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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ART, 藝術)=기예+학술+?(feat1.최우람)

예술 이야기 

예술(ART, 藝術)이란 단어는 표준국어 대사전에 이렇게 적혀있어요.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는 이 예술의 정의가 요즘 시대에도 맞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레디메이드가 주 작품이 되고, 개념이 작품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면서, 회화적이고 공예적인 성질을 띤 작품 외에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예술'의 범위는 정말 폭넓어졌잖아요. 게다가 美를 추구하지 않는 작품도 있고, 작품의 재료도 소재도 다변화되었고요. 예술성 외에도 대중성(보편성)도 빠질 수 없는 요소인데, 그렇게 보면 예술은 각자의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선언'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생각들은 기계 및 전자 공학이 적용된 '요즘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더 깊어집니다. 여러분들도 미술관에서 이런 장르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예술일까? 기술일까? 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물론, 표현 방식이 디지털과 기계공학인 거지 예술이 갖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기술이 예술로 인정되는 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2회에 걸쳐 기계 공학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전 전시 출품작 © 네버레스홀리다

첫 번째 작가는 최우람입니다. 지난달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전을 했는데, 보셨죠?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매년 국내 중진 작가 1인(팀)(을 지원하는 연례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합니다. 한국 작가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 마련을 위한 대표적인 기업 후원 사례로, 2022년 9월~2023년 2월까지 진행된 전시 작가가 바로 최우람이었죠. 


언젠가 한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예전에는, 예술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미술사를 공부하고 수많은 예술작품을 접하며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후엔,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가 아름답고 또 가치 있어 보이더라고요. 긍정적인 변화인데, 때로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미감에 감동받아 제 감흥을 이야기하면, 호응을 얻지 못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ㅎㅎ 예민한 눈을 가진 만큼, 감성의 스펙트럼도 넓어지더라고요. 또, 작품을 영역 제한 없이 많이, 오래 접하다 보니, 이미지와 형상으로 표현된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텍스트처럼 읽히는 순간이 종종 오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전에는 최우람의 작품을 그냥 "기계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느꼈다면, 지금은 그 움직임에 담긴, 형태와 외양에 담긴 이야기에 더 주목을 하고 있죠. 동력이 멈춰버리면 작가의 의도를 오롯이 볼 수 없는 작품이라는 불완전성은, 오히려 작품을 더 서사적으로 보여주고 있고요. 

시발 자동차(복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오)네버레스홀리다

작가 최우람(1970~)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始發자동차를 만들었고, 할머니는 그것을 운전했다고 해요. 아버지도 발명가였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미술을 전공하셨대요. 그는 로봇과 기계가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로 섞여있는 만화를 보며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주는 로봇과학자가 되어야겠단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주변인들의 권유에 미대로 진학합니다. 


중앙대학교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는데, 다양한 재료로 작업할 수 있는 미술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작품 경향의 큰 전환을 불러온 계기가 생깁니다. '시간적인 요소(시간성)'가 들어간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거죠. 그것을 계기로 잠시 접어두었던 로봇과학자가 되고 싶단 꿈이 다시 떠올랐고, 시간성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퍼포먼스가 가능한 기계 장치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 최우람의 작품들이 만들어집니다. 

최우람 <쿠스토스 카붐 Custos Cavum>(2011), 금속, 레진,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LED), 220x360x260cm, 리움미술관 소장© 네버레스홀리다

작가는 움직임이 있거나 움직이는 부분이 들어간 키네틱 조각(kinetic sculpture)을 1990년대 초부터 해왔어요.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작품을 만들면서 "기계란 무엇일까?", "왜 우리가 의존하고 있을까?", "기계가 생명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욕망은 기계를 통해 어떻게 표현될까?"와 같은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쓰고 있는 재료들과 콘셉트가 하나로 융합된 것 같다고 말했죠. '기계 생명체(anima-machine)'로 불리는 그의 작업은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움직이는데, 실제 살아있는 동식물처럼 라틴어 학명뿐만 아니라 일종의 탄생 설화와 특성, 서식지, 서사도 부여합니다. 그가 만든 기계 생명체들은 인간의 삶과 모습을 대변하고 은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로, 작가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든 도구로서의 기계들 안에는 우리의 욕망과 꿈과 기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모습들이 남아있다고 여겼죠. 그래서 우리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들을 이들을 통해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하는 거고요. 작품화되는 소재의 폭도, 기술발전과 진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과 신화 등 철학, 종교, 사회적 맥락 등 아주 넓습니다.

