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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Oct 18. 2021

캠핑을 다녀왔다

N페르소나 독서모임ㅡ엄마 박완서의 부엌

일요일 밤 11시 30분.

출근을 8시간 앞두고 글을 쓰기로 했다.


일요일 밤은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편이다. 새벽 3시고, 4시고 책을 읽다가 침대에 누워 어둠이 정신을 삼킬 때까지 버티며 잠결에 흔들리는 글을 본다. 평소에는 좀처럼 읽히지 않는 책이 어찌 그 시간만 되면 그렇게 다급하게 마음에 들어앉아 버리는지. 맹세코 책이 좋아서는 아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잠이 들어야 할 한 밤 중에 책을 펴보고는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일요일 밤, 월요일 새벽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배부름보다 고양된 가치를 찾는 시간이자 소화하지도 못할 책을 탐하는 죄악의 시간이다. 몇 글자 읽어 내리다가 이성을 잃고 다른 책을 주문하곤 하는 시간도 아마 월요일 새벽녘쯤일 것이다.


캠핑을 다녀와서 급하게 전자레인지에 데운 함박스테이크를 먹고 잠시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10월의 찬 공기가 서글펐다. 벌써 밤이야. 내일이 코앞이야. 더위로 사람을 놀래키는 여름이나 추위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겨울과는 달리 언제 왔는지 모르게 곁에 있는 가을이 좋다던 조카 동이의 글이 생각났다. 나도 가을이 좋았는데 벌써 찬 공기가 야심 차게 자기주장을 한다. 멀어져 가는 가을밤이 아까워 벌떡 몸을 일으켜 책을 폈다.


6월이 중순에 다다르면 이파리와 구별되지 않던 녹색 열매가 누렇게 익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진다. 갓 떨어진 살구를 입에 넣으면 새콤하고 달콤한 풍미, 부드러우면서도 물컹대지 않는 열매의 향취가 즐겁다. 그러나 떨어진 살구는 겨냥 두면 이삼일 후에 곧 상해버린다. 그렇다고 미리 나무에서 따려고 하면 덜 익어 있다.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매일 떨어지는 것을 찾아 주워야 한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 호원숙-


살구나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상의 기록인지. 잘 지은 밥처럼 달콤하고 따뜻했다. 살구꽃이 필 때면 문인들이 놀러 와 포도주에 취해 하룻밤 재워 달라고 떼를 쓰던 날이 길면 얼마나 길었을까. 그 짧은 시간이 기록된 한 편의 에세이에 마음이 노곤해졌다. 앞치마를 두른 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엄마를 사심 없이 그리워하며 나박김치를 담는 글은 나의 하루와는 사뭇 달랐지만 그 편안한 분위기가 '일상'이라는 보편성을 득할만했다. 글을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책을 덮었다. 녹두며, 준치며, 꽈리며 알지 못하는 감각을 상상하기도 하고 만두소에 들어가는 고춧가루 하나까지 기록하는 작가의 감성에 젖어 오늘의 기억을 되짚었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는 일상의 기록은 잘하지 않는다. 아마도 지나간 하루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무심한 성격 탓일 것이다. 침묵과 고단함, 지나친 개입과 기대 그리고 의무로 이루어진 나의 가족 개념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했던 기억을 사심 없는 시선으로 묘사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도 있다. 나에게 타인이란 애써도 가 닿지 못할 불능의 영역이자 나를 침해하는 권위를 지닌 부정적 존재였다. 나 같은 사람에게 가족이란 막연히 사랑하기도 미워하기도 힘든, 망각하고 용서하는 기술을 익히지 않고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도 그놈의 살구나무 덕에 일기 비슷한 것을 써보자면, 이번 주말엔 시어머니와 신랑의 조카 동이와 캠핑을 다녀왔다. 4년 전 젊었던 시누이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우리는 종종 여행을 다녔다. 제주도도 가고, 강원도도 가고, 전라도 끝에 있는 신안도 다녀왔다. 당일치기로 거제나 경주, 부산의 외곽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여행을 떠날 때마다 어찌나 다투는지 미워하거나 한 편이 되는 법밖에 알지 못했던 나는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족들 사이를 우왕좌왕했던 것 같다.


다툼의 이유야 늘 다르면서도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얘기하자면 치사스럽기도 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결혼한 지 5년 여가 흘러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 치사스러운 다툼을 하고도 서로가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이 가족의 사랑이라는 사실이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그래도 홀로 계신 어머님을 챙기겠다고 여행을 다녀올 때면 다툼에 지치고 서운한 감정이 들어 남편은 다시는 동이와 어머님과 여행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그 말을 믿고 한 두 주 조용히 지내다가 맛있는 식당이나 걷기 좋은 길이라도 알게 되면 또 어머님과 동이 생각에 여행을 나서게 되니 결혼하고 5년 차인 지금은 그 말이 사랑하는 아픔을 삭이기 위한 방편이라 여기게 되었다.


