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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SeMA

전시 이야기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 서울시립미술관 (2022.03.24-05.22)


봄꽃이 막 피었나 싶었는데, 이내 푸른 잎새가 더 두드러지는 계절이 왔네요. 

오늘, 잘 보내고 계시나요?

그동안 바쁜 일정 탓에 두 달 가까이 글을 쓰지 못했는데,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차분히 글을 쓰기 시작하니 기분이 참 좋네요. 확실히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두드리는 자판은 소리도 더 리드미컬하고 손목에도 부담이 전혀 가지 않는 듯한 게, 아마도 제 기분이 손끝으로 전해져서 그런가 봅니다. 

그동안 글 소재들을 많이 쌓아뒀는데, 일단 종료일이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풀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전시 소식 먼저 전할게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 © 네버레스 홀리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이미 본 분들이 많겠지만 못 보셨다면 꼭 보길 권해드립니다. 예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기념전, 특별전, 회고전이 최고거든요. 쭉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면 보통 한두 점 작품이 출품되는 전시를 보고 그 작가를 다각도로 이해하긴 어려우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잘 구성된 작가의 회고록을 보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리지널 작품을 다양하게,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요.


2021년, (사)권진규 기념사업회와 유족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조각·소조·부조·드로잉·유화 등 한국 근현대 조각 거장 권진규(1922-1973)의 작품 총 141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합니다. 이 뜻을 기리고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회고적 성격의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가 마련된 거고요. 저도 전시 오픈하고 얼마 안 돼서 봤는데 그 당시에도 꽤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찾으셨더라고요. 참고로 서울시립미술관은 1998년,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컬렉션 93점, 2019년 최민 컬렉션 161점, 2001년 가나아트 컬렉션 200점, 2020년 김인순 컬렉션 106점을 기증받았고, 천경자 컬렉션과 가나아트 컬렉션은 기증 협약에 따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 상설전시실을 별도 운영 중입니다. 특히 천경자 컬렉션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그의 대표작들이 모여있어 의미가 깊죠.


권진규 컬렉션 141점 중에도 <자소상>(1968), <도모>(1951), <기사>(1953) 등 주요 작품 136점과 아내인 가사이 도모의 작품 5점이 포함되었고, 장르별로는 조각 96점, 회화 10점, 드로잉 작품집 29점, 드로잉 6점으로 수집 영역도 다양해서 보는 맛이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컬렉션'이란 공식 명칭으로, 2023년에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상설전시 공간이 마련될 예정이라고도 하나,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한 성북 회화연구소(1946–1950) 시절을 시작으로 1973년 5월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주요 작품 240여 점이 출품된 최대 규모의 이 기회 역시 놓치면 안 되겠죠. (저도 또 볼 예정입니다.)


이 전시는 그가 평생을 불교와 함께해 왔다는 점에 착안, 시기별로 '입산入山 (1947–1958)', '수행修行(1959–1968)', '피안彼岸 (1969–1973)'이란 3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었습니다. 큐레이터는 "세속적 삶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입문하여 평생을 수행하듯 작업에 임했지만 살아생전 대중적 몰이해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불교에 더욱 침잠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과 작업을 그대로 담았다."라며, 전시 공간 역시 "권진규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하여 보다 그의 세계를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죠. 또, 전시 제목인 《노실爐室의 천사》는 1972년 3월 3일 『­조선일보』 연재 기사 「화가의 수상」 여덟 번째 편에 실린 권진규의 시, 「예술적藝術的 산보―노실爐室의 천사天使를 작업作業하며 읊는 봄, 봄」에서 인용했다고 해요.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爐室에 화장火葬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悔改昇華하여 천사天使처럼 나타나는 실존實存을 나는 어루만진다.”


