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김용익,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2023.08.24~11.19
늦더위가 아직 한창이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가을이 왔습니다.
9월은 서울아트위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예술 축제들이 즐비해 발품을 파는 만큼 향유의 기회가 높아지는 달이죠. 좋은 전시가 너무 많아서 뭐부터 소개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현대미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깊게 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있어 그 이야기를 먼저 나눠봅니다.
올해 4월에 개관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산하 기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서울시립난지창작스튜디오, SeMA벙커, SeMA창고, SeMA백남준기념관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에, 올해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가 추가된 거죠. 이름처럼 이곳은 근현대 미술 역사 자료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아카이브기관으로, 예술인 개인과 단체가 남긴 수많은 기록과 자료를 수집· 선별·보존·연구합니다. 건물은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 총 3개로 나눠져 있고, 내부는 전시장, 도서 열람실, 자료실, 보존실, 교육 활동실, 다목적 홀 등으로 구성되었어요.
이번에 소개할 《김용익,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는 지난 4월 개막해 7월에 종료된 개관 기념 최민 컬렉션 기획전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에 이은 두 번째 전시로, 개념주의、모더니즘、공공미술에 걸쳐 다층적인 작업을 전개해 온 작가 김용익(1947~)의 미학과 태도, 사유와 실천에 주목한 작품과 자료들을 선보입니다.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소장 김용익 아카이브 컬렉션 1,034건 중 주요 작품 38점과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생산된 300여 점의 아카이브로 꾸민 소장자료 기획전으로, 1974년 데뷔 후 50여 년간 개념주의 미술을 선보인 작가의 첫 공립미술관 개인전이기도 해요. 그만큼 볼거리는 많지만 쉽게 읽히는 전시는 아닌데,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휴관일 제외 도슨트 프로그램이 3차례 운영되니 이를 잘 활용해 보세요.
전시는 모음동과 배움동에서 진행됩니다. 대부분의 주요 작품들이 모음동 전시실 1과 2에 집중되어 있어요. 건물 밖은 물론 모음동 내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에 있는 공용 도서 열람 공간에도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그냥 쉽게 모음동 전관과 배움동 일부에서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시는 '자기부정의 초初(self-denial/극기, 금욕)', '편집의 초草(editing)', '대화의 초抄(dialogue)', '지속태를 위한 의식', '난세에의 태도', '박스들의 문답' 총 6개의 파트(part)로 구성되는데, 동시대에 발표한 시리즈 작품들도 많고 그에 따른 자료들도 많다 보니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려면 최소 서너 번은 방문을 해야겠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이번엔 섹션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들 위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작가 김용익은 1968년 서울대 농과대학을 그만두고 홍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하면서 미술에 입문합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생들의 모임인 ‘에스쁘리’ 4회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1974년 작가로 데뷔했고, 1980년 홍대 대학원 졸업 이후 대학 조교, 중고등학교 미술교사, 대학 교수 등으로 재직하며 예술 활동을 지속했죠. 2011년엔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라는 제목의 책도 냈는데, 그 안에는 제목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작업한 작품과 예술 경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300페이지 넘게 담겨있습니다.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생각해 볼 만한 포인트가 많아 재밌습니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평면 오브제〉 시리즈를 포함 ‘판지’, ‘빗금’, ‘조각’ , 소위 ‘땡땡이’라 불리는 〈가까이... 더 가까이... 〉 등 여러 형태의 연작을 제작합니다. 개념을 시각적인 것(물성을 지닌 것)으로 연결하는 과정으로, 그의 작품은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재료보다는 광목천, 판지, 종이 등 연약한 재료를, 견고한 형태나 정제된 양식보다는 부드러운 형태나 불균형한 구조, 희미한 드로잉 등의 양식을 지닌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죠. 전시장 초입엔,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어 있는데, 『월간재정』(1987년 2월호)에 실린 작가 노트에서 발췌된 이 글은, 그 당시 그의 작업 경향을 잘 설명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셔야 합니다.
