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쉽고, 깊게, 예술을 들여다보게 하는 교양 콘텐츠

예술 이야기 

OTT 천국인 요즘, 저는 전통 미디어와 조금 더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OTT의 편의성은 인정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게 돼서 의도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고 있죠. 독점 공개 신작 드라마를 보지 못했을 때의 소외감은 있지만, 요약을 올려주는 분들이 계셔서 대략적인 분위기 파악은 되고 또, 제가 전시나 공연 외 일반적인 유행에는 좀 무딘 편이라, 가끔 같은 화두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못할 때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친구를 마주할 때 빼고는 필요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대신, 평소에 챙겨보지 못한 전통 미디어 속 좋은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하고 있죠.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예썰의전당》 이미지 출처: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yessul/pc/index.html

《예썰의전당》은 "어제의 예술이 오늘의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라는 문구(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으로 다가온 프로그램입니다.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했거든요. 예를 들어, 올해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 획기적이었던 JTBC 정치 예능 프로그램 '썰전',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 속 명언인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등등. 제목과 문구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그려져서, 작년 5월 첫 방송부터 쭉 챙겨 보고 있습니다. 어떤 땐 본방, 어떤 땐 다시 보기로요.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밤 10시 30분부터 1시간 정도 방영되는데, 제가 좀 일찍 자는 편이라 ㅎ

《예썰의전당》 이미지 출처: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yessul/pc/index.html

저는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마음에 들어요. "하나의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이 담겨 있고, 그 때문에 예술가 개인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역사적, 미학적, 나아가 의학, 과학, 심리학, 경제학적 접근까지 다양한 감상법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썰'을 푸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사들이 모여 예술 작품을 둘러싼 창의적인 감상법을 공유한다. 그리고 어제의 예술이 품은 '썰'을 통해 오늘의 시청자들에게 통찰과 위로를 전해주고자 한다"란. 


예술작품이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보니, 시대 및 주변 상황을 이해 못 하면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엔 미술사학자, 정치학자, 피아니스트, 역사학자 그리고 김구라, 재재 등 다방면의 관점을 대변할 여러 패널이 등장하고, 그들의 관점으로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합니다. 물론, 50여 분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있어 아주 깊게 다뤄지진 않지만, 그래도 작품과 작가를 알아가기엔 부족함이 없고 내용 구성도 부담 없이 잘 흐릅니다. 미술 작품이 주축이 되긴 하지만, 다른 장르의 이야기들도 섞여 들어가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요. 보다 보면 예전에 배웠던 것들이 기억나기도 하고,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정보도 있고, 다시 보게 되는 것들도 있어 좋은데, 무엇보다 예술작품을 보며 하루를 마감한다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또 방송에서 다뤄진 아티스트들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거나 해외여행을 갔을 때 찾아보게 되는 작가들이라 유익하고요. 서양미술사를 한번 톺아보고 싶은 분, 한국 미술대가(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에 대해 알고 싶은 분, 예술 상식을 얻고 싶은 분이라면 꼭 보세요. 


다음은, 2019년 방영을 시작한 《다큐 인사이트》 시리즈 중 <더 컬렉션 인왕제색>, <자화상, 중업>, <사유의 탄생>입니다. 다큐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중에서 이 프로그램은 주제를 꽤 폭넓게 잡기도 하고, 대중적인 요소가 많아 더 자주 봅니다. 콘텐츠 하나하나에 담긴 깊이도 좋고, 서술하는 방식도 새롭고요. 

이미지 출처:https://program.kbs.co.kr/1tv/culture/docuinsight/pc/index.html

혼자 밥을 먹거나, 그냥 침대 위에 누워있고 싶을 때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예능을 주로 보지만, 다큐도 봅니다. 뒹굴뒹굴하고 싶을 땐 더더욱 다큐를 보죠, 뭔가 보상받는 느낌이 있거든요. 정보가 있는 프로그램을 좋아하기도 하고, 팩트를 기반으로 서술되는 방식도 제 성향에 맞고요. 화면 영상도 좋고 그 안에 담긴 포즈(쉼)도 좋고, 그러면서 세상사에 혹은 다루는 주제에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 좋고요. '어디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다큐를 보다 많이 하거든요. 연출가의 기획과 작가진의 팩트체크 및 자료 뒷받침이 되어 좋고, 주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니 더할 나위 없고요. 《다큐 인사이트》에는 그런 대중적인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더 컬렉션 인왕제색>, <자화상, 중업>, <사유의 탄생>는 제가 집중해서 본 콘텐츠입니다. 


<더 컬렉션 인왕제색>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 기증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출품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울 북악산과 인왕산 근처에 살았던 정선은 자신이 즐겨 찾았던 인왕산 곳곳을 그렸는데, 방송에선 비행 금지구역이 해제된 인왕산의 모습을 상공에서 최초로 담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인왕산과 정선이 그린 인왕산의 모습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또 그가 말한 "진경"은 어떤 것을 말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전시에서 <인왕제색>을 보고 나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작년부터 가끔씩 범바위, 치마바위, 기차바위 등을 오르고 있어요. 야경 명소라는데 아직 늦은 저녁에는 못 올라가 봤지만요. 이 전시 및 작품 관련해서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포스팅에 적어뒀으니 그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자화상, 중업>은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작년이 김중업 탄생 100주년이라 그와 관련한 전시 및 방송 프로그램들이 좀 있었는데, 잘 알려지진 않았죠. 지금이야 건축가의 손길이 들어간 건축물들이 많이 보이지만, 88 올림픽 이전에는 서울에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건축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6.25 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되기도 했고, 먹고살기도 급급했던 시절에 디자인까지 갖춘 건물을 짓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았으니까요, 여러 여건상. 

