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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별이 된 예술가, 김태호 & 김창열

예술 이야기

[R.I.P] 별이  우리 시대 예술가, 김태호 & 김창열


태어나고 죽는 건 자연계의 순환이겠죠. 지극히 일상적인.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은 대상의 친밀도에 따라 비일상적인 형태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작품으로 마주하다 보니 뭔가 '애도'라는 게 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짧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한마디로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제게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신 분들께 조금의 성의를 더해, 제 방식으로 애도를 해볼까 합니다.

(왼) 김태호 작가 (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포스터  이미지 출처: 표 갤러리 홈페이지, 네이버 영화

추상화가 김태호 화백(1948.6.4-2022.10.4, 부산)은 한국 단색화의 정신을 화폭에 옮긴 "내재율(內在律, Internal Rhythm) "연작으로 잘 알려졌죠. 활발한 활동으로 국내외 유명 아트페어나 미술관, 갤러리에서 늘 볼 수 있던 작품이어서 얼굴을 뵌 적은 없어도, 제게도 꽤 친숙한 작가입니다. 향년 74세로, 지난달 초 부산을 찾았다가 쓰러져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달가량 투병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얼마 전 오픈한 표 갤러리의 《질서의 흔적》전(2022.09.15-10.27)이 공교롭게도 유작전이 되었네요.

표 갤러리 김태호 《질서의 흔적》 전 출품작 중 © 네버레스홀리다

표 갤러리의 《질서의 흔적》전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의 작품 26점을 전시 중입니다. 지난달 15일 개인전을 시작하며 표갤러리와 함께 블록체인 기업 카카오 그라운드 X의 NFT 플랫폼 클립 드롭스에 NFT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 디지털 작품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고요. 관점의 차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작품이 원화 이미지의 가치를 낮추는 것 같아... 요.


그는 초기작 스프레이 형상 시리즈와 과도기 종이 시리즈를 거쳐, 1990년대 이후 ‘내재율’ 시리즈를 선보이며 포스트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활약합니다. '김태호 = 내재율'로 화단과 평단에서 인식되며 그의 대표 시리즈가 됩니다.

<내재율> 시리즈 출처 : http://artthkim.com/works/

'내재율'은 아크릴 물감을 가로, 세로로 여러 차례 발라 두껍게 쌓은 뒤 물감층을 깎아 내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스무 번 넘게 물감층을 쌓고 안료가 어느 정도 굳으면 일정한 간격으로 칼로 긁어내는 작업이죠. 작품은 시각적 편안함을 주는 수평, 수직 구조를 활용하는데, 세로로 칠하고 다시 캔버스를 돌려 이전 물감 선과 수직이 되도록 선을 칠했다고 해요. 칼로 긁어낸 곳은 표면의 단일한 색 밑으로 중첩된 다색의 색층이 드러나는데, 이때 켜켜이 쌓인 물감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며 묘한 리듬과 규칙을 만들어냅니다. 그게 바로 내재율이죠. 바르고 긁어내는 단순한 행위지만 여기에 작가 정신이 더해져, 수공예적인 시간과 집중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각도에 따라 다르고 조명에 따라, 배경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이라 대부분의 추상작품들이 그렇듯, 관찰자의 다양한 시선을 한 작품 속에 녹일 수 있어요. 2000년대부터 조명받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현재도 100호가 억대에 거래되는데, 더 이상의 신작은 없을 테니 가격은 좀 더 요동치겠죠.

깎아 낸 형상이 마치 벌집 같다고 해 '벌집 작가'로도 알려졌다는데, 저는 사실, 한 번도 그 표현을 써보거나 제 주위에서 들어보진 못했어요. 예전 인터뷰 글에서 본 "소우주의 방"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제게는 그렇게 보이거든요, 벌집이 아닌.


내재율의 표정을 일별 하자면

무엇보다 화면에 덕지덕지 쌓인 안료 층을 깎아 냈을 때 드러나는

무수한 색료들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씨줄과 날줄이 일정한 그리드로 이루어진 요철의 부조 그림이다.

 먼저 캔버스에 격자의 선을 긋는다.

선을 따라 일정한 호흡과 질서로 물감을 붓으로 쳐서 쌓아 간다.

보통은 스무 가지 색면의 층을 축적해서 두껍게 쌓인 표면을 끌칼로 깎아 내면,

물감층에 숨어 있던 색점들이 살아나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옛  한옥의 문틀 같은, 시골 담 같은, 조밀하게 짠 옷감 같은 화면이다.

축척 행위의 중복에 의해 짜인 그리드 사이에는 수많은 사각의 작은방이 지어진다.

벌집 같은 작은방 하나하나에서 저마다 생명을 뿜어내는 소우주를 본다.

