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나라 안팎으로 참 많은 이슈가 있죠.
하나같이 다 가슴 아픈 일들이라 따뜻한 봄 햇살에도 서늘함이 함께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우크라이나에도 평화로운 일상이 하루빨리 찾아왔으면 좋겠고, 동해안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분들도 조속히 원하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더 이상의 희생과 아픔은 정말 없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소개할 책들은 제 마음에 '위로'와 위안'이라는 두 글자를 선물한, 제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예전에는 그림책을 동화책과 동일시해 아이들의 책으로 규정짓는 일들이 다반사였지만 요즘은 다르죠. (아직 그림책을 동화책으로 부르는 분들도 있지만요.) 그림책 역시 성인의 독서 대상으로, 그림책 소개 전문 유튜버도 있고 관련 (일러스트) 전시에도 많은 성인 독자들이 다녀갑니다.
올해 들어 저도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 더 자주 그리고 폭넓게 찾아보고 있는데, 시집과 화보를 동시에 섭렵한 듯한 체감에 내적 만족도가 더 커지더라고요. 한 권을 읽었지만 두 권을 읽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ㅎ 시어처럼 간결한 텍스트와 무형의 어감과 분위길 색감과 형태로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곁들여져, 여운이 깊고 더 오래 남습니다.
먼저 소개드릴 책은 하이케 팔러 HEIKE FALLER(1971-)가 글을 쓰고 발레리오 비달리 VALERIO VIDALI (1983-)가 그린 『100 인생 그림책』(2019)입니다. 원제는 『 Hundert : Was du im Leben Lernen wirst 』(2018)로 영어로 'Hundred What You learn in a Lifetime'인데, 우리말 제목도 꽤 직접적이죠.
하이케 팔러는 독일의 유명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 Die Zeit」의 편집자이고, 발레리오 비달리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탈리안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는 The Grand Prix of ILUSTRARTE, Biennal of illustration, The CJ picture Book award, New York Times best-illustrated book of the year (2013 and 2018) 등을 수상했어요. 하이케 팔러의 첫 책이자 두 사람의 첫 공동 작품인 이 책은, 흥행에도 성공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림책 큐레이션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요.
이 책은, 갓 태어난 조카를 보고 영감을 받은 작가가 쓴 '100가지의 인생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미라처럼 천에 돌돌 싸여서 침대에 누운 채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조카를 보며, '네 앞에는 얼마나 기묘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 앞에 펼쳐질 굉장한 일들을 생각하니 반은 부러운 마음이었지만, 그 애가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들 때문에 마음의 반은 아프기도 했다."라고 작가의 말에 적어두었죠. 그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에 반응하던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주변 반응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며, '큰 산, 보름달, 다른 사람의 사랑'처럼 의미를 두고 봐야 하는 것들을 당연한 듯 스쳐 지나가지 않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의미 있는 것들을 알아챌 수 있는, '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완성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문장이 참 따뜻합니다. 먼저 삶을 살아온 선배로서 후배에게 전하는 따뜻한 조언이니까요.
책 뒤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는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입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삶이 흐르는 동안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이 얼마나 달리지는 지를 보여주는 입장"들이죠. 왜 우리도 예전에 별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나이가 들거나 환경이 바뀌면서 별것이 아닌 보통의 혹은 일상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거나 당연하게 넘어가는 일들을 경험해 봤잖아요. 작가 역시 본인이 모든 것을 다 겪어보거나 지난 경험을 기억해 낼 수 없었기에, 초등학생부터 아흔 살의 노인까지 남녀노소, 직업 등을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묻죠.
'살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채워졌어요.
0세부터 100세까지, 100컷으로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이 책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저는, 그 나이 때에 마주했던 삶의 장면이 겹쳐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어느 선량하고 자애로운 어른이 "너는 앞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될 텐데, 걱정하지 마, 다 그런 거고, 다 그렇게 지나갈 거고, 지금은 아프겠지만, 힘들겠지만 또 그러면서 너는 성장하게 될 거야."라고 곁에서 말해주는 듯한 위안을 얻었어요.
어렸을 땐 어리니까 누군가에게 위로나 위안을 받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또 다들 그렇게 대해주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거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다다르게 되면, 마치 더 이상 오를 경지가 없는 듯, 성장을 마치고 완전히 성숙한 인격을 갖춘 듯한 태도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스스로를 온전하고 무결한 인간이라고 착각하게 되잖아요. 사실, 자신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과 감정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지 못하면서요.
