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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나의 하루


우리 집 강아지 크림이는 매일 생기 넘치는 아침을 맞지만,
나는 어쩐지 낡고 손상된 것에 주로 마음을 쓴다.


예를 들면 출근하는 기차 안 사람들의 눅눅한 체온 같은 것들. 단지 선로 위를  잠시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지나치게 가까워야 할 운명에 처했다. 마주 앉아 핸드폰 화면만 휙휙 넘기는 무례함이 용인되는 공간에서 우리의 인연은 10분일까, 50분일까. 이미 씹히고 녹아서 창자 속을 지나는 밥알들 같이 들러붙어  도심 속으로 미끄러져 가는 개체들, 나는 그런 것에 마음을 쓴다.


종착역에서 사무실로 가는 길엔 어르신들이 시장 바닥에 앉아 나물이 듬성 섞인 비빔밥을 씹고 있다. 거대한 파라솔을 한 쪽 어깨에 이고 비빔밥 퍼는 할머니 옆에는 배수로 덮개가 있는데, 어제 꼼장어 집 아지매가 거기로 무언가를 넣었다. 미끄덩한 하얀 덩어리였는데 분명 손님 상 위에 오르지 못한 껍데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여전히 발아래에 있을지 어디론가 흘러갔을지, 나는 그런 것에 마음을 쓴다.


마대자루 만드는 할아버지 집에는 꼬마 누렁이, 문방구 집에는 검정고양이, 바께스 마다 콩이며 조며 가득 담은 곡물상에는 점박이 고양이가 있다. 줄지어선 곡물상에 비둘기들이 한 톨 건져 보려 다가와도 어림없다. 훠이 훠이 고양이 앞발질에도 진전을 멈추지 않는 노련한 비둘기들이지만 바께스를 덮어 놓은 그물은 뚫을 수 없다. 그물을 지키는 아지매는 드라마 서사를 쫓고 비둘기들은 몸을 돌려 무명인의 토사물을 쫀다. 아지매도 비둘기도 아랑곳 않는 무명인의 서사, 나는 그런 것에 마음을 쓴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는 온종일 타인의 아우성에 잠겨 있다. 사람들은 잘도 죽고, 걸핏하면 가족들과 연락을 끊는다. 숨어야 하는 사람과 찾아야 하는 사람, 추궁해야 할 사람과 숨겨야 하는 사람, 잘 웃어넘기는 사람과 포기해 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것들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지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지키지 않고 써도 남을 마음이면 좋겠다.


할머니 한 분이 다짜고짜 성내며 들어와 갈 때는 나를 꼭 껴안는다. 어느 한 부분 깨지고 물러져도 기쁘게 껴안을 수 있는 인생이라서 오늘 하루가 나쁘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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