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 이야기
서울에는 '조선'과 '대한제국' 역사 시기를 상징하는 5대 궁궐이 있죠. 법궁인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이들은 역사 유적이면서 일상생활 범주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시민의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건축물과 역사 이야기를 듣는 해설 프로그램 외에도 이 안에서는 정말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거든요. 규정에 맞게 한복을 갖춰 입고 고궁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무료입장 혜택을 주는 정책도, 자주 고궁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3개월~1년 내 할인된 가격을 제공하는 궁궐 통합관람권, 상시 관람권, 점심시간 관람권, 시간제 관람권을 판매한지도 꽤 되었고요. 창덕궁 대표 관람 프로그램인 <달빛기행>은 그 성원에 힘입어 매년 봄·가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고, 이에 힘입어 다른 궁궐에서도 야간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작년인가 재작년에 처음으로 피케팅에 성공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엄중해짐에 따라 예약이 자동 취소되고 그 이후로는 아직 시도도 못해봤어요. 올가을에는 꼭! 성공해서 다녀오는 게 목표입니다. 진심.
얘기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행책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이 어려워지기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회복세를 띄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마무리를 못하고 있네요. 제 계획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몇 해째 격려를 보내고 있는데, 다른 일들을 병행하면서 책을 쓴다는 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어쨌거나, 지금 쓰고 있는 도시 여행에 대한 원고가 마무리되면, '서울'을 테마로 한 여행책을 낼 예정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틈나는 대로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들을 알뜰하게 수집하고 있고요. 특히, 고궁에서 운영 중인 프로그램들을 좋아하는데, 오늘 그중 몇 개를 소개하려고요. 기존 제 글 주제들과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제 여행책에도 꼭 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만큼 애정하는 놀거리이고, 요즘 같은 때 챙겨서 해보면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기도 해서, 많은 분들이 먼저 알고 찾아보시라고 썰을 풀어봅니다.
궁궐 애착 놀거리 1: 경복궁 <경회루 특별 관람>
서울 시민이라면 경복궁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겠지만 경회루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더라고요. 제 주변만 봐도 “그런 게 있어?” 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저는 문화재나 역사 유적지에 관심이 많아 정보를 자주 검색하고 찾아가지만, 사실 특별한 목적 없이 손에 꼽힐 정도로 경복궁을 찾는다면, 모르는 게 당연하죠.
경회루 특별 관람은 4월 1일 ~ 10월 31일(7개월간) 간 운영되고 추가 요금 없이 경복궁 입장권만 있으면 됩니다. 관건은, 사전 예약 성공 여부죠. 정기 휴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시, 14시, 16시(매회 20명, 내국인 15명·외국인 5명)) 해설사와 함께 하는 특별 관람이 진행되는데, 홈페이지를 통한 선착순 접수로, 1인당 2명까지 관람 희망일 7일 전 오전 10시부터 관람 희망일 1일 전까지 예약 가능합니다. 실제로는 오픈하자마자 2,3분 이내 예약이 바로 마감되는 완전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올라가면 정말 예쁘거든요.
접수에 성공했다면, 해당일에 집합 장소인 경회루 함홍문(含弘門)에서 관람 시작 시간 5분 전까지 대기하면 됩니다. 시간이 가까워지면 담당 직원분들이 나와 명단 확인 후 입장시켜 주거든요. 입장 후에는 약 40분가량 해설사를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평소에 들여다보지 못했던 연회 공간에 대한 역사 및 건축 이야기도 듣고 사진도 찍는 등 비교적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1층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2층 누각으로 올라가면 확 트인 공간 속 건축물과 차경(借景)이 시야를 사로잡는데, 이 정경이 경회루 특별 관람의 하이라이트죠. 동서남북 방향으로 액자 역할을 하는 낙양각(落陽刻)을 통해 보는 동쪽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과 서쪽 인왕산, 남쪽 수정전, 북쪽 백악의 풍경은 올라와 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거든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거나 보여주고 싶은 정경이에요. 게다가 역사 이야기가 꼼꼼하게 곁들여지니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과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고요. 해설은 한국어로만 진행되지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외국 분들도 계셔서 서로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그래요. 혼자 오는 국내 관람객들도 꽤 있거든요.
궁궐 애착 놀거리 2: 경복궁 생과방 궁중병과 궁중 약차 <다과 12선 시식체험>
경복궁 소주방 전각에 위치한 ‘생과방’은 궁중 육처소 가운데 하나로, 국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곳입니다. 경복궁 생과방 프로그램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왕이 즐긴 궁중병과와 궁중 약차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었죠. 유료 체험 프로그램으로 전석 예약제로 진행되는데, 4월에서 6월까지 휴궁일 제외하고 매 4회(1회당 30명) 운영 중입니다. 앞서 경회루 관람 예약의 어려움을 언급했지만, 생과방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그건 정말 쉬운 거예요. 운 좋게도 저는 몇 해째 예약에 성공해서 올해도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특히 더 좋더라고요. 코로나 상황이라 공간도 더 넉넉하게 제공받았고, 갔던 날 흐린 날씨가 점점 맑아져서도 좋았고, 예상치 않았던 친구와 함께 나눴던 얘기들까지, 정말 다 좋았어요.
