 일이 있을 것 같은 현실적 믿음을 줍니다. 작품 탄생엔 포토샵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치밀하게 구상한 아이디어를 현실과 결합하거나 상상력을 옮기는 '공예적인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지만 이미지화하지 못했던 것들을 구현하기 위해 주변 세팅은 기본이고 기술 매체의 도움도 받는데,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가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꿈과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까지요.



네 번째 전시는 더 현대 서울 알트원 ALT.1 < 비욘 더 로드 BEYOND THE ROAD> (2021.07.23-2022.01.16)입니다.

더 현대 서울 알트원 ALT.1 < 비욘 더 로드 BEYOND THE ROAD> (2021.07.23-2022.01.16)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비욘 더 로드>는 2021년 한 해 본 비슷한 성격의 연합전 중에서는 가장 독특했어요. 우선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전시 공간을 관람객은 각자 오감에 기대 자율적인 관람 동선을 만들게 했고, 동일한 공간에 빛과 소리, 향이 겹쳐지며 순간 서로가 보지 못한 낯선 공간으로 변모하는 시각적 특별함이 전시를 매력적으로 바꿔줬거든요. 영화, 설치, 조명, 사운드, 향기 등을 전시의 주 매체로 활용하며 인상 깊은 장소를 많이 만들어냈지만, 그중에서도 전시 맨 끝부분에 설치된 교회 안 미디어 아트는 이 전시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면면히 화려한 아티스트들을 모아놨는데, 그 어우러짐이 꽤 자연스러운, 젊은 감각의 전시입니다. 출구를 찾기 위해 여러 번 전시장을 돌게 되고 길도 잃게 되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새로운 광경도 의도적 헤맴도 이 전시의 묘미입니다.



다섯 번째 전시는 갤러리 현대 <이건용, 바디스케이프 BODYSCAPE>(2021.09.08-10.31)입니다.

갤러리 현대 <이건용, 바디스케이프 BODYSCAPE>(2021.09.08-10.31)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이건용(1942-)은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로, 1976년부터 시작한 바디스케이프 연작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몇 년 전부터 대중매체는 물론 경매시장, 갤러리에 단골로 출품되었으니 많은 분들이 알지 않을까 싶네요. 현재 방영 중인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도 주인공 방에 걸려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신체의 풍경'을 뜻하는 '바디스케이프'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그린 그림으로, 자신의 키와 양팔, 다리 길이가 작품 창작을 위한 주요 전제 조건이 됩니다. 화면을 응시하거나 묘사하지 않고 신체가 허용하는 만큼만 팔을 뻗어서 선을 그리는 동작으로 작품이 만들어지거든요. 때문에 '바디스케이프'란 작품명이 붙는 모든 작품은 시작 연도인 '76'을 적은 후 그리기 방법이 작품명으로 부여됩니다. 가령, 화면 뒤에서 팔이 뻗치는 데까지 물감을 칠하는 '76-1', 화면을 등지고 머리끝부터 다리 좌우 끝까지 양팔이 갈 수 있는 만큼 그어내는 '76-2', 화면을 옆으로 두고 왼손 오른손 차례로 반원씩 그려내는 '76-3', 화면을 마주 보고 서서 붓을 쥔 두 팔을 위아래로 격렬하게 휘저으며 그린 '76-9' 등 모두 9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요. 이번 갤러리 현대 전시에 출품된 34점은 모두 완판 되었다지만, 전시를 위해 찍어둔 작업 영상은 홈페이지에 게재 중이니 시간이 될 때 한번 꼭 보세요.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여섯 번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DMZ 극장>(2021.08.20-10.03)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1.08.20-10.03)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DMZ 극장>은 DMZ 주변을 따라 지어진 13개의 전망대를 하나의 극장으로 바라보고 여기에 담긴 서사를 전시와 퍼포먼스로 풀어낸 다원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예전에 제가 한번 소개한 적도 있으니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계시겠죠. 이 전시는 그 13개 전망대를 촬영한 사진 작품과 각 전망대에 얽힌 현실 혹은 우화를 함축한 오브제, 이를 무대 삼아 진행되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었죠. 퍼포먼스 외에 안보인 관광이란 해설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사진 속 의상을 입은 해설가가 등장해 각 오브제와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며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는 콘셉트였어요. 그 경험을 많은 분들이 못 해본 듯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일곱 번째 전시는 두성페이퍼갤러리 <100 베스테 플라카테 beste plakate 20 >(2021. 09. 23-10.31)입니다.

