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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봤다면 & 놓친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

전시 이야기 

《못 봤다면 & 놓친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2021년 11월부터 12월 그리고 2022년 



드디어, 3부작의 마지막입니다.

앞서 쓴 글들은 잘 보셨나요. 제때 포스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올해 생각만큼 글을 많이 못 썼더라고요. 내년에는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어요! 연말이라 그런지 반성과 새해 다짐이 교차되네요.


이번에는 리뷰와 소개가 섞여있습니다. 연말 언저리에 오픈하는 전시들은 대부분 내년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전시가 많거든요. 그래서 제목도 살짝 바꿔봤어요. 2022년 1월부턴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인간 미래>와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고궁박물관의 <광화문 600년>과 같은 전시를 소개할 예정이고, 다른 이야기 속에도 전시 이야기는 등장할 테니 올해 담아내지 못한 나머지는 내년에 차차 풀어보겠습니다. 이번 글을 본 후엔 여행 가듯 전시실을 찾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건 함께 나누고 싶어 지니까요.



첫 번째 전시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메리 코스, 빛을 담은 회화>(2021.11.2-2022.2.20)입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메리 코스, 빛을 담은 회화>(2021.11.2-2022.2.20)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메리 코스(1945-)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왜 작품을 실견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그는 60년간 '빛'을 재료 겸 주제로 작업해왔는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여러 재질과 기법 실험을 지속해 왔죠. 그 결과 개인의 주관성 차이에 집중하여 관람자의 인식과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면을 창조했어요. 홀로그램이나 랜티큘러를 떠올리면 얼추 비슷할 것 같은데, 색은 모노톤으로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엔 196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모두 34점을 선보입니다. 대부분 지난 60년 동안 주관성, 인식, 빛에 대해서 탐구하는 과정에서 시도된 변형 캔버스, 라이트 박스, 유리 마이크로스피어 glass microspheres 등으로 구성된 "예술은 벽에 걸려있는 작품이 아니라 관람자의 인식"이라 말한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죠. 특히 그가 사용하는 주 재료인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는 주로 표지판과 고속도로 차선에 사용되는 산업 재료로, 1968년부터 물감에 혼합하는 방식을 고안하면서 작업 세계에 큰 전환점을 만들어줬죠. 바로 이 유리 마이크로스피어가 입사한 광원을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미묘한 색과 질감의 변화를 만들어줍니다. 또, 땅에 기반을 둔 작품도 전시 중인데, 그의 집 근처 언덕에 위치한 암석의 표면을 석고로 본뜨고 다시 점토로 찍어낸 다음 가마에서 구워 광택 나는 검은색 표면을 가진 정사각형 타일로, 마치 파도치는 듯한 유광의 검은 표면에 빛이 일렁이는 효과가 전시장에서 극대화됩니다. 그 현실감은 전시장에서만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2021.11.2022.3.1)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2021.11.2022.3.1)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우리 화단에서 가장 유명한 작고 예술가 3명을 꼽으라면, 대부분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을 언급하시겠죠. 세 분 다 대중적으로도 미술사적으로도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이들의 이름이 걸리면 그 전시나 작품은 꽤 많은 분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꽤 오랫동안 기다린 전시였는데, 기다린 시간이 헛되진 않았더라고요.


이 전시는 그가 19세 때 그린 수채화부터 죽기 직전에 제작한 유화까지 그의 전 생애 작품과 자료를 보여줍니다. 작품 및 전시실 구성이 참 좋은데, 전시실 네 곳에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 소설가 박완서, 아들 박성남, 컬렉터와 비평가의 시선이 담겨있어요. 동시에 그가 살았던 창신동부터, 명동, 을지로까지 그의 공간도 담고 있고요. 작품 소재가 한정적이다 보니 겹치는 그림들이 많기 한데, 여러 곳에서 모아 온 작품들이라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고,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그리고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작품도 다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전에 소품 크기의 박수근 작품만 보셨다면 이곳에선 규모 있는, 괜찮은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박수근 전시 중에서는 가장 짜임새 있고 편안하게 구성되어 있으니 꼭 놓치지 마세요. 꼭이요~



세 번째 전시는 김종영미술관 <최종태, 구순九旬을 사는 이야기>(2021.11.12-12.31)입니다.

