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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아트센터 서울》 강서구 마곡동 812

예술 공간 이야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죠. 이날엔 전국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공연장, 영화관 등의 문화시설들에선 입장료 무료나 할인 혜택을 제공합니다. 몇 번 말했듯이 저는 고궁을 좋아해서, 문화의 날에 맞춰 일부러 고궁 투어를 계획한 적도 많아요. 평소에도 종종 가지만,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가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어서 모든 문이 무료로 개방되는 이날을 그래도 선호하는 편입니다. 올해 계획 가운데 아직 하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복원된 종묘 길을 걷는 거라, 올해 마지막 문화의 날엔 꼭 종묘를 통해 창경궁으로 다시 창덕궁으로 넘어가 보려고요. 그날 여기를 힘차게 걷는 사람을 본다면 아마 저일 거예요. ㅎ 생각해 보니, 1999년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에도, 저는 종묘 정전 앞에 있었네요, 다들 보신각종 앞에 모였을 때.


제 개인적 의미의 '문화의 날'도 있습니다. 하루 날 잡아 전시 보고, 공연 보고, 산책도 하는, 아주 완벽한 날이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는 날인데, 그래 봐야 일 년에 한 6,7번 있을까 말까~ 한 날입니다. 전시나 산책, 전시나 공연, 공연이나 산책 이렇게는 가능한데, 세 가지를 동시에 하긴 정말 어렵거든요. 근데, 얼마 전에 이게 가능해졌어요. 하루 동안 충분히 알차게 전시 보고, 밥 먹고, 공연 보고, 산책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귀가하는 게. 아쉽게도 거리가 멀어 제가 자주 갈 수 있는 지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1년에 4번 정도는 꽉 찬 문화의 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여러분께도 소개드립니다.


제 글을 꾸준히 보신 분이라면 예전에 제 블로그에서 서울식물원과 스페이스 K를 소개했던 것을 기억하시겠죠? 그땐 이곳에 딱 2곳의 문화시설이 있었는데, 올해 10월 LG아트센터 서울이 마곡나루 역에 이전 개관하면서 전시, 공연, 산책이 한 지역에서 가능해졌어요.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 세 개의 문화시설이 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고, 서로의 거리가 도보 5~10분밖에 안된다는 점, 그리고 콘텐츠가 수준급이라는 거죠. 보통 도보거리 안에 있는 콘텐츠가 다 마음에 들긴 힘들잖아요. 일단, 마곡나루 역에서 나오면 서울식물원과 LG아트센터 서울이 바로 연결되고, 거기서 도보로 7,8분 걸으면 스페이스 K가 있습니다. 아침에 좀 서둘러서 한 10시쯤 식물원 가서 온실이랑 야외 정원을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스페이스 K에 가서 현재 진행 중인 제여란 <Road to purple> 전을 보고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보니 하루가 꽉 차더라고요, 사이사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여유도 부릴 수 있고요. 생각보다 마곡, 발산엔 먹을 곳도 많습니다.

LG아트센터 서울  외관 양면  © 네버레스홀리다

22년간의 역삼동 시대를 마치고 2022년 10월 15일 마곡에 이전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개관 페스티벌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좋아서 많은 분들이 찾고 있지만, 그 외에도 '안도 다다오'의 설계를 보러 일부러 찾아오시더라고요. 2000년 3월에 강남구 역삼동에 개관한 LG아트센터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서초동 예술의 전당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동시대 예술 작품을 무대에 올려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제가 여기서 본 마지막 공연이 뮤지컬 <보디가드>였으니까 시간이 꽤 지나긴 했네요.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해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존재감이 강한 작품들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Ando Tadao, 1941-)는 물의 교회, 빛의 교회, 나오시마 현대미술관 등을 설계했고, 국내에는 뮤지엄 산, 본태박물관, 혜화동 재능문화센터(JCC) 등의 작품을 남겼죠. 1995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 등의 화려한 수상 경력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도 다다오'란 이름은 대중들에게도 익숙합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외관 © 네버레스홀리다

제가 공연장을 찾은 날이 평일이었음에도 건축물 투어를 온 학생 단체 및 개인 방문객이 꽤 많이 보이더라고요. “로비와 아트리움, 통로 등이 각각 눈에 띄는 특징을 갖게 하여 여기밖에 없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다”던 건축가의 기획이 적용된 공연장엔, 8개의 투어 스폿을 자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셀프 오디오 투어'가 제공되는데, 이를 위한 유인물과 QR코드 등을 건축물 곳곳에 마련해둬 이용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네이버 오디오 가이드는 별도 검색이 되어 공연장을 찾지 않고도 들어볼 수 있고요. 저도 안내지를 들고 건축물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 동선이 편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추고 있어 공연 관람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쉬어가기에도 좋더라고요. 특히 각 층에 놓인 의자도 인상적이었으니 눈여겨보시고요.

공연장 내외부 © 네버레스홀리다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셀프 투어 스폿이 있습니다. 메인 스폿인 튜브(TUBE),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게이트 아크(Gate ARC)인데, 안내지에는 8,9곳을 적어뒀지만, 공연을 보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운 곳도 있으니 이들만이라도 꼭 챙겨 보세요. 건물 내 외부 색을 입히지 않은 콘크리트에 시간대별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려내는 이미지도 환상적이니 다니면서도 이 점을 잊지 마시고요.


