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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별을 그리는 마음》소마미술관

전시 이야기

《이만익-별을 그리는 마음》 소마미술관 (2022.9.2~2023.2.5)



낮도 밤도 아름다운, 늦가을입니다. 가끔 기온차 때문에 추워서 그렇지, 맑은 날이 많아서 하루가 가는 게 아쉽던 날들이 많았어요. 단풍도 하늘도 너무 예뻐서, 특별한 일이 없어도 어디로든 가고 싶었던 날들도 많았고요.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그렇게 예쁜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의 지박령 수준으로 지냈더니 더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 한번 나갈 때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마치 보복 소비하듯 문화체험을 하러 다녔더니 나간 날 수에 비해 본 전시가 적지는 않은데, 그때그때 다 글로 소화하진 못했어요. 때맞춰 소개드리지 못한 전시들은 작년처럼 리뷰 형식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전시는, 시인 윤동주가 떠오르는 《이만익 - 별을 그리는 마음》입니다. 작품도 좋고, 전시 기간도 긴 데다 미술관 위치가 올림픽 공원 내라 늦가을 나들이 겸 다녀오시라고 추천드려요. 어영부영하다 보면 곧 눈도 내리고 새해도 시작될 텐데, 그즈음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고요. 시간은 넉넉하니 붐비지 않을 때 가면 좋겠죠. 

소마미술관 전시 배너 © 네버레스홀리다

소마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작가 재조명전'을 격년 단위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938년 황해도 해주 출생의 이만익 (1938 - 2012) 화백이 돌아가신 지 10주기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미술감독과 제8회 서울 패럴림픽 미술감독을 맡았던 그의 전시가 다른 곳이 아닌 올림픽 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려 더 의미 있죠. 


사용할 수 있는 매체와 표현법이 한정적이라 요즘도 비슷비슷한 스타일을 지닌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은데,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이만익'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졌죠. 전시에서는 그의 화풍이 자리 잡기 전 작품들과 이만익 표 회화 총 100여 점(아카이브 자료 포함)을 균형 있게 선보여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전시 소개  및 자화상 © 네버레스홀리다

'작가의 생애와 성장 그리고 변혁의 과정'을 다룬 1 전시실에서는 1950년대 전쟁 전후로 제도권 미술계에서 공부하고 연습했던 초창기 유화 작품과 1960년대~80년대 유화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는 해방 전 타계한 부친 대신 어머니 따라 1946년에 월남합니다. 8살에 서울 효제초등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미술반에서 수채화를 배웠고, 피난지 부산에서 평생의 스승이 된 박상옥을 만나 화업과 인연을 맺게 되죠.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3년 제2회 국전에 <정동의 가을>과 (골목)을 출품해 입선했는데, 중학생 신분으로 국전에 입선한 것이 논란이 되자 이후 국전 출품 자격이 '대학 3년 이상'으로 변경됩니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회화과 대학 3학년이 된 후 그가 다시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일은 유명한 일화죠. 1961년 졸업 뒤, 1966년부터 <여념>, <하영>, <시장 일우>등의 작품이 국전에서 3년 연속 특선을 받았고, 이후 4년간은 계속 낙선했는데, 예술가로서의 고민이 많았던 그는 1973년 9월, 10년간의 미술 교사직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떠납니다.

1부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그 시절 나의 눈에 차라리 아름답고 의미 있게 보인 것은

 찌들고 찌그러진 우리의 모습처럼 남아있는 청계천변의 누덕누덕한 판자촌이다. 

그림 소재를 구하기 위해 구정물이 흐르고 빨래가 찢어진 기폭처럼 널려 있는 삶의 상처,

 서울역 광장에 살기 위해 허둥 지동 나와 있는 밤의 군상들, 

그 속을 헤매며 대학 4년을 보냈다." 

