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밥 찌는 냄새가 난다. 우리는 도심의 창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밥풀들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긴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네모난 스마트폰 안으로 잘만 숨어들면 선로 위의 무례는 쉽게 잊힌다. 선 자리, 앉은 자리, 덜렁거리는 손잡이 어느 것도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는다. 출근길 비둘기가 쪼고 있는 무명인의 토사물조차 길바닥에 눌어붙은 사연 하나쯤은 있을 텐데, 아침은 소란스레 말이 없다. 아침이 우리를 궁금해하지 않는 까닭이다.
출근하자마자 업무용 메일을 열고 지난 밤 사건 사고를 훑어본다. 읽으려던 칼럼은 잠시 미뤄두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들의 명단을 살핀다. 16번째 집을 나선 아이가 둘. 한 명은 열여섯, 한 명은 열일곱. 보호관찰 중인 한 아이는 새벽녘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다가 기막힌 협상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택시비가 없으니 집으로 데려다주면 안 될까요? 다정한 성정의 팀원이 아이를 어르고 달래 '자진 귀가'를 획득하자 한시름 놓인다. 한시름 놓으면 두 번째 시름이 기다리고 있다. 밤만 되면 보육시설의 담을 뛰어넘는 아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방문객이 왔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남자다. 남자의 전 부인은 45년 전부터 생사를 알 수 없던 딸을 찾고 싶다고 실종 신고를 했다. 부실하고 어두웠던 시절에 아이가 남자의 지인 집으로 이름 없이 입양을 갔다는 소문만 듣고 10년을 찾아 헤맸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혼해도 딸은 가족인가. (그렇다.) 입양도 실종이 되던가.(그럴 때도 있다.) 45년 전 주소지는 어찌 찾아 관할서로 이첩을 보내나. (못 보내면 우리가..) 절절한 그리움을 고백하는 국민이 보기에는 품위 없는 질문들일지라도 현실에서 발 딛고 일해야 하는 경찰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냉철하게 따져가며 한 땀 한 땀 추적하다 보니 본인 명의로 된 연락처 하나 없는 그 남자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오래전 이야기를 꺼냈다. 시계를 고쳐 생계를 유지하고, 바쁘게만 살아오다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져 아이를 가슴에 묻은 이야기. 그 시절에는 입양 절차 없이 주민등록이 늦은 척 호적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고, 그렇게 이름만 남은 아이가 왜 학교를 다니지 않는지 조사를 나온 적은 있었지만 사정을 말했더니 그 아픔에 공감하여 돌아갔다고 했다. 아이는 같은 생년월일, 다른 이름으로 부유한 집으로 입양을 갔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만나 보고는 싶다고도, 아이의 평온을 깨고 싶지는 않으니 생사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그는 식어버린 믹스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괜스레 1층까지 내려가 노쇠한 뒷모습을 배웅했다. 남자가 진술한 단서를 징검다리 삼아 어렸던 아이를 만나는 꿈을 꾸면서, 아이가 입양 사실을 모를 가능성과 입양 부모의 입장, 입양 부모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셈했다. 묵혀온 긴 세월에 대한 감탄과 탄식이 어긋나며 분주하던 생각이 잠시 느려져도 도리 없이 겪어내야 할 일이었다.
이번에는 회식하고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찾는 신고였다. 간밤에 그의 휴대폰은 유실물로 발견되었다. 새벽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었고,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는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기에 전화 한 통 쓰게 해 준 그 사람'은 가고 없다고 했다. 막연하게 불길한 기운이 맴돌았다. 한 번도 그랬던 적 없는 사람이, 최근 큰 빚을 지고, 지난밤 회식하고 오늘 오후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진술 하나하나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어느 아파트 화단에서 추락한 채로 발견되었다. 어젯밤 회식이 끝나고 동료들과 어깨동무하며 미소 짓던 얼굴은 그의 이른 죽음을 예상하는 표정이었을까.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한 겨우내 산 속에서 딱딱하게 굳은 실종자를 보고 서러워서 울고, 철없는 남편이 집 나가 파리해진 아내가 안타까워 울고, 항암치료를 받는 엄마가 모자를 쓰고 쫓아다녀도 방황하는 아이가 불쌍해 울고, 그리워하던 가족들이 만나면 그 세월이 서글퍼 울고, 티비 속의 참사에 놀라 엉엉 울며 동생을 찾던 오빠의 목소리에 또 울고. 사람들은 태양 아래 슬픔은 꾹꾹 응축해 두었다가 경찰관 앞에서 고름처럼 터뜨리곤 했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울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오늘도 슬픔 두어 개쯤 수집해서 집으로 가는 길 기차역으로 향할 때면 귤 같은 노을을 베어 물고 어둠이 온다. 불판에서 익어가는 삼겹살 냄새가 거리에 풍기고, 노란 간판의 소주방 아지매가 한숨 가득 담배를 피운다. 담뱃재가 날리다 익어가는 꼼장어 위로 살포시 내려앉으면 고단한 하루를 보낸 손님의 잔 안에 오래된 울음이 또르르르 흘러든다. 소란이든, 적막이든, 호탕하게 웃다가도 언제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밤, 경찰은 그 밤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