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미친 개나리가 있다. 개나리라는 족속들이 원래 가끔 미치기도 하는지, 한 번은 길가다가 만난 기자가 한겨울에 개나리가 피었다며 소감 한마디만 말해달라고 했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카메라 앞에서 멀뚱히 서 있다가 꽃을 봐서 기분이 좋다는 일기장에나 적을 법한 말을 했는데, 시원하게 공중파를 탔다. 무려 8시 뉴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아무리 미친 개나리라도 8시 뉴스는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한겨울에 떠다니는 마른 바람을 잡아먹고 알알이 부서지는 흙의 물기를 빨아드려 꽃을 피우기로 작정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니라 이 구역의 미친 개나리에게 8시 뉴스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아마도, 너희들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듯 우리는 잎자루가 포도청이라거나, 개똥밭에서 꽃피워도 이승이 좋다, 같은 말이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입춘이니 경칩이니 인간들이 이름붙인 24절기가 웬 말이냐며, 개나리가 제 살에 닿은 흙의 온도에만 반응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에게는 겨울도 겨울이 아니고, 봄도 봄이라 할 수 없다.
처음 조직생활을 시작했을 때 상사가 내게 했던 말은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같은 내용을 보고해도 다른 남성 직원들에게는 관용과 아량이, 나에게는 우레와 같은 호통이 쏟아졌다. 같이 다닐 때마다 내게 계산서를 미루는 선배, 주말에 연락해서 내 옷차림을 지적하는 선배, 주말까지 나와서 일하지 않는다고 호통 치던 선배, 나를 불러내 일할 의지를 운운하며 막무가내로 혼내는 선배, 내 잘못이든 그들의 잘못이든 선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여지없이 혼이 났다.
1년 후 상사는 나를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사람들은 상사가 나를 특별히 성적 대상이라고 여긴 것은 아니라며 발끈했다. 그러나 가방끈이 길고 미혼의 젊은 여자였던 내가 그에게는 재밌는 농담거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상사를 위해 탄원서를 썼다. 어떤 사람은 '요즘 것들의 무서움'을 신나게 떠들어댔다. 어떤 사람은 나를 잡아놓고 훈계를 했다. 그들은 모두 부당함을 주장하는 일은 가해라고 했다.
사무실을 옮겼다. 사무실을 옮긴 2주 만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어린 직원이 나를 불러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았다. 나는 전과 같은 업무를 맡았던 터라 업무에 익숙했고,그 직원은 그 일을 맡은지 3개월 남짓 되었는데 내가 내 일을 해나가는 것을 무슨 꿍꿍이가 있어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그 직원의 자리에 공공연히 '우리는 네 편이야. 힘내'라는 쪽지를 붙어 있었다. 그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를 새겼다.
6개월쯤 지나서는 다른 직원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녀는 한 선배가 나를 편애해서 사무실 전체 분위기가 나빠졌다며 상관에게 은밀하고 반복적으로 보고했다. 아래 직원들을 부려서 승진할 욕심을 내고 있었던 상관은 그들의 눈치를 봤다. 상관은 나에 대한 말을 아꼈고, 그 직원은 회의 시간에 내가 칭찬이라도 받으면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기라도 한 듯 공공연히 성질을 부려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사무실을 옮기고 1년 쯤 되었을까, 전국에서 5명만 선발해 교육안을 제작하는 일을 맡아서 잠시 출장을 다녀오고 얼마 후, 상관이 시키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어린 직원이 이틀 동안 개구신을 죽였다. 숨이 턱 막히고 차가운 손이 떨렸다. 뭐가 문제인지 물었는데 이미 내 것이 아닌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덜덜 떨었다. 그녀는 당당히 소리를 질러댔고, 다른 직원들이 무리로 몰려와 나를 힐난했다. '일 시킬 줄 모르고 그 일을 상관에게 보고한 거냐.' '너 혼자 일하면 안 된다. 너 혼자 일한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나도 저쪽 편이다.' 그들은 자리를 피하는 나를 쫓아오고, 여자 숙직실로 자리를 옮기면서까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집요한 악의로 나를 악이라 정의했다.
그들의 별 볼일 없는 말이 칼날같이 심장을 후벼 파서 내가 죽지 않은 게 죄스럽게 느껴졌다. 나의 마지막 정신적 성채까지 무너졌고, 그들은 여전히 크게 웃고 떠들었다. 그들이 던진 말들이 나를 위한 조언으로 예쁘게 포장하는 데는 하루도 필요치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했다. 어차피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 사람들은 하나같이 ‘더 큰 싸움으로 만들기 싫다.’며 훌륭하게 중립을 지켰다.
일종의 '가스 라이팅(Gaslighting)'이었다. 영화 '가스등'에서 아름답고 부유한 여주인공 폴라는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계략을 숨기고 있는 남자 그레고리와 결혼한다. 그녀는 집에서 깜빡이는 가스등을 보고 남편에게 가스등이 깜박인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정신이상자 취급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그녀도 자신이 미쳤다고 믿기에 이른다.
그들은 내가 각자의 목적에 이로운 존재가 되길 바랐다. 그들의 쓰임새에 맞지 않을 때는 상하관계나 다수의 힘을 빌려 철저히 응징했다. 그들은 대화를 하자며 반쯤은 진실이 섞인 사실로 나를 비난했고, 끝내는 나를 고립시켰다. 가스등이 깜빡였고, 눈을 부릅뜬 나는 내가 미쳤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니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조짐은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우울해 보인다고 했고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내가 우울해 보일까봐 걱정돼서 더 웃고 더 활기차게 일하려고 애썼다. 떠맡은 일에 시달리면서도 웃었다. 시키는 일 다 할 테니 제발 나를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도, 웃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답을 찾는 짓을 그만두었다. I-message는 개나 주라지. 그들은 나를 이용할 생각은 있어도, 나와 대화할 생각은 없었다. 기울어진 테이블에서는 당연히 협상도 있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어떤 노력도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마에 카인의 표식을 새기고, 울음을 그쳤다.
있었던 일을 모두 기록했다. 있었던 일을 발화했다. 사무실이 갑자기 분주해졌고, 그들은 뒤늦게 대화를 요구했다. 나는 사과를 원했다. 그들은 대화는 해도 사과는 원치 않았다. 조직 내부에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직 여기저기서 추문의 파도가 일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가족의 연까지 조직 내에 가득했던 그들의 입장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나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조직 밖으로 손을 뻗쳤다. 감사기관에 모든 사실을 알렸고,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들은 승진시험 공부를 하러 두 달 간 사무실 대신 독서실로 출근했었지만, 그들 사이의 돈독한 친밀감이 그 사실도 숨겨줄 거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들의 믿음이 이겼다. 그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나는 유배를 떠났다. 트라우마 장애로 휴직을 했고, 고독한 싸움을 시작했다. 내가 떠난 동안 그들은,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내가 차지할까 봐 불안해했던 몫을 야금야금 떼어먹고, 원하던 만큼 주목받으며 그렇게, 승진을 했다. 그들에게는 봄이 왔지만 나는 아직 겨울이었다.
봄을 당겨 꽃을 피우려 자그마한 온기도 놓치지 않고 꽉 쥐었다. 까슬한 흙이 문드러지며 살갗을 비벼댔다. 이 구역의 미친 개나리는 나였다. 죽었거나 살아있는 확률이 반반씩 존재하는 채로 상자 안에 있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내가 미친 것 같기도 했고 나만 정상인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