김종영미술관  <최종태, 구순九旬을 사는 이야기>(2021.11.12-12.31)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현재 김종영미술관에서는 2개의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김종영이 사랑한 풍경전 <동네 풍경>(2021.11.12-2022.02.27)과 <최종태, 구순九旬을 사는 이야기>(2021.11.12-12.31)이죠. 최종태(1932-)는 사람 그중에서도 여인상을 주로 제작했는데, 8.15 해방, 6.25, 4.19, 5.16, 5.18, 6.29와 같은 치열하게 전개된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직접 겪으며 그 역사 속에서 버티는 동시대인의 삶에 관심을 두었고, 중학생 때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러 인간상의 충격적인 인상이 그를 평생 인체 조각에 전념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삶의 고통에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최종태의 조각은 복잡하지 않은 구조로 복잡한 인간을 표현합니다. 보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조금 더 바라보면 모든 불안함이 흩어지고 그러다 기도하고 싶어지는 그런 작업들이죠.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전시 기간이 조금 더 연장되길 바라봅니다.


이 전시를 본 후에 책 한 권을 샀습니다.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예술가 중에는 문학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펴낸 분들이 꽤 되는데요, 조각가 최종태 역시 종종 글을 씁니다. 이 책은 최근 10년간의 글을 모은 에세이집으로, 그와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 이야기도 있으니 참고해 보세요.



네 번째 전시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DDP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2021.11.27-2022.3.20)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2021.11.27-2022.3.20) 출품작 및 전시 홍보물 © 네버레스 홀리다

이 전시는 사진 촬영 불가입니다. 물론, 마지막 장소는 촬영이 가능한데 큰...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이즈음에 연 유료 대형 기획전 중엔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버릴 게 없어요. 국내 처음으로 살바도르 달리 재단과 협업해 유화, 삽화, 영화, 애니메이션 140여 점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들은 스페인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미국 플로리다 미술관,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서 가져왔습니다. 무엇보다 충분한 원화가 중심이 되고, 거기에 영상 및 해설까지 친절해서 도슨트나 오디오 가이드 없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달리 작품은 없지만 기존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선별되었고, 그동안 국내에서 열린 '달리' 관련 전시 중 가장 충실하게 그의 예술세계를 설명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대형 기획전(입장료 2만 원 기준)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달리전을 추천합니다.



다섯 번째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초현실주의 거장들,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선>(2021.11.27-2022.03.06)입니다. 전관 사진 촬영 불가입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초현실주의 거장들,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선> (2021.11.27-2022.03.06) 출품작 홍보물  ©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 작품은 좋습니다. 그런데, 전시가 불친절합니다. 컬렉터 프란스 보이만스와 다니엘 조지 판뵈닝언의 이름을 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소장전으로 이곳의 초현실주의 컬렉션은 정말 유명합니다. 그 외에도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클라스 올덴버그 등 151,000점을 소장하고 있고요.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부터 마르셀 뒤샹(1887-1968),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르네 마그리트(1898-1967), 호안 미로(1893-1983), 만 레이(1890-1976), 막스 에른스트(1891-1976), 이브 탕기(1900-1955) 등의 유명작들이 많은데 설명이 극도로 제한적입니다. 도슨트가 있지만 설명 취향이 맞아야 하고, 오디오 가이드도 있지만 유료고요. 전공자가 아니라면 전시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꼭 초현실주의 회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검색을 해보고 가보길 권해드리고, 이도 저도 귀찮은데 전시가 보고 싶다면, 도슨트 시간에 맞춰가거나 유료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세요. 만약 <달리>전도 볼 예정이라면 먼저 달리전을 보고 그 후에 보시고요. 작품은 정말 좋습니다.



