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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Dec 06. 2021

내 일상의 이유

청년문화백서(가제) 원고


 한 달에 한 번은 황금색 조명과 행잉 플랜트가 어우러진 서점에서 커피를 내린다. 때로는 서점에서 브이로그 만드는 법이나 꽃꽂이를 배우기도 한다. 서점에서는 꾸준히 독서모임과 필사 모임을 운영하는데 2주에 한 번 정도는 모임에 참여해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과 '책을 매개로 한 나의 이야기'를 나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서점의 청년이 열어두는 화상회의 공간에 모여 각자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한다.


  우리는 모두 본업이 있고 대부분의 일상을 달리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든지 서로에게 연결할 수 있다. 이토록 다른 우리가 연결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세심하게 설계된 우리의 플랫폼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광안리 독립서점 두두디북스 청년 조합원이다.

  두두디북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딱 잘라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주인이 마스코트처럼 공간을 지키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곳도 아니고 주중에는 네이버 무인 대관을 목적으로 비어있는 날이 더 많다. 주말에는 청년조합원들이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돌아가며 5시간씩 공간을 지킨다. 책마다 조합원들의 추천사가 있고 조합원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투자는 있지만 수익은 없다. 그들이 돈과 시간을 쏟으며 얻는 것이 있다면 생업으로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인격의 가면이다. 삶을 겪고, 고민하고, 겸허히 배워가는 태도를 가진 인간적인 가면.

  전통적으로 서점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었다면 20여 년 전부터는 책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이제는 서점마다의 색다른 세계관을 가진 문화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누군가는 진로를 고민하는 여정에서, 누군가는 직장에서 잃어버린 자아 감각을 찾기 위해, 또 누군가는 만남이 그리워서 서점을 찾는다. 이 공간에서 그들은 특정 사람들을 만나 규정된 관계에 편입하여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점마다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주제의식'이나 '분위기' 속에서 오고 가는 '행인'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서점이 나른하고 유연한 덩굴식물처럼 인생의 길을 찾는 젊은 청년들에게 주는 소속감이란, 다수에 잠식되지 않는 뾰족한 개인으로서 나누는 형식 없는 우정이다. 형식 없는 우정은 역할은 있어도 계급 없는 관계이자, 정해진 기한이 없어 짧게는 하루에서 무한대로 뻗어갈 수도 있는 관계이다. 동질성의 친밀함은 배제하되 공격적이지 않게 서로를 궁금해하기도 하는, 건강한 개인주의자들의 전유물이다. 그것이 자의식 과잉에 상처 입은 현대인들을 모여들도록 두두디북스가 설계한 플랫폼인 것이다. 


  나는 두두디북스를 만나기 전 까지는 한 번도 이런 우정을 나눠본 적이 없다. 인간은 본래 내밀한 감각을 가지고 홀로 태어나 살아있는 모든 순간 자신을 견뎌야 하는 존재로서 타인과 교류할 수 없는 본성은 행여 그것이 인간 모두가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것이라 해도 철저히 부정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가면만 내보이며 더 큰 존재에 기생하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으므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정체성에 구겨 넣지 않으면 죽지 않고도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소외와 배제의 나락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만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다.

  오래 묵은 그 메시지는 도처에 있어서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작은 도시 특유의 이웃 친화적인 환경에서 '남부끄러운 짓 말라'던 보수적인 문화자본만을 허락받은 유년시절. 정해진 시간표대로 끊임없이 나아져야만 하기에 쓸모없는 실패는 금물이라던 학교. 취업률에만 목매던 대학교와 그마저도 못 가면 대신 하루를 촘촘히 관리해주던 대형 학원. 아무것도 생각 말고 조직만 따르라던 직장. 스마트폰이라는 무기로 경제전 자유와 선한 영향력의 기치 아래 자본주의라는 더 큰 세계에 편입하라는 저 수많은 자칭 구루들까지.