이번에도 여행을 나서는 길에 크고 작은 미움들이 일었다. 학교 과제가 많은 동이가 함께 갈지 알 수 없었고, 동이와 늘상 투닥거리면서도 막상 동이를 두고 가기는 꺼려하는 어머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답답하게 집에만 있는 것을 힘들어하던 어머니를 위해 캠핑장에 딸린 작은 방을 잡아 두었던 신랑도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직장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캠핑에 가져갈 거라고 전 날 시켜두었던 식재료는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배송이 늦어져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어림잡아 말해두었던 약속시간은 지켜지지 않았고, 가족들을 먹이는 게 제일 중요했던 어머님이 분주해지자 갈 길이 멀었던 신랑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남해로 출발하며 약간의 날 선 취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동이의 한글날 백일장 이야기가 나왔고, 동이의 수행평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아직도 아기 같은 동이의 웃음소리, 할머니를 향한 동이의 애교 어린 애정의 갈구, 신랑의 아재 개그 몇 마디에 어느새 분위기가 사르르 녹았다. 피곤한 신랑을 위해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 샀고 남해에 가면 으레 들르는 옥수수 찐빵 집에서 찐빵 한 상자를 사서 나눠 먹으며 캠핑장으로 향하는 길, 이제껏 다툼은 어느새 잊히고 즐거움이거나 괴로움일 캠핑장에서의 하루를 저마다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번 여행은 무사히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이었다.


캠핑은 남편의 유일한 취미였다. 절대 밖에서 잘 수 없다는 나를 설득해 캠핑장을 찾아다니길 어언 5년이다.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슬픔에 살 이유가 없다 말하던 남편이 무언가 즐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마냥 고마워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추위에 유독 약한 내가 캠핑에 정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몇 번이고 집에 오르락내리락하며 무거운 짐을 나르고, 상하지 않도록 음식을 챙기고, 몇 시간이고 텐트를 치고 추위에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주말이 끝나 있으니 녹초가 된 일요일 저녁에는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캠핑을 가지 않으면 아쉬워지는 것이다. 남편의 집념으로 난방 용품을 들이고, 텐트와 매트를 교체하고, 캠핑 살림이 제대로 갖춰지기 시작하니 이제야 풀벌레 소리, 새소리, 풀에서 나는 냄새와 너른 밤하늘을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수렵 채집인으로의 회귀인가 생각했다. 몇 백 만년을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왔으니 하루 만에 움집을 지어 땅에 볼을 비비며 잠들던 그때의 유전자가 캠핑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힘겹게 불을 피우고 있는 남편을 원시인 보듯 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완벽히 기획되거나 SNS에 전시되는 여행은 편리와 재미, 자극이 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캠핑은 삶 그 자체다.


에피소드형 여행은 불편함을 제거하려고 불편함을 감시하다 불쾌하게 되고야 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매끄러움이다. 그러한 여행에서는 익숙한 것들을 피해 매번 새로운 자극제를 꾀하게 된다. 마치 막장 드라마가 반전의 줄거리로만 타인의 관심을 얻듯 즐겁고, 재밌고, 새로운 곳이 아니면 나와 타인에게 실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캠핑은 같은 곳을 가더라도 날씨마다 땅이 다르고 그날의 경험이 다르니 철저히 같은 것도 다른 감정과 경험으로 채색할 수밖에 없는 의도된 불편함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스쳐가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없듯 삶도 그러한데 캠핑을 하면 그날 집을 짓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불을 피우며 느리지만 세세하게 다채로운 감각을 깨우게 된다. 캠핑을 다녀오고 나면 재밌지 않아도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이 오래도록 각인되어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


이번 캠핑장은 두 번째 방문한 곳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것은 장점이었지만, 사이트 옆에 주차할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었다. 파쇄석이 고루 깔려 그 아래 지층은 지나치게 단단하지 않아 팩이 잘 박혔고 비 온 후 낮아진 기온이 바다에서부터 매서운 바람을 일으켰다. 텐트를 치는 동안 어머니와 동이는 미리 잡아 놓은 방으로 가 불을 올려놓고 티브이를 보았다. 어머니는 주말 드라마를 좋아하셔서 이번에 휴대용 인터넷 티브이를 샀었는데 이번에는 방에 티브이가 갖춰져 있어 티브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텐트를 치고 늦은 저녁을 해 먹었다. 이 날 저녁식사는 거의 동이가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겹살 내가 구울래,라고 하기에 집게와 가위를 줬더니 이리저리 뒤집고 잘도 자른다. 동이가 불판 위에서 삼겹살을 구우면 온 가족이 동이만 보고 있다. 그렇게 잘게 잘라서 맛이 나겠니. 뜨거워, 팔 데겠다. 왜 고기를 안 뒤집는 거야.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잔소리도 아래로 흐른다. 가장 늦게 가족으로 합류한 내가 고기를 구우면 아무도 별 말하지 않지만, 신랑이 구울 때는 어머니가 몇 마디 보태고 동이가 고기를 구우면 신랑도 말을 보태고 어머니도 말을 보탠다.


