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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연필의 위력

찔끔 피가 났다. 가방 속에 손을 넣었다가 뾰족한 연필 끝에 손가락이 찔렸다. 가방 속 작은 주머니엔 언제나 연필이 있었다. 찔리고 나니 연필의 존재가 새삼스럽다.


연필이 필요한 이유는 나의 형편없는 암기력 때문이다. 나는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내가 이제껏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가 하얀 종이 앞에 내던져진 인간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기억이든 추억이든 되돌려 보면, 오직 어둠이다. 어린 시절 추억, 특별히 즐거웠던 기억, 화가 났던 기억, 미웠던 기억.. 아무 것도 없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느낄 새도 없이 너무 많은 의무를 지고 살아와서인 것 같기는 한데, 그것도 잠정적인 결론이다.

나의 오래된 가족은 명령조로 이루어진 각자의 교리만 반복하는 탓에 마음을 나누기가 어렵다.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라는 말은 무수히 들었지만, 괜찮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20살의 어느 날엔 태어남에 감사함을 표하는 기도가 살아도 괜찮다는 말 같아서 엉엉 울었다. 일상의 짐은 삶보다 무거워서 여러 번, 이대로 스위치가 꺼졌으면, 하고 바랐지만 어쩐지 터질 듯 한 에너지로 나를 불사르며 살아왔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인지, 무언가를 향한 내달림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살았다.  

무던히도 부셔졌다. 어떤 의무로 선택한 첫 대학에서 사랑을 잃고 부서져 일찍부터 돈을 벌었고, 돈을 벌며 무능한 나를 구겨 넣다 부서져 또 다른 대학을 갔고, 거기서도 부서지고 또 부서지며 조금씩, 내 안에 창백한 얼굴로 앉아 신 놀음을 하는 가족들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듣고 보느냐의 사소한 선택들을 그들에게 맡겨서는 오로지 추락이었다. 그들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고, 분주하게 만들어 진공상태에서 부유하며 격앙된 채로 살게 만들었다. 느리게 보고 두껍게 느낄 일상이 없는데,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느린 것을 사랑해야 했다. 나의 남편이 그랬고, 책이 그랬다. 매번 같은 농담을 해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까지 남편은 느리게 나를 지켜보고 새로운 시선을 던져줬다. 가족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시선에 익숙해지는 일이라는 것, 그렇게 나를 재조립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말하는 갈등도 한 형식인 관계, 서로를 오래 바라보고 솔직하게 감정을 터놓아 부딪치더라도 화해로 나아가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나는 바삐 내달리면서도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남편은 그런 내 손을 잡고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느리게. 느리게.

남편을 만났던 시기는 책을 읽게 된 시기와 같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는 인생은 리허설이 없고, 한 번 사는 것은 한 번도 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했다. 아마도 가벼운 여성관을 가졌던 토마시의 생각을 대변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테레자의 슬픈 눈빛을 보고 베토벤 음악의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가 토마시의 마음속에 광광 울렸을 때 그는 그녀에게 돌아갔고 고단한 인생길에 직접 올라섰다. 리허설 같은 가벼운 인생에서 영원회귀의 무거운 인생으로 이행하는 순간이었다. 책과의 만남은 나에겐 ‘Es muss sein’이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나는 깃털같이 선택하고 납 같은 마음을 지고 살던 가벼움에서 벗어나, 살아있음의 진중한 무거움으로 걸어가고 있다. 느리게. 느리게.

연필은 그런 내 삶의 메타포였다. 느리게 걷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읽는다. 매일 칼럼을 읽고 책을 읽고 문서를 읽는다. 잊고 싶지 않은 문장들에 밑줄을 긋는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글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망막을 스쳤던 글들이 불 위를 뛰노는 재처럼 사라져 가서 아깝다. 나는 부지런히 연필로 사라지는 글을 장례 치르고,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연필이 나를 찔렀다.

연필의 반격이다. 연필은 위태롭고 가느다란 선으로 끊임없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증명하고 있다. 연필로 줄을 긋고 무언가를 쓴다. 잊지 않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다시 책을 들추었을 때는 낯선 글이 줄 위에서 춤추고 있다. 연필로 줄을 긋는 건 그때의 내가 하는 반복되고 의미 없는 수다와 다름없다. 참으로 무용한 몸짓이다. 제 주제에 귀신처럼 따라붙어 부산하게 채근하는.


솔직히 말하면 간밤에 뾰족하게 연필을 갈면서 '잘못하다 찔리겠는데' 하는 생각이 두어 번 스쳤던 것도 같다. 그러고도 가방 속에 연필 두 자루를 꽂았으니 '설마 그럴 리 없'고 '그래봤자 연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나를 공격한 적 없는 연필을 믿었고, 앞으로도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해 새삼스러운 건 연필의 존재가 아니라 연필의 위력이다. 연필은 위험하다. 대부분 잊히고 때론 나의 일부가 된 글을 지탱하며 도구로 기능했던 연필은 열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잊혀져가는 것들을 붙잡아 현재의 나를 증명하려는 무용한 몸짓이 이제 나를 아프게 한다. 무언가 잘 되어간다는 기분이 들 때조차 믿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분주히 취하면 리허설 같은 인생에 밑그림만 그리다 사라지게 된다. 어차피 모든 것은 잊힌다. 잊지 않으려는 분주한 노력이 이치의 망각이다. 그러니,

함부로 연필을 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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