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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文信:우주를 향하여》 MMCA 덕수궁관

전시 이야기

MMCA 덕수궁관 《문신文信:우주를 향하여》(2022.09.01-2023.01.29)


전시 보기 좋은 계절입니다. 볼만한 전시도 가득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서울살이의 최대 장점은, 걷기 좋은 산책길과 다양한 예술작품을 원하는 만큼 걷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유료이든 무료이든 규모에 상관없이, 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갈 곳이 정말 많으니까요. 특히 9월엔 미술 관련 굵직굵직한 행사가 많은 만큼, 주목해야 할, 의미 있는 전시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전시도 그중 하나입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문신: 우주를 향하여》가 진행 중입니다. 문신(文信, 1922-1995)은 한국 대표 조각가로, 조각 외에도 회화, 공예, 건축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올해로 딱 탄생 100주년입니다. 이 전시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창원특례시 공동 주최로 조각(95점), 회화(45점), 드로잉, 판화, 도자 등 총 230여 점과 사후 첫 공개인 개인 소장 회화, 드로잉, 흑단 조각 및 아카이브 100여 점이 출품되어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로 그의 예술세계를 톺아볼 수 있는 회고전이고, 사진과 드로잉으로만 남은 작품을 VR과 3D 프린팅 디오라마로 각각 구현해, 문신이라는 작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 작품을 모았으니 이것만으로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되죠.  

MMCA 덕수궁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입구 및 작품 <우주를 향하여> © 네버레스홀리다

이 전시의 부제인 '우주를 향하여'는 미술관을 들어서기 전 계단 맞은편에 설치된 작품 제목과 같습니다. 물론 동명의 다른 작품들도 있어요. 그는 여러 작품에 이 제목을 붙였는데, 전시에서는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라고 말한 작가에게 ‘우주’라는 대상은,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고향’과도 같고,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향하여’는 생명의 근원과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침잠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를 함축한다."라는 글로 부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시는 4부 구성으로, 회고전이지만 연대기적 나열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특정 시기에 특정 형태를 집중적으로 제작하긴 했지만 1960년대 제작한 드로잉을 1980, 1990년대에 다양한 재료와 크기로 조각화했기에 시대 구분이 큰 의미가 없거든요. 그 대신 작품들을 회화, 조각, 건축(공공미술)으로 분류하고 조각 작품들을 조금 더 세분화해서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매 전시실마다 드로잉 작품을 두어 전체 전시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도 활용하고 있고요.

MMCA 덕수궁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1부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문신(文信, 1922-1995)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의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現 창원특례시)에서 보냈죠. 16세에 일본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화가로 활동하다 1961년에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파리 체재 기간 동안 ‘Salon de Mai(5월 살롱)', ‘Salons Grands et Jeunes d’Aujourd’hui(동시대 대가와 청년작가 살롱)', ‘Salon des Réalité Nouvelle(신사실주의 살롱)' 등 당대 주요한 살롱에 초대받아 활발히 활동하며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쌓았고, 1980년 영구 귀국해 마산에 정착하며 창작 활동에 몰두합니다. 이러한 그의 이력은 한국 근현대미술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한국 추상조각의 맥락에서도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1부 '파노라마 속으로'에서는 그의 회화 작품과 채화 도자들을 선보입니다. 그의 회화 작품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전시실은 한 번 보고 또 한 번 돌아보고 나올 정도로 자세히 보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이전 블로그 글에서 소개했던 이건희 특별전 출품작 <닭장> 포함, 구상에서 추상회화로 이어지는 그의 화풍의 변화를 실제 작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전시 해설에 따르면, 그는 1938년 밀항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이듬해 일본 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합니다. 일본 각지에서 모인 청년 예술가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교류하고 작업했던 도쿄(東京) 이케부쿠로(池袋) 시나마치(椎名町) 예술인촌에 거주하면서 화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다졌다고 하죠. 광복과 함께 귀국한 그는 마산 추산동 언덕(現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위치)에 터를 잡고 부산, 대구, 서울 등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했는데, “화면의 기교를 위한 낭만”보다 “현실 생활의 체험”을 중시해 마산의 풍경과 주변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박하고 거친 삶, 그리고 향토성 짙은 정물을 화폭에 담습니다. 1957년, 反 아카데미즘을 내세운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을 활동 공간으로 삼았고, 고층 건물과 가로수가 즐비한 도시 풍경을 그리는데 이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1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또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받은 앵포르멜(Informel)과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등의 영향, 생계를 위해 파리 북쪽에 위치한 라브넬(Ravenel)에서 고성(古城)을 수리하며 체득한 감각이 깃든 작품들도 있고요. 특히, 20대 초반의 자신을 중년의 거장처럼 묘사한 <자화상>(1943), 1회 개인전 출품작이자 캔버스와 캔버스 틀, 붓과 액자까지 손수 제작해 그린 <고기잡이>(1948), 어미소와 송아지를 밀착시켜 반추상으로 표현한 <소>(1957)는 이 전시실의 대표 작품으로 꼽히니 꼭 자세히 봐 두세요.