                                                  (전시 재인용)


이 전시실의 작품은 저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던 터라 이후 작품들만큼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무엇보다 서양화 기법으로 담긴 우리 주변 소재들이, 기량면에서도 작품 구성 면에서도 좋았고요. 대부분 가로 세로 1m를 넘는 작품들이라, 전시실에서 실물로 마주하면 그 느낌이 또 다릅니다. 아무래도 제가 찍은 사진으로 그 질감까지 보여드리긴 어려우니까요. 

이만익 © 네버레스홀리다

2부에서는 파리 유학시절 깨달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완성된, 그만의 화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보여줍니다. 표현주의적인 색채와 토속적인 소재로 그린 작품들은 윤곽선이 강조되고 명암이 생략된 이만익 화풍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특히 <주몽 신화>, <흥부전>, <심청전> 등 신화나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윤동주, 김소월, 박목월, 이중섭 등 문학가와 선배 화가를 오마주한 작품들도 다수 있어, 저는 외국인 친구나 아이들과 함께 보면 더 좋을 전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문화를 설명하기에 좋은 그림들이 많아서요. 또 보다 보면, 그냥 배시시 미소도 지어져서 좋았고요. 

2부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내가 고집스럽게 설화와 시가, 

예컨대 헌화가, 정읍사, 청산별곡, 판소리, 소월의 시 등을 그림 속에 담아보려고 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우리의 희로애락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으로, 이야기로 표현된 것이나 인간을 담고 있는 것이며, 

나는 그림 속에 우리를, 

어쩔 수 없는 인간을 담아 보고 싶은 것이다." 

                                                           (전시 재인용)


특히, 2부엔 '시와 문학을 사랑해 시를 읊고 사유하듯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기를 원했다.'라는 그의 바람을 반영한 작품들이 오랫동안 제 시선을 잡아뒀어요. 대표적으로 <시인(윤동주 예찬)>(1991)과 <고독-꽃과 별 그리고 소년>(2009)이 두 점이요. 전시 제목 《별을 그리는 마음》에서도 드러난 윤동주 사랑은, 작품을 보는 동안 관람객들에게 윤동주의 <서시>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하죠. 또, <명성황후>(1997), <유화 취적도>(1998)처럼 대중적인 포스터로 사용된 작품도 있습니다. 

<시인(윤동주 예찬)>, <고독-꽃과 별 그리고 소년>,<유화 취적도>, <명성황후> © 네버레스홀리다

<명성황후> 원화는 이번이 첫 공개로, 매번 공연 리플릿이나 홍보물을 통해 보다가 원화로 보니까 감격스럽기까지 하더라고요. 화면을 방해하는 문구가 사라지고 그림만 오롯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는데, 원화가 주는 감동을 남기고 싶어 기념품 숍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어서 아트 상품이 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를 맞아 기획된 뮤지컬 <명성황후>의 포스터는 1991년 초연 당시 주연 배우였던 윤석화의 사진을 내세웠었죠. 1995년 미국 공연을 앞두고 에이콤 대표 윤호진이 이 화백에게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아트 포스터를 그려달라."라고 했고, 작가는 칼날 틈에서도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162X112cm 캔버스에 그려냅니다. 칼이 하나밖에 없는 버전은 원작을 응용한 미국 디자이너의 작품이고요. 명성황후의 얼굴 역시 역사 고증이 아니라 뮤지컬을 위해 창작된 건데, 이 포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활용될 이미지라 작가는 당시에도 원화를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현재도 유족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꼭 보셔야 하는 작품 1순위입니다.


그 밖에도 이만익 아카이브와 88 올림픽 아카이브가 준비되어 있는데, 앞서 얘기한 <명성황후>부터 올림픽의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으니, 이곳도 찬찬히 둘러보면 좋습니다. 영상도 보시고요. 

이만익 아카이브 © 네버레스홀리다

이 전시의 장점은 굉장히 많은데, 전시 관람료가 저렴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3000원이에요. 문화가 있는 날에 가시면 무료입장도 가능하고요. 요즘 어지간한 전시가 만 팔천 원에서 이 만 원인데, 콘텐츠가 부실한 전시가 생각보다 많아서 가끔 당황스럽더라고요. 이만익의 전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놓치지 말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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