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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ART藝術)=기예+학술+?(feat2-DRIFT)

예술 이야기

예술(ART, 藝術) = 기예 + 학술 + ? ( feat.2-DRIFT) 


두 번째 작가는 DRIFT입니다. DRIFT는 네덜란드 아티스트 Lonneke Gordijn(1980~)과 Ralph Nauta(1978~)를 주축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입니다. 2007년에 만들어져 암스테르담과 뉴욕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팀들과 협업하며 설치, 조각, 퍼포먼스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그들의 아시아 첫 전시《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가 진행됐는데, 작품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긴 했죠. 예전에 LG아트센터 서울에 대한 글을 썼을 때 그들의 작품 <메도우 MEADOW>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혹시 작품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지난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왼) drift 사진 출처: https://studiodrift.com/drift-artists/ (오) 네버레스홀리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 속하는 그들의 작업은, 기술을 기반으로 자연이 주는 경험들을 미학적, 서정적으로 재현하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분명 동력을 사용하고 있고 기계적인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그 시작과 끝은 자연과 잇닿아있고 또 그 형상을 닮아 아름답거든요. 아무래도 주 매체가 기계적인 속성을 지니다 보니 분석적이고 냉소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단순히 기계적인 것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다고 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낭만이 느껴진달까, 보다 보면 '~멍'하는 것처럼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게  제가 드리프트를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5개월 정도 진행된 이번 서울 전시에선 그들의 대표작이 출품되어 그들의 다양한 작업 방식을 이해하기에는 더 좋았습니다. 전시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설명 역시 이번 전시 출품작 위주로 합니다. 

사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시리즈  출품작 사진 : 네버레스홀리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은 작품은  <Materialism> 시리즈입니다. '물질주의', '유물론'등으로 해석되는  'Materialism'은 사물을 구성한 기본 요소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2018년부터 2022년 작업한 작품이 이번 전시에 출품되었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바비인형과 신라면을 구성하는 내용물들이었는데, 바비인형 하먼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가 금발과 핑크라, 아무리 단순화되었다고 해도 이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신라면(2022)도 라면 면발이 있어서 금방 찾았어요. 신라면은 대량 생산되는 한국의 가공식품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대상이라, 이번 전시를 기념하기 위한 작품으로 특별히 제작했다고 해요. 기성품을 해체해서 원재료의 상태로 다시 만든 <Materialism> 시리즈 대상은, 아이폰4S(2018), 노키아3210(2018), 스타벅스(2021), 빅맥(2021) , 롤렉스(2020), Gameboy classic(2022) 등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보고 사용하는 대상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적게는 몇 만 원부터 많게는 몇 천을 호가하는 제품들이죠. 


하지만 드리프트의 손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기성품을 재료의 상태로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브랜드가 아닌 객관적인 형태로서 그 대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개개의 사물들은 기술의 진보나 개인의 부, 취향 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알고 보면 이들을 구성하는 기초 재료들은 철, 구리, 알루미늄, 지방 등일 텐데, 여러 작업들을 통해 온전한 사물이 되어 또 다른 사회적 가치, 자산적 가치 그리고 미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 거죠. 드리프트의 작업을 통해 특정 오브제가 아닌 재료의 단위, 그 대상을 구성한 물질의 규모로 체환된 모습을 보니, 우리가 갖기 위해 애쓴 것들이 결국은 이런 것들이었나? 하는 철학적인 사고까지 가닿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타이틀을 알기 전엔 비슷한 블록들 사이에서 특정 상품을 찾아내기 어려웠고요, 신라면을 제외하면. 그것 역시 라면 인건 알았겠지만 신라면 인건 몰랐겠죠. 

《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 출품 자료 사진 : 네버레스홀리다

전시장에는 아카이브 자료들을 함께 두어 작품 제작 과정을 살펴보게 했어요. 다시 조립할 재능이 없으니 분해해 볼 생각도 못 했겠지만, 이렇게 작은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소산물에 담긴 인간이 크고 작은 욕망을 참 허무하게 인지시킨 작업이었습니다. 작품을 보며 새삼스럽기도 했지만,  물욕이 마구마구 샘솟을 때 이 작품들을 보면 잠시라도 금욕적인 인간으로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허탈해하기도 했죠.  

 'The Artist she/ her and The Artist he/ him'(2021) 사진 : 네버레스홀리다

드리프트의 관심 대상은 자연, 사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닿습니다. <Materialism> 시리즈 중 'The Artist she/ her and The Artist he/ him'은, 0세, 4세, 40세, 80세, 죽음으로 구분된 블록으로 작가들의 몸무게에 맞춰 총 8개의 구성요소(물, 전해질,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핵산, 비타민, 헤모글로빈)로 가시화시킨 작품입니다. 인간 생사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작업의 각 블록은 1:1:2 비율로 제작되어 건축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은 어떻게 존재를 하게 된 것일까?', '무기질만으로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을까?', '진화의 처음과 끝엔 무엇이 있을까?' 등 울퉁불퉁한 생각들을 거미줄처럼 파생되게 만들어요. 응시하는 작품의 형태가 단순하다고 해서 관람자의 생각까지 꼭 닮아가는 건 아니니까요.   

 스토리지 현장 설치 사진 : 네버레스홀리다

드리프트의 작품 중 가장 익숙한 <skylight>는 공학적 설계를 통해 자연의 원리를 재현한 작품입니다. 꽃들의 수면운동(nyctinasty, 개폐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5년의 연구 끝에 그들의 개념을 시각화할 수 있는 완벽한 형태를 만들게 되죠. 그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질문이 바로


 "How an inanimate object can mimic those changes that express character and emotions?"