  중요한 것은, 나는 더 이상 메시지 리시버로만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인정 투쟁 이후 남은 것이라고는 만족을 모르는 열등한 안락과 나를 미워하는 마음뿐이니 설경구 대신에 기찻길에 기어 들어가  '나 이제 돌아갈래'라고 외치고픈 심정이다. 내게 유독 그런 시기가 빨리 왔을지 몰라도 둘러보면 그렇다. 어설픈 성공에 취한 30대든, 술에 취해 사는 40대 상사든, 은퇴를 두려워하는 50대 팀장이든, 더 나은 기회가 있을 거라 믿고 앞만 보는 20대든 다를 바가 없다. 끝에는 서운할 것이다. 이렇게 남의 걸음에 맞춰서 애써서 살았는데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아무도 너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어.

  그래서 당당히 넥타이를 풀고, 화장을 지우고, 구두를 벗어 놓기로 한 것이다. 메시지 밖의 공간을 탐험하기에 좋지 않은 구색은 모조리 지워갔다.  나중에 필요할지 모른다며 자격증 수험서를 기웃거리지도 않고 남들 다 한다는 재테크 공부도 적당히 치워두고 인간적인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따끔한 훈계로도 나아지지 않았던 나의 게으른 기질이 기지개를 켰다. 비로소 목을 축이고 하나씩 해나가는 루틴이 생겼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고, 주말에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나를 변화시킨 경험들은 기록한다. 나는 불안하고 고된 하루에도 든든히 뿌리내린 경험의 땅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다. 이미 안전하기에 나는 여기를 떠날 필요가 없다.

  인간을 머무르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런 걸까. 내가 원하는 정체성으로 살 수 있는 일상과 희망. 내가 피부로 느끼는 나의 하루가 내 마음에 들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희망이 들게 하면 인간은 떠날 필요가 없다. 직장이라는 의식주에 충실한 경계 안으로 사람을 끌어 오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무를 다하면 곧 떠날 뜨내기로만 모인 동네는 언제나 외롭고 불안한 개인이 넘쳐난다. 신혼부부들을 위한 뉴타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필요에 의한 유입은 그 필요가 다하면 떠나간다. 더 나은 부동산을 찾아서 '탈출'하기 전에는 오로지 그 필요에 합목적적으로 일상을 잘라 쓸 수밖에 없다. 
  
  어떤 정체성으로든 머무를 수 있고픈 일상을 만드는 도시가 결국은 살아남을 것이다. 외롭게 하루를 보내는 아버지를 보는 청년, 서글프게 젊은 시절만 되새김질하는 어머니를 보는 청년은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권위적인 직장 분위기에 주눅 든 청년은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보는 어른들이라고는 교과서를 읽는 선생님뿐이라면 청년은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우정을 나눌 친구가 없고, 사람과 만날 여유가 없는 청년은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닮고픈 어른의 삶이 있고, 영위하는 일상이 있고, 진정한 우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청년들이 머무를 것이다.

  두두디북스는 책으로 삶을 엿보고 질문으로 인생을 돌아보며 더 나은 삶은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다는 경험을 배태한 모성의 공간이다. 삶을 경외시하는 청년들은 두두디북스의 문을 두드리고 지금의 삶을 한층 더 사랑하며 돌아간다. 어느덧 만 두두디북스가 광안리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두디북스가 문을 연 것은 2016년. 이와 비슷하게 4~5년 전부터 부산의 각 생활 권역마다 개성 넘치는 독립서점들이 문을 열고 문화적 연결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독서와 문화를 소원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도시는 밤새 취해있고 고민 없이 내뱉어진 혐오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문화가 없다면 인간의 삶이랄 것도 없다.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오로지 가지고 싶은 것은 한없는 문화의 힘이라고. 인식의 변화는 느리지만, 제도의 변화는 그나마 빠르다. 세대 구분 없는 도서와 독서모임 지원, 각종 커뮤니티 지원을 늘려 두두디북스 여타 독립서점 모두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부산시가 문화도시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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