MMCA 덕수궁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2부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2부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제작한 나무 조각을 중점적으로 선보입니다. 형태를 가장 중시한 그의 조각은, 크게 구(球) 또는 반구(半球)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반복되는 기하학적 형태와 개미나 나비 등 곤충이나 새, 식물 등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나눠집니다. 1970년 프랑스 남부 페르피냥(Perpignan)에 위치한 바르카레스항(Port-Barcarès)의 ‘사장(沙場) 미술관(Musée des Sables)’에서 열린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 출품한 13m 높이의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은 조각가로서의 문신을 각인시킨 작품이죠.


그는, 조각 전 드로잉 과정을 거칩니다. 그것을 통해 '원과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물이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반복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지닌 다양한 형태가 창조되는 것에 매료되었다고 해요. 또 ‘대칭’, ‘정면성’, ‘수직성’ 등은 그의 조각을 관통하는 큰 특징인데, <개미>(1970)와 개미 시리즈로 표기되었다가 다른 이름을 갖게 된 <무제>(1977), 토템 숭배 대상이 될법한 곤충의 형태를 띤 <무제>(1978)를 찾아보며 그 특징들을 되새겨 보세요. 참고로 작품 <개미>는 원래 원제가 <무제>였는데, 전시장에 놓인 작품을 보고 프랑스 관람객들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이후 유사한 형태의 작품에 <개미>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MMCA 덕수궁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3부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3부 '생각하는 손: 장인 정신'에서는 브론즈 조각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브론즈 작품은 점토로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제작했는데, 그는 점토로 형태를 빚는 과정이 작품을 세밀하고 날렵하게 만드는데 불필요하다고 여겼고 석고를 보다 견고히 만들기 위해 철근으로 뼈대를 잡은 후 철망 등을 이용해 대강의 형태를 만들었고 여기에 석고를 붙여가며 형태를 만들어냈다고 해요. 3부 전시실에 놓인 도구와 모형을 통해 이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같은 형태의 조각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다른 크기로 재제작했는데, 브론즈 제작을 위해 새로운 형태를 고안하기보다 대개 나무나 석고 작품의 형태를 살리고 크기를 다양하게 변화시켰다고 해요.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해 형태가 눈에 잘 들어오게 했고요. 대칭성이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큰 특징이긴 하지만 예외 없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다른 형태, 앞면과 뒷면의 표현이 다른 작품들도 많으니 모든 각도에서 작품을 보셔야 합니다. 이 전시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개미(라 후루미)>(1985), <우주를 향하여 3>(1989) , <무제>(1990, 숙대 소장) 도 놓치지 마시고요.

MMCA 덕수궁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4부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4부 '도시와 조각'에서는 '도시와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합니다. 주 작품은 야외조각과 프랑스 체류 시절 작가가 시도했던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 ‘공원 조형물 모형’ 등 공공 조형물로, 그는 프랑스에 머물며 도시와 환경이라는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조각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해요. 미술관뿐만 아니라 지하철역, 공원, 광장 등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보며, 조각이 미술관을 벗어나 도시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요. 또한 단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가 현대 도시 미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공 배경을 지닌 예술가들이 만든 단체에 참여한 이력에서도 그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고요. 전시에서는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조각의 이상을 보여주려 남겨진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은 VR로, ‘공원 조형물 모형’은 3D 프린팅으로 구현해 대중에게 최초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 VR은 이미 만원이라 체험을 해보진 못해서 저는 꼭 다시 가서 볼 거예요.


1980년 그가 영구 귀국했을 무렵 한국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1950-60년대 한창 제작되던 기념 동상과 다른 종류의 야외 조형물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문신 역시 스테인리스 스틸로 올림픽 기념 작품을 제작했는데, 당시 국내 브론즈 주조 기술의 미흡함을 보완하고자 택했던 재료였지만, 소재가 주는 현대성과 표면에 반사되는 빛과 주변 풍경의 반영을 통해 이 작품은 더 특별해집니다. 이 전시실에는 또 다른 <우주를 향하여 >(1985)가 있는데, 작가는 이 작품과 같은 형태를 1972년 파리 생토 오귀스탱(St.Augustin) 지하철역에서 열린 《살롱 드 마르스》에 <태양의 사자>라는 제목의 대형 석고 조각으로 출품했다고 합니다.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현대미술 초대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37년 만에 같은 장소(덕수궁)에 전시되었다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이밖에도 미술관 건축을 위해 구상 및 설계에 쓰인 드로잉과 영상이 전시 중입니다. 간단한 도형과 선으로 이루어진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에서부터 조경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완성도 높은 드로잉까지 그의 건축적 역량을 확연히 보여주는 작품들도 많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영상은 진짜 꼭 보셔야 해요.


전시를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창원시립 문신미술관에 가보고 싶어 집니다. 창원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언덕에 위치한 문신미술관에 서서, 그가 영구 귀국한 후 14년간 직접 디자인 및 건축하여 만든 구석구석이 보고 싶어지거든요. 1994년 미술관 개관 후 이듬해 그는 세상과 이별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2003년 시에 기증되면서 현재는 시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야외조각 전시장, 문신원형미술관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총 3900여 점의 작품 및 자료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근데, 너무 멀긴 합니다. 숙박은 기본이거든요.  


그러니, 우선은 이 전시를 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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