MMCA 개관 최우람 현장 제작 설치 작품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2013) ©네버레스홀리다

최우람이 MMCA 개관전에 선보인 작품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는, "태양 광선이 달에 반사될 때 발생하는 빛 에너지가 인간의 환상을 증폭시키는 에너지로 다량 방출되고, 이러한 달빛의 에너지가 물, 바람, 인간의 환상과 뒤섞이면서 항구 도시 주변에 나타난 새로운 생명체를 표현한 작품"으로 현장 제작되었습니다. 애벌레 형상의 상상 속 기계 생명체라는 건데, 설명만큼 당시 작가 소개도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전시 브로슈어에는 작가를 "기계 생명 연합연구소에서 기계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엔지니어와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기계 생명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완성도 높은 기계 작업을 통해 단지 움직임을 표현하는 '키네틱 아트'를 넘어 생명을 가진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어뒀는데, 여기서 기계 생명 연합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 URAM)는 가상의 국제 연구소로, 첨단 과학 문명 속에 미지의 공간에 존재하며 미생물처럼 번식하는 기계 생명체의 존재를 조사하고 기록하고,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찾아 이들의 행동 유형과 습성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하죠.


이 작품을 보고 '오! 최우람! 하며 반가웠던 게 얼마 전이었던 거 같은데, 근 10년 만에 그의 개인전 《작은 방주》를 MMCA 서울관에서 보게 된 거죠. 물론, 한두 점씩은 계속 다른 곳에서 봐왔지만요. 아, 예전에 작가님과 작품 보수 건으로 짧게 통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오래돼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굉장히 친절하고 편안하게 응대해 주셔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 소장작은 아닙니다.) 

(왼)<하나>(2020)(오)<빨강>(2021), 금속재료, 타이백에 아크릴릭, 모터, 전자 장치(커스텀 CPU 보드, LED) © 네버레스홀리다

《작은 방주》전시장 초입엔 <하나>를, 뒤쪽엔 <빨강>이라는 작품을 배치했는데, 크기가 250x250x180cm, 223x220x110cm으로 그 앞에 서면 사람이 가려질 만큼 커서, 피고 질 때 감상자에게 주는 감동이 남달랐죠. 입체 작품인 데다 움직임이 살아있어 정면에만 서있기보다는 각도에 따라 빛이 바뀌는 홀로그램을 대하듯 왔다 갔다 하면서 봤던 작품이에요. 코로나 검사와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착용한 방호복의 재질과 같은 타이벡을 사용해 만든 꽃 <하나>는, 팬데믹 상황 속 작가가 시대에 바치는 헌화이자 위기를 겪은 시대를 위한 애도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빨강>은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자 생명의 순환을 의미한다고 하고요. 정밀하게 조립되었지만 소리 없이 피고 지는 자연물을 따라가긴 어려웠던 이 작품들은,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듯한 흡인력은 확실히 지닌 작품입니다. 

<원탁>(2022) 알루미늄, 인조 밀짚, 기계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 장치 <검은 새>(2022) 폐 종이 박스, 금속 재료, 기계장치, 전자 장치, 가변설치 © 네버레스

신작 49점(설치·조각 12점, 영상·드로잉 37점) 등 총 53점이 출품된 《작은 방주》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작은 방주>와 <원탁>이 아닐까 싶어요. <원탁>은 18개의 지푸라기 몸체들이 상판의 움직임을 만드는 작품으로, 상판 위에는 둥근 머리 형상의 구체가, 천정에서는 세 마리의 <검은 새>가 천천히 회전하며 아래에서 움직이는 <원탁>을 응시하고 있죠. 워낙 높이 매달려 있기도 하지만 상판 움직임에 집중을 하다 보면 머리 위에 있는 작품을 놓치기가 쉬운데, 고산지대나 사막같이 생명체가 드문 곳에서 먹이가 될 생명체를 낚아챌 기회를 엿보고 있는 까마귀나 독수리가 연상될 정도의 스산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어요. 


