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굼의 메커니즘
Bu-rite 프로젝트 4주 차
공가와 폐가.
버려진 집과 빈 집은 엄연히 다르지 않을까. 빈 집이 사람을 기다리는 집이라면, 버려진 집은 비어 있어도 사람을 반기지는 않는다. 버려진 집의 담벼락 위에는 깨진 유리가 박혀 있거나 녹슨 쇠창살이 스산하게 하늘을 찔러댄다. 바닥에는 철없거나 구슬픈 영혼들이 먹다 남긴 소주병이 굴러다닌다. 언젠가 지친 사람을 뉘었을 소파는 되레 제가 지쳐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 어떻게 들어왔을지 모를 마른 가지들이 널브러져 있고 차가운 공기 중에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
3월의 어느 날, 나는 공폐가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며칠째 버려진 집을 돌다 보니,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한 집 걸러 두 집이 폐가인 이곳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공폐가 13호, 번호가 붙은 집 대문을 열 길이 없어 담을 넘어야 했다. 망설임 없이 담을 넘어 버려진 집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점점 사람 찾기가 두렵다. 폐가를 돌아 나와 이 빠진 돌계단 위에서 새끼 쥐를 만났다. 검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새끼 쥐는 짧은 다리를 바닥에 붙이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5년 전이던가, 한 동안 많이 혼났던 건 보고를 빨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일이든 빨리 보고하라는데, 보고하면 혼이 나니 나는 보고서를 들고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사람은 많고 그 내용이 사람마다 영 달라서 쓸데없는 결재 라인만 늘어났다. 교육가는 날 새벽 처리한 일을 교육 다녀와서 보고했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상위 부서에서 홍보 행사에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받은 일도 비슷했다. 데드라인에 맞춰서 수정 작업 중이던 결과물을 당장 보내라고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더 빨리 보고하지 않는지, 그의 물음에 나는 항상 할 말이 없었다. 갈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군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청소를 마친 교육생들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는 교관이 나온다. 그는 바닥도 훑고, 창틀도 훑고, 하수구도 훑지만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자 급기야 침대를 들어내고 바닥을 더듬는다. 공포에 질린 교육생들의 얼굴이 하얀 면장갑에 묻어 나온 까만 먼지 같기만 하다. 다시 청소가 시작되고 바야흐로, 갈굼도 시작이다.
갈굼은 인간 세계에 만연한 현상으로, 인간의 두려움으로 완성된다. 두려움에 떠는 인간은 쥐가 레버를 누르면 언제든 치즈를 생산해 내는 스키너의 상자와도 같다. 쥐는 성미가 아주 고약한데, 치즈가 평소에 잘 나오다가 한 번 나오지 않거나, 더 빨리 나오지 않는 데서 쉽사리 심사가 뒤틀린다. 평소에 워낙 치즈를 잘 먹어둔 바람에 포동포동하게 살찐 배로 잘도 찍찍거린다. 목청이 터져라 찍찍거리면서 그가 바라는 건, 생각 없이 치즈만 생산해내는 완벽한 기계 상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 치의 기다림 없이.
갈굼의 논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자의 주인이 바뀌면 이제껏 옳던 일도 한순간에 그릇되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고 나서는, 빨리 보고하면 오히려 눈치 없이 혼자 일하는 척한다고 핀잔을 주거나 눈을 흘기기도 한다. 하도 일이 많다고,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하길래 일을 도와줬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한 공을 뺏었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혼자 남아 일하면 눈치 없이 혼자 일하는 척하지 말라고, 혼자 칭찬받지 말라고 따져댄다.
그러나 갈굼에도 원칙이 있는 법이다.
원칙 1 : 논리는 표어처럼 단순해야 한다. 몇 번이고 반복해도 어색함이 없어야 하고, 논리를 표하는 자는 수치심 없이 당당해야 하며, 논리를 따르지 않는 이에게는 가차 없는 응징을 가해야 한다.
원칙 2 : 관용은 품위 있게, 갈구는 자가 아량을 베풀 때만 감동적인 예외가 되어야 한다. 당하는 이가 갈구는 자의 악의를 의심하게 놔둬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원칙 3 : 갈굼도 신뢰가 우선이다. 물보라 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홀로 설 수 있다는 강인함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판단하지 않고 그의 말을 믿을 것이다. 판단은 강한 자가 짊어진 무게이자 강한 자만의 권리다. 절대, 겁먹은 눈빛을 들켜서는 안 된다.
명분이 제일 중요하다. 갈굼이란 결국, 사회적 맥락에서 용인된 명분으로 고통을 가하여 상자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명분이 사라지면 상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고장 난 상자에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치즈는, 없다.
3월인데도 버려진 집 안은 아직 썰렁했다.
"찾았습니다.”
멀리서 다른 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리까지 오는 낮은 담 아래 푹 꺼진 폐가에서 사람이 발견되었다. 가슴이 턱 막히고 뒷목이 서늘한 게, 불안했다. 새끼 쥐도 아직 불안에 떨고 있었다. 상자 없는 쥐는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너나 나나 세상에 별다른 쓰임 없이, 유달리 누린 것도 없이 애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서로를 갈구며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새끼 쥐는 소리 없이 죽어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