그래도 이제는 동이가 어른이 다 되었다. 잔소리에 기죽지도 않고 신나게 고기를 굽는다. 잔소리는 잔소리고, 나는 나다, 하고 말하는 듯 상처 받지 않았다. 유달리 키가 작은 동이는 학교에 가면 상처를 받았다. 익숙지 않았던 학교 생활에서 친구들의 따돌림은 동이에게 큰 상처였다. 동이의 세계에서는 선생님의 무심함과 친구들의 무시가 일상이었는데, 누구 하나를 콕 집어서 질타하고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이가 어쩌지 못할 타인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언제나 곁에 있는 할머니 덕분일 것이다. 동이는 똘똘하고 논리적인 성향이고 어머님은 둥글둥글 재밌고 직관적인 말주변을 가진 분이라 자주 다투면서도 꼭 붙어 지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별명은 '톰과 제리'였다. 누가 톰이고, 누가 제리라는 것일까.   


어머니와 동이는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신랑과 나는 크리미와 텐트에서 잠을 잤다. 밤새 세찬 바람이 텐트를 흔들어 댔다. 모르고 들으면 누가 텐트를 발로 차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목이 반쯤 잠겨 있었는데, 다음번에 캠핑 갈 때는 꼭 난로를 가져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9시쯤 동이가 텐트로 찾아왔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고 캠핑장 입구에서 산 위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어머니는 걷는 내내 길가에 핀 풀이름을 불렀다.


저게 다 고사리 밭이야. 저건 칡 덩쿨이고. 저렇게 쌓여 있으면 사이사이에 풀은 다 죽것네. 자연인이 와서 좀 뽑아 줬음 좋겠는데. (어머니는 요새 '나는 자연인이다'에 푹 빠져 계신다.) 저건 두릅나무야. 두릅을 따지 않아서 이렇게 줄기가 뻗은 거야. 아까워라. 옴마나 이건 망개나무야. 정말 귀한 건데. 어머님은 주인 없는 밭이라면 봄에 다시 와서 고사리를 캐 가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 힘들어, 돌아 가자. 다 늙은 할머니도 걷는데 젊은 네가 뭐가 힘들다고. 처음 산을 오르는 아이는 마음이 무겁고, 어머님은 예전 같지 않은 몸이 무거운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크림이를 안고 꾸벅꾸벅 졸았고 어머님은 창 밖에 반짝이는 바다를 구경했다. 동이가 유자빵이 먹고 싶다고 하여 카페에 들러 유자빵과 유자청을 샀다. 어머님이 애기 먹으라고 유자청과 자몽청을 사다 주셨다. 여기서 애기는 나다.


냉장고와 싱크대와 도마와 식탁을 오고 가며 하루 세끼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마치는 순간, 하루의 의무를 끝낸 듯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쩌면 그 마침의 순간을 위해서 하루를 지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행주를 빨아 삶는다. 마치 하나의 마침표처럼. 지루함과 곤고함의 상징과도 같은 행주.

 -엄마 박완서의 부엌, 호원숙-


누군가를, 무언가를 유심히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친정엄마가 해준 반찬이 귀찮았던 것도 고구마 줄기를 까고 삶아서 양념에 무쳤던 긴 정성을 유심히 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온종일 배추를 절이고 다대기를 문지르며 며칠간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만든 김치며, 오래 묵힌 된장이며 매일 나를 추격하는 일정들에 지쳐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친정 엄마의 마음들이 냉장고 구석에서 오래도록 잊혔다가 버려지기 일쑤였던  내가 하루를 유심히 보지 않고 마침표 같은 행주만 기억하고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저자는 삼시 세 끼를 차려 먹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건한 의식으로서 행주를 말하지만, 내가 놓치고 사는 것들이 아쉬워 그 깨끗한 행주도 달리 보였다.


그래도 이번 주말은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기록해 보았다. 매일 떨어지는 살구를 찾아 줍듯 오늘 내 하루에 떨어진 기억 하나, 생각 하나, 웃음소리 하나, 고사리 하나, 유자 향기 하나 건져 내다 보면 초여름 살구나무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월요일 새벽 2시 51분. 차갑게 식은 커피 한 모금 더 하고 이제는 잠을 좀 자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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