생과방 체험은 온라인 접수 후 예약시간에 맞춰 생과방 ‘호궤소’ 방문, 궁중병과 및 약차 선택 및 결제 후 좌석 배정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생과방 내 전통 복장을 한 직원의 안내에 따르면 됩니다. 가격도 부담 없어요. 예약비는 무료이고 자신이 먹거나 마실 것만큼만 지불하면 됩니다. 전통차는 4000~5000원 선이고, 후식은 1000원부터 3000원으로 원하는 만큼 주문해서 주어진 자리에서 70분 동안 천천히 즐기면 되는데, 저는 친구와 생강·계피·귤피·대추로 만든 강계다음차와 인삼·귤피·대추로 만든 제호차 그리고 찹쌀가루로 만들어진 주악과 일반 한방 약재를 이용해 만든 떡인 구선왕도고를 주문했고, 1시간 정도 여유롭게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 갖다가 다음 분들을 위해 자리를 비웠어요. 분위기 좋은 국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눈앞엔 개별 다과상이, 또 외부엔 조선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겨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죠. 따뜻한 차를 마실 경우 뜨거운 물을 더 얻어 한 번 더 우려 마셔도 되고요. 요즘엔 갓과 도포를 쓴 남성 체험객들도 많아져서, 다음에는 저도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와서 '공간 안에 제대로 스며들어봐야겠다.' 하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궁궐 애착 놀거리 3: 창덕궁 <동궐도와 함께 하는 창덕궁 나무 답사>
저는 늘 궁궐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가 궁금했어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은 궁궐이니 나무의 선택에도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전에 진행된 몇몇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긴 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진 못했고, 정규 해설 시간에는 전각 위주로 설명이 이뤄지다 보니 호기심을 채우긴 더더욱 어려워, 이번에 <동궐도와 함께 하는 창덕궁 나무 답사>에 참여하게 됐죠. 사전 예매를 통해 4월 20일부터 30일까지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 30에 1회씩(회당 30명) 운영했어요. 참가비는 1만 원(창덕궁 입장료 포함)으로 전각 구역과 후원 합쳐서 100분 정도 진행됐는데, 이맘때 진행되는 후원 해설 프로그램 90분인걸 감안하면 좀 짧다고 느껴지긴 하죠. 원래 이 답사는, 『궁궐의 우리 나무』시리즈를 펴낸 박상진 교수님이 설명한다는 것에 혹해서 신청을 했는데, 제가 행사 소식 자체를 늦게 보기도 했고 또 반가운 마음에 잘 읽어보지 않고 신청을 하다 보니, 박상진 교수님 시간대가 아닌 창덕궁 해설가 안내 시간대를 예매했더라고요. 그래도 당일 해설사님이 너무 설명을 잘해주셔서 저는 만족했습니다.
<동궐도와 함께 하는 창덕궁 나무 답사>는 동궐도에 묘사된 옛 궁궐의 나무와 나무에 얽힌 궁중 문화의 이해를 돕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평일 낮 시간이었음에도 가족 및 친구와 함께 온 그룹도 많았고 혼자 온 분들도 많았는데, 연령대도 10대부터 60대 정도까지 남녀노소 골고루 분포되어 이 행사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었어요. 창덕궁 나무 답사는 돈화문에서 시작해 금천교, 인정전, 성정각, 영화당 관람지, 규장각 등지를 돌며 창덕궁 문화재 해설사의 안내로 약 120분간 진행되었고, 전각 구역뿐만 아니라 후원 지역까지 관람 범위에 포함되고, 기본 해설이 운영되는 코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있어 궁궐을 자주 찾는 분들에게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후원 역시 여러 번 갔었지만, 확실히 다른 테마와 다른 관점으로 보니 더 공간의 매력이 살더라고요. 무엇보다 자생 및 토종 식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고, 평소에 궁금했던 꽃과 나무들의 이름들도 알게 되어 더 반가웠고요. 전각 감상에 빠져 둘러보지 못했던 나무들에 이제야 시선을 둘 여유가 생겼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한철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이 아닌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자연물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기더라고요. 가끔, 산이나 공원에서 예쁘고 푸른 식물들을 생각 없이 꺾고, 향기 맡고, 아무 데나 버리고 가는 몰지각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그래도 보호받으며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요. 물론, 그럼에도 자연재해로 원형을 잃은 나무들도 많긴 하지만요. 보면서, 경복궁 후원이었던 지금의 청와대가, 옛 모습을 회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의미가 있는 근대건축물을 보존하면서 최대한 원형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들이 유의미한 실천까지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2022. 5. 1.(일) ~ 5.22.(일) (휴궁일 제외)까지 창덕궁 후원 자유 관람이 회차당 100명(인터넷 예약 50장, 현장 판매 50장) 한정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창덕궁과 인접한 창경궁에서도 (사) 한국숲해설가협회 협업으로 「2022년 역사와 함께하는 창경궁 나무 이야기」 창경궁 나무 해설 프로그램이 2022.4.2.(토) ~ 11.27.(일) 매주 토·일요일 14:00~15:00에 창경궁 일반 관람객 현장 선착순 20명 이내로 모집 · 진행됩니다. 창경궁의 경우 입장료 별도로 나무 답사 참가비는 무료이고, 매주 토요일은 춘당지 수목 중심 해설로, 매주 일요일은 궐내각사 수목 중심 해설로 나눠지니 참고하시고요.
지금은 2015년부터 봄가을로 찾아오는 궁중문화축전 기간(2022년 5월 10(화) ~ 5월 22일(일))입니다. 궁궐과 종묘, 사직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내 최대 문화유산 축제로, 오늘날 고궁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하죠. 이 기간 동안은 대부분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고 알찬 프로그램들이 한시적으로 제공되니, 자세한 안내는 궁중문화축전 홈페이지를 참고해서 꼭 하나라도 해보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