그렇게 나이가 들고,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또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가면서 때때로 필요한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저는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충전했습니다. 행복은 상대적이고,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이 일상의 소확행을 더 소중하게 잘 즐길 수 있다고 믿어요, 저도.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렇구나, 나도 보통의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중간 점검이 된 책이었습니다.
2021년엔 『우정 그림책』도 냈는데 이 책도 머리를 쓰담쓰담, 등을 토닥토닥하는 듯한 온기가 가득 담긴 책입니다. 최근 이런저런 일을 겪고 우정을 화두로 여러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뭔가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게 고민의 씨앗을 심어준, 그 친구에게 선물했습니다.
현재 두 작가는 '행복'을 키워드로 한 세 번째 공동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들이 쓰고 그려내는 행복의 정의가 벌써 기대됩니다.
두 번째 책은 『무릎 딱지』(2010)입니다. 샤를로트 문드리크 Charlotte Moundlic(1970-)가 글을 쓰고, 올리비에 탈레크 Olivier Tallec(1970-)가 그린, 글과 그림이 똑떨어지는 감성의 책이죠. 두 명의 작가가 각자의 영역에서 작업한 결과물인데 마치 한 작가가 그리고 쓴 듯 미묘하게 톤이 닮아있죠. 아트 디렉터이자 어린이책 작가로 활동하는 샤를로트 문드리크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현재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올리비에 탈레크 이 둘의 케미가 그만큼 좋다는 거겠지만요. 공동 작업한 책을 여러 권 봤는데, 다른 작가와 한 작업물 보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 좋았어요. 그리고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이 『무릎 딱지』라고 생각하고요.
무릎을 다친 어린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덤덤하게 내려보고 있는 일러스트가 들어간 빨간색 표지의 이 책은, 우연한 기회로 눈에 들었다가 현재는 마음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책입니다. 전반적인 톤이 다 마음에 들어요. 처음엔 좀 유아기적인 내용이지 않을까 싶어 선뜻 펼치지 못했는데, 읽고 나니 누구나가 경험하는 '상실'과 '극복'을 이만큼 잘 다룬 책을 본 적은 없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첫 줄부터 너무 강렬해서 '뒤에 눈물샘이 폭발하면 어쩌지?' 란 걱정도 있었는데, 걱정도 잠시, 먹먹함은 곧 새로운 희망으로 바뀝니다. 응원하게 되고요.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엄마를 잃습니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엄마가 유명을 달리한 거죠.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의 온갖 것들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울타리이자 삶을 지탱하는 존재 그 모든 것이잖아요. 그러한 초월적인 존재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다음날 그 사실을 아빠로부터 전해 들은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슬픔을 인지하고 받아들입니다. 죽음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다시 엄마를 볼 수 없고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곁에 그가 기억하는 것들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 하죠.
우리는 모두 살면서 크고 작은 이별을 겪잖아요. 너무 절대적이라 그 존재가 사라지면 나도 함께 사라질 것 같은 대상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건,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절망과 상실, 상처로 남아 남은 날들의 동반자가 되어주죠. 다시는 못 웃을 것 같던 시간을 한참 흘려보낸 후에야 웃기도 하고 살고 싶어지기도 하고 일상에서의 언급이 가능해지던데, 그 마음이 어리다고 해서 혹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더라고요.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부담스럽지 않게 위로하는 책이었어요.
이 책의 모든 장면이 다 좋았지만, 특히 상실의 아픔을 똑같이 겪고 있는 아빠를 아이가 위로하는 장면, 그러면서도 엄마 냄새가 새어나갈까 창문을 꼭 닫아두려고 했던 장면이 가장 와닿았어요. 그리고 그 마음은, 성인인 제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놀라기도 했고요. 결국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어른이라고 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구나', '보편적인 거구나', '표현하는 방법은 달라도 동일한 양과 동일한 무게의 슬픔을 나눠지고 있구나'하며 잊고 있던 아니 어쩌면 몰랐던 것들을 알게 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론 가끔 제가 그 소년 같기도, 아이의 아빠 같기도 하더라고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지만, 가끔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이 책들을 한번 보길 권해드립니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의 날들도 모두 행복하자고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