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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35년간 기다렸던 엄마가 저 안에 있다. 정옥씨(41세, 가명)는 문 앞에 우뚝 서서 눈물을 터뜨렸다. 저 문을 지나기만 하면 되는데 그 한 걸음을 딛지 못해 다시 뒤돌아섰다. 7살 소녀는 엄마가 되어서도 아이처럼 서러웠다. 진짜 엄마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꿈속에서 엄마의 얼굴은 언제나 모자이크였다.
  2022년 5월 2일 정옥씨는 1987년 버스터미널에서 놓쳤던 엄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울음을 삼키고 겨우 들어선 곳에 머리가 하얗게 샌 엄마가 정옥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홍빛 외투를 곱게 차려입은 엄마는 정옥씨를 안아주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서른 개가 넘는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은 모녀 상봉의 감동을 담기 위해 축복의 빛을 쏘아 댔다.
  “따님 맞는 거 같아요, 어머님?”
  “맞네. 맞아. 톡 튀어나온 이마랑, 눈 옆에 상처랑. 어렸을 때 그대로야.”

  정옥씨가 가족을 만난 건 「리-멤버(re-member)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리-멤버(re-member) 프로젝트」 는 장기 실종 사건을 기억(remember)해서 재검토하고, 실종자를 다시(re) 가족의 구성원(a member)으로 돌려보내는 경찰서 자체 시책이었다. 봤던 것도 다시 보고 잊기 쉬운 것들을 살펴보는 정성으로 실종자를 찾아, 실종자가 무사히 가족 구성원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까지 하는 원스톱 행정인 것이다.
  리-멤버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건 지난 2월 4일 자매의 온라인 상봉회를 열었을 때였다. 자매는 가난 때문에 남의 집을 전전하다 56년 전인 1966년에 헤어졌다. 언니는 추운 겨울 눈에 젖은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를 때면 새벽녘 어둠 속에서 동생에게 ‘오빠 생각’을 불러주곤 했다. 돌아올 때는 대문 밖 무덤이 무서워 동생과 손을 잡고 집으로 달려 들어와 이불 속에서 엉엉 울었다. 그때 언니의 나이는 8살이었다. 언니는 5살 동생과 헤어지며 절대 자기 이름만은 잊지 말라고 말했다.
  동생이 경찰서에 본인을 실종아동으로 등록한 건 2021년 7월 30일. 경기도에 살던 언니는 그 2개월 후인 10월 5일에 동생을 찾으려 실종신고를 했다. 동생은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유전자 검사로는 형제 관계를 식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고, 동생의 인적 사항이 완전히 달라져 서로의 신고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의 상담 내용을 유심히 살핀 수사관의 세심한 노력 덕분에 일부 일치하는 정황을 발견했고, 두 자매의 사연이 애달파 우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충분한 안내 끝에 온라인 상봉회를 열었다.
  자매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지켜보는 경찰관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어린 자매가 60대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에 신의 손길이 닿았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것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토록 커다란 슬픔과 우리가 스친 사소한 일상들이 맞물려, 분명, 세계가 거대한 울분 덩어리 같을 때도 있었다. 불운의 나락에서 사람들은 포효하고 그 고통 언저리에서 우리들은 몸살을 앓았다. 사람마다 내밀한 고통 아래 사사로운 까닭까지 살피기에는 우리도 아팠던 것이다.

  KBS 뉴스디라이브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한 질문에 오래 머물렀다. 진행자는 가족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있을 실종자 가족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제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아픔이잖아요. 저도 경찰 생활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슬픔이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도처에 슬픔이다. 불신과 비난, 모욕과 경멸의 늪에서 타인의 슬픔으로 앓는 몸살은 지독하다. 그러나 그 슬픔에 귀 기울여야 나를 가로막고 있던 쾌나 불쾌는 옆으로 비켜나고 그 사람의 사정이 드러난다. 경찰 일은 진정 국민의 슬픔을 배우는 일이다. 제대로 보고, 직면하여 한가운데 들어가면 새로운 길이 있다. 그 길은 우리만이 갈 수 있다.

내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에 여전히 매달려 고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을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빠뜨린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는 게 이롭다. 독창적인 생각은 대개 그럴 때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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