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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 이야기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2023.04.23/ 02.26)


겨울입니다. 

눈도 충분히 내려 쌓였고, 두꺼운 외투와 장갑이 낯설지 않은, 진짜 겨울. 

이맘때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시간 참 빠르다'라는 말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오고, 뭔가 한 해를 잘 정리해야겠다는 욕구도 마구 샘솟고. 또, 올해 안에 꼭 봐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스쳐가고요. 단 며칠이라도 혼자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다 보니, 내년으로 밀어둔 약속이 벌써 다섯 개나 됩니다. ㅎ 


그렇게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제가 오늘 소개드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이중섭》과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입니다. 둘 다 무료 전시지만 사전 예약이 어려워서 아직 못 본 분들이 많을 거예요. 사전 예매가 어렵다면 현장 예매도 있으니, 시간 여유를 좀 갖고 가셔서 현장 예매하고 대기했다가 보는 걸 권해드려요. 

© MMCA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은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1916-1956)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중 10점을 더해, 총 9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중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유영국, 파블로 피카소 다음으로 이중섭의 작품이 많고, 회화 및 드로잉 장르에선 그의 작품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하죠. 이전에도 이중섭 전시는 여러 번 있었던 터라 뭐 그렇게 신선할까 싶긴 했는데, 그래도 새로운 작품들, 오랜만에 보는 작품들이 골고루 전시되어 있어 집중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등과 함께 한국 미술사를 더 풍요롭게 한 화가 이중섭(1916-1956)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작가들 중에서도 이인성(1912-1950)처럼 활동 기간이 길진 않았습니다. 미술품 경매 등을 통해 이중섭의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더 증폭된 면도 없진 않지만, 1970년대부터 이중섭에 관한 전시, 영화, 연극, 소설 등이 꾸준히 제작되면서 한국 미술사에서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죠. 2016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관에서 이중섭 작품 전시가 열렸는데, 그때 제목이 <백 년의 신화>였고, 그 전시를 보면서 이 이상의 전시는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꽤 괜찮았어요. 

《이중섭》 전시장 내부 © 네버레스홀리다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화가 활동을 시작했고, 함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온 후 해방을 맞았지만, 6.25로 제주도, 부산 등지에서 피란생활을, 전쟁 직후에는 통영, 서울,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합니다. 짧은 생 동안 식민지, 전쟁, 분단 등을 겪으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진 않은 그는, 일제 강점기엔 민족의 상징인 '소'를, 피란 시절 가족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희망을 담아 따뜻하고 절절하게 그려낸 '가족과 아이들'을, 전쟁 후에는 강렬한 의지와 자신감을 뿜어내는 힘찬 '황소' 작품들을 그려내었죠. 하지만 가족과 헤어진 후 사기로 인한 빚에 시달렸고, 경제적 생활고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 질환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내다 41세의 젊은 나이에 홀로 생을 마감합니다.

왼쪽 상단부터 <닭과 병아리>,<춤추는 가족>, <가족과 첫눈>,<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네버레스홀리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 두 시기로 구분, 1940년대에는 그가 일본 유학 시기와 원산에서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1950년대에는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 및 은지화, 편지화 등을 보여줍니다. 전시 출품작 중에는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와 <물놀이하는 아이들>(1950년대 전반) 2점 포함, 1980년대 전시된 이후 오랜만에 공개되는 <춤추는 가족>(1950년대 전반)과 <손과 새들>(1950년대 전반) 2점도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 <부부>(1953)와 <투계>(1953) 등도 볼 수 있고요. 