(어떻게 하면 고유의 성질과 감정을 표현하는 대상을 무생물체가 모방할 수 있을까)였다고 해요. 


드리프트는 환경에 맞춰 변화하고 적응해 나가는 자연의 모습이 마치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대요. 자연스러운 형태와 움직임을 위해 100번 이상의 레이저 커팅과 40시간 이상의 손바느질을 거쳐 실크 꽃잎을 완성했고요. 밀리미터(mm) 단위까지 조정할 정도로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보니 섬세한 표현까지도 가능한데, 보면, 그냥 우아함 그 자체입니다. 기계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다 보면 금세 잊게 되고요. 저는 꽃보다는 물속에서 유영하는 해파리의 모습이 연상되었는데, 꽃이든 해파리든 확실히 이 작품은 숭고미가 느껴집니다. 거기에, 미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인 필립 글라스(Philp Glass, 1937~)의 음악이 깔리니 더 몽환적으로 다가왔고요. 

 아카이브 사진 : 네버레스홀리다

이 작품은 어디에 설치되냐에 따라 그 느낌이 확 달라지는데, 중요한 건 어디에도 잘 어울리고 스며드는 작품이란 거죠. 현대 건축에도, 고전 건축에도 어울릴 뿐만 아니라 공간을 바꾸는 힘도 강합니다, 자연물이 그렇듯이. 예전에 문화역284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으니 못 보신 분들은 작가 홈페이지에서 혹은 유튜브로 관련 영상들을 확인해 보세요. 

(위)출처: https://studiodrift.com/work/shylight/(아래)문화역 284 : 네버레스홀리다

드리프트가 작품에 사용하는 기술들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자연환경과 그 안에서 주고받는 영향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됩니다. 자연을 한정된 공간으로 옮겨올 수 없으니, 기술의 힘을 빌려 자연의 속성을 보여주는 거죠. 결국 작품에 대한 관심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데, 그 방식이 꽤 진지해요. 의무교육을 통해 우리가 배워온 자연과학, 물리, 생물 등은 특정 전공이나 관련 직업이 아니라면 다시 되새기긴 어려운데, 작품에 기술이 접목이 되다 보니 그걸 이해하기 위해 가끔씩 책을 찾아보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한 뼘 더 작품에 대해, 기술에 대해, 작가의 의도에 대해 나아가 타인과 사회 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게, 기술이 접목된 예술작품의 큰 장점입니다.

<Amplitude>(2015)사진:네버레스홀리다

개인적으로 가오리를 연상케 한 <Amplitude>(2015)는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투영된 작업입니다.  사전적으로는 도량, 충분함, 진폭을 뜻하는데,  작품 제목이 아니었다면 평생 찾아볼 일이 없을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어렵죠, 작품명이. 하지만 작품은 생각보다 간결합니다. 중심축을 기준으로 설치된 20여 쌍의 투명 유리관이 일정한 속도로 상하 운동을 하는 작품이거든요. 앞서 말한 최우람의 <작은 방주>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개별적인 상하운동보다는 군집적인 운동에 가까워요. 그래서 스펙터클은 약하지만, 파도 같기도 하고, 새떼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살면서 보아온 여러 비슷한 움직임을 연상케 했어요. 사진으로는 크게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긴 석영 유리관(quartz glass)으로, 정확하게 길이를 재어보진 않았지만, 하나의 유리관 길이가 약 1.5~2미터 정도? 인간의 호흡, 심장박동과 같은 신체 리듬과도 동기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심리적 불편함은 전혀 없었어요. 혹여나 유리관이 깨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긴 했지만요. 그것 역시 자연의 연약함을 강조한 작가의 한 수였겠죠. 

<Fragile Future>(2019) 스토리지 설치 사진: 네버레스홀리다

이번 전시에서 제가 제일 좋아한 작품은 민들레 조명으로 이루어진 빛 조각 <Fragile Future>(2019)입니다. 봄에 암스테르담 전역에서 채취한 약 15,000여 개의 민들레를 건조한 후 씨앗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떼어 LED 조명에 붙여 완성한 작품이에요. 엄청나죠! 모듈화 된 상태의 민들레 조명은 인공 기술 그 자체지만, 충분히 자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세상과 자연, 작품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고요. 보면서 내내 민들레 바람을 살짝 불면 민들레 씨앗이 흩어질까? 하는 위험한 생각을 했지만, 겁이 많아 그건 못하겠더라고요. 물론 했어도, 흩어지진 않았겠지만요. 보통은 작품에 인물사진이 겹쳐지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스케일 비교를 위해 살짝 찍어봤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혹시 이 사진의 주인공분들이 제 글을 본다면 말씀 주세요. 사진 드릴게요 :)

< Fragile Future>(2019)스토리지 아카이브 설치 사진: 네버레스홀리다

이 민들레 조명은 소장도 가능합니다. 드리프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이거든요. 모듈의 형태는 아니라 한 송이부터 세 송이까지 유리관에 담겨있어서 프리저브드 꽃을 보는 듯하달까. 판매 가격이 220유로에서 1850유로인데, 배송비가 포함인지는 모르겠네요. 홈페이지에 재밌는 영상들도 많으니, 시간 날 때 한번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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