<평면 오브제> 시리즈는 김용익이 작가로 데뷔한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진행된 일련의 설치 작품입니다. 천을 벽에 고정한 뒤, 천이 늘어지며 생기는 주름의 모양을 에어브러시로 따라 그린, ‘실제 주름’과 ‘그려진 주름’을 병치시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작품이죠. 천은 평면이지만 걸리거나 놓이는 형태에 따라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속성이 있잖아요. 지금이야 캔버스 위에 안료로 그린 '순수 회화'만 회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엔 그야말로 센세이션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고정관념과 전통 미술사조에 균열을 내는 작업 방식이었을 테니 분명 요란하게 공론화가 되었을 거라 예상됩니다. 미니스커트와 장발이 단속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잖아요.
작가는 적은 노동과 돈이 적게 드는 재료, 특별한 기술 없이 누구나 (따라서) 창작할 수 있고, 쉽게 운반할 수 있으며 좀 찢어지거나 더럽혀져도 되는 ‘평면 오브제’ 시리즈를 주 재료인 '천'을 사용해 1970년대에 전개했고, 이러한 작업 개념과 형태가 크게 주목받아 상파울루비엔날레(1975)에도 참여하고 일본에서 개인전(1978)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평면 오브제’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면서 이 시리즈와 멀어지죠. <평면 오브제> 시리즈의 종결은 자신의 작품을 박스와 포장재에 넣어 밀봉한 상태로 출품한 《제1회 청년작가전》(1981)으로 보는데, 그 퍼포먼스가 있기 전인 1980년 <오리진> 전과 1981년 <에꼴 드 서울> 전에선 이전 평면 오브제 시리즈에 쓰였던 천들을 모아 펼치지 않고 하나로 뭉쳐, 의도적으로 벽 가운데가 아닌 전시장 구석에 설치하면서 나름의 고별식을 갖기도 합니다. 작가에게 동일한 형식의 작품을 강요하는 화단 풍토와 그 당시 사회‧정치적 상황에 관한 회의감의 표현이기도 했던 이 작품은, 전시장에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도 ‘판지’, ‘조각’ 등을 사용해 회화의 모더니즘 개념을 시각적으로 연결한 시리즈 작업을 지속합니다. 동일한 개념 작업이지만, 천 작업이 우연이나 착시에 의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면, 판지나 조각은 조금 더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대상을 판단할 수 있게 했다는 게 차이였죠. 게다가, 수공도 엄청 들어갔고요. 그러다 보니 작업들을 하면서 자신이 말했던 '좋은 작품의 기준'에 대한 생각도 변화를 하는데, 아무래도 판지나 조각이라는 대상의 속성이 세밀한 계획하게 창작되다 보니, 돈도, 시간도, 노력도, 운송도 '천'보다는 많이 들게 되잖아요.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마주하면 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와닿을 겁니다.
이 시기 작업 중 제가 주목한 작품은 <신촌의 겨울에>(1981년)입니다. 12.7 ×8.9cm의 사진과 에세이 텍스트 14장을 배열한 구성의 작업이죠. 작가 최철환(최민화)이 기획한 《신촌의 겨울》(1981) 전에 출품하기 위해 신촌 일대 거리를 거닐며 직접 촬영한 사진과 쓴 에세이 텍스트를 배열한 것으로, 생각의 단편들과 신촌 일대의 사진이 파편처럼 있어 '그때그때의 감상을 적었나?' 싶었는데, 작가는 이 작품을 “1980년 광주항쟁 직후 어찌할 수 없는 정치적인 현실 앞에 무력해진 한 예술가의 진한 넋두리”였다고 회상했더라고요. 우리 현대사 진행 과정 속에서 정권에 휩쓸려 사그라든 사람들과 그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사회 문제를 바라보며 소시민으로서 예술가로서 느끼는 무기력함이 담겨 있는 작업으로, 그가 당시 천착한 모더니즘 개념과 관련한 작품이 아닌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게 이 시기 다른 작품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죠.
