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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다정의 계절

오래전 어느 크리스마스, 다정은 애인을 만나러 길을 나섰지만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을 거라 직감했다. 가장 아끼는 빨간 점퍼를 입었어도 특별한 건 없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겠지, 나는 별 볼 일 없는 식당을 갈 테고, 아마도, 어쩌면, 짐작건대 무사할 테고. 다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운구차를 따르며 검정 버스 한 대가 다정을 앞질렀다. 

요즘 들어 다정은 확률에 대한 생각을 한다. 매일 아침 업무용 메일을 읽으며 두 명의 30세 여성이 오후 세 시에 추락사할 확률, 한 아파트에서 59세 남자 두 명이 10분 사이에 변사체로 발견될 확률에 대해 생각한다. 세계의 관점에서 다수의 사건이 동시에 공통점을 가졌을 확률과 개인의 관점에서 어떤 특정한 요인을 가졌을 확률. 아마도, 어쩌면, 짐작건대 무사한 상태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불운 혹은 어떤 선택이 있었을 확률.

거기까지다. 답할 필요도 이유도 느끼지 못할 질문만 무한히 생성한다. 다만 다정의 삶에 주어진 확률만은 질문으로만 그칠 수 없다. 다정은 자주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한다. 혼자 있을까, 함께 있을까. 외로울까, 서운할까. 비참할까, 아련할까. 평안할까, 두려울까. 섣부른 답을 찾아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다 이번 주부터는 '고독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에서는 적당한 수입이 없고, 마음을 나눌 이가 없으며, 일상적 패배주의에 젖은 이들이 죽음 앞에 헐벗은 인간으로 가장 쓸모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서로를 실시간 영상 송출 sns를 통해 지켜본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매일 높이뛰기를 하거나, 매일 똑같은 개그를 한다. 쓸모없기에 태초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어떤 욕망들은 이루고픈 게 없다. 그 욕망의 발현만을 바라고 성실히 무언가를 한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부쩍 '다정'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다정한 선물, 다정한 선택, 다정, 다정... 다정의 목이 콱 막혔다. 이 정도면 '다정'의 범람이 아닌가. 다정은 언젠가부터 어디서든 '다정'하다는 단어를 자주 보았다. 선한 영향력, 경제적 자유, 다정, 무해, 힐링... 좋고 선한 것만 가득한 단어들을 보면 다정은 심란했다. 한 여름 초파리가 꼬인 달달한 참외 껍질을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정이 문제인 걸까. 다정은 취향 없이 차이만을 구하는 지독한 홍대병 환자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두들 빌려 쓰는 게 언어의 본질인데 좋아 보이는 단어 좀 빌려 쓰는 게 대수인가. 따지고 보면 다정도 유독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었다. 삶의 부조리라던가, 살아야 할 의미 같은 것들. 단지 지금은 '다정'이 범람하는 '다정'의 계절일 뿐이다. 

'다정'의 계절 이전에, '다정'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정다정, 김다정, 양다정... 여중, 여고를 졸업하며 수많은 다정이를 봐왔지만 '다정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일은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삶의 어디에 '다정'이 있을 수 있을까. 하물며 고독사를 준비하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어디에. 다치고 부러지다 특별할 것 없는 반복행위로 채워 넣는, 위계 없이 나열된 등장인물들의 삶엔 '다정'이 없지만 '다정'한 죽음은 있을 수 있다 여기는 걸까.

다정의 삶에 '다정' 은 없었다. '아마도, 어쩌면, 짐작건대'의 힘을 빌려 잠시 무사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 같다. 특별할 것도 없이 겨우 무사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짐작할 미래는 없다는 걸 직감하는 삶. 한 치 앞도 모른 채 꾸역꾸역 출근길 집을 나서는 삶. 완벽한 옷을 챙겨 입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해도 어느 날은 운구차 위에 몸을 실어야 하는 삶. 

무르익은 밤이 지나고 버스는 다정을 앞질러 갔고 다정은 무사할 확률과 무사하지 않을 확률을 방석처럼 깔고 앉아 있다. 

아직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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