<연필화>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화가로서의 이중섭의 인생은 1930년 정주 소재 민족 사관학교인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예일대학교 출신의 미술교사 임용련(1901~?)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36년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를 거쳐 1937년부터 1941년까지 문화학원에서 유학을 했는데, 1940년대부터는 이미 미술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고 해요. 1950년 12월 원산폭격을 피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오는데, 그 이전까지 제작한 작품을 모두 원산에 계신 어머니께 남겨놓고 오는 바람에 1950년 이전 그의 작품은 전해지는 게 극히 드물다고 하죠. 1951년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여기서 약 1년간 가족들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피란생활을 했고, 1951년 12월 부산으로 돌아와 피란촌을 전전하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는데, 딩시 부산에서 제작된 수많은 작품들은 큰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엽서화>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 홀리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기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후에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를 후배로 처음 만났고, 문화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그는 1943년까지 도쿄에 머무르며 마사코에게 수많은 그림엽서를 보냈다고 해요. 한 면에는 그림만 가득, 다른 면에는 주소만 적혀 있는 엽서로, 총 90여 점의 엽서화가 알려져 있는데 그중 일부를 이 전시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은지화>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으로,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에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그는 담뱃갑 속 은박지를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주워 사용했다고 해요. 전해지는 대부분의 은지화들은 접히고 구겨지고 찢어진 처음 상태 그대로 그림의 캔버스가 되었기에, 현재 우리가 보는 은지화에서도 그 접히고 구겨진 선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이 작업 방식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나 금속공예의 은입사 기법을 연상시켜 전통 기법을 차용한 예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1952년 6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기 시작한 수많은 은지화에는 주로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제주도 서귀포 시절 행복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에서부터 비극적인 사회 상황과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암시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약 300점 정도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70여 점을 1953년 도쿄에 있는 아내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대작으로 완성하려고 그려본 스케치이니,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하죠. 매우 다양한 장면들이 새겨진 이 그림을, 그는 ‘벽화’를 그리는 밑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편지화>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1952년 7월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이중섭은 이후 여러 지역을 떠돌며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냅니다. 처음에는 언제든 곧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고 다정다감한 편지를 많이 썼고,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을 염려하며, 그림을 곁들인 사랑스러운 편지들을 많이 남겼죠. 그러나 1955년 중반 이후 점차 절망이 깊어져 편지를 거의 쓰지 않았고, 심지어 아내로부터 온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보낸 편지들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약 70통, 150매에 이르는데, 이 중 일부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그는 꾸준히 전시를 열긴 했지만 결과가 좋진 않았다고 해요. 예술가와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 못했다는 자책이 정신적인 질환으로 연결되었고,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 간장염 등으로 인해 병원을 전전하다가, 1956년 9월 6일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죠.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련된 그의 묘는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습니다.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전은 2021년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안 미로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 도자 90점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 전시 역시 예약이 정말 어려운데, 현장은 의외로 그렇게 붐비지 않더라고요. 아마도, 과천이라는 지리적 제약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해서 노쇼가 많이 발생하는 듯한데, 어쨌든 현장에서 예약하고 바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사전 예약을 못하셨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현장 대기를 걸어두세요.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출품 회화 7점 © 네버레스홀리다

당대 미술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동료로 만나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 준 20세기 거장들의 전시는 과천 1층 원형전시실에서 진행 중입니다. 원형 전시장 벽면을 따라 7명의 회화 작품을 걸었고, 그 안쪽으론 피카소 도자기를, 가장 안쪽엔 관람객 휴게 장소와 영상을 설치했어요. 입출구가 같아 동선 상관없이 보기 좋고, 각 작품마다 설명이 충실해서 감상에 큰 어려움도 없습니다. 물론 도슨트도 운영 중입니다. 


이 전시에 출품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은 지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도 선보인 적 있죠. 그땐 디스플레이상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게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엔 공간도 트여있고 붐비지 않아 더 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사로(1830-1903), 르누아르(1841-1919), 샤갈(1887-1985)의 작품이 있어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은 '그가 말년에 되찾은 새로운 사랑과 행복의 순간을 담아낸' 작품이라 더 유심히 봤고요, 피카소의 작품은 회화가 아닌 도자로만 만날 수 있지만, 회화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도자들이라 저는 오히려 회화보다 더 눈이 가더라고요. 

피카소의 도자 중 일부 ©네버레스홀리다

1953년 피카소는 마두라 공방에서 일하던 자클린 로크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1973년 작고하던 해까지 여생을 함께합니다. 그는 자클린의 얼굴을 400여 점 가까이 초상화로 남겼을 뿐 아니라 도자 작품으로도 제작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자클린의 초상을 만날 수 있어요. 또 투우 장면과 소는 도자뿐 아니라 회화, 조각, 판화 등 피카소의 예술 전반에 있어 주요한 주제로 다루었는데, 투우가 스페인의 국기(國技)인 데다, 남프랑스에 위치한 마두라 공방에서 작업하는 동안 그 지역에서 열린 투우 경기를 즐겨 관람했던 것도 피카소의 도자 작품에 투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해요. 


개인 관람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시간 남짓하면 다 볼 수 있는 전시니, 현재 동일관에서 하고 있는 기획전 《백남준 효과》와 《모던데자인》도 함께 보길 권해드립니다. 두 전시 모두 흥미롭지만,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으니 도슨트 시간을 체크해서 들으셔도 좋고요. 요즘 전시 관람 비용이 기본 1인 2만 원 정도인데, 몇 천 원에 이 좋은 전시들을 다 볼 수 있는 건 꽤 괜찮은 기회니, 꼭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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