완결 작업의 기획 콘티를 보는 듯한 이 작업은, 자신이 찍은 이미지를 의도에 맞게 재편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편집으로 의도에 맞게 '선택'되긴 했어도 당시 신촌장, 신촌여관, 신촌 로터리 예식당 등의 간판이 찍힌 도시 풍경과 연탄, 강아지, 벽돌 등 일상적인 풍경은 '있는 그대로' 촬영되어 작업 그 자체로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돌다 보면 가운데에 우뚝 솟은 이 작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1989년 인공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인 <두 조각>(1989)이란 작업이죠. 두 장의 합판을 겹쳐 세운 뒤 날개처럼 문을 달아 열어젖히면 안쪽의 추상 표현주의 화풍의 면을 볼 수 있는데, 내부에는 작품이 전시된 인공갤러리 개인전 리플릿이 부착되어 있어요, 폭이 좁아서 좀 왔다 갔다 하면서 봐야 종이 같은 게 보이긴 하지만요. 이 시기부터 작가는 입체 작품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치로 합판 표면에 원형의 구멍을 뚫기 시작합니다. 이 입체 작업에서 시작된 원의 형상은 이후 그의 대표작업으로 불리는 ‘땡땡이’ 회화로 옮겨지고요. 그 첫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구멍들이 임의로 뚫려있는 것 같지만 모두 계획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원리는, 그의 저서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제가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서요 ㅎ
이 공간에서 꼭 보고 가야 할 작품 중 하나는 <삼면화>(1970-2022)입니다. 〈삼면화〉는 약 50년 간 이어진 김용익의 작업 세계를 하나의 나무 상자 안에 넣어 집대성한 작품으로, 유럽의 종교화 양식인 ‘삼면화’에서 착안해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 화면에는 죽은 자를 구원하는 지장보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불교 지옥도 도상과 함께 ‘편집으로서의 예술’에 관한 작가 글이 적혀 있고, 그간의 작품을 떠나보낸다는 의미로 내용물을 솜으로 두른 뒤 향과 ‘저승길 노잣돈’으로 쓰일 동전도 놓여있습니다. 또 작가의 육신을 상징하는 마른 나뭇가지엔 죽은 후 극락왕생을 바라며 ‘금색 수의’도 입혔는데, 좀 그로테스크하긴 하지만 뭔가 집약적으로 자신을 상징하는 사물과 텍스트를 잘 넣어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작가는 '관'시리즈도 진행했는데, 이는 '근대주의의 꿈과 이상이 실패한 현시대에는 창조로서의 예술이 아닌 편집으로서의 예술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작업 시리즈로, 자신의 작품 또는 버려진 물건을 포장하거나 상자에 담아 장례를 치르는 작업입니다. <삼면화>도 그 일환이지만, 전시장에 가면 더 직접적인 작품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공공연하게 평가되는 일명 '땡땡이' 시리즈인 <가까이 ...더 가까이...>는 1990년대 초에 발표됩니다. 이 작업은 원 또는 사각형의 패턴이 하얀 평면 위에 배열된 작업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하게 적은 텍스트, 식물을 짓이겨 희미하게 칠한 붓질이 드러나요. 작품의 진면목이 가까이 와서 봐야 보이기 때문에, 이 시리즈 작품의 제목이 <가까이... 더 가까이...>입니다. 언뜻 보면 미니멀한 평면 작업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얇은 선, 흐릿한 글씨, 식물을 짓이겨 만든 얼룩 등이 드러나는 작품이라 반전을 느낄 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모더니즘의 ‘인증된 이미지 권력’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전시장엔 캔버스 작품과 함께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작품 구상을 위해 작가가 사용한 스케치북을 함께 뒀는데, 이를 보면 캔버스의 다양한 규격에 따라 어떻게 요소들을 배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기존 화면이 있는 캔버스 위에 덮거나 원을 얹히는 작업에 대한 구상과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미완성의 스케치들이 포함되어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매 작품마다 다 사연이 있겠지만, 이번 전시에서 가장 사연이 많거나 이야기가 깊게 담긴 작품은 <너를 보내며>(1995-2012)입니다. 1995년부터 2012년까지 작업한 <너를 보내며>는 작가의 의도와 우연과 사건이 만나 완성된 작품입니다.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죠.