두성페이퍼갤러리  <100 베스테 플라카테 beste plakate 20 >(2021. 09. 23-10. 31)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100 베스테 플라카테 20>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최신 포스터 100점을 선보인 전시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의 정수인 포스터가 전시 주인공이었죠. '베스테 프라카테'는 독일어로 최고의 포스터를 의미하는 말로, 한국에서는 2019년 <100BP 17>을 시작으로 올해 네 번째로 열렸는데, 오리지널 포스터 작품 외에 볼프강 바인가르트의 진품 포스터와 SADI 학생들이 참여한 특별전으로 정말 풍성했어요.



여덟 번째 전시는 국제갤러리 <줄리안 오피 Julian Opie>(2021.10.7-11.18)입니다.

국제갤러리 <줄리안 오피 Julian Opie>(2021.10.7-11.18)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세계적인 작가 줄리안 오피(1958-)의 개인전으로, 국제갤러리 K2, K3, 정원에서 30여 점의 건물, 사람, 동물 형태의 평면 및 조각 작품을 선보였죠. 작가는 런던 동쪽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겨울옷으로 무장한 채 길을 나선 낯선 이들의 모습을 영상, 라이트 박스, 알루미늄 조각으로 표현했는데 개인의 옷, 머리카락, 그리고 피부 톤에서 따온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당시의 계절감을 표현했고, 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행인들 각각의 특징들을 포착하여 가장 일상적인 모습의 형상을 만들었어요. K3 작품 역시 도심 속 행인들과 건축 조각이 어우러졌는데, 팬데믹 상황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와중에 벨기에 크노케(Knokke)에 방문한 작가의 경험을 담은 작업들이죠. 건축물의 크기가 4m 정도로 정말 가상 도시에 서있는 느낌이었고, 오래간만에 군중 속에 섞인 듯한 기분도 느꼈던 전시였어요.



아홉째 전시는 문화역284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 2021.09.14-10.17)입니다.

문화역284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 2021.09.14-10.17)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타이포잔치(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 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국제 디자인 행사입니다. 2001년부터 매회 위촉되는 예술 감독의 기획 방향과 연출 방식에 따라 당대의 시대상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양한 시각 언어로 담아내고 있죠. 세계 유일의 국제 타이포 그래피 비엔날레로 문화의 근간인 문자를 바탕으로 올해는 문자와 생명을 주제로 열렸는데 작품 선별이 잘 되어서 모든 작품들이 다 눈에 들어왔고 재미있었어요. 말과 글이라는 것, 그리고 생명에 대한 메시지도 잘 전달되었고요. 무엇보다 시각적 경험이 그즈음에 봤던 전시들 중에선 단연 최고였습니다.



열 번째 전시는 현대카드 스토리지 <TOILETPAPER: The Studio>(2021.10.08-2022.02.06)입니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2021.10.08-2022.02.06)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재밌는 전시를 자주 합니다. 이번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인 토일렛페이퍼의 전시 역시 국내 최초로 꽤 흥미로웠고요. 토일렛페이퍼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광고, 패션계의 독보적인 포토그래퍼 피에르파올로 페라리(Pierpaolo Ferrari)가 2010년에 창간한 잡지입니다. 이 이름은 2009년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있던 카텔란의 뇌리를 스친 한 단어 ‘toiletpaper’에서 출발했는데, 쉽게 쓰고 버리는 화장지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하고 사실적인’ 매거진이 콘셉트라고 하죠. 그들의 밀라노 본사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이 전시는 높은 채도의 색감과 다양하게 변주되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게 특징으로, 현란한 도상과 색을 입은 디자인, 가구, 오브제, 설치 작품이 전관을 채우고 있지만 보는데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아 부담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리뷰에는 현재 진행 중인 전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적게는 5000원부터 많게는 20,000원의 입장 비용을 지불하고 봐야 하는데, 안 보셨다면 가급적 할인권을 구매해서 보길 권해드립니다. 언젠가부터 전시 관람 비용이 평균 2만 원으로 굳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 가격도 쉽게 이해되진 않지만 여러 방면에서 그 돈만큼의 만족감을 주는 전시도 드무니까요.


올해는 국공립기관과 갤러리 전시가 괜찮았어요. 전시 소식에 조금만 더 관심을 두었다면 제대로 된 문화향유를 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았죠. 전시비용도 무료이거나 5,000원 미만이 대부분이니, 미술 작품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면 국공립이나 갤러리 전시 관람부터 시작해 보세요. 작품을 보는 안목과 기준이 생기면 자연히 어떻게 향유하게 될 건지에 대한 계획도 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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