여섯 번째 전시는 국제갤러리 <권영우 KWOM YOUNG-WOO>(2021.12.09-2022.01.30)입니다.

국제갤러리 <권영우 KWOM YOUNG-WOO>(2021.12.09-2022.01.30)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조물주는 만물을 만들었지만 이름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곧 추상인 셈이지요.

 저는 단지 자연의 여러 현상들에서 발견하고, 선택하고, 이를 다시 고치고 보탤 뿐입니다. " 

                                                       - 권영우(1926-2013)


파리 시기(1978-1989)에 제작한 백색 한지 작품뿐 아니라 처음 선보이는 1989년 귀국 직후의 색채 한지 작품, 패널에 한지를 겹쳐 발라 형상을 구현한 2000년대 이후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입니다. "나의 손가락이 가장 중요한 도구이며, 또 다른 여러 가지 물건들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도구로 동원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린다'라는 보편적이고 물리적인 기본 행위를 배제하고, 손톱이나 직접 제작한 도구를 이용하여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긁어내고 붙이는 등 직접적이지만 우연성이 깃든 행위를 통해 종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성과 촉각성이 드러내는 작업들입니다. 보다 보면, '종이 하나를 가지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어떤 것이든 '한 화폭에 여럿이 모여있으니 웅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종이라는 매체로 만든 작품을 바라보는 일이 참 즐거운 일이구나'라는 걸 다시 깨달은 전시였어요.



일곱 번째 전시는 국제갤러리 <루이스 부르주아, 유칼립투스의 향기 The Smell of Eucalyptus>(2021.12.16-2022.01.30)입니다.

국제갤러리 <루이스 부르주아, 유칼립투스의 향기 The Smell of Eucalyptus>(2021.12.16-2022.01.30)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는 1960년대부터 2009년까지의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를 상징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주로 그의 후기 작품에서 주요하게 조명되는 기억, 자연의 순환 및 오감을 보여주는 드로잉 작업이죠. 대중에겐 70여 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한 조각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기억, 사랑, 두려움, 유기 등을 주제로 한 관념적인 작업도 많이 했어요.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시절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많이 사용하면서 작가에게 유칼립투스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소재가 되었죠. 특히 작가 노년기에 두드러지게 표면화된 모성 중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기능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스튜디오를 정화 및 환기시키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기도 했는데, 그렇게 이 식물은 그의 삶 곳곳에서 실질적, 상징적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덟 번째 전시는 타데우스 로팍 알렉스 카츠 <Flowers>( 2021.12.09-2022.02.5)입니다.

타데우스 로팍 알렉스 카츠 ( 2021.12.09-2022.02.5)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꽃은 실제로 그리기 가장 어려운 형태를 지녔다. 

왜냐하면 꽃의 물질성과 표면, 색상, 그리고 공간적 측면을 모두 잡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꽃 회화를 마주한 사람들이 마치 실제 꽃을 보는 듯한 그 찬란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알렉스 카츠(1927-)


신작과 구작이 섞인 전시로 영하의 날씨에 이곳만은 봄이더라고요. 물론 봄 내음도 상상 가능한 전시입니다. 알렉스 카츠의 전시라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지만 작품 수가 많지 않으니 근처의 갤러리들과 연계해서 보는 걸 추천합니다. 마무리는 아름답게 하고 싶어서 골라봤어요. ^ㅡㅡㅡ^


이상 2021년 마지막 포스팅이었습니다. 매번 하는 고민인데, 가볍게 자주 쓰는 게 좋은 건지, 시간이 좀 걸려도 속을 채워서 쓰는 게 좋은 건지 올해도 답을 못 얻었어요.

일을 너무 벌여놔서 여전히 마무리해야 할 작업들이 많긴 하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찾아뵐게요.


올해도 찾아봐주셔서 감사드리고, 남은 시간 동안 한 해 정리 잘하시고, 2022년 새해, 원하는 모든 일들이 술~술~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늘 행복하자고요,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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