                                                                            - 김태호(인터뷰 재인용)


<내재율> 세부 © 네버레스 홀리다

부산 출신인 그는 1972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동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를 취득, 1987년부터 2016년까지 모교에서 학생을 가르쳤어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국전에 다수 참가하여 입선했고,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대상전에서 1976년에는 특별상을 1980년에는 최우수 프런티어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이후 경기 파주에서 김태호 조형연구소를 운영했고, 지난해까지 45차례에 걸친 개인전과 해외의 다양한 아트 페어에 참여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소식이 더 급작스럽게 느껴지긴 했어요. 단색화 1세대인 박서보, 하종현 등에게 사사해 이들과의 인연도 깊다 보니, 그들의 SNS에서도 애도의 글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글과 함께 저 역시 다시 한번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이미지 출처: 박서보, 하종현 SNS, http://artthkim.com/text/


두 번째 추모의 대상은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12.24-2021.1.5, 평안남도 맹산) 화백입니다. 올해 돌아가시진 않았지만, 작년에 못다 한 애도를,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통해 해 보려고요.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김창열 화백 시네마 에세이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2022년 9월 28일 개봉 후 몇몇 영화관에서 상영 중입니다. 저는 씨네 큐브에서 봤는데, 당일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더라고요. 물론 상영관 자체가 작기도 했지만, 그래도 '화가 김창열'을 대부분 알고 찾아오신 분들이었어요. 그동안 예술가에 대한 다큐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꽤 특별합니다.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인 김오안과 프랑스 아티스트 브리짓 부이요의 공동 연출작이거든요. 또 이 영화 개봉에 앞서 성곡미술관에서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김오안, 브리짓 부이요 사진전(2022.09.21-10.15)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엔, "그래, 물방울을 왜 그렸는지 이젠 좀 알 수 있겠지?" 란 단순한 생각만 했는데, 보고 나니 더 복잡해졌어요. 텍스트로 작가 인터뷰를 접했을 땐 그 자체가 확정성을 띤 불변의 정의 같았는데, 영상과 함께 보고 나니 오히려 한층 더 생각이 깊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물방울은, 눈물일까, 빗물일까, 모든 것을 씻어내는 정화수일까 아님 태곳적의 순수성을 가지고 있는 그냥 물일까?" 이렇게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2021)는 79분 동안 그의 사소한 일상을 내밀하게 보여줍니다. 일대기를 나열하지 않고, ‘전쟁’에 관한 트라우마, ‘물방울’을 마주하던 때, 고향 ‘맹산’을 향한 향수 등 그가 지닌 결정적 기억들의 파편을 이야기하죠. 그래서 화가 김창열보다는 아들의 시선으로 본 아버지, 인간 김창열이 더 가깝게 담겼습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이미지 출처: 성곡미술관 홈페이지

그는, 1929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외삼촌에게 각각 서예와 데생을 배웁니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서예는 후에 그의 <회귀> 시리즈에 반영되죠. 열여섯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한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학업을 중단합니다. 1957년 박서보, 하인두,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 운동을 이끌었는데, 1960년대부터 세계무대로 눈을 돌려 1961년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합니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한 그는,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합니다. 1970년 파리 근교 팔레조에 있는 마구간을 작업실 겸 숙소로 쓰던 때 평생의 반려자인 마르틴 질롱도, 그를 대표하는 소재인 '물방울' 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작품 이미지 출처: https://kimtschang-yeul.jeju.go.kr/colectionList.do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던 그는, 당시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뒷면에 물을 뿌려 물감이 떨어지기 쉽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화폭에 맺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해요. 이때부터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물방울이 등장합니다.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 메'에서 ‘물방울 회화’ '밤의 행사(Event of Night)'(1972)를 공개했고, 1973년 놀 인터내셔널 프랑스에서 물방울 회화만을 모은 첫 프랑스 개인전을 개최, '물방울 화가'로 명성을 얻습니다. 그로부터 50년간, 변함없이 물방울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죠.


한국에서는 1976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을 통해 처음으로 물방울 회화가 소개됩니다. 한 인터뷰에서 "초기 물방울 회화에서 물방울은 전쟁으로 인한 작가의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정화와 치유의 수단이었다"라고 밝혔는데, 다큐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도 이 부분은 잘 드러납니다. 1976년 첫 전시 이후 2013년까지 12회에 걸쳐 갤러리 현대에서만 개인전을 열었고, 마지막 개인전이 된 2020년 전시도 갤러리현대에서 <The Path>라는 제목으로 열렸어요. 저도 이 전시를 봤는데, 그게 유작전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죠.

갤러리 현대 《 THE PATH 》전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현재 그의 작품은 유수 아트페어, 미술관, 갤러리 등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제주도 한경면에 설립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서도 감상할 수 있고요. 그가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 정도 머물렀던 인연으로 '제2의 고향'이 된 제주도는, 기증 작품 220여 점으로 설립된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진짜 고향이 되었습니다. 작품이 있는 곳이 곧 작가의 집일 테니까요.


두 분 외에도, 김병기(1916.4.16-2022.3.1, 평안남도 평양), 서세옥(1929-2020.11.29, 대구광역시), 공성훈(1965-2021.1.11, 인천광역시), 김정기(1975.2.7-2022.10.3) 작가가 근래 영면하셨습니다. 제가 이분들의 작품을 참 좋아했는데, 부디 그곳에서도 평안하게 작품 활동 계속하길 바라겠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니까, 육신은 떠났어도 영원의 대화는 지속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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