이미지 출처: https://kstar.kbs.co.kr/list_view.html? idx=201579

김중업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건축물은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주한 프랑스 대사관', '유엔 묘지 정문', '서강대 본관', '건국대 도서관', '서산부인과' 그리고 삼일빌딩입니다. (물론 이보다 더 많아요, 사라진 것도 있고요). 종로 3가에 위치한 삼일빌딩은 현재 리모델링이 된 상태이지만, 예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구조예요. 배우 윤여정의 스크린 데뷔작인 <화녀>(1971)에도 근대화된 서울의 상징으로 삼일빌딩이 등장하는데, 삼일빌딩(3.1 빌딩 / 1969.3.1, 리모델링 2020.3.1)은 197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1985년 63빌딩(현 한화 63시티)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의 최대 마천루로 손꼽히던 건축물이었다고 해요. 당시만 해도 삼일빌딩 층수를 세는 것이 서울 관광 코스 중 하나였다고 하더라고요.

삼일빌딩 리모델링 전과 후 이미지 출처: https://biz.chosun.com/real_estate/real_estate_general/2021/05/24/3IH3LPO5R5G

연면적 3만 6000여㎡에 114m, 31층 높이의 삼일빌딩은 국내 최초로 ‘커튼 월(curtain wall)’을 설계에 적용한 건축물입니다. 커튼 월은 유리를 사용한 빌딩 외벽 마감을 뜻해요. 철골을 외벽으로 노출시키고 철골 사이를 유리로 채우는 방식을 썼는데, 오래되었지만 세련된 느낌이 가득한 건물이었죠, 현재도 그렇지만요. 2018년 3·1빌딩을 매입한 SK D&D와 투자사 벤탈그린오크는 건물 가치를 높이기 위해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2020년 11월에 준공했는데, 건축 설계는 정림건축이, 건축 콘셉트 설계 및 내부 인테리어 설계는 원오원 아키 텍스가 맡았습니다. 방송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원래 있던 틀을 최대한 살려서 건축유산의 가치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했다는 의의가 큰 건축물이기도 해요. 건축가 김중업에 대해선 저도 별도 포스팅 계획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리고, 이 건물 지하, 1층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러보세요. 그의 다른 건축물들도 기회가 된다면 찾아보시고요. 

<사유의 방> © 네버레스홀리다

<사유의 탄생>1,2부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인 <사유의 방>을 모티브로 합니다.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국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공간으로, 이렇게 두 점이 한자리에 놓인 적이 없었던 데다 관련 굿즈가 워낙 인기리에 판매되어 더 주목을 받았죠.


'세상사가 힘들 때 찾아와 영혼까지 치유하고 간다'라는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묘한 미소를 담고 있어 더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프로그램에선 반가사유상의 탄생과 자세와 미소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는데, 1부에서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가 프리젠터로 나서 그 비밀을 파헤치며 문화사적 의미로 접근하고, 2부에서는 발레리노 임선우를 주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반가사유상에 비춰 풀어냅니다. 전시를 아직 보지 못했다면, 이 프로그램을 꼭 먼저 보고 가세요. 제가 전시를 보러 갔을 땐 한참 주목받고 있었을 때라 전시실에 관람객이 정말 많아 사색을 하긴 좀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면 탑돌이 하듯, 반가사유상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한번 잠겨봐야겠어요. 혹시, 누군가 천천히 반가사유상 주위를 걷고 있다면, 저 일 가능성이 높겠죠ㅎ 

《 UHD 역사스페셜》 이미지 출처: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1uhdhistory/pc/index.html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프로그램은 《 UHD 역사스페셜 》 중 < 박물관이 살아있다 >입니다. 2012년 종영된 이후 약 9년 만에 새롭게 제작된 ‘역사스페셜’은 UHD 화질과 참신한 히스토리텔링(history+storytelling)으로 16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했어요. 2022년 2월이 마지막 방송이었으니 시간이 좀 흐르긴 했죠. 역사스페셜은 책으로도 에피소드가 출간돼서, 저도 몇 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입니다. 어렸을 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류의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고고학이나 근대 이전 유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었는데, 확실히 그런 흥미는 커서도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보통 현대미술을 좋아하면 고고학이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유적들에 대한 관심이 적던데, 저는 거의 비슷하게 보러 다니거든요. 지금처럼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때도 박물관을 가는 일이 지루하지 않았고, 해외에 가도 그 지역 박물관은 꼭 들렀고요. 흥미로운 유물들이 많은데, 박물관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 제 주변에는 저랑 가야 박물관을 가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뭘 해주지 않는데, 저랑 가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ㅎ 

<박물관이 살아있다> 1,2부에서는 주먹도끼와 청동거울 등 고대 유물을 다룹니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요. 특히 주먹도끼는 1977년 한탄강 유원지에서 데이트 중이던 미군 병사가 우연한 발견했다는데, 이 우연한 발견은 세계 고고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할 정도였다고 하죠. 암기식으로 외웠던 경기도 연천의 구석기 유적지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다시 크게 와닿으면서 박물관에 가서 주먹도끼를 자세히 보고 싶어 지더라고요. 또, 청동 거울 이야기는 그 당시 사람들이 물건에 담았던 믿음과 기원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사물에 깃든 그 고유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역사라는 게, 새로운 유물이나 사료가 발견될 때마다 조금씩 "해석"이 달라지고 "의미"가 덧대어지잖아요. 어렵게 느껴졌던 장소나 유물을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하니, 홈페이지 다시 보기를 통해 꼭~ 전편을 다 봐두면 좋겠죠. 정서가 풍요로워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크기를 키우는 영화《빅》+ 안녕달『눈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