또,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상판의 구체가 떨어지는 <원탁>은, 상판을 받치고 있는 지푸라기 인간들의 움직임이 구체를 가지려고 하는 건지 밀어내려고 하는 건지 가늠하기 어렵게, 가지려고 할수록 멀어지는 '상황적 아이러니'를 연출합니다. 기사를 보니 이 작품은 원래 희생정신없이 개인 욕망만 내세우는 정치계를 풍자하려고 했던 것으로,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고 투쟁하는 모습을 원탁 위의 머리로 상징하려 했다고 해요. 초기엔 3명의 지푸라기 몸체만 세웠었는데, 전시 장소인 서울 박스의 크기를 고려해서 지름 4.5m의 원탁으로 결정하니 등신대 인물이 18명으로 늘어나면서 의미 역시 정치계가 아니라 일반 사회의 대중으로 확대되었고요. 5분 작동(15분 휴식) 한 이 작품은,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탁은 알루미늄으로 제작했고, 정밀한 기계 장치 몸체는 인조 밀짚으로 감쌌으며, 천장에는 머리의 동작을 제어하는 동작 인식 카메라와 전자 장치가 뒀다고 해요. 


어쩌다 한 번씩 저 구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후에 기사를 보니 밀짚으로 감싼 구체가 고르지 않은 표면 탓에 컴퓨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였다고 하죠. 카메라가 원탁을 촬영하여 머리 위치를 컴퓨터가 계산하는 구조로, 해독에 오차도 발생한 경우도 있었고요. 정교한 수정은 가능하지만 오류 자체를 수용하기로 해서 그 상태를 유지한 탓에, 머리로 추정되는 저 구체는 정말 여러 번 떨어졌고, 그때마다 주변에서 터져 나왔던 탄식과 웃음은 정말... 그 장면은 SNS에 많이 담겨있을 거예요. 저는 저 지푸라기 몸체의 모습이 너무 인간 같고 힘겨워 보여서, 웃음은 안 나더라고요. 너무 짠했달까, 그랬어요. 

<작은 방주>(2022) 폐종이 박스, 금속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210x230x1271cm © 네버레스홀리다

대형 설치작 <작은 방주>는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세로 12m, 높이 2.1m, 최대 폭이 7.2m의 방주(方舟)를 전시실에 설치했죠. 그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과거에 천연두나 페스트가 퍼질 때 원인을 모르고 죽었던 것처럼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여전히 사회가 흔들리는 장면을 보고서 2022년에도 인류에게는 방주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해요. "방주에 누가 탈 것인지, 무엇을 실을 것인지 정하는 과정에서 차별과 선택이 일어날 것"이라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데 모든 것을 실을 수 없다는 게 자명하기 때문에 '작은'을 붙였다"라고 작품 제작 의도를 설명했죠. 


그의 작품 중 최대 규모로, 검은 철제 프레임에 좌우로 35쌍의 노를 장착하고 노에 흰색을 칠한 폐종이 상자를 붙인 <작은 방주>는, 흰 종이 노를 몸체에 바짝 붙이고 정지했다가 서서히 노를 들어 올리며 장엄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날개처럼 보이는 노에는 각각 컴퓨터 장치를 달았고, 이를 통합 제어하는 별도의 장치도 달았다고 하고요. 하루 8번 20분씩 실연된 이 작품은 한번 보면 그 웅장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분명 멈춰있는 걸 아는데, 정말 전진하는 듯하고, 노가 쫙 펴질 때도, 위아래 수직 운동을 할 때도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방주와 그 주변엔 모순되는 장치들도 많았는데, 배 안에 설치되어 방향의 기준점이 되지 못하는 <등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두 선장> , 벽에 걸린 <닻> 등 을 보다 보면 ' 저 방주가 정말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게 되죠. 전시장 가득 항해를 위한 장치들이 포진되어 있지만, 향하는 문이 닫힌 건지 열린 건지, 미로는 아닌지 그런 생각도 많이 들고요. 어디가 출구인지를 찾지 못하는 모순된 욕망의 은유처럼, 뱃머리 장식(선수상)도 방주가 아닌 전시장 천장에 붙어있어, 이 전시실은 전반적으로 블랙 코미디적 성격을 보여줬어요.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인간의 열망과 혼돈의 시대를 반영하겠다"라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 표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움직임은 현대차그룹 내 로보틱스랩을 포함, 에이로봇, 오성테크, PNJ, 이이언, 클릭트, 하이브, 한양대 로봇공학과 등과 기술협력을 통해 완성했고요. 


만약에 이 작품을 못 보셨다면, 꼭 그의 홈페이지에 기록된 짧은 클립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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