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을 달고 싶을 때가 있다.

Bu-rite프로젝트 2주 차

by 김반장


비장하게 칼을 빼들었는데 오징어가 나왔다. 다시 한 번 앞뒤로 살펴보아도 영락없는 마른 오징어다. 장대한 전투를 기대하고 뽑아든 것이 차갑고 딱딱한 마른 오징어라는, 그 비루한 현실에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길 다란 창과 날렵한 검을 든 적군 앞에서 오징어라도 휘둘러보지만, 긴 다리와 촘촘히 박힌 빨판을 자랑하는 실한 오징어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낮게 깔린 사극 톤은 콧소리 섞인 희극 톤으로 변모하고, 갑옷을 두른 팔은 경박하기 그지없는 오징어 다리와 함께 파닥거린다.


가끔은 개그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전쟁터에서 마른 오징어만 들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살기 위해 해야 하는 먹고 자는 일도 머리 위에서 뻥뻥 터지는 포탄이고, 나를 향한 총구다. 자우림의 노랫말처럼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서, 대단치 않은 의지로 겨우 하루를 산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미워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식은땀을 흘리며 오징어라도 휘둘러본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은 귀신 들린 실력으로 정답을 비켜가고 매일 조금씩 좌절한다. 도대체 무엇이 정답일까, 하는 고민은 구슬프게 흔들리는 오징어 다리처럼 희극적 요소가 있다. 나의 비루한 전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잘만 산다.


휴직을 하고 오래도록 누워만 있었다. 유튜브로 욕설이 난무하는 자극적인 영상들을 찾아보며 낄낄거렸다. 유튜버들이 맛깔나게 내뱉는 욕설이 내 입에서 나온 것만 같아 기묘한 해방감에 취했다. 작은 방 한 칸, 아니 내 무거운 몸뚱아리를 받쳐 들고 있는 소파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았다. 두터워진 몸을 구겨 넣을 옷도 없이,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그 순간이 가장 안락했다. 나에게는 나를 숨겨주는 한 뼘만큼의 자유만 필요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나의 오답을 허락하는 한 뼘의 자유가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나와 같이 무사히 20대를 지나와서 친근하지만 시니컬한 30대가 되었다. 나와는 달리 원대한 꿈을 품고 나보다 빨리 나의 길을 갔다. 나와 같이 적당한 명석함으로 직장에서 인정받았고, 나와는 달리 창창하게 젊은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하루를 기록으로 남겼고, 그녀가 하는 일은 그녀의 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직장에서 처참하게 짓이겨진 패배의 기록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감정을 조금씩 덜어내던 나와 달리, 그녀는 누가 봐도 내가 서 있는 전장의 승리자 같았다.


왜 나에게만 힘겨울까. 부당한 칼날은 재치 있게 넘겨버리고 뽀얀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쉬울까. 마음이 아팠다. 평생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깊게 패인 협곡 사이에서 맹렬히 흘렀다. ‘너 혼자 일하는 척 하지마’ ‘너의 인정욕구가 문제야’ ‘나도 쟤들 편이야.’ ‘네가 마음이 약한 게 문제야.’ ‘나는 조언일 뿐인데, 네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저마다의 이유로 나를 깨부숴야 했던 사람들이 던진 말들이 귓전에서 터져댔다.


어떠한 노력에도 달라지지 않던 부조리한 현실이야 밤을 새서 말해도 부족하지만, 나는 더 이상 억울함을 토로할 수 없었다. 단련된 말발로 나를 찔러대는 사람들의 의도는 맥락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이 그 맥락을 이해하려면 방대한 양의 정보를 필요로 했다. 나의 고통은 긴 말꼬리를 부여잡고 에둘러서만 말할 수 있는 지루한 열거였다. 결국 아주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본 사람이 아니면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우후죽순 나열된 등장인물도 문제였다. 나는 누가 나의 적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먼지 같은 진실 한 톨도 외면하지 못해서 상황을 단순하게 정의하지 못하는 가젤 특유의 습성 때문이었다. 고통을 피워내는 수많은 가능성의 밭에서 나는 매일같이 헤맸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 행동이 기분 나빴나? 내 안에서 답을 찾는 동안, 포식자는 가젤의 행동 특성에 납작하게 이름 붙이고는 그 이름으로 무리의 동조를 얻어 자연스레 가젤을 배제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가젤을 사냥하기란, 세상 가장 쉬운 일이었다. 준비를 마친 포식자가 느긋하게 앞발을 치켜들면 더 이상 피할 길은 없었다.


이미 늦었다. 나는 골방으로 유배를 떠났고, 그녀는 무사안일하게 잘 지낸다. 명치가 무겁게 내려앉으며 배알이 뒤틀리고 아랫배가 뭉근하게 아파왔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낙서를 하고 싶어졌다. 댓글 창에 커서를 갖다 대고 소리 없이 뇌까렸다. 불편한 사람이 있다는 그녀의 고백에, ‘그건 니가 이상한 거 같은데.’ 진상 민원인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글에는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럴 만 한 거 같기도?’ 어떻게 말을 해야 저 여자가 내 기분을 그대로 느낄까. 음침한 즐거움에 빠져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내가 쥐고 있는 게 비록 말라빠진 오징어라도, 생채기 정도는 낼 수 있다 이거야. 댓글 창에서 깜빡거리는 커서가 승리의 북을 쳐 댔다. 북소리가 시끄러워 나는 아무 말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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