이 작품의 원제는 <흙 묻은 그림>(1995~2011)으로, 제작기간이 무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총 15년입니다. 물론, 작품에 손을 댄 시간보다, 놓고 있던 시간이 훨씬 많긴 했죠. 이 작품의 최초 제목은 <가까이... 더 가까이...>였어요. 하얀 바탕에 파란 땡땡이만 그려서 1차 완성했던 작품을 10년이 지난 2005년 11월 다시 꺼내어 그 위에 연필 드로잉을 더하고, 또다시 4년이 지난 2009년 5월, 이 그림을 작업실 처마 밑에 내놓습니다. 그렇게 이 작품은 1년 동안 바깥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림하단에는 흙물이 들었죠. 2010년 이 작품은 다시 작업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작가는 여기에 나무장식을 덧대고 금색 반짝이 물감을 칠해 <흙 묻은 그림>을 완성합니다.
그렇게 <흙 묻은 그림>은 2012년 서울시립미술관의 한 단체전에 출품되는데, 이때 어린이 관객들이 작품에 낙서를 하는 사건이 발생하죠. 그림 속 형광펜 낙서가 바로 그때의 흔적들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바로 작가에게 전달됐고, 이를 전달받은 작가는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었다 생각하고 유리관을 씌워 작품을 훼손된 채로 보존합니다. 그리고 그 사연을 그 위에 글로 적어 작품명을 <흙 묻은 그림>에서 <너를 보내며>로 바꾸어 붙였죠. 작가는 미술 작품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트리는 것을 작품의 일부로 통합함으로써 미술의 역할이 이러한 상징 질서에 균열을 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영역임을 주장했다고 해요. 전 이 작품을 사건 발생 전에 봤고 후에 얘기를 들었는데, 그 당시에 진짜 엄청 황당했었어요, 어떻게 벽에 걸려 있는 작품에 낙서를 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관람객이 전시장에 걸려있는 작품에 낙서를 하는 동안 어떤 제재도 없었는지. 제가 들은 풍문으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낙서를 했다는데, 직접 본건 아니라서 확실한 건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에서 다시 봤을 때, 지금의 형태로 되어 있어 '작가가 참 대담하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곤, 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이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일까 의아해했고요. 원래 국현미 소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면지 드로잉 일기>(2005-2009)는 제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2005년 10월부터 2009년 8월까지 매일 한 페이지씩 드로잉 일기를 그립니다. 21 ×29.7cm에 적힌 약 1,500일간의 기록은 양평 자택에서 서재로 사용한 곳에서 작성한 것으로, 그 당시 작가가 참여했던 각종 위원회 자료나 공문, 프로젝트 문서 뒷면을 사용해 이면지 드로잉 일기가 되었죠. 마치 공식적인 활동의 이면을 보여주려는 듯 이면지에는 작가 개인의 심경과 일상, 미술과 작품에 관한 생각, 작업 구상, 삶과 사회, 자연의 기록, 사회정치 현상에 관한 생각, 인간과 문명 등에 관한 단상 등 분리될 수 없는 작가와 개인으로서 삶이 포개져 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노쇠한 자기 자신의 신체와 우울한 심경, 죽음과 작업에 대한 고뇌 등이 일기 전반에 짙게 배어있지만, 그를 둘러싼 자연과 같이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한 개인의 솔직하고 친밀한 고백이 이어져 더 가치 있게 다가오죠. 작가는 원래 이 작업을 이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고 죽은 후에 보여주리라 여기고 솔직하게 적었다고 해요.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242개의 일기는, 아쉽게도 높은 곳에 놓인 것이나 뒷면을 볼 수 없는데,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전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에는 이면지 드로잉 일기 뷰어가 설치되어 있으니 참고하세요.