(좌) 자작시 「예술적 산보- 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1972,3.30 ) 조선일보 (우) <입산>(1964-1965년경) © 네버레스 홀리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그는, 1949년부터 일본 무사시노武藏野미술 학교 조각과에서 수학하며 두각을 나타냅니다. 일본 유학 당시 로댕(1840-1917)과 부르델(1861-1929)의 인체상 작업과 부르델의 제자로 그의 정신과 조각 이론에 근거한 동아시아 전통 조각과의 융화를 추구한 스승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1897-1981)의 영향을 크게 받았죠. 미술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였지만, 1953년 졸업하자마자 최고의 재야단체 공모전인 니카전二科展에서 특대 特待 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1959년 가정사와 독자적인 작업 환경을 위해 귀국했고, 이후 테라코타, 석조, 건칠 등으로 제작한 인물상과 동물상, 부조 등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갑니다. 특히 삼베를 사용한 거친 질감의 건칠 작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긴 어려운 독자적인 것이고요. 꾸준히 서양미술의 한국화를 강조하며 창작 활동을 펼쳐 나갔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았던 예술가의 길에 좌절하고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의 일생에 대한 짧은 글은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 브로슈어에도 잘 적혀 있으니 꼭 전시를 보기 전에 먼저 읽고 들어가세요. 대개는 작품 설명이 긴데, 이번 브로슈어에는 섹션 설명 속에 작가 이야기가 많아서 더 좋더라고요.


전시실 전경 ©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장은 개방형 공간으로, 우물과 가마 형상을 녹여냈어요. 원형과 서로 다른 크기의 네모로 두드러짐 없이 단순한 배열의 전시장은 굉장히 은은하면서도 단아한 인상을 줍니다. 1965년 신문회관에서 1회 개인전을 열었을 때 그가 삼공 블록과 벽돌을 이용해 자기 작업실을 형상화한 데서 착안한 전시 디자인이죠. 무광의 흰색 좌대를 받치고 있는 전시장 꾸밈 주재료는 삼공 블록과 벽돌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유튜브에는 전시장 조성 영상이 짧게 게재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벽돌과 블록을 쌓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사실 이런 방식이 처음은 아니지만 근래에는 자주 보지 못했을뿐더러 무엇보다 흙을 빚어 불에 굽는 방식인 테라코타를 주 기법으로 사용한 그의 전시에 적용되어 이보다 좋은 설계는 없겠구나 싶었고요.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당연한 거지만,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점도 좋습니다. 전시장 구성 자체가 깨끗하고 작품의 질감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고려되어 시각적 방해 없이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장인의 손을 조각한 <손>(1963),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린 <지원의 얼굴>(1967)(* 현 서양화가 장지원), 한 교회의 의뢰로 제작했으나 누추하다는 이유로 반려해 평생 작가의 작업실에 있었다는 조각상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1970), 승려로 자신을 표현한 말기 작품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 외에도 테라코타와 건칠 등 작가의 주 제작 기법을 설명한 공간, 창작의 흔적이 담긴 아카이브, 만질 수 있는 드로잉 북이 함께 출품되었고 유족 특별 도슨트(일반 도슨트) 등 다양한 전시 기법들이 적용되어 관람에 도움을 줍니다. 또 홈페이지나 공식 유튜브에 작품에 관한 설명이 잘 나와있어, 방문 전에 먼저 읽거나 보고 가면 큰 도움이 되죠. 주요작들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작품 설명은 생략할게요.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진실의 힘의 함수관계函數關係는 역사歷史가 풀이한다.”


이 전시를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너무 화려해진 전시기법에 대부분은 작품을 배경으로 스스로를 작품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적어도 이 전시장에서만큼은 모두가 눈앞에 놓인 조각 작품에 더 집중하는 게 보기 좋았다는. '전시를 제대로 보고 있구나' 하는. 그래서 조각가가 사물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을 추구했듯, 관람객들도 이곳에 와서 작가의 삶을 더 잘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요.


원래대로 권진규 미술관이 건립되어 이 작품들이 그곳에 다 모였어도 좋았겠지만, 계획이 무산되고 양도한 작품이 경매에 출품되어 소송이 진행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에 안착한 작품들이라 더 마음이 갑니다. 그래도 자신의 작품이 세대를 초월해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소장된다는 건 작가로서 큰 영광이겠죠. 전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모여있으니 그곳에서 마음 편히 잠들기를 바라봅니다.





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detail?exNo=1007828&acadmyEeNo=0&evtNo=0&glolangType=KOR

https://www.youtube.com/watch?v=gJWaFggjNaY

https://www.youtube.com/watch?v=GAhcX6XrC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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