LG아트센터 서울의 시그니처 공간인 튜브(TUBE)는, 80m 길이의 터널로 건물을 관통하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남녀노소 주저 없이 인증샷을 남기게 하는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높은 천고에 타원형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져 그냥 걷기만 해도 무중력 상태를 걷는 듯하고, 촘촘히 단 루버(알루미늄을 구부린 막대)와 그 위에 나무를 얇게 깎은 무늬목 합판을 덧붙여 연출된 따뜻한 분위기 그리고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LG아트센터와 센베리 퍼퓸 하우스가 공동 개발한 ‘향기 136’까지 합쳐져 남북 통로를 자꾸 오가게 만들어요. 분명히 꼿꼿하게 걷고 있는데, 뭔가 나선형의 공간에 빠져드는 듯한 착시도 주고, 생각을 가득 채우고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비워지는 묘한 공간입니다. 보는 것보다 더 높고 깊어서 끝에서 끝까지 걷다 보면 앞서간 사람들의 모습도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튜브의 남쪽 위쪽을 보면 브릿지가 보이는데, 이곳에선 영국의 컬렉티브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스와인의 설치 작품 <포그 캐논>도 만날 수 있어요.

튜브©네버레스홀리다

스텝 아트리움은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인도하는 100m의 산책길입니다. 지하철 마곡나루 역과 연결된 통로로 들어오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3층으로 이동하며 체험해 볼 수 있는데, 24m의 천고가 주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엔 네덜란드 컬렉티브 아티스트 트리프트의 키네틱 아트 설치 작품 <메도우(Meadow)>가 설치되어 있어요. 이 작품에는 LG 상록재단의 화담숲에서 자라고 있는 토종 꽃 일곱 종(미선나무, 진달래, 탐라 산수국, 꽃창포, 남산제비꽃, 두베 부추, 섬기린호)의 색상이 담겨있습니다. 그냥 한자리에 서서 봐도 좋지만, 공연장에서 내려간다면 꼭 계단 끝까지 내려갔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작품을 보는 걸 권해드려요. 다른 각도는 물론 메도우가 활짝 필 때, 질 때 모두 다 보셔야 이 작품을 잘 느낄 수 있거든요.

메도우©네버레스홀리다

게이트 아크는 안도 다다오 건축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의 웅장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길이 70m, 높이 20m의 초대형 벽면체로, 각도를 달리하면서 보는 게 가장 좋아요. 무거운 건축 소재로 지어졌지만, 꽤 리듬감 있게 느껴지는 공간이고, 시간대에 따른 햇볕의 유입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라, 햇빛의 기울기가 느껴지는 시간대에 가면 더 좋습니다. 저녁놀이 질 때가 요즘은 젤 예쁠 거예요. 로비로 사용되고 있는 1층 공간이라 사람들이 많은 시간대보다는 한적한 시간에 가서 둘러보기를 권합니다.

게이트 아크 © 네버레스홀리다

이밖에도 북측 입구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ARK23.5>가 설치되어 있어요. 지구 자전축 23.5도에서 영감을 얻어,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과 기술, 인류와 우주가 하나를 이루는 공존의 이야기'를 표현한 작품으로, 주변을 환히 밝히고 있어 이 앞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만남도 갖더라고요.

(좌) 북측 입구 (우) 이이남 미디어아트 ©네버레스홀리다

건축 투어를 마친 후엔 아트 라운지로 이동해 LG아트센터 서울의 설계 과정과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을 살펴보세요. 규모가 크진 않지만, 사진과 모형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대표 작품들과 한눈에 보지 못했던 LG아트센터의 전체 규모와 구성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먼저 건축물을 돌아봤을 때 눈에 잘 띄지 않던 부분들이 이곳을 보고 나니 명확해져, 먼저 이곳을 방문한 후에 건축 투어를 하면 구조 이해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옥상이나 다른 곳들도 나쁘진 않은데, 주변에 공사 중인 건물들이 많아 시야에 걸리는 풍경이 이상적이지는 않더라고요.

아트 라운지 상설전 © 네버레스홀리다

저는 건축물 투어 후에 영국의 이머시브 시어터 그룹 다크필드(DARKFIELD)의 삼부작 중 <고스트 쉽>도 참관했는데, 재밌었지만 사운드가 약해서 아주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공연 형태가 오랜만이라 그 자체가 흥미로웠고, 제 친구가 옆자리가 아닌 맞은편에 앉아서, 민망한 순간에 눈이 마주쳐서 서로 한참 웃었어요. 이곳에선 12월 18일까지 개관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고, 기획이 좋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니,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보세요.

고스트 터미널 및 공연장 내부 © 네버레스홀리다

공연장과 가까운 곳엔 2011년에 설립된 코오롱의 문화 예술 나눔 공간인 SpaceK가 있습니다.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졌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죠. 마곡 지구는 연구, 업무 및 상업 시설이 주를 이루는 곳으로 주변에서 전시관을 찾기 어려운데, 5호선 마곡역과 발산역, 9호선 마곡나루 역 그 중간 격인 한다리 문화공원 안에 스페이스 K가 있습니다. 현재 현대 추상화가 제여란의 <Road to Purole> 전시가 진행 중인데, 이 전시 공간은 천고가 3.3m에서 최대 9.2m까지라, 대형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서울의 몇 안 되는 전시 공간입니다. 건축물은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을 설계한 건축가 조민석의 작품으로,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목적이 아닌 건물 내외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요. 물론, 여기까지 가셨다면 제여란 작가의 작품은 꼭 보셔야 합니다~

제여란  전© 네버레스 홀리다

지금보다 더 추워지면 외출도 줄어들 텐데, 그래도 가끔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는 있잖아요. 멀리 가지 않더라도 여행하듯 둘러볼 수 있는 곳들이 서울에는 많으니, 잘 챙겨서 풍족한 문화생활 즐기기 바라겠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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