전시장엔 첫 공개되는 작품도 있어요. 난괘도 시리즈도 그 중 하나죠. 종이 상자에 아크릴릭으로 그린 이 작품은, 팬데믹 기간에 시작된 작업으로, 어려운 시대에 인간의 처세를 이야기하는 주역의 64괘 중 4대 난괘 ‘중수감(重水坎)’, ‘택수곤(澤水困)’, ‘수뢰준(水雷屯)’, ‘수산건(水山蹇)’을 통해, 팬데믹으로 변곡점을 맞은 현재 삶과 문명을 성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네모로 상징되는 땅과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9개의 원이 배열된 화면으로, 네모가 만들어내는 6개의 괘가 하나의 난괘도를 상징하는 구도죠. 각 캔버스마다 쌍을 이루는 2개의 난괘를 마치 부적처럼 그렸는데, 평소 '주역'이나 '팔괘' 이런 용어들과 멀리 지내셨다면 개념적으로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작품입니다. 작가는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을 보면서 양으로 상징되는 성장의 세가 멈추고 음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체감하며 난괘도가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성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해요. 4대 난괘는 어려운 상황에서 지나치지 않은 처신을 강조하는데, 작가는 이를 모더니즘 문명이 역설하는 가치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해석해, “그늘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붙였죠..
마지막 작품은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2022)입니다. 캔버스에 아크릴릭으로 그린 후 투명 비닐을 위에 덮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린 작품이죠. 2018년 12월 31일, 인생의 말년에 접어든 작가는 작업에 관해 고민한 끝에 작업실에 남아 있는 회구(繪具)를 다 소진해 나가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색면 추상을 연상시키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캔버스를 나누고 그 위에 여러 가지 형상을 겹치게 해 많은 면을 쪼개고, 다시 그 위에 물감을 골고루 사용하며 소진하는 프로젝트'죠.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는 이러한 물감 소진 프로젝트 위에 검은 물감을 끼얹은 작품으로 동명의 독일 환경 운동 단체의 시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2022년 독일환경운동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유명 작품 위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거나 스프레이를 뿌리는 시위를 통해 예술 작품을 잃는 것보다 지구나 자연을 잃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우리 사회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던졌죠. 이러한 활동은 독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도 지속되었는데, 이들은 유리 액자 표구가 되어 표면이 보호받는 작품만을 선택해서 시위에 활용했어요. 작가는 이러한 지점에서 그들의 행위를 과격한 테러가 아닌 일종의 퍼포먼스로 해석했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그들의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예술을 렌즈 삼아 사회 정치적 투쟁을 문화 영역과 연결하는 그들의 방식에 조응합니다. 전체 전시 제목이기도 한 이 작품은, 지금 현재 작가가 가장 천착하고 있는 주제들을 잘 보여주는데, 모음동 전시장 내에서도 동선상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더 짙게 여운을 남겨줍니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규모로 작품과 자료가 소개되는 일은 드물 뿐만 아니라, 전시장 디자인도 좋고 자율 활동 프로그램도 재미난 게 많으니 전시 기간 내에 꼭 챙겨보세요. 도서관처럼 특별한 절차 없이 들어와서 둘러보거나 책을 보다 쉬어가도 되고, 카페가 있어 차도 마실 수 있어 좋고요. 시간 여유가 된다면 도보 거리에 있는 김종영미술관, 삼세영미술관 등도 함께 보면 더 알차니, 하루 예술 산책 일정 꼭~ 잡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